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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9.0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9. 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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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음이 갈라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모으는 것은 참 어려워요.

 

다시 이어질 길을 찾기 위해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사랑하도록 곁에 머물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 둘이나 셋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그 작은 자리에서, 저희의 마음보다 먼저 와 계시는 당신을 알아보게 하소서. 아멘.

 

2026년 9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9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23주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9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에제 33,7-9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네가 악인에게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9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제2독서

로마 13,8-10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8,15-20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9월 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7:42

✚ 제2독서 12:47

✚ 복음 15:01

✚ 강론 16:3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왕태언 요셉 신부

주님은 관계를 다시 이어 보려는 그 자리에 계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너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먼저 단둘이 만나 그 잘못에 대하여 이야기하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이 말을 듣지 않았을 때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서 다시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 사람의 말도 듣지 않았을 때는 교회에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그 사람을 위하여 내가 해야 할 노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사람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공동체 밖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용서와 화해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서로 회개하고 용서하고자 함께 기도하며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적 약점을 내버려두시지 않고, 함께 노력하고 기도할 이웃을 마련해 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노력에도 당신께서 흔쾌히 함께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남겨 주신 말씀은 어려운 세상살이 가운데서도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뒷담화할 것인가? 충고할 것인가?

오늘 연중 제23주일은 형제가 내게 죄를 지었을 경우 어떻게든지 교정해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죄를 지은 자가 내 형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형제’가 사실 우리의 대응에 있어서 문제입니다. 숫제 남이든지 자식이든지 하면 대응이 분명하잖아요? 숫제 남이 나에게 죄를 지으면 그를 원수처럼 여기며 벌을 받게 하거나 보상케 하면 끝이니 사람 만들려고 굳이 타이르거나 이런저런 애를 쓸 필요가 없지요.

또 자식이 엄마에게 죄를 지으면 엄마는 그를 어떻게든지 사람 만들려고 이런저런 애를 다 쓰고 이렇게도 타이르고 저렇게도 타이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이르는 것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형제인 경우 애매합니다. 형제간에 우애가 있으면 부모처럼 충고하고 어떻게든지 사람 만들려고 애쓰지만 우애가 없거나 어중간하면 충고와 무관심 사이에서 줄타기하게 되고 힘들게 충고했는데 안 받아들이면 앞에서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뒤에서 흉보지요.

앞에서 직접 얘기하지 않고 뒤에서 다른 형제와 흉보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뒤에서 다른 사람과 흉본다고 하지 않고 다른 형제와 흉본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의 흉은 형제에게 보지 남에게 보지 않습니다.

남에게 흉봐봤자 그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동감도 얻지 못하기에 남에게 흉보지 않고 형제끼리 흉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관계만 악화되고 형제간에 갈라지게 될 뿐이기에 흉보는 것보단 차라리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충고할 것인가 흉볼 것인가를 앞두고 혼자 진지하게 입장 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그를 사람 만들 것인가? 내버려 둘 것인가? 그리고 자신을 봐야 합니다. 사람 만들려는 사랑이 내게 있는가?

아니면 그만한 사랑이 내게 없는가? 그만한 사랑이 아직 없다면 이것으로 무관심해 버릴 것인가? 사랑을 내 안에서 키워 언젠가는 사랑으로 충고할 것인가? 사랑이 내 안에서 자라도록 나와 그를 위해 기도하겠는가?

나 혼자 충고했다가 안 될 경우 다른 형제와 흉볼 것인가? 나 혼자선 안 되니 다른 형제와 같이 가서 충고할 것인가? 그래도 안 되면 공동체와 장상에게 알려서라도 사람 만들 것인가?

한 마디로 끝까지 사랑할 것인가? 뒷담화하거나 중도 포기하느니 아예 사랑을 포기하고 침묵할 것인가? 이런 성찰과 고민을 하게 하는 오늘 주님 말씀인데 뒷담화거나 중도 포기하느니 아예 침묵하는 쪽으로 우리가 선택하기보다 끝까지 사랑하는 쪽으로 선택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엉킨 마음을 풀어가는 사랑

오늘 말씀전례는 ‘잘못된 형제의 교정’과 교정에 대한 본정신이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갈등과 불화와 대립 속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갈등을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공동체 생활 안에서나, 개인관계 안에서나, 국가적인 정치 안에서나, 언제나 큰 숙제로 다가옵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언자를 파수꾼으로 세워 잘못된 길을 가는 이를 일깨우라고 말합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에제 33,7-8)

이는 형제의 잘못이나 세상의 잘못에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와 사랑 앞에서 몸을 숨기는 것은 자살행위다.’(272항 참조)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율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타일러라. 단 둘이 만나 타이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증인을 데려가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참조)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형제를 교정하는 방법과 절차를 <다섯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혼자 단독으로 하는 교정이여, <둘째>는 두세 사람이 함께 하는 교정이요, <셋째>는 교회를 통한 교정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는 것을 통한 교정이요, <다섯째>는 형제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바치는 기도를 통한 교정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단지 잘못한 형제에 대한 형식적인 교정방법이나 절차가 아니라, 그 안에 스며있는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이라할 수 있습니다. 곧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타인을 ‘남’이라 여기지 않고 서로를 형제요, 자신의 일부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라 여기는 마음에서 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그의 [규칙서](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한 형제를 고쳐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행위와 같다. 왜냐하면, 잘못한 형제는 마치 독 있는 뱀에 물린 상태와 같은데, 그 독을 빼내어주지 않고 그대로 나두는 것은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형제가 잘못했을 때는, 먼저 그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바로 내 ‘형제’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비록 그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는 죄인이기 이전에, ‘내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처지에 이르더라도, 앞에 말한 <넷째> 처지에 이르렀다하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무관심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이때가 잘못한 형제를 위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사랑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마태 18,19)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죄를 찾아내어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회개시켜 그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18)

교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 곧 ‘풀기와 매기’의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매는 권한은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매는 조건이 풀어지면, 교회는 항상 풀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죄인이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곧 스스로가 해결사가 되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께 신뢰로 의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도 “(잘못한 형제들에게)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 또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규칙서 27,4)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그러니, 이 세상에서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이루는 것은 모인 사람의 수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랑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바로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다.”(마태 18,20).

하오니, 주님! 저희가 당신 안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형제를 위하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8장 15절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주님! 주님!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형제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의 잘못이 드러나거든 그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함을 알고 힘을 모아 사랑하게 하소서.

그를 돕는 길이 죄를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제 사랑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신 당신께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르네 스피츠’는 감옥에서 태어나서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모아 돌보았습니다. 위생적인 환경, 충분한 영양 공급이 이루어짐에도 전염병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은 것입니다. 멕시코에 여행 갔다가 우연히 고아원 아이들을 봤는데, 매우 건강하고 잘 울지도 않았습니다. 분명히 이곳이 더 비위생적이고 영양 공급이 형편없는데도 말입니다.

비결은 이웃 마을 여성들이 매일 고아원에 와서 아기들을 안아주고 이야기와 노래를 해주는 데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스피츠 박사는 자기 책에 ‘접촉을 가진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지만, 피부 접촉 없이 유모차에서 자란 아이는 점점 약해졌다.’라고 썼습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다고 털이 없는 갑각류나 파충류처럼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피부에 상처를 입히기가 쉽습니다. 왜 털이 없을까요? 앞선 스피츠 박사의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털이 없는 이유는 접촉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털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피부 덕택에 우리는 온기를 느낍니다. 이 온기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온기를 나누는, 그래서 함께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형제를 되찾는 구체적인 절차를 보여줍니다. 그들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먼저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형제의 명예와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잘못을 공개하여 망신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퍼뜨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꾸짖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동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가 대화가 실패하면 곧바로 공동체 전체에 알리지 않습니다.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 상대방만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판단도 검증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가장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실패하면,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형제의 죄가 끝내 개인적 대화로 해결되지 않을 때,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고 하십니다. 그를 미워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세리 중 한 명을 제자로도 뽑으셨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과도 만나셨고, 또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구원의 대상으로 계속 기도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함께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제1독서에서처럼 형제가 죄의 위험에 빠졌을 때 침묵해서는 안 되고, 제2독서 로마서의 말씀처럼 모든 말과 행동의 동기가 사랑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말씀을 기억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 위대한 일은 없다. 오직 위대한 사랑으로 행한 작은 일들이 있을 뿐이다(성녀 마더 데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길을 내는 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형제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참된 관계에는 말하는 것만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잃지 않는 관계의 회복입니다. 나와 너 사이에 다시 관계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형제를 다시 바라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충고는 심판이 되지만, 사랑에서 나온 충고는 형제를 다시 일으키는 손길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공동체입니다. 형제를 만나기 전에 우리 마음을 만나고, 잘못을 보기 전에 그 형제의 아픔을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겸손에 있습니다. 형제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진심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제를 얻는 길입니다. 사랑은 먼저 다가갑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얻는 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다시 길을 내는 사랑이며 다시 하느님을 향하는 진실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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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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