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결과로 스스로를 설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잘 해냈다는 증거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런 기준보다 더 깊은 자리를 보여줍니다.
되돌아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던 시간들이, 사실은 끊어지지 않게 이어지고 있던 시간이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흐르고 있는 생명 안에 머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5장 1-6절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5장 1-8절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5월 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5월 기도지향 00:20
✚ 미사 시작 00:37
✚ 강론 시작 06:1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떠나지 않는 것이 신앙이다.
“삐뚤어질 테다.”
부모나 주변 사람이 내가 바라는 것을 해 주지 않을 때 일부러 반항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망가지는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하기 때문이지요. 자녀들은 반항심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참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어린 자녀들은 그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갖는 관계에서도 “삐뚤어질 테다.”라고 말하는 자녀들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 막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시련에 아파하다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경우를 때때로 봅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시련이 와도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다니며 실망하게 되는 일도 많고, 본당 신부나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형제자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날마다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며 성당을 떠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든든한 힘은 거창한 환시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예수님께 의지하는 끈기와 인내에서 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이 신앙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요한 15,1-8 참조). 성당에 꾸준히 나온다고 모두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실망스러워도 예수님께 붙어 있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가 나도 예수님 안에서 화내고, 슬퍼도 예수님 안에서 슬퍼합시다. 어떤 상태에 있든 예수님 안에 머무르면 결국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붙어 있지만 열매는 맺지 않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비유로 들며 우리가 주님이라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함을, 그래야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열매 맺음을 가르치십니다. 저는 분명 주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긴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분명 그러실 겁니다. 문제는 붙어 있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해 성찰하고 나눠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당에 나가긴 하지만 교회 생활만 하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발바닥 신자일 뿐이고 성당 문을 나오는 순간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없고, 복음의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를 보고 신앙인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로 성당에 가긴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귓전을 스칠 뿐 그의 마음 안에 머물지 않아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없기에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생기 없이 살다가 시들시들해지고 마는데 이것은 성체를 영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로 교회 내에서 일을 많이 하고 사회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도 그 활동이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라면 기도와 헌신의 정신이 없이 자기 뜻대로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금세 지쳐서 나가떨어지거나 하느님의 일을 자기 일로 만들어버리거나 그 일마저 되는듯하다가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당에 매일 나가는 것만으로 주님께 붙어 있다고 착각하지 말 것입니다.
‘단디하라’는 경상도 말을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근근이 교회 생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신앙생활을 단디하여 주님께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가 나는 아닌지, 나무에 붙어 있지만 나는 삭정이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오늘부터 예수님의 고별담화의 두 번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15장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15장은 흔히 말하는 ‘관계의 장’으로 아버지와 예수님,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과 제자들과 세상과의 관계를 계시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참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서, 예수님의 진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붙어있다, 머물다, 열매 맺다”라는 동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특히 “머물다”라는 단어가 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정주”를 서원하고 살아가는 우리 수도승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머물다”의 의미는 우선 “붙어있음”을 뜻합니다. 곧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그 나무로부터 수액을 받아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음이듯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죽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머물다”라는 말은 생사를 담보로 맺어지는 유대의 끈을 말합니다. 곧 뗄래야 뗄 수 없는 생명으로 유착된 “상호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다 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잘려져 불에 태워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머물다”는 말의 의미는 그분 말씀의 권능이 우리 안에서 열매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가지가 나무에 속해 있을 뿐 결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는 없듯, 그분께 승복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이처럼, “머물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자신을 내어주는 ‘상호친교’요 ‘상호교제’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삼위 하느님의 내주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그분의 ‘참 생명’을 공유하고, 그분과 결합하여 한 영이 됩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 바오로 말합니다.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 분과 한 영이 됩니다.”(1코린 6,17)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우리 안에 당신이 머무르신다는 이 놀라운 사랑의 신비 앞에, 우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헤아릴 수 없는 자비와 신비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그분이 머무시는 현존의 자리요, 그분이 사랑의 열매를 이루시는 활동의 공간이요, 장소인 것입니다. 실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우리 안에 정주하십니다. 이 얼마나 큰 감사와 감격인가요.
그러니 지금 여기 공동체 안에 머물러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입니다. 이미 차고 넘치는 자비요 은총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단지 공동체에 정주하는 회원으로 지탱하는 것을 넘어, 사랑의 실현인 열매를 맺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5장 4절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주님! 당신께서는 무너뜨리지만 열매를 맺어주셨고 부서뜨리지만 새싹을 틔워주셨습니다.
이토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서야, 제 자신을 건네주고서야, 당신께 머무르는 법을 배워갑니다.
꽃이 지듯, 제가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게 하소서.
열매가 떨어지듯, 제가 사라지는 것을 서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오늘도 떨어져야 머물게 되는 이 신비로운 사랑 앞에 떨어지지 못함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굽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머무는 것만큼 큰 활동은 없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
찬미 예수님! 부활 제5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참포도나무로, 우리를 가지로 비유하시며 단 하나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가서 무엇을 하라"가 아니라, "내 안에 머물러라"입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의문이 듭니다.
세상은 1분 1초가 다르게 변하고,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데, 주님은 왜 자꾸만 가만히 '머무르라'고만 하실까요?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지, 나무에 붙어 가만히 머무는 것은 너무 수동적이고 게으른 태도가 아닐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착각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머무름'은 가만히 쉬는 수동적 상태가 아닙니다. 머무는 것만큼 힘든 활동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격렬하고 역동적이며, 생존을 위해 내 생각을 완전히 부숴야 하는 가장 치열한 활동입니다.
이 '머무름의 신비'를 완벽하게 증명해주는 우주 물리학의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지궤도(Geostationary Orbit)'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인공위성 중에서도 통신이나 기상을 담당하는 위성들은 지구에서 볼 때 항상 똑같은 자리에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들은 하늘 한가운데 둥둥 떠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주 물리학의 진실은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이 위성이 지구의 한 지점 위에 완벽하게 머무르기 위해서는, 지상 3만 5천 킬로미터 상공에서 자전하는 지구의 속도와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날아가야 합니다. 그 속도가 무려 시속 11,000킬로미터, 즉 1초에 3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엄청난 초음속입니다. 만약 이 위성이 엔진을 끄고 진짜로 '가만히' 쉬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중력에 이끌려 지구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거나, 우주 미아가 되어 영원히 사라져버립니다.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머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와의 완벽한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1초에 3킬로미터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우주 공간을 질주하는 '가장 치열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무름은 멈춤이 아닙니다. 대상과 완벽하게 속도를 맞추기 위한 초고속의 동기화 작업입니다. (출처: 아서 C. 클라크, 『정지궤도 통신 위성의 원리』)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다."
이 말은 "나는 여러 포도나무 중 하나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 참 열매를 내가 맺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완전히 머무르신 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의 뜻이고, 아버지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며,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이 계약을 잃어버려 들포도를 맺었다면,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야 참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겉보기에는 그저 나른하게 매달려 바람을 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지의 내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거대한 공장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지는 나무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거센 바람의 저항을 견뎌내고, 중력을 거슬러 나무 기둥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필사적으로 빨아들이며,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변환시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내 안의 이기심과 싸우고, 밀려오는 세상의 유혹을 필사적으로 쳐내는 맹렬한 영적 투쟁입니다.
이러한 '머무름이 곧 가장 위대한 활동이다'라는 진리를 증명하는 또 다른 생물학적 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번데기(Chrysalis)의 법칙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틀고 번데기가 되면, 겉으로는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머무름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이 번데기 내부를 조사해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번데기 안에서 애벌레는 소화 효소를 분비해 자신의 몸 전체를 완전히 녹여버립니다. 형체조차 없는 영양 수프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수프 안에서 '상상 원반(Imaginal disc)'이라는 새로운 세포들이 미친 듯이 분열하며 나비의 날개와 다리를 조립해 냅니다.
가장 조용히 머무는 그 시간 동안, 내부에서는 옛 자아를 완전히 해체하고 하느님의 본성(나비)으로 재창조되는 가장 맹렬한 활동이 폭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무름은 옛 자아를 죽이는 피눈물 나는 작업입니다. (출처: 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성경은 이 '머무름의 지난한 노력'을 구약의 탈출기 14장 홍해의 기적에서 명확히 보여줍니다.
뒤에서는 이집트의 전차 부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죽일 듯이 달려오고, 앞에는 시퍼런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생각과 본능을 꺾고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온전히 머무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무기를 들고 싸우거나,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싶은 생존 본능이 솟구쳤을 것입니다. "당장 무엇이라도 해보시오!"라며 원망하는 그들에게 하느님은 상식을 파괴하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꼼짝하지 말고 서서(Stand firm), 주님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탈출 14,13)
인간의 눈에는 발버둥 치는 것이 생존 같았지만, 하느님은 "내 은총의 궤도 안에 가만히 머물러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갗을 찢는 듯한 두려움을 삼키고, 자신의 얄팍한 생각을 꺾은 채 모세의 말씀 안에 '머물렀을 때',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구원은 나의 행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수액이 내 영혼을 관통하도록 나를 치열하게 묶어두는 '머무름'에서 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종종 본당에서 수많은 직책을 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땀을 흘려야만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내 영혼이 성체대전에 고요히 머무는 시간 없이 겉으로만 바쁘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간 가지가 바닥에서 혼자 뒹굴며 먼지를 일으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는 봉사라면 차라리 봉사를 하지 않고 성체조배하는 것이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변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종교』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밖으로 나다니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 안으로 돌아가십시오. 내면의 중심에 진리이신 하느님이 머물고 계십니다. 당신이 그분 안에 머물기만 한다면, 멈춰 있는 당신의 발걸음이 이미 하늘 끝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입니다. 사실 처음에 이 작품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비판이 많았다고 합니다. 피에타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성모님의 모습만 도드라지고 그 품에 안긴 예수님은 옆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모님이 주인공 아니냐며 항의했던 것입니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조각은 하느님께 바친 것이니, 감히 인간의 시선으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성모님이 주인공이었을까요? 신기한 것은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품의 중심에 예수님의 섬세하고 신비로운 얼굴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중심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피에타만 그럴까요? 세상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시선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느님 안에 머무를 수 없으며, 하느님의 뜻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참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명백하게 정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부르신 것은 당신만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참된 생명을 주는 유일한 구원한 통로임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아버지는 이 포도밭을 정성껏 돌보시는 농부이시며,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고 오직 이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소속감이나 회원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액이 나무에서 가지로 끊임없이 흘러야 살 수 있듯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 성령, 은총 등을 끊임없이 흘러나와야 가지인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결합을 이루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무능함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알의 포도도 맺을 수 없듯이, 우리의 모든 결과물은 주님과 연결되어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존재 목적을 잃고 결국 메말라 불에 던져질 뿐이라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힘으로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인간의 시선에만 머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단단히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시선입니다. 사랑으로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열매를 맺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 죽음을 망각하며 사는 삶과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 전자는 동물에 가깝고, 후자는 신에 가깝다(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머무름은 가장 좋은 오월의 사랑입니다. 머문다는 것은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생명도, 열매도 없습니다. 삶의 깊이는 성과가 아니라 관계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뿌리가 건강하면 열매도 건강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먼저 열매가 아니라 머묾을 말씀하십니다. 머문다는 것은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듯 열매의 시작은 머무름입니다. 머무름은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 안에 거하는 상호적 만남의 완성입니다. 열매는 진정한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존재의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치고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열매가 없어서라기보다, 머무는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분주할수록 잠시 멈추어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우리의 오늘이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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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