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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8.3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8.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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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는 장면에서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제가 원하는 길로 예수님을 끌고 가려 할 때가 많으니까요.

 

이 길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 고통은 없게 해 주세요.
제가 바라는 방식으로 이루어 주세요.

그 마음이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하느님의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베드로를 통해 배웁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는 말씀 앞에서 마음이 몹시 찔려요.

 

먼저 어느 길로 가야할지 정하기보다,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알아보고 따라가고 싶어요. 제 뜻에 당신을 맞추려 하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당신의 뜻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8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22주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예레 20,7-9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치욕만 되었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제2독서

로마 12,1-2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1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6,21-27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때에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평화방송 매일미사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2026년 8월 3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6:37

✚ 제2독서 12:12

✚ 복음 14:15

✚ 강론 16:0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내가 원하는 그리스도만 믿고 있는건 아닐까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수난과 박해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16,22)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거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걱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허망하게 돌아가시고 나면 그분께 모든 것을 걸었던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살아 계셔야 그분의 제자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텐데 더 이상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였기에, ‘그리스도’라는 호칭도 베드로에게는 반쪽짜리 호칭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우리도 미사나 기도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관계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인간적 바람을 이루어 달라는 목적으로만 ‘그리스도’를 부르기보다, ‘그리스도’를 부를 때마다 구원의 희망이 가까이 있음을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앞에 있지 말고 뒤에 있어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들은 하느님 말씀을 따르려면, 주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필연이며 피할 수 없다는 곧 불가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 말씀에서 “내 뒤를”이라는 말에 저나 여러분이 특별히 초점을 둔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없었고 오늘 처음 주님의 뒤라는 말이 도드라져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제 눈에 특별히 들어온 건 주님의 다음 말씀 때문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베드로 사도가 주님께 걸림돌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걸림돌 같은 존재이고 그런 짓을 했어도 주님께서 거기에 걸려 넘어질 분일까요?

우리가 아무리 걸림돌같이 주님 앞에 있어도 주님께서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실 뿐 아니라 능히 넘어가실 분이며 디딤돌 삼아 하늘로 올라가실 분이시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곧 당신이 가실 길에 아무 지장 받지 않기 위해 이 말씀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게서 물러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저 꺼지라는 말이 아니라 내 뒤로 물러서라, 내 앞에서는 꺼지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이 뜻이 영어 번역을 보면 더 선명합니다. 영어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Get behind me, Satan!"

주님 앞에 있지 말고 주님 뒤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주님 앞에서 알짱거리거나 앞서 멋대로 가지 말고 주님 뒤에 있어야지만 따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앞서서 이 길로 가고 싶다거나 이 길은 싫다거나 해서는 안 되고, 주님 뒤에 겸손하게 있으면서 주님께서 이리 가시며 그리 따라가고 저리 가시면 저리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우리 말에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이 있었지요. 여자는 남편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요즘 사람에게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말이지만 이 표현을 빌려 사제의 관계를 표현하면 제필종사(弟必從師), 곧 제자는 반드시 스승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오늘 마태오 복음은 다른 복음과 달리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만 하셨지요. 다시 말해서 마르코나 루카 복음에서는 이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하셨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만 이 말씀을 하셨지요. 이것이 진정한 제자도(弟子道)라는 뜻이겠습니다.

아무튼 스승님 뒤에 있어야 제자들이고, 우리도 주님 뒤에 있어야지 제자들이며, 앞서 이 길 저 길 내 마음대로 가려 하면 제자가 아님을 명심하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 희망보다 하느님의 희망을

우리의 삶의 현실에는 갖가지 어려움들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어려움과 고통, 죽음으로부터 면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비록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결코 그것들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어찌할 수 없는 불편함과 어려움, 고통과 죽음은 우리의 무능과 약함과 한계를 깨우쳐줍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십자가가 구원의 힘’임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의 일’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통을 극렬하게 보여줍니다. 예레미아는 기원전 6백년 전후, 유다왕조가 이집트와 연합하여 바빌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오히려 “유다는 망해야 한다. 바빌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선포했던 예언자입니다.

이는 유다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반역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과 사제, 거짓 예언자들과 관리들이 일어나 예레미아를 잡아 가두고 폭행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미움을 당하고, 고통당하고, 폭행당해야만 했습니다.

예레미아는 이러한 극한적인 고통 속에서 원망조로 이렇게 읊조립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예레 20,8)

그러나 모두에게 저버림을 받아도, 자신이 반역자로 취급될지라도, 결국 외쳐야만 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는 존재의 근거요 힘이요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과 죽음을 수락하는 삶, 그 안에 구원이 있음을 본 까닭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힘임을 본 까닭입니다.

<제2독서>는 십자가가 구원의 힘임을 믿음이 구체적으로는 ‘봉헌’이란 형태로 드러납니다. 곧 일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곧 일상의 크고 작은 갖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사랑으로 품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거룩한 산 제물”이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칠 것을 말씀하십니다. 곧 당신의 메시아적 행위, 곧 구원의 행위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곧 당신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내어줌으로써 성취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충격적인 말씀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21절)는 예고 말씀을 통해, 승리자와 통치자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던 메시아가 수난을 받아 패배자의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요, <둘째>(22-23절)는 베드로와의 대화를 통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전대미문의 놀라운 예고요, <셋째>(24-28절)는 고난 동참 요구와 약속을 통해, 메시아를 따르는 자에게는 능력과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에의 동참이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베드로처럼, “맙소사 주님!” 하며,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양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과 고통과 죽음을 피하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하고 우리를 질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보다 피하려 합니다. 마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국에는 자신을 ‘제물’로 내어놓아야 하고, 되고자 하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 나아가서 하느님께 희망하는 것마저 기꺼이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쉽게 베드로처럼, “맙소사 주님!”(마태 16,22) 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치부해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어려움과 고통과 죽음을 피하려고 할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마태 16,23)

그렇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하고 있을 때, 혹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노고를 피하고 있을 때, 또는 그가 나에게 잘해주는 지를 따지고 있을 때, 바로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구원의 힘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곧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에 동참하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바치게 하소서! 제 삶이 산 제물로 드리는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소서!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6장 23절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주님! 제 신변 안전을 위해 어려움과 고통과 죽음을 피하려 할 때, 마치 그것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여기고, 남들이 나에게 잘 해주는 지를 따지고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당신의 일이 아닌 제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입니다.

고통을 피하지도 제거하지도 않으며 극복하려고도 타협하려고도, 무관심하거나 뛰어넘으려 하지도 않으며 그 속에서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십자가를 지고 그 속에서 그것을 통하여 사랑하는 일, 당신이 하신 그 일을 저도 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어느 과학자가 오랜 실험 끝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비 품종을 만들었고, 이제 부화되어 고치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날개와 몸, 그리고 왼쪽 날개 대부분이 고치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비의 왼쪽 날개 끝이 고치 입구에 끼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비는 빠져나오려고 계속 파닥거리고 있었지만, 그 힘이 빠져 가는지 그 파닥임의 간격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과학자는 이 긴장의 순간, 칼을 들어 고치 입구를 잘라냈습니다. 이제 드디어 나비는 고치를 빠져나왔습니다. 과학자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치에서 빠져나온 나비는 날지 못했습니다.

고치에서 빠져나오려는 파닥임은 나비가 날개 끝까지 피를 보내기 위한 본능적 활동이었습니다. 그래야 나비가 고치에서 나올 때 새 생명을 누리며 마음껏 날 수 있습니다. 과학자는 생명을 구하려 했으나 오히려 나비의 활동 능력을 제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실수를 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당신의 사랑을 억누르며 곧바로 구하러 달려오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노력이, 또 우리의 열정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온전히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만 탓하며 좌절하고 포기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침묵 역시 그분 사랑에서 나오는 엄청난 은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밝히셨습니다. 부활이야 영광이라 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겪으신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이 말씀은 실패의 삶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인간적인 애정과 충성심에서 비롯된 외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내는 ‘고난 없는 메시아, 승리만 있는 구원’이라는 세속적 욕망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의 유혹을 받으실 때, 사탄에게 했던 말씀(마태 4,10)과 일치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가로막는 유혹자의 역할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게서 물러가라.”라는 의미는 “내 뒤로 가라.”라도 번역된다고 합니다. 즉, 스승의 앞을 가로막아 걸림돌이 되지 말고, 스승의 뒤를 따르는 제자 본래 자리로 돌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손해, 이웃을 향한 용서와 인내, 복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따르는 불편함을 기꺼이 짊어져야 합니다. 편하고 쉬운 것으로는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인정과 물질적 유익을 얻기 위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의 낭비는 베풀지 않는 사랑, 사용하지 않는 능력,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신중함, 그리고 고통을 피하려다 결국 행복도 놓쳐 버리는 데 있다(메리 촐먼들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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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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