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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9.0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9. 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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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펴진 다음에 뻗은 것이 아니라, 뻗었더니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는 말씀이 참 놀라워요.

 

두렵고 자신 없어도 “손을 뻗어라.” 하시는 말씀을 믿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손을 뻗도록 용기를 주시고, 그 작은 움직임 안에서 다시 새롭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9월 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9월 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9월 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1코린 5,1-8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루카 6,6-11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9월 7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15

✚ 복음 07:09

✚ 강론 08:5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왕태언 요셉 신부

편한 길과 옳은 길 사이에서

누군가를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면 보통 부정적인 뜻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융통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인데도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융통성’ 있게 굳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는 앞에서 고쳐 주시지 않고 따로 불러내어 그들이 없는 곳에서 고쳐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지켜보던(루카 6,7 참조) 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공격하려던 사람들에게서 안전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융통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융통성 때문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책임감과 정의에 대하여 분명히 알려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필요한 조언이긴 합니다. 그러나 융통성을 마치 “제 논에 물 대기”라는 속담처럼 모든 일을 나에게 편하고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이 당연하다거나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신앙생활에는 쉽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복음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리고 그에 따르는 행복한 신앙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가까운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연출자

“일어나 가운데로 서라.”

지난 토요일에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자중자애하는 사람이 진정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걸 봤습니다.

진정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지 아는 사람이요, 자기가 없으면 사실 다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어 자기만 소중하고 존귀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게 되면 그런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참 자존감의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참 자존감의 사람은 자기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우주의 중심임을 아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중하고 귀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존귀함이고 품위입니다.

반대로 천박하고 교만하면 할수록 남을 깔보고 깔아뭉개는데 그것은 진정한 존귀함과 품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신이든지 남이든지 존중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손님이 오면 손님을 귀빈으로 환대하는데 정작 가까운 사람은 쓰레기처럼 여기며 폭력적으로 대한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대단한 어리석음이고 불행입니다.

결국 자기는 쓰레기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고,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도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는 것 때문에 지난 토요일에 이어 오늘도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와 실랑이를 벌이십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그렇게 밀어내고 깔아뭉갠 손 병신을 사람들 한가운데로 세우심으로써 주인공으로 만드십니다. 안식일의 노예였던 사람의 아들들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만드신 주님께서 이젠 늘 변두리에 있고 조역만 하던 사람을 파티의 주인공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더 엄청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셨을 뿐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심으로 그 이상으로 우리를 신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마사 성찬 예절 중에 물과 포도주를 섞으며 “이 술과 물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바칠 때마다 주님의 이 비하적 사랑에 프란치스코처럼 감격하고 감탄합니다.

그러면서 이토록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시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먼저 존귀한 사람으로 내가 살고 이웃을 존귀한 사람으로 대해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하곤 하는데 오늘도 그렇게 다짐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왕비로 모심으로써 자기가 왕이 되는 것처럼 주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이를 가운데 세우신 것처럼 우리도 가까운 사람을 주인공이 되게 하는 연출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제 움켜쥐고 있는 그 손을 펴십시오.

앞 장면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며,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루카 6,5).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도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지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루카 6,9)

그들이 입을 열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루카 6,8)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그를 빛으로 불러내십니다. 당신 면전으로 불러내십니다. 자비와 치유, 생명과 구원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란?

마치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가슴에 자기 뜻을 꼭 움켜쥐고 있듯이, 손에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며,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형제들과 주고받고를 못하고 있는 불통을 의미합니다. 또한 자신을 꼭 쥐고 있어서 완고해져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느님과 형제들과 단절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묘한 것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손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에서부터 쥐었습니다. ‘선악과’를 손에 움켜쥐었고, 교만과 불순명과 탐욕을 움켜쥐었습니다. 곧 ‘손 오그라든 이’는 죄에 물든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사실, 선악과를 따먹고 높아지려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추락이었습니다. 금단을 어기고 자유를 행사했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이었습니다. 욕심을 부려 자신을 채웠지만, 그것은 오히려 단절과 죽음이었습니다. 결국, 움켜쥐는 것은 추락이요 속박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오그라든 손을 편다는 것은 단지 움켜 쥔 것을 놓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놓고서 고통과 은총의 못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십자가에서 못을 받아들이시고 구원의 피, 화해의 피를 흘리심을 의미합니다. 이제 첫 아담이 움켜쥔 손을 펴시고, 새 아담이 되심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그라든 손을 편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루카 6,10).

이제는 움켜쥔 것을 놓아야 할 일입니다. 마음을 풀고 손을 펴야 할 일입니다. 손을 펴고 성체를 받아 모셔야 할 일입니다. 그분을 마음에 품고 구원된 자로 살아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손이 당신 구원과 사랑을 건네는 손이 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복음 6장 10절
손을 뻗어라.

 

주님! 주고받을 줄 아는 복된 손이 되게 하소서.

주고 싶은 것만 주고, 받고 싶은 것만 받는 손이 아니라 주고 싶지 않아도 주고, 받고 싶지 않아도 받는 손이 되게 하소서.

선악과를 움켜쥔 탐욕과 불순명의 손이 아니라 못과 창을 받아들인 사랑과 신뢰의 손이 되게 하소서.

움켜 쥔 것을 나누어주고, 손을 뻗어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손을 뻗어라.

어렸을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너무나도 배고팠고, 그래서 뭐든지 입으로 들어갔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다 손님이 오셔서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돈을 주시면 곧바로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사탕, 과자 등을 사 먹었습니다. 그래서 제 주머니는 늘 텅텅 비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어머니께 이야기하면 필요한 것이면 다 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가까워져 오는데 카네이션 하나 살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앞에서는 많은 상인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면서 조화 카네이션을 사야 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문제는 제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작전을 세웠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조화 카네이션이 100원이었습니다. 두 분이니까 200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주 전부터 삥땅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내던 헌금 100원을 절반으로 줄여 200원 모았습니다. 두 분을 위한 카네이션을 드디어 구매했습니다.

5월 8일 아침,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습니다. 곧바로 부모님의 추궁이 시작되었습니다. 돈 생기면 곧바로 써버리는 저의 소비 습관을 잘 아시기에, 어디서 돈이 났냐고 하셨습니다. 헌금을 안 내고 모았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나중에 말씀하셨습니다. “고맙다.”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저의 잘못입니다. 그래도 기쁘셨나 봅니다. 많은 죄를 짓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래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잘못도 기쁘게 받아주시지 않을까요?

안식일에 가르치러 회당에 가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으로 노동했던 상황이었기에, 이 사람은 단순히 신체적 불편을 겪은 것이 아니라 생계와 사회생활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먼저 보십니다. 즉, 그가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고통을 보시고, 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 가운데에 서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안식일의 중심에 규정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중심에 사람을 두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위한 접촉이나,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손을 뻗어라.”(루카 6,10)라고 하셨을 따름입니다. 이를 가지고 고발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골이 잔뜩 나면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를 서로 의논합니다.

우리의 한가운데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규정보다도 이 사랑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책벌레들이 아니고, 하루하루를 대단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스티븐 레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손을 뻗어라.

우리의 손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손을 펴는 일과 놓는 일은 사실 하나입니다. 붙잡고 움켜쥐는 것은 굳어지고 단절되는 일입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다시 세상과 관계 맺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를 다시 온전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입니다. 한 사람을 과거의 모습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정된 자기규정을 깨뜨립니다. 변화의 가능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손을 뻗어 나아간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해 생명을 향해 사랑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손이 펴지는 순간 관계도 다시 열립니다. 치유받은 손은 이제 누구의 손을 잡아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이 오그라든 그 사람이 실제로 손을 뻗었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넘어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손을 뻗는 순간 상처는 길이 되고, 아픔은 힘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리는 것은 은총과 치유로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손을 뻗어 아픔을 어루만지는 마음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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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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