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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9.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9.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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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읽으면서 어느새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저를 발견하곤 해요. 이미 정해 놓은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솔직하게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9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9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9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1코린 12,31─13,1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루카 7,31-35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9월 1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 소개 00:06

✚ 미사 시작 02:11

✚ 제1독서 05:26

✚ 복음 10:20

✚ 강론 11:5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왕태언 요셉 신부

하느님의 뜻을 묻는가, 동의를 구하는가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올바른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놓인 상황이나 최근에 가지게 된 고민들에 복음 말씀을 꿰맞추어 내가 듣고 싶은 말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닌 한계나 잘못, 그리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분까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때 복음 말씀이 전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루카 7,33-34).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성경을 읽는 것은 내 생각과 내 주장에 하느님께서 동의해 주시기를 바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칭찬받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려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같은 복음 말씀을 묵상하더라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알맞은 하느님의 다양한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솔직하고 겸손하게 성경 말씀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도 철이 들어야 한다.

오늘 독서는 코린토 13장의 그 유명한 사랑의 찬가인데 첫째로 성령의 언어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건 성령의 언어가 아니라 깡통 소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우리말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갈수록 느낍니다. 옛날에 사랑이 없는 말들이 많았을 때 말은 그럴듯했겠지만 의미를 주지 못했기에 열매를 맺지 못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생기를 주지 못했습니다.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영적으로 사랑의 철이 들면서 뭔 말을 해도 사랑으로 하니 그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도 철이 들어야 합니다. 제 자랑 같지만 지난주 모 수도회 피정 동반을 했는데 사랑으로 강의하고 특히 고백성사 때 사랑으로 듣고 사랑으로 훈화하니 시작할 때의 얼굴이 점차 환해지고 생기를 지닌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말이 머리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로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까지 얘기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데 이것은 사랑이 없으면 나란 존재는 의미가 없는 존재란 말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게 예술적 재능이나 신학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나란 존재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뜻이고, 그것으로 뭘 해도 나는 그들 구원을 위해 아무 소용 없는 존재라는 뜻일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보고 누가 너는 딴따라일 뿐이야 하면 기분이 매우 나쁠 것입니다. 당신은 천부적인 작곡가라고 더 좋게 얘기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으면 천부적인 재능으로 남을 아무리 즐겁게 해 줘도 나는 즐거움을 주는 광대일 뿐 행복이나 구원은 주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사랑이 없는 존재는 나도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셋째로 사랑이 없으면 그 무엇도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앞서 사랑이 없으면 남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에 대해 얘기했다면 이제 뭘 줘도 사랑 없이 주면 그것이 그에게 어떤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고 특히 나의 구원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죽 쒀서 개한테 주는 셈이라는 것이고, 남은 기쁘게 하고 자기는 슬픈 그런 것이요, 남은 행복하게 하고 자기는 불행한 그런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는 행위는 뭘 해도 내게도 네게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그래서 사랑만이 존재의 의미와 행위의 의미임을 가르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울 줄 알고, 춤출 줄 아는 마음

예수님께서는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 7,31-32)

이 비유의 뜻은 명료합니다. 곧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는, 요한의 회개에 대한 호소에도 가슴을 치지 않고,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쁨에도 춤추지 않는 세대를 말합니다. 곧 이 세대는 자기 죄악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도 없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기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는 원인이 예수님의 메시아적인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그들의 완악함과 악의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무관심과 완고함의 심각함을 말해줍니다.

‘완고함’이란 마치,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보고 입도 없고 바닥도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뻣뻣한 백성’으로, 파라오가 ‘돌처럼 굳어진 마음’으로 비유되는 것과 같습니다.

‘완고함’의 성경적 의미는 단순히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는 것을 넘어서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마음을 닫고 저항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1사무엘>에서는 완고함을 우상숭배와 동일시합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15,23)

성경적 관점에서 ‘완고함’은 단순히 성격적인 특성을 넘어, 하느님과 관계를 단절시키고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영적 태도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교만과 연결되는 동시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한 마음과 정반대의 개념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 완고함의 뿌리에는 비뚤어진 마음과 악의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이 이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요한의 외침을 듣고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을 뵙고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먹보요,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라고 악의에 차 조롱하였습니다. 결국, ‘완고함’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공격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예수님의 사랑은 이미 아픔입니다. 사랑은 거부, 배척이라는 가시에 찔려, 흘러내리는 눈물이 됩니다. 사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을 때, 바로 그러했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거부할 때, 그렇게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비뚤어진 마음이 아니라, 반겨 받아들이는 영접의 마음이 되게 하소서! 당신 말씀 피리에 춤추게 하소서! 세상 죄악의 곡소리에 가슴을 치게 하소서! 아픈 이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부활하신 당신과 함께 기쁨을 선포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 임과 더불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복음 7장 32절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주님! 오늘 하루, 임과 더불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제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게 하소서.

호의로 받아들이는 영접의 마음이 되게 하소서.

위하는 마음,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축복하는 마음이 되게 하소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음이 닫히면 이유를 찾고, 마음이 열리면 길을 찾습니다.

15세기, 16세기에 영국은 범죄 없는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죄인들을 미국으로 유배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수가 자그마치 6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독립한 후에는, 이제 죄인들을 호주로 보냈습니다.

사실 그 시대 영국의 형벌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미워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철저히 가진 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5만 원 정도의 물건을 훔치면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죄도 엄격하게 처벌하다 보니 국가 교도소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대부분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주로 165,000명이나 보냈습니다. 강력 범죄자가 아닌 대부분 가벼운 범죄자였고, 또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도 많았습니다.

영국의 범죄율이 낮아졌을까요? 전혀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범죄자를 이주시켰다는 호주는 어떠할까요? 현재 호주의 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죄에 관한 판단 자체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진정한 정의가 아닌,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위한 법은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는 옳고, 자기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옳지 않음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십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장터는 마을의 중심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그 대표 놀이가 혼인 잔치 놀이와 장례 예식 놀이였습니다. 혼인 잔치 놀이할 때는 피리를 불고 춤을 춰야 해야 하고, 장례 예식 놀이에는 곡하고 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해도 울지 않습니다. 당연히 놀이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자기 방식에 종속시키려는 교만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고 비판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와 함께 먹고 마시자,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말하면서 거부합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기준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거부할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죄에 관한 판단보다 회개하는 사람을 맞아들이는 사랑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의 옳음만을 이야기하면서 하느님 뜻의 정반대 편에 서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지혜가 밝게 드러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주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죄인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바라보십시오. 그 자리에 과연 누가 서 있습니까? 죄인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죄인을 다시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참된 사랑은 사람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존재를 먼저 받아들이십니다.

함께함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죄인의 삶 속으로 기쁘게 들어오십니다.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죄인의 친구가 되십니다. 관계의 길을 여시며 관계의 자리를 내어주십니다. 사람이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과 우리는 정말 얼마나 다른지를 묻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죄인을 보지 말고 죄인이라 부르는 그 마음을 보십시오. 그 마음을 놓는 순간, 복음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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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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