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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9.1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9.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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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는 짧은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도,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어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 마음을 바라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기보다 함께 있어 주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9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9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9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히브 5,7-9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요한 19,25-27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9월 15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37

✚ 제1독서 04:21

✚ 복음 11:17

✚ 강론 12:2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왕태언 요셉 신부

떠나지 않는 사랑

어제 우리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며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가톨릭 교회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지내며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습니다(요한 19,25 참조).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언덕인 골고타를 오르신 예수님 곁에 성모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 성모님께서는 그 곁을 지키셨습니다.

군사들에게 붙잡혀 매질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을 받는 아드님을 바라보시며 어머니께서는 마음이 찢어지는 괴로운 시간을 견디셔야 하였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는 아드님을 바라보시며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셔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고통을 예수님 곁에서 견디어 내십니다.

우리의 고통에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신 것이 큰 사랑이고 자비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모습도 성모님처럼 진실과 성실이 담겨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고백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

오늘 고통의 성모 축일을 지내면서 저의 사랑을 성모님의 사랑과 비교하며 성찰해 봤습니다. 지금의 저는 옛날의 사랑과 비교할 때 참 좁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저 지구 반대편의 고통까지도 함께하려는 사랑이었는데 지금의 사랑은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하려는 정도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저의 사랑이 좁아지고 작아지고 줄어든 것 같은데 가까운 이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더 이해하는 면에선 좋아졌습니다. 곧 욕심이라는 불순물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에 사랑이 부족했는데 지금은 욕심이 많이 줄어든 만큼 그들의 고통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이웃의 고통을 보자고 새해를 시작하며 매년 다짐하지만 매년 실패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이해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잘 견디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어떠셨을까요? 인류 구원을 위한 아들의 십자가 길을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오늘 우리가 지내는 축일은 성모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 고통을 겪으시는 주님과 함께하시는 분이라고 기립니다. 아드님의 고통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시기보다는 아드님의 고통에 함께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이것을 오늘 요한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옛날의 저의 어머니는 제가 평양에 종합 복지관을 세우느라 왔다 갔다 할 때 싫어하셨습니다. 그 일을 싫어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제가 하는 것을 싫어하신 것이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싫어하지 않으셨을 텐데 그 일이 힘들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제가 그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신 겁니다.

이것이 보통의 어머니들인데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수의를 지어 보내며 이런 편지를 보냈지요.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며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으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아니하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라“

이런 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의 편지에 대해서는 이 편지가 사실인가 아닌가? 일부 논란이 없지 않으나 이 편지를 꺼낸 이유는 성모 마리아는 이 이상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아드님의 수난 고통을 함께하시며 격려하셨을 것임을 얘기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이런 분이셨고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축일을 지내며 고통을 덜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을 통고의 성모님께 본받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끝까지 곁에 남은 사랑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고통이 기념해야 할 일일까요?

어쩌면, 고통은 저주요 재앙일 것입니다. 만약, 사랑이 없는 고통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고통, 사랑하기에 받는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기쁨을 배우게 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마치 우리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건너감이듯이, 바로 그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넘어가듯이, 사랑에서 피어난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으로 건너감이요, 바로 그 고통을 통하여 기쁨으로 넘어감입니다. 우리는 바로 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현양’을 통해서 그 신비를 보았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 죽음을 함께 겪으며 받은 깊은 신앙적 고통을 뜻합니다. 이를 특히 성모 칠고(聖母七苦) 또는 고통의 성모(Mater Dolorosa)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고통은 단순한 모성적 슬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수난을 곁에서 지켜보며 신앙과 사랑으로 그 고통에 참여하셨습니다. 이를 우리는 성모님의 ‘통고, 통애’(compassio)를 말합니다. ‘통애’”(compassio)는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고통, 곧 그리스도께서 아파하시는 세상의 죄에 대한 아픔에 “참여”(particitipatio)하신 사랑입니다.

이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

또한 교회는 이 고통을 단순히 인간적인 모성애의 슬픔을 넘어, 구원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영적 순교로 이해합니다.

이를 바오로 6세 교종의 문헌 <마리아 공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신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계시며, 야훼의 고난 받는 종의 어머니로서 고통을 당하셨다."(마리아 공경 7)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처참해진 모습을 애끓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들의 죽음과 함께 있는 성모님의 이 광경은 인간적인 고통과 신앙적인 굳셈이 함께 연출되면서, 그지없이 비장하면서도 동시에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가 고통과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듯이,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에서도 고통과 믿음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이토록,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면서, 나아가 동의만하고 의탁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하면서 예수님의 고통과 믿음에 온전한 일치를 이루시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깊이 참여하셨습니다.

하오니, 어머니! 고통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고통을 통하여 기도하고, 고통과 함께 기도하고, 고통 속에서 사랑하게 하소서.고통 안에서도 희망하고, 고통 안에서 믿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9장 25절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주님! 당신과 함께 십자가 곁에 머물게 하소서.

믿음으로 서 있게 하소서.

십자가 곁이 저의 자리가 되게 하시고, 당신과 함께 아들의 남은 고통에 참여하게 하소서.

아버지를 향한 신뢰와 의탁으로 형제들을 위한 사랑의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당신 아들과 함께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올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부 복사들이 미사 전에 저를 급하게 찾는 것입니다. 복사방에 커다란 벌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희가 잡아.”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깜짝 놀라면서 “아니! 그렇게 큰 벌을 저희가 어떻게 잡아요? 또 벌에 쏘이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에 끌려서 어쩔 수 없이 복사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힘들게 벌을 잡았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벌에 쏘여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큰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직접 잡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 앞에서 강한 척 보이려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저 혼자 있었다면 도망쳤을 것입니다.

사랑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있을 때, 용기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크고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큰 사랑으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기념일에 성모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보통 자녀의 고통 옆에 보통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절망하여 쓰러집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서 있었다.”(요한 19,25)라고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성전 봉헌 때 들었던 시메온 예언자의 “당신의 영혼이 칼에 찔릴 것입니다.”(루카 2,35)의 예언이 이루어진 순간이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말씀하시면서, 교회와 성모님을 깊은 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회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죽음의 그 순간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요한 19,27). 이는 단순히 혼자 되신 성모님을 보살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 자신의 영적 삶의 중심이자 가장 본질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순종을 배우고,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과 함께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고, 그 안에서 커다란 힘을 얻게 됩니다.

성모님도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쓰러지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서 계십니다. 우리 역시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성모님과 함께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죽음에 있어 영광스러울 것은 전혀 없다. 모두가 죽을 수 있다(자니 로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성모님을 십자가 곁에 서 있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깊은 사랑은 가장 아픈 십자가에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상처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통과 사랑을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고통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다시 일으키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남아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끝내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성모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고 고통을 하느님께 맡기십니다. 끝까지 신뢰로 하느님의 뜻을 품으십니다. 고통과 사랑의 관계는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다만 고통 속에 깨어 머무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참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함께 있음이며, 집착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놓아주는 사랑을 성모님을 통해 배웁니다. 내어주고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이 우리 존재의 모습이며, 떠나보내면서도 사랑을 거두지 않는 것이 십자가가 가르쳐 주는 참된 사랑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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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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