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풍랑이든 거센 풍랑이든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늘 파도를 멈추게 해 달라고 어리석은 기도를 하곤 해요. 하지만 오늘 복음을 통해, 파도를 없애 주시기보다 그 풍랑 속에서도 함께 계셔 주시는 주님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고요함은 파도가 사라질 때가 아니라, 주님의 현존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걱정은 자꾸 앞서 달려가고, 마음은 눈앞의 파도만 바라보지만,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삶의 소란함 속에서도 조용히 함께 머물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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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아모 3,1-8; 4,11-1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주님이 너희를 두고, 이집트 땅에서 내가 데리고 올라온 씨족 전체를 두고 한 이 말을 들어라.
2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
3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
4 먹이가 없는데도 사자가 숲속에서 으르렁거리겠느냐? 잡은 것이 없는데도 힘센 사자가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5 미끼가 없는데도 새가 땅에 있는 그물로 내려앉겠느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는데 땅에서 그물이 튀어 오르겠느냐?
6 성읍 안에서 뿔 나팔이 울리면 사람들이 떨지 않느냐?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
7 정녕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으시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8 사자가 포효하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
4,11 “나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를 뒤엎어 버리니 너희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니, 이스라엘아, 너의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8,23-27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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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6월 3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2:56
✚ 복음 07:03
✚ 강론 08:1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주님은 떠나신 적이 없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먼저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기록합니다. 단순한 움직임의 묘사 같지만, 이 장면은 제자 됨의 길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호수가 거세게 흔들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풍랑’으로 옮긴 그리스 말 ‘세이스모스’는 흔들림이나 지진을 뜻하는 낱말로 단순한 폭풍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큰 불안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불안에도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다급히 외칩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마태 8,25).
여기서 처음으로 ‘구원하다’라는 말이 다급한 현실 속에서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두려움을 짚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8,26)
그들의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라기보다, 작은 믿음이 흔들린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만 바다를 통제하실 수 있으셨지만, 이제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신화적 언어로 묘사한 장면이지만 오늘 복음은 분명히 말합니다, 주님의 권위 앞에 맞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두려움을 떨치고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함을.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배를 두고 교회는 자기 이해의 상징으로 읽어 왔습니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는 온갖 어려움으로 흔들리는 우리 삶과 교회와 닮았습니다.
믿음은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거기서 겪게 되는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바다가 완전히 잔잔해진 뒤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우리가 버틴 것은 배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그분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어렵고 힘겨운 삶의 어느 날, 눈물조차 흐르지 않을 만큼 그저 막막한 날, 바로 그런 날에도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믿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잠자고 계신 것이 아니라 잠자코 계신 주님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호수를 건너십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제자들과 동행하시는 건데 이는 우리의 인생길에도 주님께서 동행하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풍랑이 일자 겁을 잔뜩 먹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한배에 계시는데 겁을 내다니 하며 제법 믿음이 대단한듯하지만 같은 상황에 실제로 처하게 되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잠자고 계신 것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도 큰 고통 가운데 있을 땐 주님께서 잠자고 계시거나 더 나아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잠자고 계신 것이 실은 잠자코 계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자코 계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잠자고 계신 것은 불성실이시지만 잠자코 계신 것은 지켜보심입니다. 잠자고 있는 것은 무관심이거나 게으름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음입니다. 그러나 잠자코 있는 것은 어쩌면 사랑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은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기를 보면서 엄마가 잠자코 있는 것을 상상해봅시다. 일단은 개입을 자제하고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는지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하지 못하고 결국 도와달라고 하면 그때 가서야 도움을 줄지 말지 판단하고 뭘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위험에 처한 우리에게 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곧바로 지켜주진 않지만 지켜는 보실 겁니다. 당신께 대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실 것이고,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대응하는지 보실 것이고, 당황하며 허둥지둥하더라도 한동안 잠자코 더 지켜보실 겁니다.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지켜보실 것이고, 우리 입에서도 제자들처럼 주님! 소리가 나올 때까지 잠자코 계실 겁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풍랑이 없었으면 제자들은 주님을 찾지도 않았을 테지요. 풍랑이 일었어도 즉시 잠재우셨으면 역시 찾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구원체험도 하지 못하고 주님체험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위급한 상황에 잠자코 계실 때도 주님께서 잠자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이고, 나와 한배 안에서 동행하며 지켜보시다가 때가 되면 지켜주시라는 것을 의심치 말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풍랑은 믿음을 깨우는 시간
<앞 장면>에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마태 8,18)고 명령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만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먼저 배에 오르시어 동행하십니다.
사실, ‘배’는 항구에 매여 있을 때 안전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배는 그렇게 항구에 가만히 정박해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항해하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항해하면 당연히 풍랑을 만나고 표류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배’ 안에 그분이 함께 계시는 데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배’가 풍랑에 휘청거릴 때도 있고, 방향을 잃고 헤맬 때도 있고, 위험에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킬 수 있으시지만, 그 풍랑 속에서도 잠들어 계십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가 ‘우리가 눈을 떠야 할 때’입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물결이 들이치고 배가 흔들려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실, ‘잠들어 있는 이’는 그분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주무셔도 주님이시요 깨어 계셔도 주님이심을 믿지 못하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깨어나야 할 이’는 그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분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겁내고 불안해하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풍랑 속에서 잠들어 계셔도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키시는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키잡이’십니다.
그러니, 결코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고,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순수한 ‘신뢰’와 ‘의탁’일 뿐입니다. 곧 ‘그 속에서 함께 계시는 그분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그분께서는 ‘배’가 하늘항구에 닿기까지 우리를 ‘이끄시고 동반’하십니다. 단지 ‘동반’하실 뿐만 아니라 배를 ‘운전’하십니다. 그분은 주무셔도, 깨어 계셔도 ‘우리의 키잡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죽으면서도 인류를 구원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수와 바람’은 꾸짖어 고요하게 하시지만, 반면에 제자들에게는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하시면서, 그들을 ‘믿음’으로 이끌며, ‘믿음’을 굳세게 하십니다. ‘주님’이신 까닭입니다. ‘사랑’하시는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겁내지 말게 하소서. 저희 안에서 겁과 불안과 의혹을 몰아내소서. 함께 계시는 당신이 저의 주님이오니,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8장 26절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주님! 물결이 들이치고 배가 흔들려도
분명, 당신은 함께 계십니다.
잠들어 있는 이는
당신이 아니라 제 자신일 뿐,
주무셔도 주님이시오
깨어 계셔도 주님이신
당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는
제 자신일 뿐,
깨어나야 할 이는
당신이 아니라 제 자신일 뿐,
당신이 함께 계시건만
두려워하고 있는 이는
제 자신일 뿐,
풍랑 속에서 잠들어 계셔도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키시는
당신이 저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트레스로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직서를 썼습니다. 하지만 쓴 사직서를 차마 제출할 수 없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은데 왜 제출하지 못할까요?
회사 안에서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고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에서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버틸 수가 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에 집중하면 그 어떤 고통이나 시련도 버겁지 않고 또 수치스럽지도 않게 됩니다. 이런 집중이 사랑의 표현이 되고, 의지의 표현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 됩니다.
사랑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스트레스를 주는 고통이나 시련에만 집중한다면 어떨까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에 집중하면 그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됩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신 기적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해서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과 함께라면 고통과 시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항해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었습니다.
배가 뒤집힐 것 같은 혼돈 속에서 보여주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한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평안과 신뢰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마태 8,25)라고 외칩니다. 주님과 함께 있어도 두려움을 버리지 못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위기를 해결하시는 순서입니다. 사실 풍랑부터 잔잔하게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라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배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죽을 것으로 생각한 두려움을 꾸짖으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고통과 시련 한가운데에서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배에 거센 풍랑이 일고 예수님은 마치 주무시는 것처럼 아무 응답이 없어 보일 때조차, 우리가 탄 배는 절대 가라앉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이 불만족스러운 근본적인 원인은 사랑의 우선 순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삶의 풍랑이 거세질 때마다 우리는 파도를 바라보느라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풍랑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풍랑이 호수를 떠난 적이 없듯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 예상하지 못한 풍랑이 언제든 우리를 찾아옵니다. 풍랑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삶의 배 안에 함께 계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 다시 우리 마음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풍랑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현존입니다. 풍랑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풍랑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현존을 신뢰하십시오. 두려움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믿음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두려움은 파도를 바라볼 때 커지고, 믿음은 주님을 바라볼 때 깊어집니다. 기도와 신뢰로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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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