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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7.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7. 1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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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곁에서 짐을 함께 져 주시는 주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다시 걸어갈 힘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무거운 짐을 진 그대로 당신께 오라고 초대하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이사 26,7-9.12.16-19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7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8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9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16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17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18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19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1,28-30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7월 1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20

✚ 복음 07:16

✚ 강론 08:0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짐을 함께 지시는 분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일화에서 인간 삶의 부조리를 떠올립니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면 바위가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카뮈는 이 의미 없는 반복과 허무함을 극복하려면 삶의 허무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상황을 부정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라고 초대합니다.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한 시시포스’를 마음에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보다 이러한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접근은 카뮈와 달랐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혹한 운명의 산에 홀로 남겨 두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곁에 머무르시며 쉼의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곳이 더 이상 형벌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몸소 그 형벌 같은 삶을 살아 내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인간은 참된 행복, 그 궁극적 ‘좋은 삶’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카뮈가 꿈꾸던 ‘행복한 시시포스’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나그네가 바랑을 지고 다니듯, 바랑이 없는 거지도 끼니를 챙겨야 하는 ‘짐’을 져야 하듯, 오늘도 우리는 삶을 ‘짐’으로 지고 살아갑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있고, 수도자로서 스스로 짊어진 ‘짐’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자녀로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가족으로서 함께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질병과 육신, 상처와 나약함, 분노와 원망을 ‘짐’으로 지고 가기도 합니다. 형제를 ‘짐’으로 지고 가고, 세상을 ‘짐’ 지고 가며, 자기 자신을 ‘짐’으로 지고 갑니다. 자신만이 짊어져야 하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짐’이 있고, 부당하게 떠맡겨지는 ‘짐’도 있고, 피하고 싶은 ‘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짐’을 다른 이에게 떠맡기기도 하고, 다른 이의 ‘짐’을 떠맡기도 하며, 함께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탄생과 더불어 생명을 ‘짐’으로 짊어지고 살아가고, 살면서는 죽음을 ‘짐’으로 짊어지고 죽어갑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

그런데 나의 몸에서, 나의 짐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도 ‘짐’을 지고 가셨습니다. 세상을 짊어지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아니, 그 ‘짐’을 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바로 그 ‘짐’을 지고서야 가실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결코, 그 ‘짐’을 지지 않고는 가야할 그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요, ‘십자가 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 ‘짐’은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북돋아줍니다.

사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짐’이 아니라, 짐을 지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오히려 ‘짐’으로 하여, 우리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짐’이 우리를 짊어지고 가는 까닭입니다. 정녕 ‘짐’을 지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까닭입니다. ‘짐’이 없이는 가지를 못하는 길을 가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짐’은 ‘우리를 북돋아주고 도와주는 은총’입니다. 저를 구원으로 이끄는 ‘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에"에 짐을 올려놓고 그리스도와 함께 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갑니다. 우리가 은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지고 가십니다. 그리스도의 멍에에 짐을 올려놓으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몸소 우리의 ‘짐’마저 짊어지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30)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짊어진 짐에서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고서, 갈 길을 사랑으로 가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1장 28절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주님! 오늘도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과 삶을 짐으로 지고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짓누르는 것은 짐이 아니라, 저 자신일 뿐!

정녕, 짐을 지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을 가기에, 제게는 짐이 은총입니다.

오늘도 사랑을 지고서 갈 길을 사랑으로 가게 하소서.

제가 짊어진 짐에서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어느 신부가 깨진 도자기를 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멀쩡한 도자기를 깨뜨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인 ‘긴쓰기’를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깨진 도자기나 그릇을 옻칠로 붙이고, 그 갈라진 자리에 금가루나 은가루를 입혀서 수리하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의 상처나 흉터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숨겨야 할 결함이 아니라 빛나야 할 역사의 훈장은 아닐까요?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용기보다는 부끄러워 숨으려고만 합니다. 이렇게 숨으면 그 상처나 흉터에 멋진 금가루나 은가루를 입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필요가 없어서 그냥 버려지고 맙니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우리이고, 그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주님이시기에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철저히 주님 곁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은 많은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식을 얻으려고 주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멍에는 짐승의 목에 씌워 다른 짐승과 함께 일하고 짐을 끌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것은 안식을 얻는 방법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든 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사실 유다 문학에서 멍에는 하느님의 통치와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과 인격이라는 새로운 멍에를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유다 지역의 멍에는 보통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메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숙련된 어미 소와 어린 소가 함께 멍에를 메면, 어미 소가 대부분의 무게를 감당하고 어린 소는 그저 곁에서 걸음마를 배우며 따라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어미 소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곁에서 가벼운 멍에를 메면서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그분의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참 많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혼자 힘으로만 가려고 한다면 실제로 어렵고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편한 길이 될 것입니다. 안식을 얻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의 모든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소포클래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짐이 무거울수록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이 무겁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는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중심이 바로 설 때 삶의 무게는 같은데도 우리 마음은 달라집니다.

먼저 당신 곁에서 쉬라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는 쉼입니다. 참된 쉼은 일이 끝나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짐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짐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가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보다 우리의 존재를 먼저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갈수록 짐은 은총이 되고, 십자가는 사랑이 되며, 고통은 겸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의 회복입니다. 주님께 우리 마음을 맡기는 법을 배우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참된 쉼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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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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