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 곁의 자리를 청하는 장면이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저 또한 누군가를 위해 애쓰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인정받고 싶고, 제 수고를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바랄 때가 있으니까요.
오늘 말씀은 그런 제 마음을 낮은 자리로 데려갑니다. 드러나지 않는 작은 일도 사랑으로 살아내게 이끌어주시는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2026년 5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8주간 수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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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베드로1서 1,18-25

여러분은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8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1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21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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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10,32-45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그때에 제자들이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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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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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7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7:1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섬김은 사랑의 가장 깊은 모습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은 그들을 불쾌하게 여깁니다. 사실 그들도 똑같이 높은 자리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과 다른 지도력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부활의 로랑 형제’라 불리는 니콜라 에르망은 전쟁에서 다친 뒤, 스물여섯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부엌일을 맡았습니다. 다리의 상처가 악화되어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자 신발을 수선하고 포도주를 배달하는 등 궂은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고되고 힘든 일도 즐거운 일로 여겼습니다. 접시 하나 닦는 것도 수많은 군중에게 설교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변함없이 살자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의 비결이 섬김이라는 것을 그의 삶이 증언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10,4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당신을 온전히 바치심으로써 몸소 섬김의 본보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높은 사람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을 따라 다른 이를 섬겨 봅시다. 섬김으로 우리도 참된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사람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의 고배와 만족의 축배 가운데서
오늘 복음은 이런 흐름 안에 있습니다. 그제 주님을 따르는 데 실패한 부자 얘기를 들었고, 부자와 달리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은 현세와 내세에서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어제 들은 데 이어 오늘은 제자들이 그 받을 상을 놓고 자리 다툼하는 내용을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어제 내세와 현세의 상을 다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오늘 내세에 받을 상에는 관심이 없고 현세에 받을 상 곧 높은 자리에 관해서만 관심을 표합니다. 이런 제자들이 얼마나 한심하셨을까요? 그런데도 나무람 조로 말씀하시지는 않고 차분히 타이르시고 가르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로 말하면 관구장을 했으니 높은 자리에 올라 본 적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랬기 때문인지 책임의 무게와 고통이 먼저 생각나면서 그 자리에 다시 오를 생각이 없고 그것이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도 없습니다.
사실 큰 사랑이 없으면 그 책임을 맡을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섬겨야 하는 책임 말입니다.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니 모든 사람 밑에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겸손만으론 안 되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아기의 온갖 필요를 살펴 돌봐주는데 그것은 겸손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오늘 당신은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러 오셨으며, 더 나아가 당신 목숨을 바치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비허(kenosis)적 겸손이 주님을 이 세상에 내려오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게까지 하였지만 최후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시기까지 제자들을 섬기게 한 것은 그분의 사랑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겸손은 내려가는 것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려가서 섬기는 것까지 하게 하는 것 더 나아가 죽기까지 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고 수난의 사랑(Passion)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당신이 마실 잔을 제자들도 같이 마시겠냐고 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그러자 그들도 같이 마시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는데 이때 마실 잔이 뭘까요? 주님께서 마실 잔과 제자들이 마시려는 잔은 어떤 것일까요? 같은 잔일까요? 주님께서 마실 잔은 고배인데 제자들이 마시려고 하는 잔도 고배일까요?
제 생각에 주님께서 마실 잔은 쓰디쓴 고배(苦杯)인데 제자들이 마시겠다고 한 잔은 승리의 축배(祝杯)일 것입니다. 사랑의 고배와 자기만족의 축배 가운데 우리는 어떤 잔을 들지 성찰케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진짜 버림은 자기 자신을 놓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뒤따르는 제자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보상을 꿈꾸며 따라가지만, 박해와 음모를 예감하기에 사뭇 참담한 분위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 베드로는 우리는 가족도 집도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라고 말하였지만, 진정 버린 것이 아니었던 가 봅니다. 또한 베드로로만 그런 것도 아니었던 가 봅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 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 라고 말합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가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두 제자들을 불쾌하게 여깁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에스트로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자신의 왕국이나 세계 전체를 떠났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다면, 실상 그는 아무 것도 떠난 것이 아니다. 진정, 자기 자신을 놓아야,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놓은 사람이다.”
이는 자신과 세상과 가족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들을 ‘놓은 그 자신마저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속으로부터 떠나왔다 하더라도 막상 ‘떠나 온 자신으로부터’ 떠나지 못한다면, 여전히 ‘떠나 온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44)
제자들은 비록 집과 가족을 떠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진정 ‘따르는 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따르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따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떠나왔다고 해서 ‘따르는 자’인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 자기 자신을 모두 ‘헌신하는 자’라야 비로소 ‘따르는 자’가 됩니다. “섬김”은 떠나 온 자의 행위라기보다, 따르는 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미 ‘떠나 온 자신을 떠날 때’라야, ‘진정으로 섬기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야말로, 이미 비우고 오신 당신마저도 비우셨고, 이미 아버지를 떠나오신 자신마저도 떠나셨습니다.
하오니, 주님! 이미 버리고 온 제 자신을 버리게 하소서. 섬김으로 헌신하여,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코복음 10장 45절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주님! 당신께서는 스승이시면서도
먼저 섬기셨고,
주님이시면서도 먼저 낮추셨습니다.
당신의 종이 되라 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의 종이 되라고 하시고
당신을 섬기라 하지 않으시고
작은이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대로
존경받기보다
먼저 존경하게 하소서.
섬김 받기보다, 먼저 섬기게 하소서.
모든 이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사랑은 내 힘으로 할 수 없지만, 결심은 할 수 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 10,43.45)
찬미 예수님! 연중 제8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뼈아픈 모순을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방금 전, "사람의 아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라고 당신 생애의 가장 비장한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야고보와 요한이 다가와 이렇게 청합니다.
"스승님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마르 10,37)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엇갈림입니까? 스승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며 죽겠다고 하시는데, 제자들은 그 피를 밟고 올라가 완장을 차겠다고 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무거운 십자가의 말씀이 제자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영적 난청'이라 부릅니다.
도대체 왜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을까요? 사람의 의지가 '나 자신의 영광과 행복'을 향해 세팅되어 있으면, 아무리 거룩한 진리를 만나도 그것을 오직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만 왜곡해서 듣기 때문입니다. 내 욕망이 앞서면,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조차 내 출세를 돕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전락해 버립니다.
주님은 오늘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제자들에게 선언하십니다. 기본 장착 시스템, 즉 영혼의 운영체제(OS) 자체를 '섬김을 받는 것'에서 '섬기는 것'으로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해집시다. 내 이익을 버리고 남을 섬기는 그 '아가페의 사랑'이 내 힘으로 자연스럽게 됩니까? 결코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철저하게 자기 영광을 향하도록 타락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힘이 부족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위대한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가 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순교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의지적 결심'입니다. 사랑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결심'의 힘이 우리 삶의 행복과 관계를 어떻게 결정짓는지 살펴보기 위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아주 흥미롭게 나타나고 있는 뚜렷한 통계 현상 하나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요즘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종 통계와 심층 인터뷰를 종합해 보면, 이 현상의 이면에는 양국 남녀가 겪고 있는 깊은 '불안'과 '결핍'의 심리학이 얽혀 있습니다.
왜 일본 남성들과 한국 여성들은 그토록 불안해할까요?
먼저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기나긴 경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경제적 성장이 멈추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일본 남성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불안해진 그들은 과거의 가부장적인 권위에 더욱 집착하며, 여성들에게 더 많은 '섬김'과 '순종'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여성들은 이런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지쳐버렸습니다. 장기 불황 속에서 자란 일본 여성들은 남성에게 거창한 재력이나 높은 스펙을 바라는 허상을 이미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게 먹고살 수 있는 환경에서 "나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만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한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함께 K-문화의 위상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압축 성장과 무한 경쟁, 그리고 SNS의 과시 문화는 한국 여성들에게 지독한 불안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불행한 것이다'라는 강박이 생긴 것입니다. 이 불안감은 외모 지상주의와 더 높은 스펙의 남성을 요구하는 끝없는 조건 비교로 이어졌습니다.
이 높은 요구치 앞에서 한국 남성들도 절망합니다. 경제적 능력만으로 그 무한한 조건을 다 채워주는 것에 한계를 느낀 한국 남성들은, 생존 전략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와 섬김'으로 여성을 만족시키려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엇갈린 불안의 궤적 속에서 기막힌 만남이 성사된 것입니다. 끝없는 비교와 스펙 요구에 지쳐 섬김의 에너지가 고갈된 '한국 남성'이, 물질적 스펙보다 그저 자신을 아껴주는 섬김의 태도 하나면 족하다고 감사해하는 '일본 여성'을 만난 것입니다.
이 사회적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영적 질문은 명확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을 채우기 위해 "네가 나를 섬겨야 한다"고 끝없이 요구할 때 필연적으로 관계의 지옥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와 결핍을 딛고 "내가 먼저 상대를 배려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배려에 "감사"로 응답할 때 국경마저 뛰어넘는 구원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주 물리학을 보면 이 '받으려는 자'와 '결심하여 주는 자'의 결말이 얼마나 극명하게 갈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블랙홀(Black Hole)'과 '항성(Star, 태양)'이 있습니다. 블랙홀은 엄청난 질량과 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주변의 모든 빛과 물질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것(대접받는 것)'입니다. 블랙홀은 자신의 불안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만, 결국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장 어둡고 차가운 공포의 공간이 되어 우주의 괴물로 남습니다.
반면 밤하늘을 찬란하게 밝히고 생명을 키워내는 태양과 같은 항성은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태양이라고 자신의 질량을 잃는 것이 덜 아프겠습니까? 하지만 항성은 자신의 중심부에서 맹렬한 핵융합을 일으켜 자신의 질량을 태워버리기로 '결심'한 존재입니다.
자기를 깎아내고 태우는 그 희생의 에너지를 밖으로 뿜어낼 때(섬길 때), 항성은 수십억 년 동안 우주를 밝히는 빛이 되고 주변에 수많은 행성과 생명체를 거느리는 위대한 중심이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섬겨라, 내 욕망의 스펙을 채워라"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영적 블랙홀입니다. 그 곁에 가면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기에 사람들은 결국 그를 떠나고 맙니다. 반면 비록 내 본성은 부족할지라도 매일 아침 "내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라며 자신을 태워 빛을 내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영적 태양입니다. (출처: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자기중심적인 블랙홀의 본성을 어떻게 섬김의 태양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사랑은 마음이 생겨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라도 먼저 '주기로 결심하고 행동'할 때, 하느님께서 그 빈자리에 진짜 사랑의 감정을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느 마을에 남편과 매일 전쟁처럼 싸우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지독하게 가부장적이고 자기 스펙만 내세우는 전형적인 '대접만 받으려는 블랙홀'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라곤 눈곱만큼도 남지 않은 여인은, 당장 이혼을 결심하고 마을의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저는 도저히 저 이기적인 인간과 못 살겠습니다. 당장 이혼할 건데, 저 인간이 평생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만들 가장 잔인하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랍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은밀하게 말했습니다.
"가장 잔인한 복수법이 하나 있지요. 이혼하기 전, 오늘부터 딱 30일 동안만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처럼 대접하는 '실험'을 해보십시오. 당신 마음에 사랑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30일 동안만 남편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십시오. 퇴근하면 버선발로 나가 영접하고, 최고의 요리를 바치며, 매일 '당신이 최고'라고 존경의 말을 퍼부으십시오. 그렇게 남편을 완전히 구름 위로 띄워놓고 당신의 섬김에 완벽하게 중독되게 만든 다음, 30일째 되는 날 갑자기 아주 차갑게 이혼 서류를 던지고 떠나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남편은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평생 당신을 그리워하며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볼 것입니다."
여인은 무릎을 탁 치며 "그것 참 기가 막힌 복수군요!"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부터 여인은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직 철저한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적 결심' 하나로 남편을 섬기는 30일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 악물고 맛있는 반찬을 올리고, 다정하게 안마를 해주고, 마음에도 없는 존경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남편은 처음엔 "이 여자가 미쳤나" 하고 의심했지만, 아내의 헌신적인 섬김이 매일 계속되자 마음의 무장해제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블랙홀 같던 남편의 마음속에 아내의 따뜻한 태양 빛이 스며든 것입니다.
결국 아내가 억지로라도 왕처럼 대우해주자 남편도 기적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시 아내를 황후처럼 대하기 시작했고, 일찍 퇴근하여 청소를 돕고 다정하게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마침내 30일이 되는 날, 랍비가 여인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자, 이제 복수의 날이 밝았소. 준비해 둔 이혼 서류를 던지고 그 인간을 파멸시킬 준비가 되었소?"
그러자 여인이 깜짝 놀라며 랍비의 손을 강하게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선생님! 세상에서 저를 이토록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 주는 천사 같은 제 남편을 두고 제가 어딜 간단 말입니까! 저는 평생 이 왕의 황후로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출처: 유대인 민담 재구성)
사랑은 내 힘으로 솟아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억지로라도 먼저 주겠다고 행동에 옮기는 처절한 '결심'입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마태오 복음 강론』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타인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서 왕관을 쓰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꺾어 타인의 발을 씻어주기로 결심할 때 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사랑할 힘이 없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사랑의 힘은 주님이 채워주시는 것이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빈손으로라도 먼저 주겠다는 단호한 결심뿐입니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어느 작가가 책을 출판하고 몇 년 후에 우연히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중고로 나온 자기 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격이 너무 저렴한 것입니다. 단돈 ‘1,000원’. 배송비보다도 적은 가격이었습니다. 곧바로 오프라인 중고 서점에 가서 올라온 자신의 책을 찾았습니다. 자기 책에는 ‘파손 품’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곧바로 책을 살펴보니 어디 한 군데 파손된 곳이 없는 완전한 새 책입니다. 직원에게 그 이유를 물어, 이렇게 가격이 싼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책이 파손 품이 된 것은 제가 남긴 서명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운 지은에게 서명해서 주었는데, 그 지인이 중고로 팔았나 봅니다. 그런데 작가 서명을 낙서로 여겨 파손 품이 된 것이지요. 사실 유명 작가의 친필이 있으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뜁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초판에 친필 헌정 문구가 들어간 책이 최근 경매에서 6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작가의 친필 서명은 ‘파손 품’의 이유가 됩니다.
작가의 가치에 따라 책의 가치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가치를 떠올려 보십시오. 주님의 가치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높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연결되어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의 가치는 어떨까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연결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주님과의 연결을 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파손 품’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정치적, 현세적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르 10,38)라고 묻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잔’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고난이나 진노를 상징하며, ‘세례’는 물에 잠기는 것으로 덮쳐오는 재난이나 극심한 고통에 압도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영광의 자리를 원한다면 내가 겪을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과 죽음에 동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마르 10,39)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깁니다. 야고보와 요한보다 의로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차지하려던 자리를 선점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제자들 모두 세상의 뜻만을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과의 연결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주님과 연결되는 길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높이는 길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절대 ‘파손 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상상력과 의지력이 서로 충돌하고 적대적일 때 이기는 쪽은 늘 상상력이다. 예외는 없다(에밀 쿠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작은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바치는 사랑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사랑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느님 사랑의 진실함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은 더 깊은 생명을 이루어 냅니다. 내어주는 생명 안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사랑과 배려가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의 삶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평화의 길을 배웁니다. 목숨을 바치시는 전혀 다른 하느님 나라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여전히 살아 움직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참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생명을 건네십니다. 목숨을 내어주고 살리는 삶이 참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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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