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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8.1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8.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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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기보다, 사랑보다 상처를 더 단단히 붙들고 있던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굳어진 마음을 풀어 주시고,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바라셨던 사랑을 다시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8월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에제 16,1-15.60.6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에게 자기가 저지른 역겨운 짓들을 알려 주어라.

3 너는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예루살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혈통과 태생으로 말하자면, 너는 가나안 땅 출신이다. 너의 아버지는 아모리 남자고 너의 어머니는 히타이트 여자다.

4 네가 태어난 일을 말하자면, 네가 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고, 물로 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고 포대기로 싸 주지 않았다.

5 너를 애처롭게 보아서, 동정심으로 이런 일을 하나라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네가 나던 날, 너를 싫어하여 들판에 던져 버렸다.

6 그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살아남아라!′ 하고 말하였다.

7 그러고 나서 너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서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젖가슴은 또렷이 드러나고 털도 다 자랐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벌거벗은 알몸뚱이였다.

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9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11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두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12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 주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13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아마포 옷과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고운 곡식 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었다. 너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왕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4 네 아름다움 때문에 너의 명성이 민족들에게 퍼져 나갔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던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5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

60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63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9,3-1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8월 14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56

✚ 제1독서 05:13

✚ 복음 11:18

✚ 강론 13:5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가장 먼저 불러 주신 이름

누구나 하느님께 받은 역할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에 따라 서로 다른 호칭으로 불립니다. 이를테면 아빠, 엄마, 부모, 자녀, 남편, 아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이름은 때가 되면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따라 붙여집니다. 자녀가 있어 부모라는 이름이 주어지고, 아내가 있어 남편, 남편이 있어 아내라는 이름이 주어집니다.

이렇게 짝이 되는 이름들은 나 스스로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맺는 관계 속에서 붙여지는 것입니다. 곧 이 이름이 주어지는 까닭은 그 이름으로 불리게 해 준 이를 위한 것입니다. 서로를 위하여, 곧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네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마태 19,8)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완고한 마음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보다 우리에게 맨 먼저 붙여진 이름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과 짝이 되는 이름은 바로 하느님, 사람을 지으신 하느님이십니다.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의 완고함이 아닐까요?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든 우리는 먼저 하느님과 우리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계심을 깨달을 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19,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깊은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관계적 무신론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 저는 말을 하나 만들어 냈는데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관계적 무신론입니다. 무신론은 하나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신론이 있는가 하면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하느님이 계시건 계시지 않건 하느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실천적 무신론도 있고, 오늘 제가 주님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만들어 낸 관계적 무신론도 있습니다.

관계적 무신론은 낯선 말이지만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관계적 무신론은 두 가지 뜻이 있겠습니다. 하나는 복음의 더러운 영들이 흔히 그러하듯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부정하여,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없는 것이고 자연히 내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신 겁니다.

다음으로 오늘 복음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얘기하려는 것은 우리의 인간관계가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우리의 인간관계 안에 하느님께서 아니 계신 것입니다. 우선 우리의 만남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만났거나 서로 좋아서 만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만났다고 생각하니 헤어지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들이 좋을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헤어지는 결정에 하느님의 뜻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그런데 관계적 무신론의 문제는 만남과 헤어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처음 만나서 헤어지기까지 삶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는 관계가 아닐 것이고, 하느님께로 같이 가는 동반자 관계도 아닐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하느님의 예언자이지 않을 것입니다.

풀어 얘기하면 이들은 서로 사랑할지라도 서로 바라보며 사랑하지 하느님을 같이 사랑하지도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는 길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아니기에 한 생을 서로 의지하다가 사별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장나고 그들의 동반은 하느님께로 가는 동반이 아니라 죽음으로 끝나는 동반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서로에게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닙니다. 당연합니다. 예언자란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전하라고 보내는 존재인데 하느님과의 관계를 부정하니 서로 잔소리는 무한히 쏟아내도 그 말이 서로에게 하는 예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혼배 성사를 받은 우리 신앙인들은 시작은 서로 좋아서 배우자로 선택했고 결혼했을지라도 실은 인간의 호감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거라고 믿어야 할 것이고, 한 생을 서로가 서로에게 예언자가 되어 살며 당신께 같이 오라고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셨음을 이제부터라도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완고함보다 먼저 있었던 사랑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설교를 마치시고, 갈릴래야를 떠나 유다지역으로 가시자 그곳에서도 많은 군중이 따랐고 그들을 고쳐주셨는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5-6)

그리고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이혼을 허락해 준 이유’가 이혼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이미 이혼당한 여성들을 그대로 놔두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이혼장이라는 서류도 없이 버림을 받게 될 경우, 여성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생활하다 붙잡히면 간통죄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이 정당하지 않다’(혼인의 불가해소성)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창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예외로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이를 ‘혼인 무효 사유’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교부들은 이 말씀을 단순히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관계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이 관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하여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하여 기뻐하시리라.”(이사 62,5)

이는 하느님과 인간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은 영원에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그분의 아내가 되는 혼인성사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이러한 깊은 관계가 우리를 가장 품위 있는 존재로 부각시켜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마태 19,12)로서의 ‘독신’에 대해서 “허락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다.”(11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12절)고 말씀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며, 당신과 “한 몸”이 되어 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9장 5절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 만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 만이 아니라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떠나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경상도 남자와 서울 여자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식사 때마다 국이 싱겁다며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내는 “나는 괜찮은데?”라면서, 너무 짜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식사 중에 말합니다.

“일 년 살았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왜 국이 항상 싱거워?”

아내도 참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합니다.

“당신에게 맞추려고 소금을 늘 더 넣었어. 사실 나는 너무 짜!”

어떻게 되었을까요? 설마 국 하나 때문에 헤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이 부부는 현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만든 국에 남편이 직접 소금을 넣을 수 있도록 소금을 식탁에 놓은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닮음이지만, 사랑의 본질은 다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면서는 “우리는 정말 비슷해”라는 말을 하지만, 결혼 후에는 “우리는 완전히 달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 변했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단지 연애의 감정이 본 모습을 덮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서로 조율하는 것보다 적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때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나약함으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라고 묻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의 율법 논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떤 율법 교사는 간음과 같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을 때만 이혼을 허락했고, 또 다른 교사는 음식을 태우거나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주 사소한 이유라도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이 논쟁에 끌어들여, 어느 쪽을 택하든 비판받게 하려는 함정을 팝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혼인의 본질을 이야기하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십니다. 혼인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인간의 편의나 변심으로 이 신성한 결합을 깨뜨릴 권한이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모세가 이혼을 제도화한 것도 이혼을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라,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여성의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야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의 의미가 퇴색되고 쉽게 깨어지는 시대입니다. 과연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하면서 둘이 아닌 한 몸을 만들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이다(반 고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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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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