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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5.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5. 1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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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현실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을 조금씩 다듬는 시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욕심과 조급함까지도 더 깊은 사랑 안에 내려놓고 청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5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8장 23-28절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6장 23ㄴ-28절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5월 1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6:2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기도는 나를 바꾸는 시간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체중 조절 약 광고를 풍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약은 먹기만 해도 한 달에 3킬로그램이 빠집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약을 먹기 전 아침에 3킬로미터 산책, 저녁에도 약을 먹고 3킬로미터 산책, 그 이후에는 금식과 금주.”

결국 약이 아니라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하여 살이 빠지는 것이지요. 건강하게 살을 빼려면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함을 풍자적으로 말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요한 16,24). 그런데 예수님께서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16,23)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간접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에 대하여 비유로 이야기하셨지만, 앞으로는 직접적으로 그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가 온다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알게 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고, 그때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비 신자들에게 “기도의 수준은 바로 신앙의 수준”이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내가 청하는 내용이 바로 나의 신앙 수준을 나타낸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 기도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약을 먹는 것만으로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없듯이 기도만으로 모든 일이 마법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느님께서 바뀌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우리와 우리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삶이 참으로 거룩해지도록 우리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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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기도의 네 가지 요소

오늘 <복음>인 고별담화의 마지막 부분들은 이미 하신 말씀들을 다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중요하기에 다시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기도’에 대한 말씀과 ‘예수님의 기원과 목적지’에 대한 말씀은 그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먼저,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3-24)

이 말씀에서 우리는 ‘기도의 네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란 말씀은 ‘기도의 본질’로,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교’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성령과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이루는 사랑의 친교이다.”(2615항)

둘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씀은 ‘기도의 조건’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기도함이요,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함이요, 예수님의 의화에 힘입은 아버지의 자녀로서 기도함을 말해줍니다.

셋째,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기도의 특권’으로, 구하면 받을 것임을 말해줍니다.

넷째, “기쁨에 넘칠 것이다”라는 말씀은 ‘기도에 대한 약속’으로,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호의로 우리에게 기쁨이 선사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고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을 말해줍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특별히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해본 적이 없다.”(요한 16,24)라고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과 일치하여” 기도하도록 일깨워줍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기원’과 ‘목적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요한 16,28)

이 말씀에서도 역시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네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네 개의 동사’가 이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첫째, “아버지께로부터 나왔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줍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는 선재하셨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온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둘째, “세상에 왔다”는 말씀은 강생은 ‘보내심을 받아’ 오시기도 하셨지만,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오셨음을 말해줍니다.

셋째, “세상을 떠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원하여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음을 말해줍니다.

넷째,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은 구원의 역사가 마쳐졌다는 것이요, 하늘로 돌아가 아버지 오른편에 앉으시어 당신 백성을 위해 대신 기도해주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로마 8,34;히브 7,2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당신의 기원과 목적지를 밝혀주심으로써 ‘당신의 신원과 사명’을 가르쳐주십니다. 단지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혀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인격을 통하여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으심을 밝혀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염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요한 16,27)

이 모든 것이 먼저 베푸신 당신의 하염없는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 하염없는 사랑에 우리도 하염없는 감사로 기도드려야 할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하염없는 사랑이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도록 자신을 하염없이 내어놓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6장 24절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주님! 이제야 겨우 알아듣습니다.

제 힘으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뜨거운 기도가 위태로운 나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그 애틋한 기도가 있어

휘청거리면서도 살아있다는 것을!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의 의미

"그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 16,26-27)

찬미 예수님! 부활 제6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엄청난 선언을 하십니다. 보통 우리는 기도를 마칠 때마다 습관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혹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중개자'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대신 청해주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

이 말씀은 실로 영적인 원자폭탄과도 같은 선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대사제나 예언자 뒤에 숨어서 자비를 구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의 집무실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 "아버지, 저 왔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직통 회선'이 개통되었다는 위대한 독립선언문인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쓰레기 같은 죄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던 우리 인간이 그토록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직접 뛰어드는 일이 가능해진 것일까요?

이 기막힌 영적 신비를 완벽하게 증명해주는 현대 의학의 위대한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인류 최초로 성공한 '장기 이식 수술'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간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었습니다. 훌륭한 외과 의사가 건강한 신장을 환자에게 이식해 주어도, 환자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끔찍한 고통 속에 사망했습니다.

이유는 우리 몸의 '면역 거부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몸의 백혈구는 외부에서 자신과 다른 낯선 이물질, 즉 '다른 DNA'를 가진 장기가 들어오면 그것을 생명을 돕는 친구로 보지 않고 내 몸을 파괴하려는 '적'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전 면역 세포를 총동원하여 미친 듯이 그 낯선 장기를 공격해 박살 내 버립니다. 자신과 설계도가 다른 존재는 결코 품어 안을 수 없는 것, 이것이 생물학의 냉혹한 법칙입니다.

구약 시대의 인간이 하느님께 직접 다가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영적인 면역 거부 반응이었습니다. 하느님은 티끌만 한 죄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불타는 거룩함 자체이시며, 인간은 교만과 탐욕이라는 죄악의 DNA로 가득 찬 덩어리입니다. 낯선 이물질인 죄인이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다가간다면, 하느님의 거룩함(영적 면역 체계)은 그 이물질을 즉시 불태워 멸망시켜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1954년 12월 23일, 미국 보스턴의 브리검 병원에서 조셉 머리(Joseph Murray) 박사가 세계 최초로 신장 이식 수술에 완벽하게 성공합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죽어가던 리처드라는 청년에게, 그의 동생 로널드가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여 살려낸 것입니다. 수술 후 리처드의 몸에서는 아무런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조셉 머리 박사가 수술을 시도한 이 두 형제가 바로 '일란성 쌍둥이'였기 때문입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100퍼센트 완벽하게 동일한 유전자(DNA)를 공유합니다. 형 리처드의 백혈구들이 동생 로널드의 신장을 검사해 보니, 자기 몸의 DNA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혈구들은 그 신장을 공격하는 대신 "아, 이것은 낯선 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구나!"라고 인식하며 기꺼이 자기 몸의 일부로 품어 안았습니다. (출처: 조셉 머리, 『신장 이식의 역사』).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여라"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일란성 쌍둥이의 자격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름'은 곧 그 존재를 이루는 '설계도(DNA)'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이름을 남기고 가시는 이유는, 당신을 구성하는 완벽한 하느님의 유전자, 즉 '사랑과 희생이라는 하늘의 DNA'를 우리 영혼에 통째로 이식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알아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안에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의 DNA를 발견하시기에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우리를 친히 안아주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DNA인 '이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회장님의 이름을 받았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 이름의 권한은, 오직 그 이름을 내어주신 분의 뜻(설계도)대로 움직일 때만 발휘됩니다.

이 거룩한 DNA를 온전히 받아들여, 그 이름의 권한을 완벽하게 행사하신 유일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수태고지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성모님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인간적인 자아의 방어 기제를 완전히 꺼버리셨습니다. 마리아가 자아를 완전히 비웠을 때, 그리스도의 DNA가 그녀의 영혼과 태중에 100퍼센트 완벽하게 이식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DNA와 완벽하게 일치된 성모님이 위임장을 어떻게 행사하셨는지, 우리는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똑똑히 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거절하듯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당당히 명령하십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성모님의 영혼이 예수님의 DNA(하느님의 사랑)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뜻이 곧 아드님의 뜻이었기에, 그녀가 청하는 것은 하늘의 거부 반응 없이 즉각적으로 기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모님은 자아가 조금도 없으셨기에,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설 때 거부 반응을 막아줄 '면역 억제제'가 전혀 필요 없으신 완벽한 일치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안타깝게도 성모님처럼 온전히 그리스도의 DNA만을 품고 있지 못합니다.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이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내 이기심, 내 고집, 원수를 미워하는 분노라는 '이질적인 낡은 DNA'가 살아서 시퍼렇게 날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불완전한 상태로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몸에서 끔찍한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나듯, 하느님의 그 맹렬한 거룩함이 이질적인 우리 영혼의 찌꺼기를 공격하여 우리는 그 자리에서 타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신 이유는, 바로 이 불완전한 우리를 위해 당신 친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어 우리의 '면역 억제제'가 되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습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신용카드(이름)를 받아 들고는 자기 마음대로 엉뚱한 물건을 잔뜩 사고 말썽을 부립니다. 원칙대로라면 엄격한 아버지는 그 자녀를 호적에서 파내거나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다가갑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대신해 온갖 고생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께 매달립니다.

"여보, 저 아이가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서 당신의 이름으로 엉뚱한 짓을 하긴 했지만, 제발 제가 당신을 위해 치른 희생을 보아서라도 저 아이의 다름과 부족함을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가 저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가 바로 이 어머니의 눈물 어린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대전에 나아가 당신의 피를 내보이시며 간구하십니다.

"아버지, 저 아이들이 아직 제 DNA를 완벽히 갖추지 못해 미움과 탐욕이라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쏟은 제 피를 면역 억제제로 삼아주십시오. 저들이 온전한 그리스도로 자라날 때까지 저들의 다름을 부디 참아주시고, 치명적인 거부 반응을 유예해 주십시오."

우리가 오늘날 수많은 죄를 짓고도 성당에 나와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영적인 면역 억제제가 되어 하느님 아버지의 진노와 심판을 덮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다다라야 할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언젠가 이 영적인 '면역 억제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이기적인 자아와 낡은 유전자가 완전히 죽고, 오직 성모님처럼 그리스도와 완벽히 하나의 뜻, 하나의 본성으로 일치되는 그날입니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뜻이 곧 하느님의 뜻이 되었기에,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이 그러하셨듯 우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늘의 은행에서 즉각적으로 결제될 것입니다. 그 완벽한 일치의 순간에 우리 영혼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폭발적인 환희가 밀려올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에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요한 16,24).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① 내가 적극적으로 해결한다.

② 도움을 청한다.

자기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해결할 것이고,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고 하면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 중에서 스트레스가 더 높은 경우는 언제일까요?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경우에서 스트레스의 계속된 증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만 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해서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려운 일이 그 의지를 통해 해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자기 노력으로 어떻게든 하려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의지만 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관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말 힘들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해야 스트레스가 내려가고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3.2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 끝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을 붙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존재의 인격, 권위, 뜻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하면서, 그분의 뜻과 목적에 합당하게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달라는 청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목적인 사랑의 삶을 살면서 그분과 함께하겠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요한 16,26.27)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좌절, 포기가 아닌, 다시 한번 힘내서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포기와 좌절로 그냥 알아서 해달라는 무책임한 기도를 바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삶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산길에서 만난 것 중 가장 따뜻한 것은 손이며, 가장 든든한 것은 앞사람의 등이다(김지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우리 존재의 근원을 잊지 않는 깊은 영적 자각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시작과 끝, 우리 존재의 방향을 밝혀주십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도 돌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야말로 떠남과 돌아감의 여정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사랑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순례입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는 하느님을 향한 기억과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삶은 언제나 우리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중심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끊임없이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왜 살아가는지는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삶의 참된 완성은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을 때 교만해지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잃을 때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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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24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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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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