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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남자세례명 11가지

피어나네 2023. 5.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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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디오도로, 로도피아노, 알렉산데르, 알렉산데르 1세, 야고보, 에벤티오, 유베날리스, 테오둘로, 티모테오, 필립보 (사도), 필립보 (은수자), 총 11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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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여자세례명 마우라, 아달신다, 안토니나,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5월 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5월 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디오도로

  2. 로도피아노

  3. 알렉산데르

  4. 알렉산데르 1세

  5. 야고보

  6. 에벤티오

  7. 유베날리스

  8. 테오둘로

  9. 티모테오

  10. 필립보 (사도)

  11. 필립보 (은수자)

 

5월 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1. 디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Diod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디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오도루스.

 

 

디오도로 자료

성 디오도루스(또는 디오도로)와 성 로도피아누스(Rhodopianus) 부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소아시아의 카리아(Cari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도피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hodop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로도피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도삐아노, 로도삐아누스, 로도피아누스.

 

 

로도피아노 자료

성 디오도루스(Diodorus)와 성 로도피아누스(또는 로도피아노) 부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소아시아의 카리아(Cari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3년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성녀 안토니나(Antonina)는 지방총독 페스투스에 의해 매춘굴로 보내지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스도 신자였던 군인 성 알렉산데르에 의해 비밀리에 탈출할 수 있었다.

성 알렉산데르는 성녀 안토니나에게 외투를 갈아 입혀 탈출시키고 자신은 그녀의 자리에 남아 있었다. 성녀 안토니나는 얼마 후 발견되어 성 알렉산데르와 함께 콘스탄티노플에서 두 손이 잘리는 고문을 받고 불속에 던져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알렉산데르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3년경

 

 

알렉산데르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1세 자료

옛 “로마 순교록” 5월 3일 목록에 따르면,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와 두 명의 사제인 성 에벤티우스(Eventius)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가 감옥에 갇힌 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아우렐리아누스라는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불과 갈고리와 각종 기구를 이용한 모진 고문을 받고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난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처형장 인근 노멘타나 가도에 매장되었고, 성 알렉산데르의 유해는 834년에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의 프라이징(Freising)으로 이장했다고 전해진다.

7세기에 기록된 “성 알렉산데르와 성녀 발비나 행전”에 따르면, 두 명의 사제와 함께 감옥에 갇혀 있던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는 호민관이자 간수로서 자신을 지키던 성 퀴리누스(Quirinus, 4월 30일)와 그의 딸인 성녀 발비나(Balbina, 3월 31일)를 신앙으로 인도하고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옛 “로마 순교록”이 5월 3일에 기념하는 교황 성 알렉산데르와 두 명의 사제 순교자는 1855년 노멘타나 가도에서 발견된 같은 이름의 군인 순교자와 혼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에벤티우스와 성 알렉산데르와 성 테오둘루스 순교자가 로마의 노멘타나 가도에서 순교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신분에 대한 추가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는 “이레네우스 교황 인명록”에 따르면 가톨릭교회의 여섯 번째 교황으로 109년경부터 116년경까지 재위한 것으로 나타나고, 로마 사람으로 로마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전통적으로 그가 미사 경본에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삽입하고 소금을 섞은 물로 집을 축성하는 예식을 도입했다고 했지만, 오늘날 학자들 대부분은 이를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야고보

 

  • 가톨릭 성인 이름
    Jam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2년? 예루살렘

 

 

야고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소 야고보, 소야고보,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차 야고보, 차야고보.

 

 

야고보 자료

알패오(Alphaeus)의 아들인 성 야고보(Jacobus)는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마태 10,2-4; 마르 3,16-19; 루카 6,14-16).

또한 전통적으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나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형제’(마태 13,55; 마르 6,3; 갈라 1,19)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제시해 왔다.

교회는 또한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와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을 때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 주십시오.”라고 한 후 다른 곳으로 떠났다(사도 12,6-17)는 사실에 근거해 이미 성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 즉 초대 주교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알패오의 아들 성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의 어느 2층 방에 모여 있던 열 한 제자 중 한 명이었다(사도 1,13). 그는 또한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의 관습과 할례를 강요하던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성 베드로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다른 민족들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 성 베드로에 이어서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사도 15,19-20)라며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사도 바오로(Paulus, 6월 29일)는 서간에서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표현했다(갈라 2,9). 그리고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도 바오로는 일행과 함께 성 야고보와 원로들을 찾아 선교 여행의 성과를 보고하였다(사도 21,17-19).

후대에 생긴 전승에 의하면, 알패오의 아들 성 야고보는 남서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이집트에 정착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의 오스트라키네(Ostrakine)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했는데, 그의 설교가 군중을 분노하게 했고 그로 인해 신전 지붕에서 내던져졌다고 한다. 그리고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매를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미술에서 그의 모습은 곤봉이나 방망이를 든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성 야고보는 성 필립보(Philippus)와 함께 5월 3일에 축일을 기념하는데, 이는 후에 로마에 열두 사도 대성전을 봉헌할 때 제대 밑에 두 사도의 유해를 함께 모셨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성서학자들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첫 주교로서 신앙과 윤리에 관한 기본 가르침을 서간 형식으로 쓴 야고보 서간 또한 후대에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빌려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혼동을 피하고자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사도 성 요한의 형인 야고보는 대(大) 또는 장(長) 야고보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5월 3일)는 소(小) 또는 차(次) 야고보로 부르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에벤티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v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6년경

 

 

에벤티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벤시오, 에벤시우스, 에벤씨오, 에벤씨우스, 에벤티우스.

 

 

에벤티오 자료

옛 “로마 순교록” 5월 3일 목록에 따르면,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Alexander I)와 두 명의 사제인 성 에벤티우스(또는 에벤티오)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가 감옥에 갇힌 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아우렐리아누스라는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불과 갈고리와 각종 기구를 이용한 모진 고문을 받고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난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처형장 인근 노멘타나 가도에 매장되었고, 성 알렉산데르의 유해는 834년에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의 프라이징(Freising)으로 이장했다고 전해진다.

7세기에 기록된 “성 알렉산데르와 성녀 발비나 행전”에 따르면, 두 명의 사제와 함께 감옥에 갇혀 있던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는 호민관이자 간수로서 자신을 지키던 성 퀴리누스(Quirinus, 4월 30일)와 그의 딸인 성녀 발비나(Balbina, 3월 31일)를 신앙으로 인도하고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옛 “로마 순교록”이 5월 3일에 기념하는 교황 성 알렉산데르와 두 명의 사제 순교자는 1855년 노멘타나 가도에서 발견된 같은 이름의 군인 순교자와 혼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에벤티우스와 성 알렉산데르와 성 테오둘루스 순교자가 로마의 노멘타나 가도에서 순교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신분에 대한 추가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교황 성 알렉산데르 1는 “이레네우스 교황 인명록”에 따르면 가톨릭교회의 여섯 번째 교황으로 109년경부터 116년경까지 재위한 것으로 나타나고, 로마 사람으로 로마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전통적으로 그가 미사 경본에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삽입하고 소금을 섞은 물로 집을 축성하는 예식을 도입했다고 했지만, 오늘날 학자들 대부분은 이를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유베날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Juvena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376년 나르니

 

 

유베날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주베날리스.

 

 

유베날리스 자료

성 유베날리스(Juvenalis)는 동방에서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나르니로 이주해온 사람으로 사제이며 동시에 의사였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나르니 교구를 설정하고 그를 초대주교로 축성하였다. 

어느 날 그는 바카스 신에게 봉헌된 신전 앞을 지나다가 이교 사제로부터 봉변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웅적으로 이를 극복하여 이 사건이 그 지방의 전교에 큰 전환점이 되게 하였다.

또 그의 재임 5년째 되던 해에 리구리아인(Ligurians)과 사르마트인(Sarmatians)이 나르니를 공격했을 때, 그는 성벽에 올라가서 시편 34편과 기도를 하고 주민들은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서 3,000여 명의 침략자들이 패주해버렸다.

그는 그 후 7년 동안 교구장직에 있다가 376년에 선종하였다. 그는 나르니의 수호성인으로 오래전부터 공경을 받아 왔으나, 1969년 지역 교회력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확정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테오둘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3년경

 

 

테오둘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둘로, 떼오둘로스, 테오둘루스.

 

 

테오둘로 자료

옛 “로마 순교록” 5월 3일 목록에 따르면,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Alexander I)와 두 명의 사제인 성 에벤티우스(Eventius)와 성 테오둘루스(또는 테오둘로)가 감옥에 갇힌 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아우렐리아누스라는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불과 갈고리와 각종 기구를 이용한 모진 고문을 받고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난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처형장 인근 노멘타나 가도에 매장되었고, 성 알렉산데르의 유해는 834년에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의 프라이징(Freising)으로 이장했다고 전해진다.

7세기에 기록된 “성 알렉산데르와 성녀 발비나 행전”에 따르면, 두 명의 사제와 함께 감옥에 갇혀 있던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는 호민관이자 간수로서 자신을 지키던 성 퀴리누스(Quirinus, 4월 30일)와 그의 딸인 성녀 발비나(Balbina, 3월 31일)를 신앙으로 인도하고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옛 “로마 순교록”이 5월 3일에 기념하는 교황 성 알렉산데르와 두 명의 사제 순교자는 1855년 노멘타나 가도에서 발견된 같은 이름의 군인 순교자와 혼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에벤티우스와 성 알렉산데르와 성 테오둘루스 순교자가 로마의 노멘타나 가도에서 순교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신분에 대한 추가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교황 성 알렉산데르 1는 “이레네우스 교황 인명록”에 따르면 가톨릭교회의 여섯 번째 교황으로 109년경부터 116년경까지 재위한 것으로 나타나고, 로마 사람으로 로마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전통적으로 그가 미사 경본에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삽입하고 소금을 섞은 물로 집을 축성하는 예식을 도입했다고 했지만, 오늘날 학자들 대부분은 이를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티모테오

 

  • 가톨릭 성인 이름
    Timoth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독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8년경

 

 

티모테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모떼오, 디모떼우스, 디모태오, 디모태우스, 디모테오, 디모테우스, 티모시, 티모테우스.

 

 

티모테오 자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집트 북부에서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의한 혼란이 더욱 극심하였다.

이 혼란 중의 희생자들 가운데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티모테오, 디모테오)와 성녀 마우라(Maura) 부부가 있었다. 이 젊은 부부는 성경을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며, 특히 성 티모테우스는 독서자로서 교회 일에 봉사하던 중이었다.

결혼한 지 겨우 20일 되던 날 성 티모테우스가 먼저 체포되어 성경을 내 놓으라는 강요를 받았다. 그 다음에 아내인 성녀 마우라가 끌려갔으나 죽음으로써 교회의 거룩한 책을 지켜냈다. 이 부부는 벽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필립보 (사도)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필립보 (사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사도) 자료

사도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와 성 안드레아(Andreas, 11월 30일)와 같은 고향인 갈릴래아의 벳사이다(Bethsaida) 출신으로 일찍 예수님의 제자로 불림을 받았다.

그는 아마도 성 요한(Joannes, 6월 24일) 세례자의 제자인 듯하며, 공관복음서의 사도들 명단에서 다섯 번째로 등장하고 있다(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4; 사도 1,13). 그 외에 그의 역할이 비교적 잘 언급된 곳은 요한 복음서이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로 선택되었고 사도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8월 24일)와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성 나타나엘(Nathanael)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요한 1,43-51).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그를 시험하고자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에 단순히 비용적 측면만 고려해 대답함으로써 아직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요한 6,5-7).

그는 또한 과월절 축제를 드리러 온 그리스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했을 때 그들을 예수님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요한 12,20-23). 이는 성 필리푸스가 이방 지역인 데카폴리스와 가깝고 그리스 문화가 상당히 침투해 있었던 벳사이다 출신으로 그리스어 이름을 지니고 있었고 아마도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요한 14,6-7)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성 필리푸스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라며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요한 복음서 안에서 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선교사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4-5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추정되는 “필립보 행전”은 그를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와 함께 복음을 전한 ‘일곱 봉사자’ 가운데 같은 이름을 가진 성 필리푸스(6월 6일) 부제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지만(사도 6,5; 21,8) 그와는 다른 사람이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필리푸스는 흑해 북서부 스키티아(Skytia) 지방에서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고, 소아시아 중부 프리기아(Phrygia)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87세의 나이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후에 그의 유해는 히에라폴리스에서 로마로 옮겨져 열두 사도 대성전에 모셔졌는데 사도 성 소 야고보(Jacobus)와 함께 한 제대 아래 모셔지면서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성 필리푸스는 포목업자와 모자 제조업자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필립보 (은수자)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70년경 젤

 

 

필립보 (은수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은수자) 자료

독일의 젤이란 마을은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의 움막 주위에서 성장하여 후에 젤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 필리푸스는 앵글로 색슨 사람으로 순례자였는데, 보름스(Worms) 주변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크 왕국의 피핀(Pepin) 왕과 만나 친구이자 고문이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을 따르고자 모인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젤 수도원을 세웠다. 젤이라는 이름은 그 수도원이 그의 작은 방(cell) 하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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