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레오 남자세례명 17인 목록

피어나네 2024. 2. 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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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남자세례명 레오 17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레오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레오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남자 세례명 찾기

레오
천주교 남자세례명
17인 목록

 

 

 

 

레오 남자세례명 목록

 

  1. 레오 카라수마루 (2월6일)

  2. 레오 (2월 18일)

  3. 레오 (2월 20일)

  4. 레오 (2월 26일)

  5. 레오 (3월 1일)

  6. 레오 (3월 14일)

  7. 레오 9세 (4월 19일)

  8. 레오 (4월 22일)

  9. 레오 (5월 25일)

  10. 레오 3세 (6월 12일)

  11. 레오 2세 (7월 3일)

  12. 레오 이냐시오 만진 (7월 9일)

  13. 레오 4세 (7월 17일)

  14. 레오 (8월 18일)

  15. 레오 (10월 10일)

  16. 레오 (11월 10일)

  17. 레오 1세(대) (11월 10일)

 

레오 천주교 남자세례명 17인 목록

 

 

1. 레오 카라수마루

 

  • 세례명 축일
    2월 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Karasumaru

  • 신분과 직업
    3회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49?-1597년 일본

 

 

레오 카라수마루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라수마루, 이바라끼, 이바라키.

 

 

레오 카라수마루 이야기

성 레오 카라수마루는 1549년경 오늘날 일본의 아이치(愛知, Aichi)현 서부에 해당하는 오와리(五川, Owari)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불교의 승려로 생활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예수회 회원들을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1589년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교리교사이자 작은 형제회의 3회원으로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당시 일본 교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87년에 선교사 추방령을 내려 많은 선교사가 추방되고 포교 행위가 금지되었으나 신앙 자체가 금지되지는 않았다. 1590년대에 들어서 에스파냐를 비롯한 서양 세력과 일본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조심스럽게 선교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1596년 무렵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오늘날의 교토(京都, Kyoto) 지방인 미야코(宮古, Miyako)에서 성당과 수도원과 병원을 건립하는 등 공공연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일본 지배층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게다가 그해 여름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를 떠나 멕시코로 가던 에스파냐 선박 산 펠리페(San Felipe)호가 태풍에 밀려 일본 해안으로 떠밀려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선원들이 일본 관리들과 대화 중에 에스파냐의 왕권과 정복욕을 자랑하며 일본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자아냈다.

결국 1596년 12월에 게이한(京阪, 교토와 오사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체포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내려지면서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성 레오 카라수마루도 미야코에서 체포되었다.

이 박해로 게이한 지방에서 체포된 이들은 작은 형제회의 신부와 수사 6명, 작은 형제회의 일본인 재속 3회원 15명, 예수회의 수사 3명 등 모두 24명에 달했다. 그들은 1597년 1월 3일 미야코 감옥에서 광장으로 끌려 나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장인 나가사키(長崎, Nagasaki)까지 혹한의 추위 속에서 걸어가야 했다.

그들이 처형을 위해 나가사키까지 가는 동안 예수회 회원들을 돌보도록 오르간티노(Gnecchi-Soldo Organtino) 신부에 의해 파견된 성 베드로 스케지로(Petrus Sukejiro)와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돌보던 성 프란치스코 키치(Franciscus Kichi)도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순교의 길에 동참해 순교자는 모두 26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2월 5일에 나가사키 근교 우라카미(浦上, Urakami)라는 교우촌에 도착해 2명의 예수회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성 레오 카라수마루와 동료들은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때 성 레오 카라수마루의 나이는 약 48세였다. 그와 함께 순교한 성 바오로 이바라키(Paulus Ibaraki)는 그의 형이었고, 12살의 어린 성 루도비쿠스 이바라키(Ludovicus Ibaraki)는 그의 조카였다.

나가사키의 골고타 언덕으로 불리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할 수 있어서 기뻐했던 성 레오 카라수마루와 25명의 동료는 이렇게 해서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순교한 언덕은 이후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 레오 카라수마루와 25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627년 9월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62년 6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26위의 일본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바오로 미키와 25명의 동료가 순교한 2월 5일 목록에서 그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9년의 전례력 개정과 함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이 보편 전례력 안에 추가되었다. 그러면서 성녀 아가타(Agatha, 2월 5일) 동정 순교자와의 중복을 피하려고 2월 6일로 날짜를 옮겨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또한 2월 6일 목록에서 26위의 일본 성인인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전해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레오

 

  • 세례명 축일
    2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경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성 레오와 성 파레고리우스(Paregorius)는 가까운 친구 사이로 성 파레고리우스가 리키아(Lycia)의 파타라(Patara)에서 순교할 때 성 레오는 서글픈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리키아의 관리는 모든 주민들로 하여금 이교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칙령을 내렸는데, 성 레오는 친구 순교자의 무덤을 다녀오면서 이방인들의 신전을 지나쳐 집으로 왔으나, 꿈속에서 하느님이 그를 부르시어 친구와 같은 고난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다시 친구의 무덤을 찾은 뒤 용감하게 거리로 나가서 이교신상 앞에 켜놓은 촛불들을 내동댕이쳤다. 그는 신성 모독죄로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 후에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오

 

  • 세례명 축일
    2월 2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03-787년 카타니아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성 레오는 703년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에서 태어나서 787년 시칠리아(Sicilia) 섬의 카타니아에서 사망하였다. 

성 레오는 카타니아의 주교로서 그의 높은 학식으로 인해 칭송을 받았고, 시칠리아에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레오

 

  • 세례명 축일
    2월 26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163년 생베르탱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플랑드르(Flandre) 지방 퓌르네(Furnes) 출신인 레오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교육을 받아 교회 학문은 물론 세속의 지식에도 놀라우리만큼 해박하였다. 그래서 그는 플랑드르의 궁중에서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20세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로베스(Lobbes)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수도회의 이완된 규칙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면서부터 세인들의 입에서조차 그를 존경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1138년 레오는 유명한 생베르탱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25년 동안 활동하였다. 그리고 1146년 플랑드르의 공작이 제2차 십자군에 종군할 때에는 그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도 활동하였다고 하나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다. 그는 1161년에 시력을 상실하였고 2년 뒤에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레오

 

  • 세례명 축일
    3월 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00년 루앙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프랑스 루앙의 주교인 성 레오는 사라센족(Saracens)이 침략했을 때 순교하였다. 약탈자들은 바욘(Bayonne) 부근에서 그를 참수하였다. 성 레오는 바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레오

 

  • 세례명 축일
    3월 1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로마 순교록 목록에 따르면 성 레오는 로마의 주교요 순교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아마도 아리우스파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이고, 그 외에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레오 9세

 

  • 세례명 축일
    4월 1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IX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1002-1054년

 

 

레오 9세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9세 이야기

오늘날의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 에기스하임(Egisheim) 태생인 성 레오 9세는 황제의 측근인 후고(Hugo) 백작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독일어권에서 살았지만 프랑스어에도 능통하였다. 

브루노(Bruno)라는 속명으로 불린 그는 툴(Toul)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미 학교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소년 시절에 뱀에 물려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환시를 보고 기적적으로 치유된 경험이 그의 일생을 사로잡았다.

1027년 9월 9일 툴(Toul)의 주교로 착좌한 그는 성직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부터 착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048년 8월 9일 교황 다마수스 2세(Damasus II)가 사망했을 때, 그가 후계자로 선출되어 이듬해 2월 12일 레오 9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다.

그는 교회의 고질병이던 성직매매를 금지하기 위하여 로마(Roma) 교회회의를 개최하였고, 특히 사제 독신제를 강화시켰다. 또 그는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 대한 세속권을 받음으로써 교황령을 크게 확장시켰으나 잡음은 그치지 않았다.

1087년 교황 복자 빅토르 3세(Victor III, 9월 16일)는 그의 시신을 발굴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레오

 

  • 세례명 축일
    4월 2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41년 상스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프랑스 상스의 주교인 성 레오는 국왕 힐데베르트 1세(Childebert I)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23년간 자신의 교구를 지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레오

 

  • 세례명 축일
    5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50년경 트루아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리에.

 

 

레오 이야기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 트루아 인근 만트네(Mantenay) 출신인 성 레오는 성 로마누스(Romanus)가 고향에 세운 수도원에 들어간 첫 번째 회원이었다. 그 후 그는 성 로마누스를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는데, 그의 재임기간에 이 수도원은 괄목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가 습관적으로 성세대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있던 어느 날 성 힐라리우스(Hilarius), 성 마르티누스(Martinus) 그리고 성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가 발현하여 3일 뒤에 죽으리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성덕은 천상의 성인들도 인정하였다고 한다. 그는 리에(Ly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레오 3세

 

  • 세례명 축일
    6월 1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III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816년

 

 

레오 3세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3세 이야기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로마인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성 레오 3세는 어려서부터 교황청에서 일했다. 그는 795년 12월 25일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Hadrianus I)가 선종한 직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선출 당시 산타 수산나(Santa Susanna) 성당의 추기경 사제였던 그는 자신의 교황 선출에 불만을 품은 무리들로부터 수많은 도전을 받아야만 했다.

성 마르코(Marcus) 축일에는 행렬 도중 반도들에 의해 피납되어 혀가 잘리는 등 거의 산송장이 될 정도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상처가 급속도로 회복되어 모든 이들이 이를 기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재임 기간 중에 프랑크 왕국의 왕 샤를마뉴(Charlemagne)를 대관하였다. 이 결과로 그는 교회 재건과 교황청과 국가들 간의 관계 회복을 성공적으로 성취하였다.

교황으로서 20여년 간 재위했던 그는 1673년 로마 순교록의 성인 목록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레오 2세

 

  • 세례명 축일
    7월 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II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683년

 

 

레오 2세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2세 이야기

시칠리아(Sicilia) 출신인 성 레오 2세는 681년에 교황 성 아가토(Agatho, 1월 10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비록 짧은 재임기간을 보냈으나 그리스도 단의설 이단을 지지하던 지도자들을 단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카타콤바로부터 많은 순교자의 유해를 자신이 세운 성당으로 옮겨 공경하여, 성인 공경에 대한 선풍을 일으켰다. 그는 웅변에 능하였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라틴어와 꼭 같이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레오 이냐시오 만진

 

  • 세례명 축일
    7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Ignatius Mangin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57-1900년 중국

 

 

레오 이냐시오 만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만진,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오.

 

 

레오 이냐시오 만진 이야기

성 레오 이냐시오 만진은 1857년 7월 30일 독일과 국경지역인 프랑스 동부 모젤(Moselle) 강가의 베르니(Verny)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1875년 11월 5일 아미앵(Amiens)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여 루뱅(Louvain)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중간기 실습생으로서 리에주(Liege)의 성 세르바누스(Servanus)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882년 6월 중국 선교사로 파견되어 중국어와 신학을 공부하고 1886년 7월 31일 중국 하북성 현현 장가장(河北省 獻縣 張家莊)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고성(故城)에서 첫 사목을 시작한 그는 선교사로서 훌륭한 판단력과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1899년 11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을 때 교회에 대한 박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 경주현 주가하(景州縣 朱家河)로 그의 사목 관할 지역이었다.

의화단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인근 신자 3,000여 명이 성 바오로 덴(Paulus Denn, 7월 9일) 신부를 따라 주가하 마을로 피난을 왔다. 성 레오 이냐시오 만진 신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성체를 영해주고 부녀자들을 성당으로 피신시켰다.

1900년 7월 17일 청나라 관군과 의화단 1만 여 명이 주가하 교우촌으로 쳐들어와 극심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수많은 신자들이 전사하고 젊은 여성 신자들은 신앙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성당 안에 피신해 있던 부녀자와 노약자들은 의화단이 지른 불에 희생되었고, 끝까지 신자들과 함께 했던 성 레오 이냐시오 만진 신부 역시 총에 맞아 순교했다.

7월 20일까지 단 며칠 동안 3,000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 성 레오 이냐시오 만진 신부와 다른 세 명의 예수회원 및 수천 명의 신자들은 이렇게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다른 세 명의 예수회원 순교자들과 함께 1995년 4월 17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10월 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중국 교회 120명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레오 4세

 

  • 세례명 축일
    7월 1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IV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855년

 

 

레오 4세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4세 이야기

라도알도(Radoaldo)의 아들이고 롬바르드족 혈통의 로마인인 성 레오 4세는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라테라노(Laterano) 대성당의 차부제를 거쳐 추기경 사제가 되었다. 

847년 1월 27일 교황 세르기우스 2세(Sergius II)가 선종한 이후 그는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첫 임무는 사라센족의 침략으로부터 로마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미 사라센족은 테베레강까지 쳐들어 와 성 바오로 대성전을 초토화했다. 

성 레오 4세 교황은 로마를 지키기 위해 성채를 보수하고 강화하면서 849년 오스티아(Ostia) 해전에서 사라센족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그는 매우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인내심도 있고 겸손했다. 

만일 그의 이러한 면모가 없었더라면 정치적으로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에 그의 영적 위대성은 잊혀 버렸을 것이다. 그는 또한 뛰어난 설교가였고, 로마 교회 안에 성가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레오

 

  • 세례명 축일
    8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성 레오와 성녀 율리아나(Juliana)는 나란히 이름을 병기하는 것이 무의미한 또 다른 한 쌍의 성인성녀이다. 

성 레오는 리키아(Lycia, 고대 소아시아 남서쪽 끝에 있던 지방)의 미라(Myra)에서 순교했고, 성녀 율리아나는 소아시아의 스트로비룸(Strobylum)에서 순교하였다. 

그녀는 아마 프톨레마이스(Ptolemais)의 성녀 율리아나(8월 17일)와 동일 인물일 수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레오

 

  • 세례명 축일
    10월 1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27년 모로코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1219년에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에 의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 성 베라르두스(Berardus, 1월 16일)와 동료들이 이듬해 모로코에서 순교하는 일이 생겼다.

그들은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었고, 그들의 순교는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227년, 성 프란치스코가 선종한 다음 해에 토스카나(Toscana)에서 여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선교를 자원했다.

그들의 이름은 성 사무엘(Samuel), 성 안젤루스(Angelus), 성 레오, 성 돔누스(Domnus), 성 니콜라우스(Nicolaus), 성 후골리누스(Hugolinus)였다. 그들은 먼저 에스파냐로 가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칼라브리아(Calabria)의 관구장인 성 다니엘(Daniel) 신부를 만났다.

성 다니엘이 이끄는 선교단은 아프리카 북서부의 모로코에 도착해 유럽 상인들이 거주하던 세우타(Ceuta) 근교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에 그들은 서로 고해성사를 받고 서로의 발을 씻겨주면서 기도로써 밤을 지새우고, 주일 아침에 세우타 시내로 들어가 길거리에 서서 복음을 전하며 무함마드(Muhammad)의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를 시작했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도시에서 그들의 설교는 곧 큰 소란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결국 체포되어 술탄 앞으로 끌려갔다.

술탄은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의 남루한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는 모두 미쳤다고 판단해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무어인들은 감옥에 갇힌 선교사들을 마음대로 놀리고 학대하였다.

한 주일이 지난 다음 주일, 술탄 앞에 선 그들은 자기들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선교사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무어인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무함마드를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갖은 고문은 자행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 없음을 깨닫고 그들을 세우타 성 밖으로 끌고 가서 참수형으로 처형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상인들에 의해 세우타 교외에 묻혔고, 나중에 에스파냐로 옮겨 모셨다. 성 다니엘과 여섯 동료는 1516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3일에 그들의 축일을 기념했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0일로 옮겨 그들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레오

 

  • 세례명 축일
    11월 1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믈룅

 

 

레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이야기

성 레오는 프랑스 파리(Paris) 근교 믈룅에서 오래 전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를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와 동일인물로 보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레오 1세(대)

 

  • 세례명 축일
    11월 1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I the Great

  • 신분과 직업
    교황, 교회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61년

 

 

레오 1세(대)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1세(대) 이야기

성 대 레오 1세는 아마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사람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로마(Roma)에서 살았다.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7월 27일)와 성 식스투스 3세(Sixtus III, 8월 19일) 밑에서 부제로 봉사했다.

그리고 440년에는 황제의 요청을 받아 에지오 장군과 알비누스 집정관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고자 갈리아에 파견되어 노력하던 중 교황 성 식스투스 3세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어 9월 29일 주교품을 받고 착좌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황제와 교회 간의 알력을 비롯하여 마니교도, 펠라기우스주의, 프리실리아누스주의 그리고 네스토리우스주의에 강력히 대처하는 등 수많은 난관을 무난히 극복하였다.

448년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대수도원장인 에우티케스(Eutyches) 일파와 격돌하게 되었다.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Flavianus)가 내정한 원장이었다.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지원을 받던 에우티케스는 더욱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였다.

451년 성 레오 교황은 보스포루스(Bosphorus) 해협 연안의 도시 칼케돈(Chalcedon)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천주강생의 교리를 분명히 하는 교의 서간을 반포하였다. 성 대 레오 교황은 외교 문제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451년 훈족의 아틸라(Attila)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쳐들어 와서 로마를 위협하자 발렌티누스 3세 황제는 교황에게 강화 중재를 요청했고, 레오 교황은 용감히 나아가 화평을 얻어내고 아틸라 왕을 돌려보냈다.

455년 반달족의 가이세리쿠스(Gaisericus,또는 Genseric)가 이탈리아에 상륙해 로마로 진격해왔을 때도 레오 교황의 중재를 통해 로마를 방화와 살육에서 보호할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에도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교황으로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또한 교황권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성좌의 권위는 하느님과 성경에서 유래하는 명령이기 때문에 속권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굳게 확립한 위대한 교황이다. 한마디로 그의 재임 기간은 교황권 확립의 시기였다.

역사적으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과 함께 '대'(大)라는 존칭을 받는 교황인 성 레오 1세는 461년 11월 10일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당 회랑에 안치되었다가, 688년 교황 성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 9월 8일)에 의해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지하묘지로 옮겨 안장되었다.

그는 1754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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