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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5.2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5. 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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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세상에서 무엇이 참된지 놓치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어요.

 

세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도 세상 방식으로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일처럼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잊지 않게 하시고, 오늘도 말씀 안에 머물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2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5월 2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2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20장 28-38절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하느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굳건히 세우시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그것을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무렵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5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6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7장 11ㄷ-19절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5월 2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7:1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7,15-16). 세상 속에 있는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제가 신학생일 때의 일입니다. 술에 취한 선배를 방까지 데려다주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배는 자신은 취하지 않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부제님이 꾀를 냈습니다. “후배가 술에 취하였으니 선배가 방까지 데려다주세요.” 그러자 선배는 저를 부축하려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선배는 자신이 저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였겠지만, 실제로는 제가 선배를 부축하며 방까지 갔습니다.

외짝 교우 가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쪽은 자신이 배우자의 신앙생활을 허락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배우자의 신앙이 그 가정을 지탱하는 힘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께 속하기에,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 세상을 떠받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세상을 지탱하는 사명을 지녔음을 기억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세상의 악과 싸울 때

오늘 독서와 복음은 둘 다 떠나면서 남기는 말 곧 유언입니다. 그러나 독서가 사도 바오로의 고별사 형태라면 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독서의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씀과 복음의 “악에서 지켜 주십사”라고 비는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을 가지고 나눌까 망설이다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를 택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란 어떤 것이고, 악이란 무엇이며 악에서 구해주신다는 것은 무엇인지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세상이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이 말은 세상이란 세속과 다르다는 말이겠지요. 세속이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세상이고 그래서 악이지만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고 그래서 본래는 선합니다.

그렇지만 악도 선 곁에 항상 붙어 있습니다. 밀밭에 인간이 뿌려놓은 가라지인 셈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죄악이라고 하는데 하느님의 선을 인간이 소유하려다가 지은 죄로 인한 악이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악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악은 두 가지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한 악이 하나이고 유한성에서 비롯된 악이 다른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할 때, 특히 모든 악에서 보호해달라고 기도할 때 그 뜻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주의 기도를 바친 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라고 기도합니다.

이때 죄의 악에서 보호하시고 구해주시기를 우리가 청해야 함은 맞습니다. 그러나 나의 유한성 그러니까 인간의 유한성에서 비롯된 시련이나 악은 보호해주시기는 청하되 구해달라고 청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시련이나 악은 겪지 않도록 해달라는 뜻이라면 말입니다.

주님께서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시어 악마의 혹독한 유혹을 받으심으로써 시련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맞서 싸워 이겨내셨고 단련을 받으셨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기도라는 시의 내용도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 오늘도 제가 가는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그 험한 고갯길을 올라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예수님! 오늘도 제가 가는 길에서 부딪치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길 원치 않아요.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예수님! 오늘도 제가 가는 길에서 넓고 평편한 그런 길들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좁은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믿음 주소서.”

오늘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세상에 악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시듯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고 세례 때 성령을 받으시어 악령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구해주셨고, 그런 당신처럼 제자들인 우리도 이 세상에서 빼내시는 것이 아니라 외려 세상 구원을 위해 한가운데로 파견하시는데 다만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세상의 악과 싸울 때 홀로 싸우지 말고 성령의 인도로 성령과 함께 주님께서 싸우셨듯 우리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 싸우라 하시는 겁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을 본받아 우리가 일치하고 그 일치된 힘으로 모든 악과 시련에서 승리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아버지의 이름 안에 담긴 비밀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아버지의 영광의 현현을 위한 기도에 이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곧 제자들을 세상의 악에서 지켜주시고, 그들이 하나 되고 거룩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6절),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앞으로도 알려주겠습니다.”(26절)

여기서, 유의할 점은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하느님보다 그분의 속성을 더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아버지의 실체에 관한 모든 것, 그분의 존재와 본성, 그분의 거룩함과 정의와 사랑, 그분의 능력과 보호와 신실하심을 드러냅니다.

사실, 기도는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기도에 대해 가장 처음 언급된 곳이라 할 수 있는 <창세기> 4장에서도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곧 아담의 셋째 아들 셋에게서 에노스가 태어나자, “그때부터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창세 4,26). 또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바칠 때도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1열왕 8,29)하신 분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루카 11,2)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요한 17,11.12)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이처럼, 제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신적일치에 ‘하나’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곧 제자들이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보호받고, 아버지와 당신의 하나 됨을 체험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하나 됨’은 그리스도란 ‘이름’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실재로 하나 됨을 이루었음을 <사도행전>에서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었습니다.”(사도 4,32)라고 전해줍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13)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말씀’을 주셨고, 성령으로 제자들이 아버지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분의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미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들을 지켜주시기를 청합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

그렇습니다. ‘진리이신 말씀’을 행함으로서 우리 안에 ‘거룩함’이 더욱 자라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진리이신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저희들이 당신 안에서 하나 되고, 당신의 이름으로 거룩해지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7장 17절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깨끗하기보다 진실 되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기보다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며

단지 함께 있기보다

당신께 속해 있게 하소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시고

진리 안에서 사랑하되 행동하게 하소서.

또한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제 안에서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흐르지 않으면 거룩할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17-19)

찬미 예수님! 부활 제7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셔야 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아버지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 중에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아주 독특하고 심오한 구절이 하나 등장합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태초부터 죄가 없으신 완벽하고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미 백 퍼센트 거룩하신 분이, 십자가를 코앞에 두고 새삼스럽게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 안에는, 어떻게 쓰레기 같은 죄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처럼 거룩한 상속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물리학적, 영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신비를 풀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지형을 묵상해 봅니다. 그곳에는 거룩한 흐름의 역설을 보여주는 두 개의 큰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이 넘치는 '갈릴래아 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바다인 '사해'입니다.

두 바다는 모두 요르단 강이라는 똑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갈릴래아 호수는 온갖 물고기가 뛰놀고 주변에 푸른 나무가 우거지지만, 사해는 아무런 생명도 살지 못하고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갈릴래아는 위에서 받은 물을 아낌없이 아래로 흘려보내는 '흐름'이 있지만, 사해는 들어온 물을 움켜쥐고 내보내지 않는 '고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흐르지 않는 거룩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내 안에 쌓아두어 썩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쉼 없이 이웃에게 흘려보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동적인 생명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고 하신 것은,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라는 영원한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생명의 물길이 되어, 십자가라는 거대한 수로를 통해 당신의 몸을 통째로 내어주심으로써 그 거룩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흘려보내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라는 거룩한 샘물이 세상의 메마른 땅을 적시기 위해 마련하신 유일한 물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거룩해지지 못하고 매일 제자리걸음일까요? 그것은 내 영혼이라는 수로에 세상의 이기심, 자존심, 돈에 대한 탐욕이라는 시커먼 흙덩이와 쓰레기가 잔뜩 쌓여 물길을 꽉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물길이 막힌 수로는 물을 공급받지 못해 금세 갈라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내 영혼에 쌓인 죄의 퇴적물을 걷어내고, 내 삶의 물길을 온전히 예수님의 본성(진리)과 똑같이 맞추어 연결하는 것뿐입니다.

이 위대한 생명의 소통, 거룩함의 전달 현상이 구약성경에서 아주 웅장한 알레고리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열왕기 하권 4장에 나오는 엘리사 예언자와 수넴 여인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수넴 여인의 어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울부짖다가 어머니 무릎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절망한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엘리사 예언자의 침상에 뉘어놓고 엘리사에게 달려갑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보여준 행동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기괴하면서도 놀랍습니다.

엘리사는 침상에 올라가 그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엎드립니다. 자신의 입을 아이의 입에 맞추고, 자신의 눈을 아이의 눈에 맞추고, 자신의 두 손을 아이의 두 손에 완벽하게 포개어 맞춥니다. 거룩하게 살아 숨 쉬는 예언자의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죄와 죽음의 몸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포개어진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언자의 거룩하고 뜨거운 생명의 주파수(온기)가 죽은 아이의 차가운 몸으로 전염되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죽은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더니, 마침내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번쩍 뜹니다. 엘리사의 생명과 아이의 죽음이 완벽하게 공명하여, 생명이 죽음을 집어삼킨 위대한 부활의 기적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열왕기 하권 4장).

이 엘리사의 기적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희생의 완벽한 예형입니다. 우리가 어찌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수넴 여인의 아들처럼 죄악으로 인해 이미 차갑게 죽어버린 영혼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입술과 눈과 못 박힌 두 손을,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 영혼의 형태에 완벽하게 포개어 맞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거룩하게 하시어) 쏟아내신 그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이, 끊임없이 흐르는 샘물이 되어 우리 영혼을 적셨습니다.

주님의 심장 박동과 내 심장 박동이 완벽하게 일치하며 생명이 흘러들어오는 순간, 우리 영혼 안에 있던 죄악과 상처의 찌꺼기들은 밀려 내려가고, 우리는 참된 하느님의 자녀, 거룩한 상속자로 다시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신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님은 오늘 복음을 이렇게 해설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당신에게 거룩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흠 없는 제물로 바쳐진 당신의 육신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거룩함의 파동으로, 죄악에 물든 우리 영혼의 반죽 전체를 거룩하게 부풀리려 하심입니다." (출처: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요한 복음 주해』).

결론적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는 주님의 선언은 우리에게 세 가지 위대한 영적 자존감을 깨우쳐 줍니다.

첫째, 우리는 본래 그리스도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양, 곧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악기라는 사실입니다. 모양이 다르면 공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공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애초에 하느님을 닮게 빚어졌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둘째, 우리가 다시 그 거룩한 모습으로 회복되어 온전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내어주시는 '은총(성령의 진동)'과 '진리(말씀의 악보)'에 철저히 공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내가 먼저 맑은 소리굽쇠가 되어 공명하기 시작하면, 그 진동으로 내 곁에 죽어가던 또 다른 누군가의 영혼을 깨워 하느님의 모상으로 회복시키고 거룩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약성경 에제키엘서 37장의 '마른 뼈들의 환시'는 이 세 가지 원리를 장엄하게 보여줍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서 있는 골짜기에는 바싹 말라빠진 뼈들만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생명도 없고 스스로 소리도 낼 수 없는 철저한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대언하여라" (진리의 전달). 그리고 "사방에서 숨기운(루아흐, 성령)아 불어와서 이 죽은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어라" (은총의 진동).

에제키엘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진동에 온전히 공명하여 소리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 메말랐던 뼈들이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내며 서로 맞아 들어가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마침내 숨기운이 들어가 거대한 하느님의 군대(본래의 거룩한 모상)로 일어서 함께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에제키엘 한 사람의 거룩한 공명이 온 골짜기의 죽은 뼈들을 깨워 하느님의 거룩한 군대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에제키엘서 37장).

나도 누군가를 진동시켜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 이것이 부활을 사는 우리의 가장 벅찬 자존감입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소음들을 산산조각 내고, 하느님과 영원히 동기화된 찬란한 천국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인도의 가난한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의미 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농부들이 가난하다고 여기는 시기인 추수 전과 나름 풍족함을 느끼는 추수 후로 나눠서 지능검사를 한 것입니다. 학력 차이로 인한 지능검사 결과를 보정하기 위해 비언어 테스트로만 검사했습니다(그만큼 검사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 추수 전의 농부와 추수 후의 농부 차이가 과연 있었을까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적은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추수 전의 검사가 추수 후의 검사에 비해 25%나 더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실행 제어가 10% 더 느렸고, 실수도 15% 더 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의 스트레스가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는 연구였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우리 뇌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는 생존과 관련한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된다면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부자들의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합니다.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측면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삶은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올바른 길로 갈 수도 없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과연 우리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적인 측면을 이야기하시면서,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하셨을까요? 당신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시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접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하나 됨의 궁극적인 모델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입니다. 단순한 의견 통일이나 조직적 결함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가 사랑으로 완전히 일치한 것과 같은 영적 연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 연대를 통해 진정한 기쁨을 충만히 누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증가를 통해서 누리게 되는 기쁨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도피해서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파견되어 진리와 사랑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기에, 하느님의 이름과 진리의 말씀 안에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에 세상의 미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변할 때 삶도 변한다. 내가 좋아질 때 삶도 좋아진다. 내가 변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얻는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앤드류 매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같은 피조물임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하나 됨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함께 존재하는 소중한 생명이며 하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하나 됨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누구가를 서로 품어주는 일치입니다.

하나 됨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은총의 열매입니다. 하나 됨의 길은 사랑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완성해 가는 길입니다. 서로 다른 삶과 생각 속에서도 존엄과 사랑을 잃지 않는 일치입니다.

일치의 길은 참된 사랑의 길입니다. 마음과 존재가 신뢰 안에서 서로 연결되기에 서로를 살립니다. 참된 일치는 사랑의 연결입니다. 하나 됨의 일치는 참된 생명의 조화이며 친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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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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