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제 시선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하곤 해요.
믿음은 아직 날이 밝지 않아도 말씀의 빛을 따라 한 걸음 내딛는 것임을 배웁니다.
말씀의 빛으로 제 마음을 먼저 밝혀주시는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2026년 8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다니 7,9-10.13-14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7,1-9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8월 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16
✚ 제1독서 05:24
✚ 복음 08:45
✚ 강론 10:4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변해야 하는 눈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마태 17,2 참조). 여기서 ‘변하였다’는 말은 변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해당합니다. 곧 보는 사람도 그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왜 그렇게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그것이 보는 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그 대상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변하였다’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할 때, 그것을 보는 우리의 눈도 함께 변하기 마련입니다. 빵과 포도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라보는 신앙의 눈으로 바뀝니다. 실체 변화 후에도 그저 빵과 포도주로만 본다면,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보인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음에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는 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변모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초막을 짓고 지내자는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도 베드로는 눈앞의 영광스러운 모습만 볼 뿐입니다.
변화를 알아보려면 먼저 자신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익숙함에 젖고 타성에 젖으면 고정 관념이 생기고, 내가 보는 것,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주님의 도움을 받아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야 합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내 생각과 마음이 주님의 도움으로 바뀔 때, 변모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처참한 십자가에서도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오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십자가는 걸림돌
“그리스도께서는 뽑힌 증인들 앞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어 제자들 마음속에서 십자가의 걸림돌을 없애 주셨으며, 머리이신 당신에게서 신비롭게 빛난 그 영광이, 당신 몸인 교회 안에도 가득 차리라는 것을 보여주셨나이다.”
주님께서 세 제자에게만 당신의 변모를 보여주신 것을 오늘 미사 감사송은 제자들 마음속에서 십자가의 걸림돌을 없애 주고, 머리인 주님의 영광이 지체인 우리 안에도 가득 찰 것임을 보여주려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변모는 세 제자만을 위해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 제자는 뽑힌 증인들이고 십자가의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의 변모를 다른 제자들과 전체 교회에 증언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뜯어보면 십자가는 걸림돌일 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걸림돌이란 말은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해당이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만나지 않고 걸림돌도 없습니다. 오직 가는 사람만이 가다가 누구를 만나고, 뭔가를 만나고, 걸림돌도 만납니다. 그런데 걸림돌이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거나 넘어지게 하지 않더라도 비틀거리게 하거나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십자가의 길이 바로 그러합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십자가는 일단은 걸림돌입니다. 가다가 십자가 때문에 일단은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넘어진 다음엔 계속 갈 것인가 그만 갈 것인가를 고민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고 절망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가던 길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게 되고 고민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길을 계속 갈 터인데 그는 걸림돌을 디딤돌 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십자가가 다 걸림돌이고 오르려고 하는 사람에는 십자가가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또 십자가의 길은 하늘길이니 오르려는 자는 위를 봐야 하고, 그저 앞으로 내달릴 것이 아니라 딛고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앞이 아니라 위를 보는 것이 관상이고, 그렇게 하늘나라를 관상하면 걸림돌을 디딤돌 삼습니다.
오늘 뽑혀 주님의 변모를 본 세 제자는 오늘 본 것을 십자가에 걸려 넘어져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돌아보고, 십자가 길을 다 달리고 났을 때 받게 될 영광을 내다보며 아직 절망 중인 형제들에게 희망을 증언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러하도록 뽑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오늘 <독서>는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를 통해, 장차 벌어질 사람의 아들의 영광된 모습과 통치를 미리 보여줍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의 변모를 통해 드러내시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하느님의 증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직전에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오르시어 변모를 이루십니다.
“그분의 얼굴을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습니다.”(마태 17,20)
예수님의 ‘해처럼 빛나는 얼굴’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뵙고 난 모세의 모습(탈출 34,30)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의인의 모습’(마태 13,43)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빛처럼 하얘진 옷’은 ‘예수님의 무덤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마태 28,3)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묘사들은 예수님께서 천상의 모습으로 변모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어 바치고자 하는데,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마태 17,5). 이 ‘빛나는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이를 바라보는 제자들을 현존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장차 있게 될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제자들에게 벌어진 일도 함께 알려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변모는 제자들의 변모에 대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와 함께 우리의 변모에 대한 가르침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단지 예수님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만이 아니라, 빛나는 구름은 제자들을 변화에로 부르십니다. 마치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듯이”(탈출 24,15-16 참조),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마리아를 덮으셨듯이”(루카 1,35 참조), 변화를 이루시는 거룩한 영께서 오늘 우리를 그 빛나는 구름으로 덮어주십니다.
그리고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이렇게 가르쳐주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아버지의 권위를 부여해 주셨음을 드러내줍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는 단지 아들의 신원을 밝혀주신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얼굴을 이 가르침을 듣고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아래에’ 머무는 일입니다. 말씀의 힘을 수락하는 일이요, 들려오는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되도록 말씀께 승복하는 일입니다. 변화의 힘이신 말씀께서 나를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말씀께 자신을 건네 드리는 일이요, 자신을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초막집으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자신을 말씀의 거처로 내어드리는 동시에,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건물(초막)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1-22)
그렇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영께서는 우리를 손수 당신의 거처로 건축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을 신령스럽고 거룩한 당신의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2코린 3,18)
그러니 오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진정 변모되기를 바라느냐? 그렇다면 내 아들의 말을 들어라! 그리고 너희가 진정 거룩해지기를 바라느냐? 그렇다면 그의 말을 믿고 순명으로 실행하라!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7장 5절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 말씀의 권능으로 저를 덮으소서.
구름 속에서 울려오는 당신 음성으로 저를 덮으소서.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저의 비천한 몸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키소서.
당신이 거주하시는 초막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어떤 수험생이 서울의 명문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한 것이 무색하게 목표했던 대학에서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실패한 것일까요? 그런데 그냥 한 번 써 보자고 원서를 넣었던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가 온 것입니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성공일까요?
수학능력 평가에서의 점수는 똑같았지만, 이 점수에서 실패와 성공이 함께 있었습니다. 처음 불합격 통지서에 크게 낙심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받은 합격 통지서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합격도 또 합격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성공은 수없이 실패하고, 그 실패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실패로 실패의 두려움조차 옅어질 때 성공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들을 기억하면서 실패에 집착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특히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는 그 실패가 진짜 실패인지, 성공인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이고, 삶에는 전화위복의 즐거움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수난을 앞두고 당신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신 날입니다. 영광스러운 변모를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고, 베드로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라는 충격적인 미래를 실패라고 생각했고, 이런 미래 앞에서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변모 사건을 통해 미리 보여주면서 제자들의 믿음을 준비시키십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장면을 베드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마태 17,4)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를 피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해서 얻는 부활의 영광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구름 속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즉, 주님께서 말씀하신 수난의 예고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실패가 부활이라는 영광으로, 결국 우리의 구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실패에 좌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굳은 믿음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그 실패의 뒤에 영광스러운 성공도 함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자꾸 덧나는 건 누군가 그 안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건들지 않아도 아프다(김정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말씀 카드 다운로드
베드로2서 1장 19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