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의 손을 보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고픔을 봅니다. 바리사이들과 예수님은 같은 장면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복음은 저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아요.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저는 무엇을 먼저 보고 있을까요. 어쩌면 자비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마음을 바라보려는 시선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예수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도록 이끌어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1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1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이사 38,1-6.21-22.7-8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1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2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3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4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5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6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21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22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7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8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2,1-8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7월 17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12
✚ 복음 07:42
✚ 강론 09:2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사람을 먼저 보는 눈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밀밭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고 제자들은 배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사이들이 곧바로 이를 문제 삼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이 지적한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은 행위 자체가 안식일에 금지된 ‘노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씨뿌리기나 추수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이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이러한 금지 규정이 서른아홉 가지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왜 그런 규정이 생겨났는지 근본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안식일은 인간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에 감사하고 그 자비를 이웃과 나누는 날입니다. 규정은 복잡해졌을지 몰라도 그 본질은 이토록 단순합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스승의 자비로운 눈은 규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밝혀 줍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정작 안식일의 참뜻을 지키지 못하고 있던 이들은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잣대로 죄 없는 이들을 판단하고 단죄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자비하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법과 규정이 그 근본정신을 잃으면 무자비한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안식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이 이 일을 트집 잡은 것은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일했다고 해서 트집을 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소경을 고치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요한 5,17)
그렇다면, 대체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세우신 이유’는 무엇일까?
<탈출기>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장면에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를 “내가 너희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되게 하기 위함”(탈출 16,12 참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야훼께서 안식일을 계약의 표로 삼으시는 장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나 주님이 너희를 성별하는 이라는 것을 일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징이다.”(탈출 31,13)
이는 ‘안식일을 새운 이유’가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안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우주 만물의 주권이 그분께 있음을 알기에, 모든 것을 그분께 내어드리고 그분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세우신 것은 거룩한 구별을 위해서입니다. 곧 안식일을 하느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표징’(Sign)으로(출애굽기 31:13) 세우고,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세상의 가치관과 구분된 삶을 살아가도록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안식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해 쉬는 것인가?
<탈출기>의 계약의 책에서 말합니다.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12)
이는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을 위하여 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병행 본문인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마르 2,27)
그런 까닭에 오늘 <복음>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자비로운 일’이 바로 ‘안식일 계명의 근본정신’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만이라도 형제를 단죄하지 않게 하소서. 성전에서는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정작 형제에게는 꼬투리를 잡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 자신이 사랑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2장 8절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이 날은 저희를 위하여 마련하신 날, 이 날을 새롭게 하시고 저희를 새롭게 하소서.
새 마음, 새 살이 돋게 하고 새 옷을 입히소서.
거룩함을 입었으니 거룩한 일을 행하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이가 되게 하소서.
당신이 주님이심을 알고, 당신께 속한 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안식일은 무조건 쉬는 날이 아닌 '이것'을 내려놓는 날!
오늘 복음은 안식일에 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이삭을 뜯어먹다가 바리사이들의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
안식일은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행복의 주인이 당신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행복마다 주인이 있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했을 때 잠자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무서운 것이 나올까 봐 두려웠던 것은 아니고 자고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공포를 해결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깨어있을 때의 행복이었습니다. 행복하게 놀고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힘이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그 행복을 맛보게 해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어도 되니까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살다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태중의 아기처럼 즐기다가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에게는 죽음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행복하다면 저세상에서 만나게 될 부모가 나를 사랑함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의 주인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재미있게 놀았더라도 부모가 나의 생존을 보장해주고 있지 않았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당장 먹고살 것이 걱정인데 무슨 놀이가 행복하겠습니까? 따라서 모든 행복의 바탕에는 생존을 책임지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놀이가 생존이 됩니다. 놀이가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생존이 보장되어야 삶이 놀이가 됩니다.
예수님은 생존을 보장하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주일에 성전에 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바리사이들처럼 지킬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안식일의 주인이 하느님임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하느님이면 마치 태아처럼 태중에서 걱정 없이 편안합니다.
유튜브에서 어떤 노숙자가 자기 개 두 마리아에게 자기 전 재산을 다 털어 케이크를 사고 생일잔치를 해 주며 이것밖에 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걱정해야 하는 것은 주인입니다. 성당에 와서도 걱정하고 있다면 그 성당의 주인이 하느님이 아니고 나인 것입니다.
이럴 때 바리사이처럼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생존이 보장되면 삶이 놀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나의 모든 삶은 죽지 않기 위한 노력이 되고 이 경쟁의 삶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생존을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날 가난한 스님이 부자 스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오늘 길을 떠나려 합니다. 남해의 어느 큰 절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몸 건강히 계십시오.”
가난한 스님이 떠난다는 말에 부자 스님이 매우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여기서 남해까지가 얼마나 먼 거리라고 그렇게 함부로 떠난단 말이오. 나 역시 남해로 가려고 진즉부터 준비하고 있었는데,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이러고 있는데…. 그런데 자네는 나 모르는 사이에 언제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였단 말인가?”
그러자 가난한 스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뭐 준비랄 것이 있겠소. 물병 하나 바랑 하나면 되지.”
가난한 스님이 달랑 내민 물병과 바랑을 보며 부자 스님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뭐라고? 이것으로 그 먼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오?” 가난한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더니 물병은 허리에 차고, 바랑은 등에 짊어진 채 문밖으로 나섰습니다. 터덜터덜 멀리 사라져가는 가난한 스님의 등 뒤에서 부자 스님이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무사히 도착이나 할지 원, 쯧쯧…. 나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떠나야지.”
그다음 해가 되자 가난한 스님이 돌아왔습니다. 얼굴은 해쓱해지고 옷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스님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가난한 스님을 에워쌌습니다. 가난한 스님은 고생하면서 겪은 이야기와 남해의 큰 절과 자신이 만난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스님은 그때까지도 남해로 떠날 생각을 못 하고 조금 더 돈을 모을 생각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어떻게 안식일을 지낼 수 있었을까요? 매일 내려주시는 만나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일 먹을 양식이 없는데도 하루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이들은 내년까지 먹을 것이 있는데도 쉬지 못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준비해서 하려면 평생 못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모시면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어먹는 것은 놀이입니다. 누구에게는 생존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과 함께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놀이가 됩니다. 삶이 놀이가 될 때 안식일의 주인을 만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새로 태어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파산!”이란 문구를 들고 초췌하게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테슬라에 다니는 직원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금 안식일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걱정을 내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놀이가 됩니다. 염려와 걱정은 주인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다면 나는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걱정을 성당에 놓고 와야 합니다. 걱정한다는 말은 내가 주님이란 뜻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집이고 나는 그 집의 종입니다. 종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전은 걱정을 버리는 자리입니다. 항상 성전에서 살면 인생이 즐거움이 됩니다. 안식일은 무조건 쉬는 날이 아니라 걱정을 내려놓는 날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든 층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가 있나 싶어서 두리번거렸고, 아무도 없는데도 멈추는 것을 보면서 누가 장난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내려가기 위해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모든 층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그날이 안식일이라서 엘리베이터가 모든 층에 멈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율법은 말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려면 버튼을 눌러야 하고 이는 전기를 흐르게 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전기는 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불을 붙이는 것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된다고 합니다.
해석에 따라 죄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율법주의를 예수님께서는 금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에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리 안식일이라 해도 사랑 때문에 일할 수 있고, 환자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만 바라보면 되는데, 많은 이가 그보다 원리 원칙을 따집니다. 물론 원리 원칙대로 하면 편합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하나의 구속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더 사랑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안식일을 충실히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제자들을 보면서 바리사이들은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마태 12,2)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배고파서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은 절도가 아닙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이 밭에서 이삭을 줍는 행위는 도둑질로 간주하지 않았고, 이들을 위해 밭 한쪽 구석의 수확물을 남겨두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행동을 비난합니다. 안식일에는 수확을 포함한 대부분의 육체노동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문장에만 집착하면서, 제자들이 겪고 있는 인간적인 고통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십니다. 첫째, 다윗의 부하들이 배가 고팠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들만 먹을 수 있는 제사 빵을 먹었던 일을 말씀하십니다. 둘째,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들 역시 안식일에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날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십니다(오늘날 사제들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제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율법주의에 자주 빠집니다. 그러나 사랑 없는 율법주의는 사람들을 구속하게 되어 하느님을 느낄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웃에 대한 사랑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 안에서만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교회가 지배하는 교회가 되지 않고, 복음, 곧 기쁜 소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의 주인을 만나지 못한 메마른 우리 삶입니다. 점점 우리 마음은 쉴 곳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생명보다 앞서는 규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식에서 본질로, 문자에서 생명으로, 규정에서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며 빵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붙잡았지만, 놓친 것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안식일을 찾지 말고 안식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것이 안식의 본질입니다. 단지 노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사랑은 생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규칙을 지키는 노예가 아니라, 사랑의 주체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규칙이 아니라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될 때, 모든 날은 안식이 되고 모든 만남은 은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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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