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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남자세례명 21가지

피어나네 2023. 5.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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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탈도, 고르디아노, 다미안 드 베스테르, 디오스코리데, 심플리치오, 아우렐리아노, 안토니노, 알피오, 에피마코, 요한, 욥, 윌리엄, 치리노, 칼레포디오, 콘레트, 콤갈, 콰르토, 퀸토, 팔마시오, 펠릭스, 필라델포, 총 21분 목록이에요.

 

5월 10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5월 10일 여자세례명 베아트릭스, 블란다, 솔란지아,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5월 1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1가지

 

 

 

 

5월 10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탈도

  2. 고르디아노

  3. 다미안 드 베스테르

  4. 디오스코리데

  5. 심플리치오

  6. 아우렐리아노

  7. 안토니노

  8. 알피오

  9. 에피마코

  10. 요한



  11. 윌리엄

  12. 치리노

  13. 칼레포디오

  14. 콘레트

  15. 콤갈

  16. 콰르토

  17. 퀸토

  18. 팔마시오

  19. 펠릭스

  20. 필라델포

 

5월 1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1가지

 

 

1. 가탈도

 

  • 가톨릭 성인 이름
    Catal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85년 타란토

 

 

가탈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탈, 가탈두스, 카탈, 카탈도, 카탈두스.

 

 

가탈도 자료

아일랜드 먼스터(Munster)에서 출생한 성 카탈두스(또는 가탈도)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워터퍼드(Waterford)의 리즈모어(Lismore) 수도자 교육원에서 성 카르타고(Carthago, 5월 14일)의 지도를 받던 학생이었다.

뛰어난 학문으로 큰 명성을 얻은 그는 수도자 교육원에서 교사가 되고 이어서 교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예루살렘(Jerusalem) 순례 길에 올랐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 배가 이탈리아의 타란토에 난파했고, 그곳에서 그의 성덕이 알려져 타란토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타란토에서 자신의 여생을 보내며 열렬한 신심과 해박한 지식으로 봉사하였다. 그는 카탈(Cathal)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고르디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ord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2년경

 

 

고르디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고르디아누스, 고르디안, 골디아노, 골디아누스, 꼬르디아노, 꼬르디아누스.

 

 

고르디아노 자료

로마 순교록과 서방교회는 6세기부터 5월 10일에 성 고르디아누스(Gordianus, 또는 고르디아노)와 성 에피마쿠스(Epimachus)의 축일을 성대히 지내오지만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 에피마쿠스는 250년경 데키우스 황제 때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12월 12일)라는 사람과 함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벽돌 가마에 던져졌다고 한다. 물론 수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성 에피마쿠스의 유해는 로마(Roma)로 이장되었다. 한편 성 고르디아누스는 아마도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에서 참수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유해는 후에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켐텐(Kempten)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아왔다.

이 두 성인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의 비문에 언급되어 있으므로 그 역사성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다미안 드 베스테르

 

  • 가톨릭 성인 이름
    Damien de Veust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840-1889년 몰로카이

 

 

다미안 드 베스테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미아노, 다미아누스, 다미앵, 데미안, 데미언.

 

 

다미안 드 베스테르 자료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는 1840년 1월 3일 벨기에의 루뱅(Louvain) 근처 트레멜로(Tremelo)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아버지 프란스 드 베스테르와 어머니 안나 카타리나의 7남매 중 막내이자 넷째 아들로서 요제프 드 베스테르(Jozef de Veuster)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부모의 뜻대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으나 수녀원에 들어간 두 명의 누나와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된 큰형의 영향을 받아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그는 기도와 고행을 실천하면서 성장하였다. 

그는 상업 분야의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향에서 초등 교육과정을 마치고 왈롱(Wallonne) 지방 브렌르콩트(Braine-le-Comte)의 대학으로 진학해 수학했다. 그러나 일찍이 성소에 눈을 뜬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적 권고를 통해 완덕의 길을 걸을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는 1859년에 큰형이 있는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The Fathers of the Sacred Hearts of Jesus and Mary, 일명 Picpus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루뱅의 수도원에서 수련기를 보내고 수도명으로 4세기 초 소아시아 남동부에 있는 실리시아(Cilicia) 지방에서 의사로 활동하다 순교한 성 다미아누스(Damianus, 9월 26일)를 선택했다. 그리고 1860년 10월 7일 수도 서원을 했다.

해외선교를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던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는 1825년 이래로 수차례에 걸쳐 샌드위치제도(The Sandwich islands)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하와이제도(The Hawaiian Islands)로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있었다. 1863년 하와이 선교사로 선발된 큰형 팜필레(Pamphile) 신부가 병자들을 돌보다 장티푸스에 걸리자 신학 공부 중이던 성 다미안은 형을 대신해서 하와이 선교를 자원하였다.

이듬해 3월 19일 하와이의 호놀룰루(Honolulu) 항구에 도착한 성 다미안은 인근에 있는 아피마뉴 대신학교에서 약 2개월간 공부하고, 1864년 5월 21일 호놀룰루 대성당에서 두 명의 신학생과 함께 루이 메그레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가장 먼저 하와이섬의 퓨나(Puna) 지역으로 파견되어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865년에 성 다미안 신부는 같은 섬의 코할라(Kohala)와 하마쿠아(Hamakua) 지역으로 옮겨 원주민들의 인습과 싸우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성당을 짓고 세례를 주며 용암으로 뒤덮인 섬을 돌아다니면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는 그 지역의 유일한 사제였다.

성 다미안 신부가 사목 활동을 시작한 1865년 무렵 하와이제도(諸島)의 상황은 몹시 심각했다. 서구 질병에 대한 항체가 없었던 원주민들은 80여 년 만에 인구가 50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줄어들 만큼 희생되었고, 인구의 10~15%가 한센병에 걸릴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자 감염된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그 법에 따라 불치의 병으로 여겨지던 한센병(나병)에 걸린 환자들은 하와이제도 중앙에 있는 몰로카이섬의 북쪽 칼라우파파(Kalaupapa)라는 오지에 강제로 격리 수용되었다. 1873년 메그레 주교로부터 몰로카이섬에 수용된 나환자들이 음식조차 제대로 제공 받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참담한 실상을 전해 들은 성 다미안 신부는 33세의 나이로 그곳의 사목을 자원했다.

1873년 5월 10일, 그는 주교와 다른 자원봉사자와 함께 몰로카이섬에 상륙했다. 그는 그동안 사제가 없어 영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던 700여 명의 나환자에게 성사를 주고, 그들이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집뿐만 아니라 성당과 병원, 학교와 고아원 등도 직접 지어주었다.

또한 의사의 도움 없이 직접 한센병 환자들의 고름을 짜주며 환부를 씻어 주고 붕대를 갈아주면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서서히 그리스도의 빛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매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관을 만들고 무덤을 마련해 정중하게 장례를 지내 주었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전개하자 무관심과 자포자기에 빠졌던 환자들도 점점 그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갖고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한센병에 대한 유럽인과 미국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을 위한 자선기금을 마련하는 데도 힘썼다. 그는 1881년에는 하와이 정부로부터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칼라카우아(Kalakaua) 왕실 훈장을 받았다.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는 1885년경 자신도 나병균에 감염된 것을 알았으나 용기를 잃지 않고 나환자들을 위해 계속 사목했다. 강론 중에 그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게 하려고 나도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론할 때 나는, 교우라는 말 대신 ‘우리 나환자’라고 말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요양하라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4월 15일 성주간 월요일 오전 8시에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칼라와오(Kalawao)에 있는 성녀 필로메나(Philomena) 성당 옆, 몰로카이섬에 도착해 첫날 밤을 지새웠던 나무 아래에 묻혔다.

그 후 성 다미안 신부의 유해는 1936년 1월 벨기에 왕과 정부의 요청으로 몰로카이섬에서 벨기에로 옮겨 그의 고향과 가까운 루뱅의 성 안토니우스 경당 지하묘지에 안치하였다.

성 다미안 신부는 1992년 7월 시복 대상자로 확정되었고, 1995년 6월 4일 벨기에 브뤼셀(Brussel)의 쿠켈베르크 대성당(Koekelberg Basilica)으로도 불리는 예수 성심 대성당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시복식이 끝난 후 성 다미안 신부의 유해 일부를 몰로카이섬으로 다시 옮겨 모셨다. 그리고 2009년 10월 11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가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그의 축일은 교회의 관례대로 선종한 날인 4월 15일에 지냈으나, 이날이 종종 사순시기나 주님 부활 대축일과 겹치는 관계로 미국 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성 다미안 신부가 처음 몰로카이섬에 상륙한 날인 5월 10일로 변경해 기념하고 있다.

지금도 하와이에서는 그가 선종한 날인 4월 15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는 한센병 환자와 에이즈 환자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디오스코리데

 

  • 가톨릭 성인 이름
    Dioscorid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스미르나

 

 

디오스코리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오스꼬리데스, 디오스코리데스.

 

 

디오스코리데 자료

성 디오스코리데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은 그가 소아시아의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서 순교했다는 것뿐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심플리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impli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원로원 의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2년? 로마

 

 

심플리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심플리치우스, 심플리키오, 심플리키우스, 씸쁠리치오, 씸쁠리치우스.

 

 

심플리치오 자료

성 칼레포디우스(Calepodius)와 동료 순교자들은 로마 순교록에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의 재임기간 중 알렉산데르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로마의 순교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의 사제였던 성 칼레포디우스는 세베루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목이 잘린 뒤에 티베르(Tiber) 강에 던져졌는데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그의 시신을 건져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집정관이었던 성 팔마티우스(Palmatius) 역시 이 기간 중에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42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순교하였고, 원로원 의원이었던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 또한 가족과 그에게 속한 이들 6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펠릭스(Felix)와 성녀 블란다(Blanda)는 부부 사이인데 그들 역시 세베루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로마의 순교자로 공경을 받고 있고, 유해가 모셔진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 등에서 더욱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아우렐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ure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3세기 리모주

 

 

아우렐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우렐리아누스, 아우렐리안, 오렐리언.

 

 

아우렐리아노 자료

성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 또는 아우렐리아노)는 3세기 또는 1세기의 인물로 전해지는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6월 30일)의 제자로 그를 계승하여 프랑스 리모주의 주교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안토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nton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389-1459년 피렌체

 

 

안토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안토니누스.

 

 

안토니노 자료

성 안토니누스 피에로치(Antoninus Pierozzi, 또는 안토니노)는 1405년에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40여 년 동안 이탈리아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전전하며 훌륭한 수도자로 살았다. 그는 대부분의 수도 생활을 수도원장으로 지냈으며 두 차례나 관구장을 역임하였다.

1436년 피렌체에서 그는 코시모 디 메디치(Cosimo di Medici)의 재정 지원으로 산마르코(San Marco)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유명한 도미니코회 수사 화가인 복자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2월 18일)가 벽면을 장식하였고,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산실이 되었다.

1446년 성 안토니누스는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불굴의 정의감과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자주 초빙되어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요 관심사는 언제나 교구민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그 자신이 단순한 생활과 모범적인 처세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교구를 순회하며 강론하였으며, 그로부터 물적, 영적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였다. 또한 그는 사회와 경제 발전에 대한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국가는 공동선에 기여해야 할 의무를 지녔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1523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가 그를 시성하였는데,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이상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알피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lph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렌티니

 

 

알피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삐오, 알삐우스, 알피우스.

 

 

알피오 자료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또는 알피오)와 성 필라델푸스(Philadelphus) 그리고 성 키리누스(Cyrinus) 형제 순교자들이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세 순교자와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Benedicta)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a)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 근방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이들 형제와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성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21세의 성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성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에피마코

 

  • 가톨릭 성인 이름
    Epimach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경

 

 

에피마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삐마꼬, 에삐마꾸스, 에피마쿠스.

 

 

에피마코 자료

로마 순교록과 서방교회는 6세기부터 5월 10일에 성 고르디아누스(Gordianus)와 성 에피마쿠스(또는 에피마코)의 축일을 성대히 지내오지만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 에피마쿠스는 250년경 데키우스 황제 때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12월 12일)라는 사람과 함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벽돌 가마에 던져졌다고 한다. 물론 수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성 에피마쿠스의 유해는 로마(Roma)로 이장되었다. 한편 성 고르디아누스는 아마도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에서 참수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유해는 후에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켐텐(Kempten)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아왔다.

이 두 성인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의 비문에 언급되어 있으므로 그 역사성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영적 지도자, 교회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499-1569년 아빌라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성 요한(Joannes)은 1499년 에스파냐 알모도바르 델 캄포(Almodovar del Campo)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 때에 법률 공부를 위하여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법을 공부해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과는 달리 공부 대신 수도 생활에 매력을 느껴 은수 생활을 위해 길을 떠났다.

그는 3년 동안 보속과 기도의 생활에 전념한 후 알칼라(Alcala)로 가서 도미니코회 수도승인 도미니코 데 소토(Dominicus de Soto)의 문하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양친이 모두 사망했고, 그는 1526년 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부모가 묻힌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양친이 물려준 막대한 유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해외 선교에 대한 소명을 느낀 그는 멕시코로 갈 준비를 위해 세비야로 가서 기다리던 중 설교와 교리교육에서 탁월한 능력을 알아본 세비야의 대주교의 요청으로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선교를 위해 국내에 남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뛰어난 설교가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개종자가 많이 나오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거룩하고 엄격한 삶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개종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거침없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과 부자들의 잘못을 꼬집는 설교를 하다가 그들의 미움을 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 석방되었고 설교가로서의 명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는 에스파냐 전역을 순회하며 설교를 계속하는 한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 성 프란치스코 보르자(Franciscus Borgia, 10월 10일) 그리고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의 영적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사람들로부터 ‘안달루시아의 사도’로 불린 그는 1569년 5월 10일 에스파냐 코르도바(Cordoba) 지방의 몬티야(Montilla)에서 선종하였다. 그리고 그의 뜻대로 시신은 몬티야에 있는 강생의 예수회 성당에 묻혔고, 오늘날 아빌라의 성 요한 성지성당으로서 많은 순례자가 찾고 있다.

그는 1894년 4월 6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2012년 10월 7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제13차 세계 주교시노드 개막미사를 집전하면서 아빌라의 성 요한과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is, 9월 17일)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2021년 1월 25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교령을 발표해 5월 10일을 아빌라의 성 요한의 기념일로 제정하며 전례력에 추가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욥

 

  • 가톨릭 성인 이름
    Job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예언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욥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욥 자료

성 욥은 구약성서의 시서(詩書)에 속하는 욥기의 저자로 흔히 불린다. 욥기의 목적은 불의한 고통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것이나,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한 하느님께 대하여 자리 매김하려는 시도에 대한 것이다.

욥기는 크게 산문과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 부분의 바탕을 이루는 본래의 욥 이야기는 이미 기원전 2천년대 말기부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일종의 민간 설화로 두루 퍼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기원전 1천 년 이후에 이스라엘에도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에제 14,14 참조).

바빌론 유배 이후, 곧 6세기 말엽 이후, 그리고 3세기 전반 이전에(집회 49,9 참조) 팔레스티나에 살던 어떤 유대인 저자가, 성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욥 이야기를 자기의 의도에 맞게 각색하고 윤색하여 거기에 독창적인 운문 부분을 지어 붙였다. 그러나 이 문문 부분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저자가 대화 부분의 욥을 통해서 토로하는 말은,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직접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욥기는 욥이라는 특수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보편성이 이 책의 큰 특징을 이룬다. 욥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선택, 시나이 산 계약, 메시아 사상 등 선택된 민족의 특유한 사항이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아울러 유배 이후에 저술 되었음에도,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성서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는 “예루살렘 함락 - 성전파괴 - 유배”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암시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공통 현상을 바탕으로 자기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욥기는 출발점에서부터 보편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주인공 욥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그의 거주지도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욥’이라는 이름 자체도 당시 여러 나라에서 쓰이던 이름이라고 생각된다(1,1). 욥의 세 친구 역시 모두 외국 이름을 가진 이방인이다(2,11).

욥은 또한 대화를 시작하는 독백에서부터 이미 자기의 고통을 일반화한다. 고통에 처한 자신을 ‘고생하는 이들, 영혼이 쓰라린 이들’과 동일시하면서 그들을 대변하여 하느님에게 질문을 던진다(3,20-21). 물론 대화 중에 욥은 주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도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다른 이들과의 연대성 안에서 펼쳐 간다. 욥기의 저자는 자기의 직접적인 체험을 토대로 처음부터 보편성을 염두에 두면서 자기의 생각을 일반적으로 전개시킨다.

성 욥에 대한 전례적인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인정되었지만, 단순하고 곧으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욥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모범이 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윌리엄

 

  • 가톨릭 성인 이름
    Willia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92년 퐁투아즈

 

 

윌리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리엘모, 빌리암, 빌헬름, 윌리암.

 

 

윌리엄 자료

영국 출신의 은수자인 성 윌리엄은 프랑스 퐁투아즈에 살면서 은수생활을 하였고, 그의 은수처는 그 지방에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그는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수도원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된 듯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치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렌티니

 

 

치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치리누스, 키리노, 키리누스.

 

 

치리노 자료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Alphius)와 성 필라델푸스(Philadelphus) 그리고 성 키리누스(또는 치리노) 형제 순교자들이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세 순교자와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Benedicta)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a)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 근방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이들 형제와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성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21세의 성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성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칼레포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lepo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2년? 로마

 

 

칼레포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갈레포디오, 갈레포디우스, 칼레뽀디오, 칼레뽀디우스, 칼레포디우스.

 

 

칼레포디오 자료

성 칼레포디우스(또는 칼레포디오)와 동료 순교자들은 로마 순교록에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의 재임기간 중 알렉산데르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로마의 순교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의 사제였던 성 칼레포디우스는 세베루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목이 잘린 뒤에 티베르(Tiber) 강에 던져졌는데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그의 시신을 건져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집정관이었던 성 팔마티우스(Palmatius) 역시 이 기간 중에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42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순교하였고, 원로원 의원이었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또한 가족과 그에게 속한 이들 6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펠릭스(Felix)와 성녀 블란다(Blanda)는 부부 사이인데 그들 역시 세베루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로마의 순교자로 공경을 받고 있고, 유해가 모셔진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 등에서 더욱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콘레트

 

  • 가톨릭 성인 이름
    Conlet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19년경 킬데어

 

 

콘레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꼰레뜨, 콘레스.

 

 

콘레트 자료

성 콘레트는 대부분의 아일랜드 초기 성직자들처럼 금속세공인이었으며 리피(Liffey) 강과 가까운 올드 코넬(Old Connell)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이때 그는 성녀 브리지다(Brigida, 2월 1일)와 친분을 맺었고, 성녀의 요청으로 킬데어에 있는 성녀 브리지다 수녀원에서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490년경 킬데어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그는 클로거(Clogher)의 성 티제르나크(Tigernach, 4월 4일)에게 세례를 주었고, 로마(Roma)를 순례하러 가던 중 렌스터(Leinster)의 숲에서 늑대의 공격을 받고 운명하여 인근에 묻혔다. 799년 그의 유해는 킬데어의 주교좌성당으로 옮겨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콤갈

 

  • 가톨릭 성인 이름
    Comgal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01년경 뱅거

 

 

콤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곰갈, 꼼갈.

 

 

콤갈 자료

아일랜드의 얼스터(Ulster) 태생인 성 콤갈은 클론나그(Clonenagh)의 성 핀타누스(Fintanus, 2월 17일)와 클론맥노이즈(Clonmacnoise)의 성 키아란(Ciaran, 9월 9일)의 지도하에 클루아인 에드네크(Cluain Eidnech) 수도원에서 수학한 뒤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언(Erne) 호수에 있는 한 섬에서 매우 엄격하고 금욕적인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작성한 회칙은 너무 엄격하여 동료 가운데 7명이 죽는 불상사가 발생할 정도였다.

그 후 그는 최초의 수도원을 떠나 웨일스(Wales) 북서부 귀네드(Gwynedd)의 뱅거에 수도원을 세우고 보비오(Bobbio)의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11월 23일)를 비롯한 많은 성인들을 교육시켜 배출하였다.

그 당시에는 그의 수도원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하였으며 약 8천 명 이상의 수도자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오나(Iona)의 성 콜룸바(Columba, 6월 9일)와 동행하여 스코틀랜드 하일랜드(Highland) 지방의 인버네스(Inverness)까지 선교여행을 하였고 헤스(Heth)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성 콤갈은 자신의 엄격한 수도생활로 인하여 무거운 병을 얻고 몇 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뱅거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3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콰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Quar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콰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과르도, 과르또, 과르뚜스, 과르토, 과르투스, 꽈르또, 꽈르뚜스, 콰르투스.

 

 

콰르토 자료

성 콰르투스(또는 콰르토)와 성 퀸투스(Quinctus)는 이탈리아 카푸아(Capua)의 시민으로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카푸아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퀸토

 

  • 가톨릭 성인 이름
    Quin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퀸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귄또, 귄뚜스, 귄토, 귄투스, 뀐또, 뀐뚜스, 퀸투스.

 

 

퀸토 자료

성 콰르투스(Quartus)와 성 퀸투스(Quinctus, 또는 퀸토)는 이탈리아 카푸아(Capua)의 시민으로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카푸아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팔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alma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집정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2년? 로마

 

 

팔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팔마시우스, 팔마씨오, 팔마씨우스, 팔마티오, 팔마티우스.

 

 

팔마시오 자료

성 칼레포디우스(Calepodius)와 동료 순교자들은 로마 순교록에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의 재임기간 중 알렉산데르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로마의 순교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의 사제였던 성 칼레포디우스는 세베루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목이 잘린 뒤에 티베르(Tiber) 강에 던져졌는데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그의 시신을 건져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집정관이었던 성 팔마티우스(또는 팔마시오) 역시 이 기간 중에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42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순교하였고, 원로원 의원이었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또한 가족과 그에게 속한 이들 6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펠릭스(Felix)와 성녀 블란다(Blanda)는 부부 사이인데 그들 역시 세베루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로마의 순교자로 공경을 받고 있고, 유해가 모셔진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 등에서 더욱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펠릭스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2년? 로마

 

 

펠릭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자료

성 칼레포디우스(Calepodius)와 동료 순교자들은 로마 순교록에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의 재임기간 중 알렉산데르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로마의 순교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의 사제였던 성 칼레포디우스는 세베루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목이 잘린 뒤에 티베르(Tiber) 강에 던져졌는데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그의 시신을 건져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집정관이었던 성 팔마티우스(Palmatius) 역시 이 기간 중에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42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순교하였고, 원로원 의원이었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또한 가족과 그에게 속한 이들 6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펠릭스와 성녀 블란다(Blanda)는 부부 사이인데 그들 역시 세베루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로마의 순교자로 공경을 받고 있고, 유해가 모셔진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 등에서 더욱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필라델포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adelph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렌티니

 

 

필라델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필라델뽀, 필라델뿌스, 필라델푸스.

 

 

필라델포 자료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Alphius)와 성 필라델푸스(또는 필라델포) 그리고 성 키리누스(Cyrinus) 형제 순교자들이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세 순교자와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Benedicta)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a)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 근방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이들 형제와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성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21세의 성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성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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