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된다는 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으로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는 마음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사랑은 상대를 내 뜻대로 만들지 않습니다. 다르다고 멀어질 이유도 없고요.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사랑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를 바꾸고 싶어 조급해질 때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을 때 관계는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사랑 안에 머무르는 법을 배우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2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2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 22,30; 23,6-11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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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7,20-26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5월 21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8:4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마음 안에 서로를 담는 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 됨은 한쪽이 소유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너는 내 것이야.”라고 말하는 관계가 아니라 “내 안에 너 있다.”라고 말하는 관계, 서로 존중하며 함께 있어 주는 관계입니다.
한쪽이 소유하는 관계에서는 소유하고 나면 관심이 식어 버립니다. 소유하면 존중하기보다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일치는 너와 내가 서로 안에 머무는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산헤드린’, 곧 최고 의회 앞에 섰습니다.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바오로의 한마디에 두 파벌은 다투기 시작합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우리는 나뉘어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젊은이와 노인, 지역과 인종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삼위일체처럼 사람들도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들이 저마다 고유한 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서로 다르시면서도 완전한 일치를 이루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며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가 하나 될 때, 세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내셨음을 믿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의 갈망과 의지는 있는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바친 기도의 마지막 부분이고, 제자들의 말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된 이들도 하나 되게 해달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다음 그들이 우리 안에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서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이 동의어인 듯 말씀하십니다.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을 때 진정 하나가 됩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우리가 하느님 밖에서 아무리 하나가 되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거나 설사 하나 되는 것에 근접했다고 해도 불완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제가 특히 묵상한 것은 현존의식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현존한다는 의식 말입니다. 저로 말하면 이 현존의식이 이젠 확고합니다. 어디에 있어도 저는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저는 하느님 안에서 합니다.
문제는 너도 그렇다는 의식이 있느냐 그것입니다. 나만 하느님 안에 현존하지 않고 다른 이들도 하느님 안에서 같이 현존한다는. 그러면서 한번 우리를 솔직히 성찰해야 합니다.
지금 누구하고는 같이 있고 싶은데 다른 누구하고는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지. 나는 하느님 안에 현존하고 또 현존하고 싶지만 누구와 같이 현존하는 것은 싫은 것이 아닌지. 또 사랑하는 누구와는 하느님 안에 같이 현존하고 싶지만 싫어하는 사람과는 같이 현존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볼 때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있을 수 없고, 그 사랑도 하느님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나의 싫고 좋음을 하느님처럼 초월하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랑이 있는지, 이런 사랑이 현재는 없지만 이런 사랑의 갈망은 있는지, 이런 사랑이 아직은 없지만 이런 사랑의 의지는 있는지, 반성하고 이런 사랑 의지로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진짜 ‘하나 됨’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최후만찬 후에 아버지께 드린 “대사제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으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과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이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하나” 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어울려 친하게 지내는 것을 말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성격 좋고 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하나”를 이루기에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란 “우리”, 곧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서로에게 속해’ 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가 부자관계로 “하나”를 이루듯이, 우리가 사랑이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2베드 1,4)하게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그 ‘하나 됨’이란 곧 ‘사랑 안에서 이루는 일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하나”를 이룬 이에게서는 그리스도와 아버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2).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곧 우리도 당신 ‘안에서’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영광을 받게 됩니다.’(요한 17,22 참조). 그리하여 세상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고(요한 17,21),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7,23).
이처럼,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알게 하는 것이 ‘대사제 기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간절한 바람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4)
사실 당신께서는 <마태오복음>에서,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마태 12,30)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당신 ‘사랑 안’에, 당신의 ‘진리 안’에 ‘함께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곧 당신의 사랑과 진리를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하면, 당신의 ‘현존 안’에 머물게 되고 ‘우리도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영광을 보게 될 것’(요한 17,24 참조)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과 ‘하나’를 하나를 이루고, 그분이 ‘있는 곳’에 있을 뿐 아니라 그분과 ‘함께 하나’ 되어 있으면,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당신과 함께 있고 하나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 있고, 사랑 안에 있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7장 21절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당신과 함께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서로가 손을 맞잡고, ‘한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똑같아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채,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주님, 오직 당신 안에서 하나가 되길 바라오니,
제 자신을 건네주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을 받아들여 하나 되길 바라오니,
제 안에 당신을 실현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공평함이 아니라 질서가 일치를 만듭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2-23)
찬미 예수님! 부활 제7주간 목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바치신 그 유명한 '대사제의 기도'의 절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반복하시며 피를 토하듯 간절히 부르짖으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일치)'입니다.
예수님은 왜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고, 오직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을까요? 그리고 그 일치를 이루기 위해, 당신이 아버지께 받은 '영광(은총과 진리)'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깊고도 숭고한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가진 아주 큰 착각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부모가 자녀들에게 유산을 'N분의 1로 공평하게' 나누어 주면, 형제들이 다투지 않고 우애 있게 일치하며 살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심리학은 정반대의 끔찍한 진실을 증언합니다. 공평한 분배는 일치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동급이라는 '교만'을 부추겨 피 터지는 싸움을 만듭니다.
이 비극을 명백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9세기 유럽을 호령하던 카롤링거 제국의 루도비쿠스 1세(경건왕 루트비히) 이야기입니다. 그는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로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세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제국을 세 명에게 아주 완벽하고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측량사들까지 동원하여 땅의 크기와 세금 수익이 1원 한 푼까지 똑같도록 영토를 3등분으로 갈라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아버지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평하게 재산을 받은 아들들은 '내가 너와 동급인데, 왜 네 땅이 내 땅보다 더 기름져 보이느냐'며 서로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아들들은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형제들끼리 수십 년간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영토 전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베르됭 조약을 끝으로 위대했던 제국은 산산조각 나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적 권위와 질서 없이 인간적인 계산으로 나눈 '공평한 분배'는, 평화가 아니라 가장 잔혹한 형제의 난을 부르는 도화선이 될 뿐이었습니다. (출처: 에두아르 페루아, 『프랑스 역사』)
오늘 복음에서 참된 어머니이자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일치가 '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거룩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루어짐을 명확히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사제 기도를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은총을 무턱대고 군중에게 뿌리지 않으십니다. 철저한 '질서'에 따라 기도하십니다. 첫째,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1-5절). 둘째,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6-19절). 셋째, 그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될 '모든 신자들(백성)'을 위해 기도하십니다(20-26절).
은총과 영광은 수평적으로 똑같이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예수님께,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백성들에게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수직적 질서'를 탑니다.
이 기막힌 질서의 원리는 이미 구약성경 민수기 11장에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백성을 이끄는 짐이 너무 무거워 고통받을 때, 하느님은 70명의 장로를 세워 도우라 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장로들에게 하늘에서 새로운 영을 각자 공평하게 쏘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너에게 있는 영을 덜어내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민수 11,17)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라는 머리(수위권)에게 주어진 영이, 그 아래 장로들에게 흘러가고, 마침내 온 백성을 살리는 거룩한 위계질서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민수기 11장)
시편 133편은 이 거룩한 질서 안에서 피어나는 형제들의 완벽한 일치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는 기름, 아론의 수염을 타고 그의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시편 133,1-2).
기름(은총과 진리)은 옆으로 퍼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머리에서 수염으로, 그리고 옷깃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인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고, 그 반석 아래 사도들이, 그리고 사도들 아래 백성들이 결속되는 이 거룩한 위계질서가 세워졌을 때, 비로소 교만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인간의 마음들이 권위 아래 복종하며 완벽한 '하나(일치)'를 이룬 것입니다.
건축 공학에서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보면 이 신비가 아주 명확하게 풀립니다.
건물을 지을 때 수백 장의 흩어진 벽돌들을 가져다 아무렇게나 쌓아 올리면, 아무리 단단한 벽돌이라도 작은 바람에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수백 장의 벽돌이 '완벽하게 일치된 하나의 성벽'이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뜨리는 '다림줄'입니다. 다림줄은 벽돌들이 좌우로 삐뚤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정렬되도록 기준을 잡아주는 '수직적인 질서'입니다. 영적으로 이 다림줄이 바로 주님의 '진리(말씀에 순종하는 권위)'입니다.
둘째는 단단한 벽돌들 사이를 메우고 부드럽게 융합시키는 시멘트 '모르타르'입니다. 이 모르타르가 굳어지면 수백 장의 벽돌은 하나의 거대한 통바위가 됩니다. 영적으로 이 모르타르가 바로 우리를 서로 끈끈하게 붙여주는 '은총(성령)'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림줄(질서)이 없으면 아무리 끈끈한 모르타르(은총)를 발라도 건물이 삐딱해져 결국 스스로의 무게를 못 이기고 미끄러져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사랑과 은총의 분배만으로는 공동체가 서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세워주신 질서(다림줄)에 철저히 순종할 때만, 그 은총이 우리를 영원한 성전으로 묶어낼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질서로 기적 같은 일치를 이룬 역사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입니다.
16세기, 예수회원들은 전 세계 오지로 뿔뿔이 흩어져 험난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통신 수단도 없던 그 시절, 뛰어난 지성과 강한 개성을 지닌 수많은 수도자가 어떻게 분열 없이 그토록 완벽하게 '하나 된 하느님의 군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성 이냐시오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과 진리를 바탕으로 세운 가장 철저한 영적 질서, 이른바 '시체와 같은 순명(Perinde ac cadaver)' 때문이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만레사 동굴에서 성령의 엄청난 은총을 체험했지만, 그 은총을 개인의 영성을 뽐내는 도구로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은총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과 장상에게 완벽히 순종하는 것만이 교회의 분열을 막고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각자의 지식이나 영적 체험을 평등하게 주장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시체가 저를 씻기는 이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듯, 하느님의 대리자인 장상의 명령이라는 다림줄에 너희의 자아를 꺾어 복종하라." 이처럼 하느님이 세우신 위계질서에 완벽히 순복하는 체계가 잡혔을 때, 그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다투지 않고 일사불란한 성령의 무기로 결합했습니다. 은총과 진리는 교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질서에 순종하게 함으로써 일치를 완성하는 힘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예수회 회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고 계십니까?
"주님, 저에게 더 많은 은총을 주십시오. 쟤보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저도 쟤만큼 공평하게 주십시오!"
이 기도의 끝이 오직 나의 성공과 이익, 형제들과의 수평적인 비교를 향해 있다면, 우리는 방금 전 유산을 똑같이 나눠 가지고도 아버지를 감금하고 피 터지게 싸웠던 카롤링거 제국의 아들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진리라는 위대한 유산을 내려주시는 유일한 목적은 '일치'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본당에서 사목자인 신부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직장과 사회에서 하느님이 세워주신 질서에 복종할 때만 맺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낯선 장소에 가게 되면 지도 앱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냥 느낌만으로 가다 보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초에 학생들과 부산에 갔다가 지도 앱을 열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주변 지리를 알아야 하는데 낯선 이 도시의 건물 이름이나 지명을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이를 떠올리면서 하느님 나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를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자기 자리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살피는 사랑을 통해서만 제대로 하느님 나라로 방향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받을 사랑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주변을 전혀 살피지 않는다면, 자기가 가고 있는 방향을 특히 하느님 나라를 향해 제대로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가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의 기도도 우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사정이 너무 급하고 어려워서 남을 도와줄 형편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으로 향하시기 직전, 그러니까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당신 자신보다 제자들과 세상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교회를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요한 17,20)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지향은 다락방에 함께 있는 사도들을 넘어 그들의 증언을 듣고 훗날 예수님을 믿게 될 모든 사람을 향해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천 년 전의 기도가 당시의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읽고 믿는 지금의 우리를 위해 바쳐진 기도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구원 의지가 담긴 사랑은 철저히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십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는 빛과 증거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변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나의 이웃을 향한 사랑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지금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제대로 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설령 하나의 문이 닫혔을 때도 실망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릴 것이다. 역경은 희망으로 극복된다(매난드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분열된 시대를 치유하시는 가장 맑은 기도입니다.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일치입니다. 서로를 살리고 이어주는 일치의 길입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다시 하나로 모으는 화해의 일치입니다. 사
랑을 포기하지 않는 은총의 길입니다. 상대를 대상이 아니라 인격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만남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진정한 관계가 없으면 삶은 공허해집니다.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삶이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의 일치입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서로를 형제자매처럼 돌보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참된 일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을 존귀한 생명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일치는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하느님의 생명으로 하나되는 일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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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