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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남자세례명 7인 목록

피어나네 2024. 2.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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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레오나르도는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레오나르도 6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레오나르도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레오나르도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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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천주교 남자세례명
6인 목록

 

 

 

 

레오나르도 남자세례명 목록

 

  1. 레오나르도 무리알도 (3월 30일)

  2. 레오나르도 (5월 15일)

  3. 레오나르도 베첼 (7월 9일)

  4. 레오나르도 (10월 15일)

  5. 레오나르도 (11월 6일)

  6. 레오나르도 (11월 26일)

 

레오나르도 천주교 남자세례명 6인 목록

 

 

1. 레오나르도 무리알도

 

  • 세례명 축일
    3월 3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Murialdo

  • 신분과 직업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28-1900년 토리노

 

 

레오나르도 무리알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도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무리알도.

 

 

레오나르도 무리알도 이야기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인 성 레오나르두스 무리알도(Leonardus Murialdo, 또는 레오나르도)는 교구 사제였으나, 청소년과 노동자의 복지 향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다가 ‘젊은 노동자들을 위한 집’을 세운 뒤 ‘성 요셉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1963년 복자품에 올랐으며, 1970년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레오나르도

 

  • 세례명 축일
    5월 15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50년경 카말돌리

 

 

레오나르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레오나르도 이야기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의 카말돌리에서 은수자로 살던 수도승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오나르도 베첼

 

  • 세례명 축일
    7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Vechel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27-1572년 고르쿰

 

 

레오나르도 베첼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레오나르도 베첼 이야기

1527년 네덜란드 남부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에서 태어난 성 레오나르두스 베첼(Leonardus van Vechel, 또는 레오나르도 베첼)은 루뱅(Louvain)에서 수학하고 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1556년부터 고르쿰의 본당 사제로 사목했다. 그는 1572년 칼뱅파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켜 고르쿰을 점령했을 때 폭도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때 1532년에 태어난 작은 형제회의 신학자로서 고르쿰에서 성 레오나르두스 베첼의 보좌로 활동하던 성 니콜라우스 얀센 포펠(Nicolaus Janssen Poppel) 신부도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네덜란드의 덴 브리엘(Den Briel)로 이송되어 이미 폐허가 된 루겐(Ruggen) 수도원에서 다른 17명의 사제, 수도자, 교우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동료 순교자와 함께 ‘고르쿰의 순교자’로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레오나르도

 

  • 세례명 축일
    10월 1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70년경 방되브르

 

 

레오나르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레오나르도 이야기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샤르테 계곡에 수도생활을 이끌어 들인 인물로 공경을 받는다. 은수처를 찾아 방랑하던 그는 방되브르 강변까지 와서 지금의 생-레오나르드-보아에 정착하였다.

그는 성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와도 절친한 친구였으므로,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제자들이 많이 몰려와 금세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레오나르도

 

  • 세례명 축일
    11월 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 신분과 직업
    은수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59년 노블락

 

 

레오나르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레오나르도 이야기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가 기록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프랑크 왕국의 귀족 출신으로 용맹한 장군이었던 그는 국왕 클로비스 1세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둔 후 개종하여 세례를 받을 때 다른 귀족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장군으로서 국왕에게 충성을 다한 그는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군사로서 여생을 봉사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랭스(Reims)의 성 레미기우스(Remigius, 1월 13일)를 찾아가 학문과 덕행을 닦았다. 성 레미기우스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은 그는 왕국 내의 비신자들을 찾아다니며 헌신적인 노력으로 놀라운 전교 성과를 올렸다.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자 클로비스 1세는 그를 궁정사제로 불러들이거나 주교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겸손되어 모두 사양하였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국왕에게 감옥에 갇힌 이들의 석방을 청해 허락을 받은 후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는 오를레앙(Orleans) 근처로 가서 그곳의 미시(Micy) 수도원에 들어가 모범적인 생활을 하다가 원장직을 맡기려 하자 더욱 고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는 리모주(Limoges)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손수 조그마한 움막을 짓고 채소와 과일로 연명하면서 하느님만을 관조하며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비스 국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왕비가 죽을 곤경에 빠졌을 때, 그의 기도로 왕비의 목숨을 건지자 왕은 감사의 표시로 많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마침 그의 성덕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그는 그곳에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곳이 훗날 유명한 노블락 수도원의 모태가 되었다.

그는 공동체를 지도하면서 인근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해 많은 비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는 병자들과 수감자, 전쟁포로, 농부와 자물쇠 제조업자, 그리고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의 수호성인이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풀어주었던 일화 때문에 교회미술에서 그는 족쇄 또는 차꼬를 들고 있는 수도원장으로 주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레오나르도

 

  • 세례명 축일
    11월 2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nard

  • 신분과 직업
    신부, 증거자, 저술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676-1751년 포르토 마우리치오

 

 

레오나르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레오나르도 이야기

이탈리아의 포르토 마우리치오에서 도메니코 카사노바(Domenico Casanova)라는 선장의 아들로 태어난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파올로 지롤라모 카사노바(Paolo Girolamo Casanov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3세 때 로마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함께 생활하던 아고스티노(Agostino) 삼촌은 성실한 학생이었던 그가 의사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삼촌의 기대와는 달리 1697년에 폰티첼리(Ponticelli)에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삼촌과는 의절하고 말았다. 수도명으로 레오나르두스를 선택한 그는 로마의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공부하고 1703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709년에 피렌체(Firenze)의 산 프란체스코 델 몬테 수도원으로 갔고, 그때부터 토스카나(Toscana) 전역을 다니며 설교를 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산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가 인콘트로(Incontro) 근교에 수도자를 위한 은둔소를 지었으며, 로마 지역의 선교단을 지휘하면서 6년을 생활하였다.

1736년 그는 산 보나벤투라(San Bonaventura)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지만, 다음 해에 그 직책을 사임하고 다시 선교 길에 올라 열정적인 설교로 거대한 청중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열렬한 신심가이자 전파자였다. 또한 성체와 성심 그리고 마리아 신심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잠시 영국 왕위의 주창자인 제임스 3세 국왕의 아내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Maria Clementina Sobieska)의 영적 지도자로 일하다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의 명을 받고 코르시카(Corsica)로 가서 설교하고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코르시카인들이 그를 선교사로 보기보다는 섬을 통치했던 제노바(Genova) 사람들의 정치적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1751년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로마의 산 보나벤투라 수도원으로 돌아왔는데, 도착하던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수도원 성당 중앙제대에 모셔졌다.

43년 동안 열렬한 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1796년 6월 19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6월 29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본당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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