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먼저 포도밭에 온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을 덜 받은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한 데나리온을 바라보다가 자기 한 데나리온의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겠지요. 먼저 포도밭에 들어간 일꾼들에게도 처음에는 자신을 불러 준 것이 큰 기쁨이었을 테니까요.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바라보느라 이미 제 삶에 와 있는 은총을 잊을 때가 많아요. 남의 손에 들린 것을 헤아리기보다, 오래전부터 저를 불러 주시고 오늘도 당신의 포도밭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1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1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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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 34,1-11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5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6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8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9 그러니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10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20,1-16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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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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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23
✚ 복음 08:21
✚ 강론 11:4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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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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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비교하는 순간, 받은 은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대적 위안을 느끼고는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며 배 아파하기도 하고, 남의 불행에 안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태도는 대체적으로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져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맨 먼저 온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다]”(마태 20,10). 그들은 나중에 온 이들보다 자신들이 ‘더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대우를 받자 투덜거립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 20,12).
그러나 먼저 부름받은 사람은 밭 주인이 자기를 먼저 불러 주고 고용한 덕에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살아가나 …….’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서 일찍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기억하지 못하였기에 그들은 ‘첫째’였지만 나중에 온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한 ‘꼴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인과 약속한 품삯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기대와 욕심이 앞서 자신을 고용해 준 데에 대한 감사는커녕 원망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모두 똑같은 품삯을 주었다는 것은 먼저 온 사람을 부당하게 대우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와서 적게 일한 사람들에게 ‘주인이 자비를 베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부터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자녀가 된 사람이든, 뒤늦게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자녀가 된 사람이든 차별 없이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시고 싶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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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부르심 그 자체가 이미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에 대한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이 속에는 ‘하느님 자비의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비유에는 세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포도원 주인은 대체 ‘때’를 가리지 않고 품꾼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일의 실적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습니다. 도대체가 ‘계산’이라고는 모릅니다.
사실, 주인은 애시 당초부터 일을 부리기 위해 품꾼들을 불러들인 것이라기보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부르심’ 그 자체가 이미 은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주어진 ‘은총’입니다.
<둘째>는 품삯을 줄 때에 맨 나중에 불려 온 자부터 줍니다. 무능하여 맨 나중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깊은 배려와 자비입니다. 사실, 그들은 능력이 없는 까닭에, 자비에 내맡길 수밖에 없는 “꼴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필요한 자에게 우선적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셋째>는 먼저 온 이들에게나 나중 온 이들에게나 똑같이 품삯이 주어집니다. 일한 시간이나 실적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먼저 온 품꾼에 대한 부당한 대우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두에게는 계약을 맺은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었고, 뒤에 온 이들에게는 ‘자비’가 베풀어졌을 뿐입니다.
사실, 주인은 품삯을 셈 해줌에 있어서, 정당함에 자비를 더하여 쳐주었습니다. 이러한 주인의 권한행사와 너그러운 처사는 절대적인 하느님의 주권과 자비를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인간이 일한 대가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유’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포도원에 와서 일한 사람들이 불평하자, 말합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마태 20,13-14)
사실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포도원 주인이 애초부터 은혜를 베풀기 위해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불러들였듯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먼저 온 이와 나중 온 이가 따로 없으며, 모두가 자비를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첫째라고 뻐기거나, 혹은 꼴찌라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포도밭에 와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20장 4절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주님! 당신은 무능하여 맨 나중에 올 수밖에 없었던 꼴찌들부터 품삯을 주시니 애시 당초 일을 부리기 위해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불러들이신 까닭입니다.
당신은 일한 시간이나 실적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으시고 똑같이 품삯을 주시니 애초부터 은혜를 베풀기 위해 당신 포도밭에 불러들인 까닭입니다.
이토록, 부르심이 이미 은총이요, 은총은 계산이 아니라 자비오니 진정, 당신의 자비를 찬미합니다.
이토록, 당신 부르심이 제게는 영광이오니 오, 나의 주님이시여! 영원무궁토록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오후 5시까지 그 자리를 지킨 사람
학창 시절의 한 친구가 생각납니다. 이 친구는 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쉬거나 놀지 않고, 수학 문제를 풀거나 참고서를 홀로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노력해도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매번 놀기만 하는 저보다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갑작스럽게 쪽지 시험을 본다면서 서랍에 모든 것 집어넣고 펜만 꺼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 결과에 따라 채벌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맞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친구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의 성적이 저보다 좋은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늘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기도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하면 분심이 들어서 이 시간이 시간 낭비하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분심 든다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분심이 들어도 기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실까요?
“하느님, 저는 지금 분심이 들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분명히 더 좋아하십니다. 영적 메마름에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유명한 ‘포도밭 일꾼의 비유’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품꾼은 노예보다 더 불안정한 최하위 계층이었습니다. 주인이 생계를 책임져주는 노예와 달리, 하루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온 가족이 굶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행보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통상적인 밭 주인은 아침 일찍 관리인을 보내 인력을 구하고 끝내지만, 이 주인은 이른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 그리고 일과가 끝나기 직전인 오후 5시까지 모두 다섯 번이나 직접 장터로 나갑니다. 노동력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일거리를 찾지 못해 굶주릴 사람들을 품어주려는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은 일을 모두 마치고 맨 마지막에 온 이부터 지급합니다. 사실 아침 일꾼부터 받고 떠났다면 시기와 불만이 생기지 않았겠지만, 주인은 의도적으로 이 과정을 모두가 보게 함으로써 자비 넘치시는 하느님의 방식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인상 깊은 사람은 5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 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 정의를 베푸시되, 동시에 가장 비천한 이에게 자유로이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보상은 세상의 산술적 계산이 아닌,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은총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한다는 것, 다른 이의 유일성을 미묘하고 날카롭게, 절대 잊을 수 없이 의식하는 것(수잔 손택).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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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서 34장 11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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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