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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6.2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6.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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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들에게 아픔이 찾아왔을 때, 대신 아파해 줄 수도, 대신 걸어가 줄 수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그럴수록 백인대장처럼 그 사람을 품고 주님께 나아가는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이를 당신께 맡겨 드리는 그 간절한 기도를 귀하게 받아 주시고, 우리의 작은 믿음마저 품어 주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2026년 6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6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애가 2,2.10-14.18-19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2 야곱의 모든 거처를 주님께서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딸 유다의 성채들을 당신 격노로 허무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땅에 쓰러뜨려 욕되게 하셨다.

10 딸 시온의 원로들은 땅바닥에 말없이 앉아 머리 위에 먼지를 끼얹고 자루옷을 둘렀으며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까지 내려뜨렸다.

11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12 “먹을 게 어디 있어요?” 하고 그들이 제 어미들에게 말한다, 도성의 광장에서 부상병처럼 죽어 가면서, 어미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13 딸 예루살렘아, 나 네게 무엇을 말하며 너를 무엇에 비기리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며 위로하리오? 네 파멸이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14 너의 예언자들이 네게 환시를 전하였지만 그것은 거짓과 사기였을 뿐. 저들이 네 운명을 돌리려고 너의 죄악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네게 예언한 신탁은 거짓과 오도였을 뿐.

18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시내처럼 흘려라. 너는 휴식을 하지 말고 네 눈동자도 쉬지 마라.

19 밤에도 야경이 시작될 때마다 일어나 통곡하여라. 주님 면전에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 길목마다 굶주려 죽어 가는 네 어린것들의 목숨을 위하여 그분께 네 손을 들어 올려라.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8,5-17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6월 27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2:46

✚ 복음 07:50

✚ 강론 10:2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누군가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카파르나움은 호숫가의 작은 도시였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 자유인과 노예로 나뉜 경계입니다. 그 한가운데 한 백인대장이 있습니다. 그는 제국의 질서를 따라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건네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주님, 제 종이 ……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마태 8,6).

‘종’이라고 옮긴 그리스 말 ‘파이스’는 노예 또는 아이를 가리킵니다. 이름 없이 불리는 존재, 그러나 누군가를 간절하게 만드는 인물. 백인대장은 그를 위하여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춥니다. 백인대장의 고백은 체면을 버리는 대신 한 사람의 고통을 멈추게 하려는 애원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에 놀라워하십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이가 와서 아브라함과 함께 잔칫상에 앉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세상의 신분과 권력과 명예가 갈라놓는 경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바깥 어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경계에서 안타깝게도 서로를 잊어버리는 이들, 그들의 어둠을 경고하십니다. 복음은 누구를 배제하기보다 우리가 ‘우리’로 서 있는지 조용히 묻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인의 손에 당신 손을 대셨고 그 부인은 일어났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 모든 장면을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로 감쌉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8,17).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멀리 밀어내시기보다 사랑으로 당신께서 기꺼이 짊어지십니다. 병의 무게가 누군가에게 홀로 남겨지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상처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백인대장의 믿음을 톺아보고,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는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마태오복음은 어제와 오늘 주님의 놀라운 치유를 끌어낸 위대한 신앙의 두 모범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어제는 나병환자 자신이 치유되는 얘기이고, 오늘은 백인대장의 종이 치유되는 얘기인데 공통점은 그들의 위대하고도 완전한 믿음입니다.

이들의 믿음에 의심이란 전혀 없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데 우리가 톺아봐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이 백인대장이 이방인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해 그것도 종의 치유를 위해 그렇게 진심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백인대장의 두 가지 점을 톺아보고 반성도 해야 합니다. 첫째는 백인대장의 완전한 믿음인데 말씀에 대한 완전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 말을 믿냐? 또는 그 말을 믿냐고 합니다. 그 사람을 믿지 못하든지 그가 한 말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믿지 못하는 주님을 믿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한 말씀으로도 치유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주님을 믿더라도 이 정도로 믿지 못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오셔서 손을 얹어주셔야 나을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매일 미사를 드릴 때 성체를 나눠주며 특히 병자에게 나눠주며 백인대장의 믿음을 생각하며 나눠줍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사제가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참여하는 이는 복되도다!” 하면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고 오늘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으로 답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제 영혼이 곧 나으리라고 조금 바꿔 말하지만 옛날에는 제 영혼이 아니라 제가 곧 나으리라고 한 적이 있고 백인대장도 자기 종이 곧 나을 것이라고 신앙고백을 하였지요.

우리는 이런 믿음으로 성체를 영합니까? 이 성체로 내 육신과 영혼이 모두 치유되리라는 믿음으로 영합니까? 또 우리는 이웃의 치유를 위해 이렇게 진심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치유를 받도록 이렇게 발 벗고 행동으로 나섭니까?

혹 나나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백방으로 애쓰고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까지는 해도 주님께 데리고 가 주님의 치유를 받게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튼 한 마디로 백인대장의 믿음과 백인대장의 이웃 사랑을 우리는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톺아보고 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p>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주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복음>은 앞 장면의 나병환자 치유에 이어, 백인대장의 하인을 고치신 이야기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이야기, 그리고 악령 들린 이들과 병자들을 고치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우리는 백인대장에게서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고개 숙이는 모습’입니다. 결코 아무나 고개 숙일 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아가서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조정당하는 일’은 더더욱 아름답습니다.

오늘 우리는 ‘백인대장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 날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영성체 때에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주님, 제 안에 당신을 모시기 합당치 못하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낫겠나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아름다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를 담아내야 할 일입니다

<첫 번째>는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8,7)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죄인입니다”(루카 5,8)​라고 자신의 비참한 실존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을 집에 모실만한 ‘합당한 자격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곧 자신이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이라는 것이요, 백인대장의 신분이지만 하인의 병을 어찌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이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루카복음>의 병행구문에서는 ‘주님 앞에 나서기에도 합당치 못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제 자신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제대 앞에 설 때마다 ‘합당치 못한 제 자신의 모습’이 몹시 두렵고 떨리기 때문입니다. ‘합당치 못한 제 자신의 모습’이 가시가 되어 찌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라는 의탁과 신앙고백입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빵이심을 깨달았을 때,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요한 6,46)라고 믿고 의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곧 그분이 ‘주님이심에 대한 깨달음’과 그분의 ‘권능에 대한 의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고, ‘이렇게 하라’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 하면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서 ‘낮이건 밤이건 구름만 걷혀 올라가면 길을 떠났고, 구름이 이틀이고 한 달이고 한 해이고 머물러 있으면 떠나지 않았던 것’(민수 9,21-22)처럼 말입니다.

주님! 이제 저도 백인대장처럼,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마태 8,8)하고, 믿음의 간청을 드립니다. 주님의 권능뿐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특별히 사랑을 성취시키시는 ‘말씀의 권능’을 믿습니다. 저를 ‘먼저’ 믿어주시는 당신의 믿음에 의탁하여, 성모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저도 ‘먼저’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 저도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믿음으로 듣고, 청하기 전에 ‘먼저’ 믿고 청하게 해주십시오.

오늘 제가 당신의 거룩함 앞에서 제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 광야에서 당신 백성이 그러했듯이, 오로지 당신 말씀에 의탁하여 가능해 보일지라도 ‘돌아서 가라’ 하면 돌아서 가고,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곧바로 가라’ 하면 곧바로 가게 하소서.

당신이 진정 저의 주님이시오니, 저를 인도하시나이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8장 8절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만을 제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은 머리 위에 계시되 속박하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시니, 당신께 온전히 속한 자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세상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마음이 이미 믿는 마음이다.

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를 만납니다. 놀랍게도 그는 유다인이 아니라 로마의 이방인 백인대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병든 종을 치유해 주시려 집으로 가겠다고 하시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도대체 이 이방인 장교는 어떻게 예수님조차 감탄하게 만든 믿음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그의 대답 속에 위대한 영적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예수님을 비교하며, 세상의 군대 지휘 체계라는 법칙을 통해 하늘의 법칙을 유추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지휘 체계 안에서도 한마디 명령이면 부하들이 움직이는데, 하물며 생명을 다스리시는 저분은 굳이 오실 필요 없이 말씀 한마디로 치유하실 수 있다!'

백인대장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법칙이라면, 그것이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통용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법칙을 통해 하늘의 법칙에 다다르는 것, 이것이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가장 완벽한 길입니다.

어떤 법칙이나 시스템이 이 세상에 완벽하게 구축되어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누군가 창조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법칙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은, 이미 그 법칙을 만드신 창조주가 존재함을 뼛속 깊이 인정하는 참된 믿음의 시작입니다.

설계도가 있다면 만든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설계도 없이 건물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설계도는 그 자체가 법칙입니다. 어떤 법칙이 발견된다면 그건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뻔한 이치와 법칙을 무시하고서 참 신앙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계단을 밟지 않고 공중 부양을 해서 2층으로 올라가겠다는 교만일 뿐입니다.

이 세상의 법칙을 깊이 탐구하다가 마침내 창조주를 만나 완벽한 믿음에 도달한 아주 유명한 실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DNA 유전자 지도를 최초로 해독해 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본래 철저하고 지독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과학적 증거가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았죠.

그런데 그가 무려 31억 쌍에 달하는 인간 DNA의 염기서열을 하나하나 해독해 들어가면서 엄청난 충격에 빠집니다. 인간의 몸속에 있는 이 유전 정보가 너무나도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과 법칙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학자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정보 체계와 생명의 법칙이 우연히, 지 혼자서 뚝딱 만들어진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위대한 지성, 즉 창조주가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결국 그는 무신론의 고집을 꺾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고, 훗날 자신의 깨달음을 담은 책 『신의 언어』를 펴냈습니다. 세상의 법칙을 가장 치열하게 찾아내려 했던 사람이, 결국 그 법칙을 지으신 분의 섭리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나는 예외야. 세상의 법칙이 나에겐 적용되지 않아.'라는 은밀한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집니다. 세상의 법칙에서 자신은 예외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앙의 법칙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2018년 1월, 일본 시가현에서 9년이나 의대 재수를 하던 딸이 자신의 친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9년 동안 딸의 휴대전화를 뺏고 방에 CCTV를 달아 감시하며 심지어 샤워조차 함께했습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딸은 트위터에 남겼던 글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괴물을 처단했습니다. 포로 같았던 그때보다 구치소 생활이 훨씬 편합니다."

왜 거룩한 강론 시간에 이런 끔찍한 사례를 꺼낼까요? 한국의 고3 우등생 어머니 살해 사건, 영국의 명문대생 어머니 살해 사건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이와 똑같은 비극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요? 바로 '나는 달라! 내 자식은 예외야!'라는 교만한 생각 때문입니다. 자유를 주지 않으면 결국 엄마는 칼에 찔리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자유와 인격적인 존중을 줄 때 비로소 참된 사랑과 성장이 뒤따른다는 것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심어놓으신 변함없는 법칙입니다. 그 존중의 법칙을 짓밟고 부모가 자식의 자유를 억압하면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예외라는 착각이 이 명백한 법칙조차 보지 못하게 만들어 안 좋은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반대로 유다인들의 교육 방식처럼 자녀에게 인격적인 자유를 주고 율법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는 이들은, 결국 부모도 자녀도 모두 성공하고 유익을 얻는다는 법칙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 나아만을 보십시오. 나병에 걸린 그가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왔을 때, 엘리사는 요르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나아만은 대노합니다.

'나는 대제국 아람의 2인자다! 내가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람인데, 치유의 기적도 무슨 스펙터클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주어져야지, 저 똥물에 몸을 담그라고?'

그때 그의 부하가 나서서 간언합니다. 이 부하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부하는 세상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사랑의 법칙 하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서 어떻게 생명과 사랑을 얻어냅니까? 엄마가 "아~ 해봐" 할 때, 아기가 그저 입을 작게 벌리거나 숟가락을 쥐는 시늉을 하는 아주 사소한 순명 하나만으로도 엄마는 자신의 모든 생명과 양식을 아기에게 다 내어줍니다. 부하는 이 세상의 애틋한 법칙을 하느님과의 관계에 똑같이 적용한 것입니다.

'장군님, 아버지가 아기에게 요구하듯 아주 작은 것, 그저 강물에 몸을 씻으라는 쉬운 일을 하라 하시는데 그것도 못 하십니까? 아기처럼 순명하십시오.'

세상의 법칙을 믿음으로 승화시킨 부하의 조언 덕분에, 특별함을 고집하던 나아만은 마침내 고집을 꺾고 평범한 법칙에 순명하여 새살이 돋는 기적을 얻어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나는 다르다', '나는 특별하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답은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로를 심판하고 핑계 대는 것이었습니다. 남을 판단할 때, 우리는 은연중에 '나는 저 인간과 다르다'라며 자신을 재판관의 특별한 단상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그 후손들이 바로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남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예외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하느님 외에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나도 모르게 판단된다면, 그 판단하는 잘못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이 내 안에도 똑같이 들어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 안에 그 쓰레기가 있기 때문에 남의 쓰레기도 보이는 것입니다. 이웃의 단점을 거울삼아 나의 단점을 고치려 할 때, 비로소 사람은 다 똑같고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을 촘촘히 지배하는 하느님의 법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법칙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온전한 믿음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처럼, 세상의 이치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참되고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그 부인의 손에 당신 손을 대셨고 그 부인은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으면 되도록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습니다. 우선 돈 주고 산 책이어서도 그렇지만, 작가의 숨어 있는 의도를 찾으려면 끝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무명작가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책을 지역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기증한 수천 권의 책 중에는 자기가 쓴 소설책도 있었는데, 워낙 인기 없는 작가로 초판이 다 팔리기도 전에 절판되어 버린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몇 년 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대여자에게 놀라운 일이 찾아왔습니다. 빌린 책은 앞서 이야기한 무명작가의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가 직접 적은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자기 책을 빌려 끝까지 읽은 독자에게 자기 마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여자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처음 뜨거운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분을 만나곤 합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이 꿋꿋하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나병 환자를 고쳐주셨는데, 오늘 복음에는 이방인의 종과 여성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병자들을 차례로 고쳐주십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구원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은 유다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지배국 장교가 피지배국의 떠돌이 랍비에게 도움을 청한 것, 그것도 가족이나 자신이 아닌 하찮은 소유물로 여겨지던 종의 고통을 위해 체면을 버리고 나선 것은 큰 놀라움이 분명했습니다. 그만큼 백인대장의 사랑과 겸손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인의 믿음에 감탄하시며, 혈통으로 구원을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쫓겨나고, 오히려 동서양의 수많은 이방인이 하늘 나라의 잔칫상에 앉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원의 기준은 혈통, 자격에 있지 않고 절대적인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당시 유다 율법에서 열병은 하느님의 징벌로 여겨졌고, 타인과의 접촉이 꺼려지는 상태였습니다. 이를 모두 무시하고 나병 환자 때처럼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십니다(마태 8,14 참조). 이번에도 베드로 장모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열이 가시자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든 것입니다. ‘시중을 들다’의 그리스어는 봉사와 섬김을 뜻하는 단어가 되어, 교회 직분인 부제(diaconus)의 어원이 됩니다. 열병으로 힘든 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봉사와 섬김을 할 수 있는 것은 웬만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구원의 기준이 되고, 믿음으로 주님의 사랑 가득한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오늘의 명언

여러분, 내가 말하는데, 태어나기는 힘들고 죽기는 고약하니…. 그 사이에 조금 사랑을 누려보시오(랭스턴 휴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믿음은 현실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현실을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며, 예수님의 손길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치유는 단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은 자신만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품는 사랑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현실 속으로 다시 걸어가게 하십니다. 일상의 모든 만남과 선택 속에서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먼저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데서 믿음은 깊어집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믿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믿음의 존재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함께 오늘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여정입니다.

백인대장은 결과를 확인한 뒤에 길을 떠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신뢰했기에 먼저 현실로 걸어갔습니다. 함께하시는 주님께 우리 현실을 맡기는 치유의 삶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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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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