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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남자세례명 16가지

피어나네 2023. 9.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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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도미니코, 라르고, 레오니데, 마리노, 미론, 빅토리노, 세베리아누스, 세쿤도, 스마락도, 알트만, 에밀리아노, 엘레우테리오, 요한 펠턴, 치리아코, 카르포포로, 호르미스다 총 12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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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8월 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6가지

 

 

 

 

8월 8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도미니코

  2. 라르고

  3. 레오니데

  4. 마리노

  5. 미론

  6. 빅토리노

  7. 세베리아누스

  8. 세쿤도

  9. 스마락도

  10. 알트만

  11. 에밀리아노

  12. 엘레우테리오

  13. 요한 펠턴

  14. 치리아코

  15. 카르포포로

  16. 호르미스다

 

8월 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6가지

 

 

1. 도미니코

 

  • 가톨릭 성인 이름
    Dominic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170-1221년

 

 

도미니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도미니코 자료

펠릭스 데 구즈만(Felix de Guzman)과 아자(Aza)의 복녀 요안나(Joanna, 8월 2일)의 아들인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1170년 8월 8일 에스파냐 북부 부르고스(Burgos) 지방의 칼레루에가(Caleruega)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심 깊은 어머니에게 훌륭한 가정 교육과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형 두 명은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사제가 되어 교회에 봉사하고 있었고, 그 역시 7살 때부터 삼촌 신부 밑에서 기초 학문을 수학하고 복사로서 미사 전례를 도우며 사제 성소를 키워갔다. 

그는 1184-1194년 사이에 팔렌시아(Palecia)의 대학에서 논리학, 수사학, 철학, 신학 등을 공부한 후 1196년경 사제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그는 오스마(Osma) 교구 주교좌성당의 의전 사제단에 참여하여 함께 시간전례(성무일도)를 바치며 공동생활을 했다. 그리고 1201년 의전 수도회의 부원장으로 선출되어 청빈 생활과 관상 생활에 더욱 몰두했다.

그러던 중 성 도미니코는 1203년과 1205년에 오스마의 주교인 복자 디에고 데 아제베도(Diego de Azevedo, 2월 6일)를 수행해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발생한 알비파 이단으로 인해 교회가 겪고 있는 고통을 목격하며 교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1206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알비파(Albigenses), 발두스파(Waldenses), 카타리파(Cathari)에 대항하는 시토회 출신 교황 사절을 만난 후 이단을 척결하는 사명에 투신할 결심을 했다. 

그는 1206년 말 알비파에서 가톨릭으로 되돌아온 여성들을 위해 프루이유(Prouille)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가톨릭의 진리를 설교하는 데 전념했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알비파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 1198-1216년 재위)는 그들을 상대할 십자군을 조직하고 그 총사령관으로 몽포르의 시몽 4세(Simon IV de Montfort) 백작을 임명했다. 알비파와의 전투는 7년이나 계속되었다. 

성 도미니코는 십자군을 따라다니며 이단자를 상대로 설교에 힘썼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214년 시몽 4세가 그에게 성(城)을 하나 주었는데, 이때 그는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파의 회개를 위해 활동할 공동체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 툴루즈(Toulouse)로 옮겨 교황 사절의 동의와 툴루즈 교구의 풀크(Foulques) 주교의 승인을 받아 수도원을 설립했다. 

풀크 주교는 그에게 교구 전역을 순회하며 신자들에게 참된 신앙과 윤리를 지키도록 설교하도록 요청했다. 성 도미니코와 풀크 주교는 1215년 제4차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가 열린 로마를 방문해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 1198-1216년 재임)에게 설교를 목적으로 하는 새 수도회의 설립 승인을 요청했으나 구두 약속만 듣고 돌아왔다. 

하지만 1216년 말 다시 로마를 방문한 성 도미니코는 후임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 1216-1227년 재임)에게 ‘설교자들의 수도회’(Ordo Fratrum Praedicatorum)라는 이름으로 도미니코 수도회(설교자회)의 설립을 공식 승인받았다.

의전 수도회의 영향을 받은 성 도미니코는 수도 생활과 사목 활동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영성 생활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수도자들이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에 대한 서원을 하고 관상 생활을 지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수도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충실히 설교 준비를 하도록 교육에 힘쓰고, 참회와 금욕 생활을 실천하며 탁발 제도도 허용했다. 

성 도미니코가 설립한 설교자회는 교회와 교황과 신앙의 진리에 충실한 하느님 중심적이며, 그리스도론적이고 사제적인 영성 생활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심 운동에서 자연스럽게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운동을 이끌어냈고, 특별히 묵주기도의 전통을 가톨릭 교회 안에 널리 전파했다. 

설교를 통한 영혼 구원이란 설립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도자들은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했다. 이런 정신에 따라 도미니코 수도회는 설립 초기에 이미 성 대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 11월 15일)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월 28일)와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을 배출했다.

설교자회의 설립 승인을 받은 성 도미니코는 여생을 수도회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보냈는데, 회원들과 함께 이탈리아, 에스파냐, 프랑스, 헝가리 등을 순회하며 설교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회원이 새로 입회하면서 수도회도 빠르게 정착했고, 회헌에 따라 영성과 지성의 조화로운 결합 속에 대중들의 요구를 반영해 회개 운동과 선교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20년에 볼로냐(Bologna)에서 설교자회의 첫 번째 총회를 마치고, 그 이듬해인 1221년 8월 6일 볼로냐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서로서로 형제들 간에 사랑하라, 겸손하라, 청빈을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영적인 보화를 만들어가도록 하라.”는 말씀을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이미 유럽에는 60여 개의 수도원과 수녀원이 설립되었고 500여 명의 수도자가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천문학자와 설교자의 수호성인이다.

교회 미술에서 성 도미니코는 보통 검은색과 흰색의 수도복을 입고 이마에 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성인의 어머니가 꿈에 이마에 별을 달고 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기를 보았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후대 회원들에 의해 도미니코회 문장에 횃불을 입에 문 개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성 도미니코의 어머니가 꾼 태몽에서 유래한다.

어느 날 성지 순례 중에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배에서 횃불을 입에 문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그 횃불로 온 세상을 불태우는 꿈을 꿨다. 어머니는 이 꿈이 장차 아들이 말[說]로써 세상을 불태우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준 태몽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성 도미니코는 뛰어난 언변으로 당대 교회에 큰 어려움을 안긴 알비파 이단을 대적했다.

그리고 동정 성모에게 묵주를 받는 성 도미니코의 모습도 교회 미술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평소 어려울 때마다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던 성 도미니코에게, 1210년 어느 날 성모님이 나타나 묵주를 주시며 묵주기도를 널리 전파하라는 말씀을 주셨다는 전승에서 유래한다.

사실 성 도미니코와 도미니코 수도회는 묵주기도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외에도 순결의 상징인 백합이나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라르고

 

  • 가톨릭 성인 이름
    Larg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로마

 

 

라르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르구스.

 

 

라르고 자료

성 라르구스(또는 라루고)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 건립에 참여했던 그리스도인 노예였다. 그는 성 키리아쿠스(Cyriacus, 8월 8일)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로마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을 당한 후 참수된 그는 근처에 묻혔다가 로마의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녀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오니데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id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레오니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오니데스.

 

 

레오니데 자료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와 성 레오니데는 소아시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노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리누스.

 

 

마리노 자료

성 마리누스(또는 마리노)는 소아시아 남동부 지중해 연안 지방인 실리시아(Cilicia)의 아나자르부스(Anazarbus)에서 순교했다.

그는 상당히 연로했던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우상에게 희생제사 바치기를 거부해 매우 모진 매를 맞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타르수스(Tarsus)의 총독인 리시아스(Lysias)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미론

 

  • 가톨릭 성인 이름
    Myr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50년 크레타

 

 

미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미런.

 

 

미론 자료

평신도 농부이자 젊은 가장이었던 성 미론은 자선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한 번은 그가 곡물 탈곡장에 있을 때 한 무리의 도둑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생각하기를 만약에 그들이 또 곡식이 떨어져서 곤궁해지면 다시 강도가 되어 진정 가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그것들을 나르는 것 또한 도와주었다.

그러자 도둑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편 성 미론의 애덕에 감동하여 오래지 않아 모두 개종하였다. 라우치아(Raucia) 사람들에 의해 사제로 뽑힌 그는 이어 크레타 섬의 주교가 되었다.

성 미론은 자선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때 트리톤(Triton) 강이 범람했을 때 그는 강물을 굳게 만들어 그의 교구민들을 구출하였다. 그런 후 한 사람을 보내 강물을 다시 만지자 다시금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빅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말/4세기초 알바노

 

 

빅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리노, 빅또리누스, 빅토리누스.

 

 

빅토리노 자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8일 목록에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15마일 떨어진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알바노에서 함께 순교한 성 세쿤두스(Secundus), 성 카르포포루스(Carpophorus), 성 빅토리누스(또는 빅토리노), 성 세베리아누스(Severianus)를 기념한다고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알바노의 산 세나토르(San Senator) 카타콤바에 묻혔다는 것 외에 그들의 순교 행적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세베리아누스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말/4세기초 알바노

 

 

세베리아누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베리아누스, 쎄베리아노, 쎄베리아누스.

 

 

세베리아누스 자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8일 목록에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15마일 떨어진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알바노에서 함께 순교한 성 세쿤두스(Secundus), 성 카르포포루스(Carpophor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세베리아누스(Severianus, 또는 세베리아노)를 기념한다고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알바노의 산 세나토르(San Senator) 카타콤바에 묻혔다는 것 외에 그들의 순교 행적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세쿤도

 

  • 가톨릭 성인 이름
    Secun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말/4세기초 알바노

 

 

세쿤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군도, 세꾼도, 세꾼두스, 세쿤두스.

 

 

세쿤도 자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8일 목록에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15마일 떨어진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알바노에서 함께 순교한 성 세쿤두스(또는 세쿤도), 성 카르포포루스(Carpophor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세베리아누스(Severianus)를 기념한다고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알바노의 산 세나토르(San Senator) 카타콤바에 묻혔다는 것 외에 그들의 순교 행적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스마락도

 

  • 가톨릭 성인 이름
    Smarag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로마

 

 

스마락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스마라그도, 스마라그두스, 스마락두스.

 

 

스마락도 자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을 건립하는데 참여했던 그리스도인 노예 성 스마락두스(또는 스마락도)는 고문을 당한 후 성 키리아쿠스(Cyriacus, 8월 8일)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탈리아 로마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잔인한 고문을 당한 후 참수된 그는 근처에 묻혔다가, 다시 로마의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옮겨 모셔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알트만

 

  • 가톨릭 성인 이름
    Altm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020-1091년 파사우

 

 

알트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앨트먼, 올트먼.

 

 

알트만 자료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 파더보른(Paderborn)에서 태어난 성 알트만은 파리(Paris)에서 수학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파더보른 주교좌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아헨(Aachen)의 의회 의장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064년 성지를 순례하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우정 깊게 사귀던 어떤 족장의 중재로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였다. 그 당시의 순례자들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 길에 나섰다. 그 태반이 병이나 어려움 때문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10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파사우의 주교로 임명된 후 교구를 개혁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사업을 착수하였다. 또 그는 괴트바이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다른 수많은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을 금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쇄신 칙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했을 때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고,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

그 다음 해 평신도 성직수여를 금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칙서에 대한 그의 지지는 자기 적들의 명단에 하인리히 왕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어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독일의 교황청 사절이 되었으나, 1081년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자신이 재차 해임되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괴트바이그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공경을 확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에밀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Emi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20년 키지쿠스

 

 

에밀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밀리아노, 아이밀리아누스, 애밀리아노, 애밀리아누스, 에밀리아누스.

 

 

에밀리아노 자료

터키 마르마라(Marmara) 해의 섬인 키지쿠스의 주교인 성 에밀리아누스(Aemilianus, 또는 에밀리아노)는 성상파괴주의자들을 반대한 이유로 유배 중에 사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엘레우테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leuth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엘레우테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엘레우떼리오, 엘레우떼리우스, 엘레우테리우스.

 

 

엘레우테리오 자료

성 엘레우테리우스(또는 엘레우테리오)와 성 레오니데(Leonides)는 소아시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요한 펠턴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Felton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70년

 

 

요한 펠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펠톤, 한스, 후안.

 

 

요한 펠턴 자료

1569년에서 1570년 사이에 교황 비오 5세(Pius V)가 “천상의 통치자”란 칙서를 통하여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반대하고 가톨릭의 입장을 재천명하면서 그녀를 파문시켰다.

이 때문에 영국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을 잡아들이고 이 칙서 소유한 사람을 사형에 처했는데, 이때 스우스워크에 살던 노포가(家)의 신사인 요한 펠턴(Joannes Felton)도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치리아코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a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로마

 

 

치리아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치리아꼬, 치리아꾸스, 치리아쿠스, 키리아코, 키리아쿠스.

 

 

치리아코 자료

이탈리아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는 어른이 되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부제가 된 그는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 건립에 참여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돌보는데 힘썼다. 

전설에 의하면 성 키리아쿠스는 마귀에 들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딸을 치유해주었는데,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세레나(Serena, 8월 16일)를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Persia)의 사푸르 왕의 딸도 마귀로부터 구해주었고 왕실 가족들의 개종을 이끌었다고 한다.

결국 성 키리아쿠스는 체포되어 성 라르구스(Largus, 8월 8일), 성 스마락두스(Smaragdus, 8월 8일)와 다른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로마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을 받고 참수된 그는 그 근방에 묻혔다가 후에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녀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 알자스(Alsace)에 있는 성 키리아쿠스 수도원으로 옮겨 모셔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카르포포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arpoph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말/4세기초 알바노

 

 

카르포포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르포포로, 가르포포루스, 까르뽀뽀로, 까르뽀뽀루스, 카르포포루스.

 

 

카르포포로 자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8일 목록에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15마일 떨어진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알바노에서 함께 순교한 성 세쿤두스(Secundus), 성 카르포포루스(또는 카르포포로),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세베리아누스(Severianus)를 기념한다고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알바노의 산 세나토르(San Senator) 카타콤바에 묻혔다는 것 외에 그들의 순교 행적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호르미스다

 

  • 가톨릭 성인 이름
    Hormisd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20년

 

 

호르미스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호르미스다스.

 

 

호르미스다 자료

페르시아의 귀족이며 지방 관리의 아들인 성 호르미스다는 그의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 개종한 듯 보인다.

그는 페르시아 국왕 발람의 요구를 받았으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자신의 지위와 재산까지 모두 빼앗기고 군대의 낙타 몰이꾼으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국왕이 그에게 다시 배교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그는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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