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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8.2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8.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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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사랑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씀 앞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너머에 감추어 둔 제 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과 욕심이 뒤섞여 있고, 친절 뒤에 서운함이 숨어 있을 때도 있지만 이런 저를 더 좋은 모습으로 꾸며 당신께 보여 드릴 필요가 없어서 참 다행이에요.

 

“주님, 제 안에 이런 마음도 있습니다.” 하고 숨김없이 내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2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8월 2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2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1테살 3,6-10.16-18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6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17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이것이 내 모든 편지의 표지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편지를 씁니다.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23,27-3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8월 2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12

✚ 복음 06:29

✚ 강론 08:0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사랑받고 있음을 알면 꾸미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마태 23,27)

이 말씀에서 위선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다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공동체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만족보다는 자신의 만족과 과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처럼 겉으로만 위하는 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는 태도가 바로 위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면서 자신의 만족을 채우고자 합니다. 다른 이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섭섭해하거나 상처를 받습니다. 하느님의 지지보다 인간적인 지지를 받고 인정을 받는 데에 더 애를 쓰고, 하느님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에 더 신경 씁니다.

우리가 제아무리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도 열심히 한다 해도, 말과 행동이 주님의 뜻과 맞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조건 없이 선사하신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품지 못한다면 위선적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선적으로 살기보다 하느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머문다면, 주변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하느님 앞에서는 순수한 어린이로 머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초대와 권고는 좋아도 나무람은 싫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는 말씀을 하시고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말씀으로 당시에 무질서하게 살며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이 계속 저를 불편케 하는 걸 보면 이 말씀들이 저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이런 말씀은 제발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하였는데 이번 주에 계속 바치는 본기도가 제 마음을 찌릅니다.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 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본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게 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부담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고, 오늘 말씀들도 하느님의 가르침이니 부담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아니 저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사랑하거나 선택적으로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듯이 하느님 말씀도 선택적으로 사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고로 사랑하는 하느님 말씀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탕자를 용서해 주는 자비로운 아버지 비유, 절망 중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동반하시는 주님의 얘기, 고생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당신께 와 안식을 얻으라는 말씀 등입니다.

그렇다면 최고로 듣기 싫어하는 말씀은 무엇일까도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짐작과 달리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나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고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말씀은 실천하기 참 힘든 말씀이기는 하지만 권고와 초대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씀들은 어제와 오늘 말씀과 같이 야단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힘든 것에 초대하거나 실천을 권고하시는 말씀은 힘들기는 해도 거기에 나를 초대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존심을 긁는 말씀이 아니라 그 어려운 것에 초대하시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너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인정하는 것이요 분발하라고 격려하시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 신성에 참여하라는 것이고, 우리가 당신처럼 할 만한 존재라고 인정하는 셈이잖아요? 어쨌거나 저뿐 아니라 인간은 야단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신성에 초대하지 않으시는 것까지는 좋을 수도 있지만 너는 사람 축에도 못 끼거나 못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싫은 것입니다. 그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라는 말을 들어도 쌉니다. 그 잘난 자존심 때문에 위선적인 나를 겸손히 인정치 않는 것이고, 그 역겨운 위선에서 나를 꺼내는 회개를 시작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은 저의 위선을 언제 솔직히 인정하고 언제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을지 자신을 염려하고 자비를 청하며 기도하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는 무엇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나요.

오늘 <복음>도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불행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을 “회칠한 무덤”(마태 23,27)에 비유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생명의 본성을 뿜는 것이 아니라, 무덤의 냄새를 뿜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19,16)에 따르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하기 때문에 무덤을 회칠하여 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불결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은 그들이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겉은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마태 23,27-28)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악”보다 더 추악한 것은 “거짓된 선”, 곧 “선으로 꾸며진 위선” 입니다. 마치 자신이 “선”인양 꾸미고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위선’ 중에서도 ‘종교적 위선’은 악취가 더 심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나 자선이나 단식, 혹은 미사나 전례나 성사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나아가서, ‘위선’(ùποκρισισ)은 단지 못된 속셈을 교묘한 방법으로 감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올가미에 씌우기도 합니다(예레 18,18). 실제로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그러했습니다(마태 22,18). 또한, ‘위선’은 자신을 완고하게 하고 자신의 탐욕과 방종을 위해 하느님을 도구로 삼고, ‘자신들이 의롭다고 여기기도 합니다.’(루카 18,9;20,20), 그래서 ‘눈 먼 길잡이’(마태 15,3-14)가 되어 잘못 가르치는 ‘나쁜 누룩’(루카 12,1)이 되기도 합니다. 혹 우리가 그러고 있지는 않는지 잘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예언자들의 무덤은 꾸미지만 실은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듯이, 지혜이신 당신을 핍박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듯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 해도, 진리는 가리고 있는 허울을 어김없이 벗기고 말 뿐입니다. 어둠이 드러난 진실마저 덮고 조작하려 할지라도, 빛은 끝내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가림 막을 태우고, 감추어진 탐욕과 위선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더러운 속을 감추고, 겉을 그럴싸하게 꾸미고 치장하고 은폐하고 기만하고, 심지어는 조작하기도 하는 우리의 위선을 주님께서는 환히 아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당신이 담아주신 마음 속 진리를 행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23장 31절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주님! 위선의 껍데기를 벗고 진리 편에 서게 하소서.

허물이 드러날까 두려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제 손바닥을 치우고, 감추어진 탐욕과 위선을 드러내소서.

핍박과 폭행을 당해도 물러서지 않고, 불의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으로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일대의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의 ‘올려다보기 실험’ 있습니다. 뉴욕 거리에서 타인의 시선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혼잡한 거리에 바람잡이들을 세워놓고, 아무것도 없는 건물의 6층 창문을 올려다보게 했습니다. 실험의 변수는 바람잡이의 숫자였습니다.

한 사람이 하늘을 볼 때는 지나가는 사람의 4%만 걸음을 멈췄습니다. 절반 정도는 그냥 걸어가면서 잠깐 고개를 드는 정도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3명이 바라보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절반 정도가 걸음을 멈추거나 고개를 들어 바람잡이의 시선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5명이 올려다보는 상황에서는 80%가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그렇다면 15명일 때는 어떠했을까요? 5명 때와 비슷했습니다.

5명의 시선만으로도 거리의 거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1~2명일 때는 그저 ‘개인적인 자극’이지만, 5명 이상일 때는 객관적인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만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객관적 상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5명만 되어도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아닌, 자기들의 위선으로 뭉쳐서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의 비유 말씀으로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율법에 따르면, 시체나 무덤에 닿은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해져서 과월절 축제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길가의 무덤을 실수로 건드려 부정해지는 일이 없다고 무덤 표면에 하얀 회를 칠해 눈에 잘 띄게 표시했습니다. 그래서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무덤은 외관상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지만, 실제는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는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십니다.

또 한 가지는, 과거 순교한 예언자들과 의인들의 무덤을 기념비 형태로 웅장하게 보수하고 장식하는 유행을 이야기하십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우리가 그때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우지만, 지금 살아 있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단죄하는 모습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 좋은 영향이 아닌 나쁜 영향을 세상에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위선과 불법을 모두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5명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함께 주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그 변화를 당신 손으로 직접 끌어내야 한다(클린트 이스트우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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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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