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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8.1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8.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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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빚을 탕감받고도 돌아서자마자 동료의 작은 빚을 받으려 하는 종의 모습에서 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제 이야기였어요.

 

이것도 내가 받은 것이었구나.

저것도 내가 받은 것이었구나.

 

얼마나 많은 기다림 속에서 용서받았는지,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사랑 속에서 살아왔는지 하나씩 돌아보다 결국 울고 말았어요. 받은 자비를 얼마나 쉽게 잊으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8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에제 12,1-12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3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유배 짐을 꾸려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거라. 행여 자기들이 반항의 집안임을 그들이 깨달을지도 모른다.

4 너는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라.

5 그들이 보는 앞에서 벽을 뚫고 나가라.

6 너는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마라.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삼았다.”

7 나는 명령을 받은 대로 하였다.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손으로 벽을 뚫고,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다.

8 이튿날 아침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9 “사람의 아들아, 저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10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 신탁은 예루살렘에 있는 수장과 그 안에 있는 온 이스라엘 집안에 관한 것이다.’

11 너는 또 말하여라.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유배를 당해 끌려갈 것입니다.’

12 그들 가운데에 있는 수장은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이 그를 내보내려고 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땅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8,21─19,1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8월 13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21

✚ 복음 08:01

✚ 강론 10:5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당연해지는 순간, 감사는 멀어집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은 만 탈렌트의 빚을 탕감받는 것도, 자신의 돈 백 데나리온을 돌려받는 것도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정말 두 경우가 모두 당연한 일일까요? 이러한 종의 모습에서 당연함의 기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 있는 반면에,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그분께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아도 될까요?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떤 일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인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하여 하는 일을 의무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때때로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를 봅니다. 하느님의 호의가 그러합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호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우리가 부족한 데도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끊임없이 초대하신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 사랑을 조건 없이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막히지 않기를 기도하며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욕심으로 용서하지 않고 사랑으로 용서하는

어제 내게 죄지은 형제를 어떻게 타일러야 하는지 봤는데 오늘 복음은 그 연장선에서 그를 왜 용서하고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를 보면 우리 인간은 자기 용서는 한없이 받고 싶어 하고, 남의 용서는 조금도 해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독한 이기주의 또는 자기중심주의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때가 되면 용서해야 합니다. 돈을 받은 사람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돈을 받았는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면 그 돈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곧 하찮게 여기며 흘려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럴 자격 없는 나를 용서해 주셨는데 그 용서가 그의 마음에 없다면 그는 그 용서가 맘에 들지 않고, 하찮게 여겼기에 그 귀한 용서에 감사하지도 않고 흘려버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정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면 그래서 그에 대해 감사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면 용서의 때에 용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고, 오늘 베드로 사도처럼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용서에 감사하며 그 용서로 형제를 용서한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알량한 나의 용서로 가까스로 용서했는데, 똑같은 죄를 다시 내게 지으면 이런 놈을 또 용서해야 하냐, 더 이상은 안 된다며 길길이 날뛸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용서의 욕심도 있습니다. 이는 무한 용서의 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대가랄까 보람이랄까 그런 것을 바란다는 뜻입니다. 네가 진정 잘 되길 바라며 용서하지 않고 어렵게 용서한 나의 용서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는 용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정말 어렵게 용서해 주었는데 용서한 보람 없게 얼마 안 가 같은 죄를 또다시 내게 짓는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럴 때 화가 나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욕심에서 기인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용서받은 자가 지녀야 할 마음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설교(마태 18장)에서 먼저 공동체에서의 작은이들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마무리 하셨고, 공동체에서의 형제애를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교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왜 용서를 해야만 하는지?’를 밝혀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고 말씀하신 다음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는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그렇습니다. 자비를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자비로운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자비를 입은 그 사실 자체도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제는 “자비를 베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아니 죄를 인정하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용서해주신 자비와 용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해달라고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기까지 사랑하셨고, 오늘도 똑같은 죄를 반복해 짓는 우리를, 여전히 끝없이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미 입은 바로 그 사랑, 그 용서, 그 자비로 우리도 끝없이 용서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그분이 용서하기를 원하시니 우리가 용서하는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하는 자가 지녀야 할 마음’과 ‘용서받은 자가 지녀야 할 마음’을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빚을 탕감해준 주인의 “가엾은 마음”(마태 18,27)과 탕감 받은 자가 지녀야 하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란 빚진 사람이 진 부채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채 진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이해타산의 계산이 아니라 사람의 존귀함을 들여다보는 마음입니다. 곧 내가 받은 상처를 헤아려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상처를 헤아려보는 마음입니다.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란 죄를 지은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곧 우리를 향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순전한 “선의”와 “자비”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의”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에게도 역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았음에 대해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우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사”의 표현으로 다른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을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용서와 자비를 입었으니, 저희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8장 22절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 일곱 번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일등의 영광을 차지할까? 당연히 아름다움을 첫 번째로 뽑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인대회의 순위를 보면 이상합니다. 1등을 진(眞), 2등을 선(善), 3등이 미(美)입니다. 아름다움보다 선함이 중요하고, 이 선함보다도 올바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등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등수의 의미는 전혀 보지 않고, 그저 덜 중요하다고 하는 아름다움만 바라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입니다. 물질과 세속적인 것에 순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 채우는 것이 최고이고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만 잘 살면 그만일까요?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에 집중하면 해야 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해야 할 것이 때로는 도저히 실천하지 못할 것처럼 무거운 무게를 가진 것도 있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데, 이 정도까지 해야 할까 싶은 것도 너무 많습니다.

만약 이 세상 삶 안에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그냥 세상의 논리대로 사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세상을 모두 마치고 하늘 나라에 가야 합니다. 이 나라는 사랑의 삶을 산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감사의 마음을 품는 사람만이 받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실천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라고 묻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전통에서는 세 번 정도 용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기에, 꽤 너그러운 제안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계산법을 완전히 뛰어넘는 말씀입니다. 카인의 후손 라멕의 복수의 노래를 보면,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라고 나옵니다. 이를 정확히 뒤집으십니다. 폭력과 복수가 끝없이 증폭되는 세상의 법칙을, 한계 없는 무한한 용서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 무한한 용서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기 위해 셈을 하는 임금의 비유를 이야기하십니다.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이 자기 빚을 다 탕감받았지만,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서는 자비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탕감받았는지를 기억하면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압도적인 사랑과 용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로써 구원이라는 가장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단죄하는 모습은 자기가 받은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아름다움은 스스로, 혼자서, 문득 발견하는 것입니다(다자이 오사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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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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