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 생각과 기준으로 먼저 판단하며 듣고 있을 때가 많아요.
마음이 열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 적어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쉽게 판단하기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마저 품어보려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진짜 경청의 시작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보다 먼저,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신 하느님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6장 11-15절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5장 26─16,4ㄱ절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5월 11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5:5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내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도 예언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요한 16,2).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느님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으면서 예수님께 하였듯이 제자들에게도 할 것입니다.
미국 유학 시절, 저는 고생하며 얻은 공부 요령을 막 유학 온 후배 신학생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후배들은 저를 멀리하였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후배들의 생각이나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강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교회가 박해를 받은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도 하느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배우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종교와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넉넉하게 품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16,4).
우리 또한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다른 이를 박해하지 않도록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날로 먹으려 드는 것은 아닌지
날로 먹으려고 든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와서 제가 하느님을 날로 먹으려 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로 먹는다는 말은 회를 먹는다는 뜻도 있지만 삶지도 않고 요리하지도 않고 날로 먹는다는 뜻일 것이고, 먹기까지 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고 쉽게 먹으려고 한다는 뜻일 겁니다.
저는 10, 20대 때 인생 고민을 좀 한 적이 있고 그래서 하느님 체험도 좀 하였지만 그때 이후로는 몸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고생을 별로 하지 않고, 하느님을 모시고 살았고 하느님을 팔아먹고 살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생고생하지 않고 너무 쉽게 하느님을 모셔 들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리 강하게 제 안에 자리 잡으시지도 못하고 약동도 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즘 성령을 받는 것과 연관시키면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도 너무 쉽게 받아들이기에 쉽게 번 돈 헤프게 쓰듯 성령을 너무 헤프게 쓰는 것 아닌가 생각되는 것입니다.
어제 저는 병자 성사를 한 젊은이에게 주고 왔습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데 0,2%의 사람에게 생기는 아주 드문 병이고, 치유의 확률도 0,2%밖에 되지 않는 병인데다가 그 고통이 너무 심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나 이런 고통 가운데 버티다 이제 무너졌다고 어제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하느님께서 빨리 데려가달라고 기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이 아니고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살고 싶다고 그래서 하느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이제 하느님께서 그의 안방을 차지하시는구나, 그가 이제 비로소 하느님께 자기 안방을 내어드리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까지 하여 하느님을 자기 안방으로 모셔 들이는데 나는 얼마나 날로 성령을 받아들이려고 하는지 반성이 되었던 것이고, 그리고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박해받아 죽을 지경이 되더라도 주님께 떨어져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증언까지 하게 될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비추어도 나는 얼마나 날로 성령을 받아들이려고 하는지 반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회는 날로 먹어도 성령은 그렇게 모셔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을 하긴 하는데 그 반성이 그리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여전히 반성이 되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증언은 삶으로 하는 고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박해가 오면, 제자들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증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증언의 확실성인데, 그 확실성의 근거는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게 될 이들이 둘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직접 본 이들 입니다.
<첫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직접 목격한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제자들입니다.
“너희(제자들)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7)
그렇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직접 목격한 그들의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고 말씀에 대한 이유’를 ‘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요한 16,1)이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요한 16,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예고’는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박해를 예고만 할뿐, 박해를 피할 방도나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4)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기껏 “기억하라”고만 할 뿐입니다. 이는 참으로 무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예고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는 길에서,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당신이 구세주이심을 증거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립 1,29)
그러니 고통과 박해는 우리 신앙생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할 공간이고 배경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서 보낼 ‘성령’이 바로 그 고통과 박해를 통해서, 바로 그 속에서 우리의 증언을 동행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6장 4절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바로 그때,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 당신을 증거 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성령을 받으려면 변호인이 필요한 존재가 돼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중략)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요한 15,26-16,2)
찬미 예수님! 부활 제6주간 월요일입니다. 화~목은 사제연수 관계로 복음 묵상을 쉬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선언하십니다. 하나는 '진리의 영이신 보호자'를 보내주시겠다는 황홀한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회당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섬뜩한 박해의 예고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받으면 만사형통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송을 받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왜 진리의 영이 오시는 사건과 세상의 박해가 세트 메뉴처럼 묶여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주장하는 자'가 되어야만 성령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우리는 박해받을 일도 없습니다. 물론 성령도 없을 것입니다.
이 기막힌 영적 역학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보여준 실제 방송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2012년 SBS 방송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2012)에 방영되었던 '50년째 산속 은둔 할아버지'의 사연입니다.
할아버지는 50년 전 세상에서 받은 끔찍한 상처 때문에 깊은 산속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극도로 불신한 그는 산짐승처럼 개 사료를 주워 먹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제작진이 다가가 그를 문명 세계로 구출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낡은 자아에 갇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작진을 자신을 해치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돌을 던지며 극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제작진의 진심 어린 말로는 도저히 닫힌 문을 열 수 없는 '박해'의 상황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때 제작진은 기가 막힌 묘안을 냅니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옛 고향 친구들을 수소문해 산속으로 모셔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가장 좋아했다던 따뜻한 군고구마를 구워서 친구들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잔뜩 경계하던 할아버지는 친구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내미는 따뜻하고 달콤한 군고구마의 온기를 느끼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군고구마의 온기가 할아버지의 얼어붙은 영혼의 빗장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50년 만에 동굴 밖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논리가 파생됩니다. 깊은 산속 동굴(가짜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려는 제작진이 '우리(그리스도인)'라면, 그들의 굳은 마음을 열게 만든 고향 친구와 군고구마가 바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령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라클리토스(Paraclete)'는 곁에 불림을 받은 자, 즉 '변호인'을 뜻합니다. 제작진은 할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꺾고 진실을 증명해 줄 '변호인'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군고구마를 동원한 것입니다.
만약 제작진이 할아버지가 돌을 던질 때 "아유,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데 그냥 짐승처럼 살게 내버려 둡시다"라며 세상(할아버지의 고집)과 적당히 타협하고 철수해버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에게는 굳이 고향 친구를 수소문하고 군고구마를 구워가는 그 수고로운 '변호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파라클리토스이신 성령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사기꾼이 아니라 우주의 구세주이심을 세상의 법정에서 입증해내시는 하늘의 변호인이십니다. 우리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돈과 쾌락이라는 동굴에서 나오십시오!"라고 주장할 때, 세상은 우리의 주장을 거부하며 돌을 던집니다.
바로 그 치열한 영적 법정에서, 내 힘과 내 언변만으로는 저 세상을 꺾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파라클리토스(변호인)이신 성령을 애타게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오시어, 군고구마처럼 거부할 수 없는 은총의 온기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시고 우리의 주장이 참 진리임을 변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직장에서, 이웃 사이에서,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너희가 믿는 돈도 좋고, 적당한 쾌락도 좋지"라며 세상과 둥글둥글하게 타협하며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박해도 없습니다. 박해가 없으니 나를 방어하고 내 주장을 입증해 줄 '변호인(성령)'도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고 모든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변호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절대적인 원리를 법학적, 사회적 법칙으로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내부 고발자 보호 프로그램(Whistleblower Protection Program)'입니다.
국가나 거대 기업의 끔찍한 비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그 비리를 덮어주고 조직과 타협하여 뇌물을 챙기기로 했다면, 그는 떵떵거리며 편안하게 살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양심을 걸고 그 거대한 어둠의 세력을 향해 진실을 폭로(증언)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거대 조직은 그를 죽이기 위해 맹렬한 박해를 시작합니다.
이때 국가는 이 정직한 증언자를 살리기 위해 최정예 요원들을 파견하여 그를 보호하고, 법정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고급 변호인단을 무상으로 붙여줍니다. 증언을 했기에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위협을 받았기에 국가의 막강한 보호 시스템(변호인)이 가동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폭로하는 투신이 없으면, 변호인도 출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삶 속에서 파라클리토스이신 성령의 권능을 강렬하게 체험하고 계십니까? 만약 성령의 도우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삶이 무미건조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의 썩은 가치관과 단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너무나 평화롭게 타협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당에 나와 "성령이여 오소서, 저를 변호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세상 문밖을 나가면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고 복음을 단 한 번도 외치지 않아 핍박받을 일이 전혀 없는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면 성령의 위로도 바랄 수 없게 됩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그대가 세상과 친하게 지낸다면 그대는 이미 진리의 변호인을 해고한 것이다. 파라클리토스 성령은 잠자는 자의 베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피 흘리는 투사의 검과 방패가 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권투선수 바실 로마첸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뒤에서 널 욕하는 사람들 신경 쓰지 마라. 그것이 그들이 너보다 뒤에 있는 이유다.”
생각해 보면, 신학교에서 저에 대한 소문이나 뒷담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부가 되고 나서는 그런 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책임이 많아질수록 뒷담화는 더 심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학생 때 능력이나 성격이 더 좋아서일까요? 아닙니다. 비방하는 사람은 늘 내 뒤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뒷담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앞에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의 충고이고 조언이 됩니다. 결국 뒷담화를 듣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만큼 제가 그들 앞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뒤를 돌아보며 화를 내면 어떨까요? 앞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매사에 공격만 하는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격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여유로운 사람은 남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굳이 타인을 헐뜯을 이유도 없습니다. 여기에 자기 삶에 집중하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들춰보지 않습니다. 비난 대신 자신을 다듬습니다.
자기 삶에 불만이 많은 사람은 감정의 화살을 밖으로 돌리는 법입니다. 그러면 잠시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들에 대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기도해 줘야 할 대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들을 회당에서 내쫓아내며 박해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회당에서의 추방은 당시 유다교 사회에서 모든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관계망이 끊어지는 사회적 사형선고와 같았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면서 스스로 하느님을 위해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신앙이 단순히 ‘열광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참된 앎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경고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 할 때, 때로는 오해를 받고 부당한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미움으로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보호자이신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흔들림 없이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운명의 틀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 지는 우리의 몫이다(다그 함바르셀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이끄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께 귀 기울이는 맑은 마음, 맑은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미움과 수난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을 결코 미움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미움이 아닌 진리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삶 전체로 드러나는 성령의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은 진리의 힘으로 세상을 밝히는 참된 길이 됩니다. 우리 마음을 먼저 비추어 보는 깨어 있음 안에서 진실의 길은 깊어집니다. 이렇듯 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배우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진리의 영께서는 우리가 사랑 안에 머물 힘을 기쁘게 주십니다. 또한 우리 안의 참마음을 깨어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점점 더 겸손해지고, 점점 더 사랑과 평화를 선택하게 됩니다. 세상의 인정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옳다고 여기는 길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의 영께서는 우리 마음을 다시 인간다움으로 이끄십니다. 이렇듯 진리의 영께서는 사람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진리의 영과 함께 사랑과 진실 안에서 살아가는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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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