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보다,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이해되지 않아도 돌아서지 않고 머물러 있는 시간들... 그 느린 자리에서 말씀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애써 붙잡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다시 떠오르는 것들... 성령께서 가르치신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들었던 것을 지금 이 순간 다시 들려주시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6년 5월 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4장 5-18절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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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21-26절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5월 4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37
✚ 강론 시작 08:3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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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우직하게, 바보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킵시다.
이정하 시인의 “바보 같은 사랑”이라는 시의 다음 구절로 묵상을 시작합니다.
“셈이 빠르고 계산에 능한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척 얼굴만 찌푸리고 있지 잘 살펴보면 언제라도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 사랑은 그런 우직한 사람만 하는 거다. 남들은 미쳤다고 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오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대가 오기 전까지는 결코 한 발자국도 떼지 않는 미련한 사람들. …… 모든 걸 다 잃는다 해도 스스로 작정한 일,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제 한 몸 불태우는 단풍잎처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계산이 빠르고 자기 이익이 먼저인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말씀을 지키려면 우직해야 합니다. 자기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며 기다릴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십자가의 우직함, 십자가의 어리석음, 십자가의 희생과 연결됩니다.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제 한 몸 불태우는 단풍잎”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직하게, 바보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킵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받기만 하면 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가?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가?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받는다. 하느님께 그리고 이웃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가?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가?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만 하느님 말씀을 지킨다. 이것이 오늘 주님 말씀의 요점입니다.
그러니 이것으로 충분하고 더 이상 얘기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해주시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해주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해주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지만 하느님은 조건 없이 사랑하기에 당신을 사랑치 않는 사람도 사랑해주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은 주지 않으셔서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내가 사랑하지 않기에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듯 하느님 사랑은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해줘도 받지 않지요.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하느님이 아무리 사랑해주셔도 그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느님 사랑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없기에 좋다 싫다 하지도, 그래서 거절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그냥 무시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사랑하고 다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해야겠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할지라도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욕심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 갈증 때문이어야지 욕심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사랑은 부족함이 없기에 욕심부릴 필요도, 사랑받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주시는 대로 그저 받으면 됩니다.
햇빛을 욕심부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햇빛이 부족해서 욕심부립니까? 햇빛은 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욕심부리는 겁니다. 햇빛이 그렇듯 하느님 사랑도 그렇습니다. 부족함 없고, 욕심부릴 필요 없고, 애쓸 필요도 없고 그저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받고 난 뒤에 다른 보답도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그저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 실천도 애써서 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하면 됩니다. 그러니 실천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사랑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 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마음에서 살아나는 말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 14,23)
여기에서, “계명과 말씀을 지킨다.”는 말은 우선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뜻합니다. 곧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예수님과의 결속관계를 가리킵니다. 믿지 않고서는 그분의 말씀과 계명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래 “지키다”라는 동사는 “간직하다” “새기다” 혹은 “신경 써서 돌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곧 ‘마음이 담긴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저 의무나 규칙이나 형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을 넘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 곧 마음으로 결속된 바를 사랑으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첫째 편지에서 말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
그렇습니다. 사랑의 증거는 ‘행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는 이’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 14,21 참조). 이미 그이 안에 거처를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를 당신의 어좌로 삼으신 까닭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는 말씀은 ‘곁에서 함께 더불어 산다.’는 정도가 아니라 ‘안에(εν)서 함께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성령으로 일치를 이루어 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말합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1요한 4,16)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내주’(perichoresis)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친밀하고 온전하게 일치를 이루는 것, 곧 사랑의 증여로 생명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 안에 내재하는 일치를 뜻합니다. 그리하여, 자신 안에서 상대를 드러내게 되는 사랑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말씀은 지켜지게 됩니다.
하오니 주님! 빛이 되어 오소서. 저를 사르는 빛으로 오소서. 함께 살며, 불살라 태우소서. 저를 태워 세상을 밝히소서. 제가 빛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4장 21절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그렇게 제 자신보다 당신을 앞세우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키고 실행하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왜 예수님의 상처에서 빛이 솟아날까?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다." (요한 14,21)
찬미 예수님! 부활 제5주간 월요일입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자비의 예수님' 성화에는 아주 신비로운 빛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 부근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줄기 빛이 세상을 향해 쏟아져 나옵니다.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는 환시 중에 이 빛의 정체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직접 이런 설명을 들었습니다.
"두 빛줄기는 피와 물을 상징한다. 푸른 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의미한다. 이 두 빛줄기는 내 자비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고통에 신음하던 내 심장이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려 열렸을 때 솟아 나왔다." (출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내 영혼 속의 하느님 자비』 299항)
주님은 당신의 매끄러운 피부가 아니라, 창에 찔린 ‘상처’에서 빛과 생명이 솟구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필 아픈 상처일까요? 그 상처는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당신의 자아를 죽였다는 지울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지독하리만큼 효율적입니다. 여러분이 헬스장에서 무거운 덤벨을 들 때, 근육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근섬유들이 미세하게 찢어지는 '상처'가 납니다. 운동 후에 느끼는 뻐근한 통증은 내 몸이 상처 입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뇌는 이 상처를 감지하는 즉시 그 부위를 비상사태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혈액과 산소, 영양분의 90% 이상을 그 '상처 난 근육'에 집중적으로 퍼붓습니다. 가만히 누워있는 다리 근육에는 생존을 위한 최소량만 보내지만, 찢어지고 상처 입은 팔 근육에는 에너지를 독점시킵니다. 그 결과 상처 부위는 이전보다 더 크고 강한 근육으로 재탄생합니다. 이를 생리학에서는 '슈퍼 보상(Supercompensation)'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은총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행위는 영적 근육을 가동하는 실천입니다. 내가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 자아는 미세하게 찢어지는 통증을 느낍니다. '순종의 상처'가 생기는 것이지요. 바로 그 상처 난 영혼의 지점으로 하느님의 모든 은총과 지혜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은총을 못 받는 이유는 여러분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 본 적이 없어 상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 근위축(Atrophy) 상태에 빠져 있기에 에너지가 공급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입니다.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님은 저격범의 총탄에 복부를 관통당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생존 자체가 기적이었지요. 하지만 성인은 그 상처를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제물로 봉헌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습니다. 고통스러운 수술 자국과 평생 이어진 육체적 쇠락이라는 '상처'가 있었음에도, 교황님의 선교 에너지는 이전보다 수십 배 강해졌습니다. 그는 129개국을 방문하며 지구를 30바퀴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의료진은 "저분의 몸은 상처투성이인데, 어디서 저런 신적인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교황님이 자신의 고통을 사명에 순종하는 '주유구'로 내어드렸을 때, 성령께서는 그 상처를 통해 활동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주신 것입니다. (출처: 안드레아 리카르디, 『요한 바오로 2세: 성자의 삶』)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R&D(연구개발) 투자 원칙입니다. 더 희생하는 이에게 더 큰 은총이 흐릅니다. 그에게 순종의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일부러라도 상처를 내십니다.
1858년 2월 25일, 아홉 번째 발현 때 성모님께서는 베르나데트에게 기상천외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가서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어라."
그런데 그곳에는 샘물이 없었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성모님의 말씀을 믿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이 진흙범벅이 되는 '상처'가 났습니다. 여인이 "진흙물을 마시고 풀을 뜯어 먹으라"고 하자, 베르나데트는 주저 없이 그 오물을 삼키고 쓴 풀을 씹었습니다.
지켜보던 군중은 비웃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미쳤다! 흙을 파먹고 풀을 뜯다니!"
소녀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사람들의 조롱이라는 날카로운 상처가 그녀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종의 상처'가 난 지점에서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판 그 웅덩이에서 맑은 샘물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물은 지금까지 수백만 명을 치유하는 '은총의 젖줄'이 되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자신의 체면과 이성을 꺾어 '자아의 상처'를 내지 않았다면, 루르드의 그 찬란한 빛의 샘물은 결코 터져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사제로서 성당의 재정을 운영할 때, 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단순히 친목 도모나 취미 생활을 하는 곳에는 예산을 아낍니다. 하지만 선교를 하겠다고 나서거나, 신자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자기 자존심을 꺾어가며 봉사하는 이들에게는 제 모든 지식과 정성, 그리고 본당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붓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순종의 상처'입니다. 신부가 어떤 사목 방향을 제시했을 때, 내 경험과 다르더라도 "예, 신부님 뜻이 하느님 뜻이라 믿고 제가 한번 죽어보겠습니다"라며 자신의 고집을 꺾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가 자아를 죽일 때 입는 그 '마음의 상처'는 목자의 심장을 직격합니다.
사제는 본능적으로 그런 신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 합니다. 그 상처가 바로 사제의 사랑이 흐를 수 있는 '주유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하느님은 비단결 같은 매끄러운 영혼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순종하느라 갈갈이 찢겨진 영혼을 찾으신다. 그 찢겨진 틈이야말로 하늘나라의 보화가 쏟아져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와 가장 친한 신부는 현재 교구청 복음화 사목 국장으로 있는 정병덕 라파엘 신부입니다. 초등학생 때 같이 첫영성체를 받았고,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열심히 하지 않던 저를 이끌어 성당에 다니게 하고 이렇게 함께 신부까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 친하지 않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정 신부가 종종 제게 강의 부탁을 합니다. 솔직히 하기 싫을 때도 있고, 나보다 더 잘하는 신부가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 신부의 부탁이니 무조건 승낙합니다. 좋아하고 존경하며 또 사랑하는 동창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 신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난번 지방으로 강의 갔다가 본당에 초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방 강의라 하루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얼른 정 신부에게 전화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일정을 확인하지도 않고 곧바로 승낙을 해준 것입니다.
어느 냉담자가 “저는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안 나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권위주의, 세속적인 모습, 보수적이고 비영성적인 모습, 각종 스캔들을 통해 교회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분은 예수님이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분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세우셨고 언제나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는 분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라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직자, 수도자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때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주님 때문에 신앙을 가졌는데, 각종 이유를 들어 주님을 떠납니다. 결국 주님이 싫어서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교회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몽둥이질하며 쫓아낸다고 해도 절대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단순히 뜨거운 감정이나 입술의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고 순종하는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만드신 교회 안에서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즉,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도 사랑하게 됩니다.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습관적으로 고백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마음부터 성부와 성자께서 기쁘게 머무르실 수 있는 깨끗한 성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진리를 깨우쳐주시는 보호자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은 말씀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이런 은총 안에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멈추기만 해도 우린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이디스 워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보호자이신 성령께서는 단순한 힘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인격적 현존입니다.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아시는 분으로서 우리 존재의 방향을 밝혀주십니다. 앎과 삶, 진리와 사랑은 성령 안에서 하나로 통합됩니다.
성령의 가르침은 지식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진리 안에서 깨어나게 하는 내적 깨달음의 참된 원리입니다. 우리 안에 이미 담겨 있던 사랑과 진실을 다시 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외부에서 강요되는 교훈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히고 진실을 보게하는 깨달음의 빛입니다. 참된 가르침은 말로 완성되지 않고 체험 속에서 드러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 체험으로 이끌어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살아 깨닫게 하는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특별한 순간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끊임없이 드러나는 살아 있는 진리의 작용입니다. 말씀과 사람의 삶이 만나는 자리에서 새로운 의미가 열리는 살아있는 관계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깨닫게하는 영적각성의 은총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분별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을 세워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진리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내게 하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이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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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