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까워지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의외로 작은 다정함 하나에 마음이 활짝 열리곤 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부르시는 장면을 읽으며, 사랑은 그 사람 곁에 오래 함께 있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거리를 두기보다,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어요.
오늘도 곁에 머물러 주는 마음을 알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5장 22-31절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무렵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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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2-17절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5월 8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11:10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일본에 파견되었던 한국인 신부님이 일본인 신학생을 한국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 신학생은 사제관에 머물며 식사하고, 신자들과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보좌 신부가 주임 신부 방에 들어가지 않으며, 약속하지 않고 찾아 가면 만나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그는 한국의 ‘정 문화’를 불편해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일본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눈물을 글썽이며 한국 교구로 오고 싶다고 진심을 담아 말하였다고 합니다.
친한 사람과 진정한 친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물고기를 달라고 하였을 때 친한 사람은 물고기를 주고, 진정한 친구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애인이 생겼다고 하면 친한 사람은 외모나 배경을 물어보고, 진정한 친구는 행복한지를 물어봅니다.
친한 사이라도 미리 연락을 하고 와야 마음이 편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불쑥 찾아와도 불편하기보다는 반가움이 앞섭니다. 진정한 친구란 서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관계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는 나의 친구가 된다. ……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4-15).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와 살을 맞대고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5,13).
예수님께서는 우리라는 친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15,17).
그저 친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고, 정을 나누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먼저 이웃에게 친구가 되어 줍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낮추며 높이는 사랑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면 종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로 신분 상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종이라는 말씀이고, 친구가 된다 해도 종이 아닌 것은 아니며, 그것을 모르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된 데는 주님의 낮추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기 위해 당신을 세상에 낮추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안에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이 있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당신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되는 신분 파괴가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는 신분 파괴가 있고, 우리의 신분 상승이 있다면 주님의 신분 하강이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께서 낮추심으로 우리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낮추시며 높이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쭐하지 말아야 하고, 주님께서 높여주시도록 우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도 사도들처럼 형제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그런데 이것은 주님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우리 서로도 이렇게 겸손하게 사랑하면 주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이룰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주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낮추면 그도 낮추고, 내가 그를 높이면 그도 나를 높이고, 내가 그를 높이기 위해 나를 낮추면 그도 나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춥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먼저 당신을 낮추심으로써 우리를 높이신 것처럼 우리도 내가 먼저 나를 낮춤으로써 이웃을 높이는 사랑을 할 때 사랑에 있어서 주님과 동격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신화(神化)되고 동격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지 나라는 존재가 신이 되고 동격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을 모두 깨닫고 실천하기로 결심하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친구 되는 조건 두 가지
오늘 <복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간에, 그리고 아들과 제자들 간의 사랑이, 이제 제자들 상호 간에 지켜야 할 계명으로 제시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
예수님께서는 단지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함’임을 시사해줍니다. 곧 타인은 나의 적이거나 경쟁자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한 동반자로 짝 지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는 말씀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당신께서는 얼마 후, 그 사랑을 직접 십자가에서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께서 손수 보여주실 바로 그 사랑, “가장 큰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5,13)
왜 친구를 위한 사랑이 원수나 죄인을 위한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대체 ‘친구’가 누구이기에 그럴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친구 되는 조건’을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예수님 편>에서의 친구 되는 조건이요, 또 하나는 <우리 편>에서의 친구 되는 조건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친구 되는 조건은 주인이 하는 일, 곧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이는 ‘한 분이신 아버지를 아는 것’이 친구가 되는 조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분이신 아버지를 알게 된 까닭에 예수님과도 그리고 우리 서로 간에도 친구입니다.
한편, <우리 편>에서의 친구 되는 조건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실제로 타인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내놓을 때라야 친구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벗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벗으로 선택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들어주시게 하려는 것이다.”(15,16)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벗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우리를 ‘사랑하신 까닭’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까닭’에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알려주시고, 벗으로 선택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권능을 입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바로 그 “가장 큰 사랑”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바로 그런 사랑, 곧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주기 위한’ 사랑을 하라는 호소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사랑의 호소를 듣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당신의 벗, 당신 것으로 뽑으셨습니다.
당신의 자유,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애와 호의를 입히셨습니다.
당신 진리를 가르치시고, 당신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소유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양식을 먹이셨습니다.
저는 끝없이 빗나가지만, 당신은 끝없이 충실하셨습니다.
하오니, 주님!
사랑의 소명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축복으로 세상을 축복하게 하소서.
저의 전 존재, 전 생애가 당신의 것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사랑의 능력, 어떻게 얻는가?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2-13)
찬미 예수님! 부활 제5주간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가장 위대하고도 무거운 계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감정이 식으면 사랑이 끝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내 안에서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공급받아야만 발휘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내 한계를 뛰어넘어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이 엄청난 능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보여주는 위대한 성인의 실화 하나를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평생을 바친 성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샤를 신부님이 처음부터 천사 같은 인류애를 타고나서 이슬람교도인 원주민들을 덥석 안아주었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1901년, 사막 깊은 곳 베니 아베스(Beni Abbes)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불타는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의 원주민들을 가르치고 개종시켜 위대한 사도가 되겠다는 인간적인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이질적인 문화와 이슬람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 그의 설교는 튕겨 나갔고, 극심한 가난과 더위 속에서 그의 열정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 사막의 이방인들을 사랑할 수도, 구원할 수도 없다는 철저한 무력감에 뼈저리게 부딪힌 것입니다.
그때 샤를 신부님이 선택한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는 흙으로 작은 경당을 짓고, 매일 성체를 모셔둔 뒤 그 감실 앞에 엎드렸습니다. 가르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현존이 뿜어져 나오는 성체 앞에 하루에 열 시간씩 가만히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감실 앞에서의 오랜 머무름이 1년, 5년, 10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시간 성체 안에 머무는 동안, 신부님의 오만한 선교 계획과 인간적인 한계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수액처럼 흘러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샤를 신부님은 그들을 뜯어고치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의 언어인 투아레그어를 연구하여 사전을 만들고, 전염병에 걸린 원주민들의 곁을 지키며 자신의 모든 양식을 내어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무슬림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그들의 가장 비천한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스스로를 '보편적 형제(Universal Brother)'라 불렀고, 사막의 사람들은 그를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 마라부(수도자)'라고 불렀습니다.
샤를 신부님은 일기에서 자신의 그 끔찍한 사랑의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매일 밤 성체 앞에서의 침묵이 없었다면, 이 성체성사 안에 머무름이 없었다면, 저는 단 하루도 이 메마른 사막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을 것입니다. 나를 붙들고 이들을 사랑하게 만든 것은 나의 얄팍한 열정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무신 성체이신 주님이십니다." (출처: 르네 바쟁, 『사막의 은수자 샤를 드 푸코』)
그렇습니다. 사랑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사랑을 지니신 분께 매일 철저히 '머무를 줄 알아서', 내 옛 자아가 죽고 누군가를 더 사랑할 줄 아는 존재로 변화되는 오랜 은총의 산물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당신 곁에 머무르게 하실까요? 바로 '표징(은총)'을 통해서입니다. 하느님은 기적이나 응답, 위로라는 달콤한 은총을 미끼로 던지십니다. 그 은총을 맛보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아 당신 곁에 찰싹 달라붙어 머물게 하려는 것이 그분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가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줄기에 붙어있기만을, 머물러 주기만을 바랍니다. 그것이 은총이 주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표징과 은총만 쏙 빼먹고는 가차 없이 주님을 떠나버립니다.
제가 예전에 오산 성당에서 사목할 때의 일입니다. 성당 바로 옆에는 노틀담 수녀원 소속의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아주 훌륭한 노틀담 유치원이 있었습니다. 시설도 좋고 교육열도 높아 그 지역 엄마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입원 철만 되면 평소에는 텅 비어있던 평일 미사 대성전이 젊은 엄마들로 가득 찼습니다. 유치원에 아이들 이름을 미사 예물로 올리고, 미사가 끝나면 저에게 찾아와 눈도장을 찍으며 유치원 원장 수녀님께 낼 '본당 신부 추천서'를 써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제가 추천서를 써주면 웬만하면 입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치원 합격자 발표가 끝나고 그들이 원하던 은총(입학)을 받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많던 젊은 엄마들이 썰물처럼 싹 사라집니다. 주일 미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이 복음의 논리를 기가 막히게 잘 보여 주는 성경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루카복음 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나병 환자 이야기입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가는 동안 모두 깨끗해집니다. 모두가 은총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명이 돌아옵니까? 단 한 명입니다.
그것도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 17,17)
이 질문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시는 질문입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데, 머무르러 돌아온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아홉 사람은 육신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은총을 주님과의 '관계'로 바꾸지 못했습니다. 표징을 보고도 낼름 떠나버렸습니다. 단 한 사람만 돌아왔습니다. 그는 은총을 받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은총을 주신 분께 영원히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사랑의 능력'이 시작됩니다. 감사는 머무름의 문입니다. 받은 은총을 기억하고 돌아와 그분 곁에 머무르는 사람만이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은총을 권리인 양 당연하게 여기고 떠나는 사람은 사랑의 능력을 영영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힘으로 사랑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얼마나 헛수고인지, 그리고 '주님 곁에 머무름'이 어떻게 기적적인 사랑의 능력을 창조해 내는지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현대의 실화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73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과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죽어가는 빈민들이 넘쳐났고, 고아원과 병원에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수녀들은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습니다.
수녀들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고, 육체적 피로와 우울증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도, 내면에 짜증과 한계가 차올라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세상을 경악게 할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수녀회의 모든 수녀는, 매일 아침 성체 앞에서 1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거룩한 머무름(Holy Hour)'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주변의 신부님들과 봉사자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녀님, 지금 밖에서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할 1분 1초가 부족한데, 하루에 1시간을 가만히 앉아 버리다니요!"
하지만 마더 테레사의 결단은 단호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며 주님의 사랑을 수혈받지 못하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고갈되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천이신 분 곁에 무릎을 꿇고 멈춰 서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아침 성체 앞에 1시간을 조용히 '머무르기' 시작하자, 며칠 뒤 수녀들의 얼굴에 다시 빛이 돌아왔습니다. 1시간의 노동 시간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혼에 성령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공급되자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효율성과 사랑의 깊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놀랍게도 그해부터 사랑의 선교회에 입회하는 성소자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주님께 철저히 머무를 때만 타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어진다는 것을 수녀회의 역사로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랑을 창조해낼 수 없는 구멍 난 항아리들입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사랑을 담아보려 하지만, 번번이 새어 나가고 분노와 상처만 남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능력을 지니는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은총의 바다 속에 나 자신을 푹 담그고 끝까지 그 안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교부 성 베르나르도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사랑의 불꽃을 피우려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마른 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용광로 안에 던져져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불이 당신을 태워 당신 자체가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될 것입니다." (출처: 성 베르나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어떤 사람이 우울한 마음으로 매일 힘들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항상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았습니다. 삶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아는 신부님을 찾아가 자신의 어려움을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아요.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요.”
이에 신부님께서는 차 한 잔 마시자면서 주방을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빈 찻잔을 꺼내오며 “다행히 빈 잔이 있어서 차를 마실 수 있네요. 그런데 만약 빈 잔이 하나도 없다면 어떠했을까요?”라고 말씀하셨고, 이분은 “차를 마실 수 없겠죠.”라고 답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려면 먼저 비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마음이 텅 빈 것 같다고 하셨죠? 마음이 텅 빈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힘든 겁니다.”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가 오히려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쁜 상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문제는 나의 행동, 실천에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로 바쁘다면서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지 않음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도 첫 부분에도, 또 마지막 절인 17절에도 나옵니다. 이는 말씀의 핵심이 ‘사랑’에 있기 때문에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기준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레위 19,18)입니다. 인간의 자기 사랑이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 사랑은 조건이 없고, 끝이 없으며, 마침내 자기 목숨마저 내어주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종에서 친구의 관계로 바꾸십니다. 친구의 관계이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들은 구원의 신비와 진리를 제자들에게 모두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써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깨닫기에, 우리 역시 이웃을 향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아닌 예수님처럼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진실한 친구로서 영원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원본으로 태어나지만 대부분은 복사본으로 죽습니다. 태양 앞에 서면 얼굴이 그을리지만, 성체 앞에 서면 성인이 됩니다(성 카를로 아쿠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사랑하는 기쁨이 하느님의 기쁨임을 체험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기초입니다. 서로 사랑하게될 때 깨닫게 되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목숨을 향하고 목숨은 사랑을 드러냅니다.
사랑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높아지는 인격의 깊이입니다. 사랑의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열매는 영원합니다.
사랑을 청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 사랑으로 우리는 끝까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곳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참된 사랑은 내놓는 실천이며 친구가 되는 것이며 열매를 맺는 것이며 청하는 것이며 주는 것이며 명령처럼 간절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오늘의 목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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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