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싶어요.
십자가가 신앙의 상징에만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저를 향하고 있는 사랑임을 알아보게 도와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9월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9월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민수 21,4ㄴ-9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요한 3,13-17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9월 14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십자가 현양 축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14
✚ 제1독서 08:21
✚ 복음 11:56
✚ 강론 13:0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왕태언 요셉 신부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가 과연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미사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진심이 담긴 고백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가 과연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커다란 십자 나무의 무게만을 견뎌 내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고통과 공포, 사람들의 모욕까지도 견뎌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지셨다면 결코 영광의 십자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고통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셨습니다. 죽음을 무릅쓴 사랑의 상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십자가는 기쁨이고 영광이며 자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짊어지실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얼마나 자주 묵상합니까? 십자가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기도하며 바라보는 저 십자가가, 기도하며 긋는 나의 십자가가 마음 깊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심 어린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을 볼까, 고통을 볼까?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런 묵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자들 가운데는 두 부류의 신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주님의 고통을 보는 사람과, 주님의 사랑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니 저는 왔다리 갔다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때는 주님의 고통만 보다가 어떤 때는 사랑도 봅니다. 그리고 왔다 갔다 하는 이런 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다가 주님의 고통만 보지 않고 사랑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원래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봐야 하고 동시에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래야 성 십자가를 제대로 현양한다고 할 수가 있겠지요. 그리고 그래야 그것이 성 십자가를 현양만 하게 하지 않고 그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서도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올해 저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며 성 십자가가 제게 사랑의 불을 지피는 십자가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니까 성 십자가를 볼 때 소 닭 보듯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연인들이 서로를 볼 때처럼 볼 때마다 스파크가 일어나게 되기를 비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기를 빌겠습니까? 현재는 자동으로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고 애써 불을 피우는 수준이고, 그러기에 그러다가 잘 붙지 않으면 실망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때는 한동안 멈추기도 슬며시 도망치기도 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저인데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은 하지 않는 저에 위안이나 삼을까요? 그래서는 안 되겠고,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싫어도 살기 위해 불 뱀을 매달고 쳐다봤듯이 저도 십자기를 마음에든 잘 보이는 곳에든 매달아 놓고 의지적으로 쳐다봐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십자가는 ‘위하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16)
그렇습니다. 이 큰일을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형벌’은 손과 발이 못박인 채 철저히 무력해진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비참함의 끝이요, 노예 죄수에게나 행해지는 참으로 냉혹하기 짝이 없는 철저하게 버림받음이요, 그야말로 완전한 패배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갈라 3,13)
그래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1코린 1,23 참조). 그러나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오늘은 ‘십자가’에서 네 가지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는 ‘죄인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라야 십자가는 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십자가를 피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이라 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용서해야 할 존재’이기에 앞서,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처럼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죄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쓸 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곧 이해받지 못하고 오해받고 곡해 받고 나아가 누명쓰는 일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는 ‘죽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곧 죽이는 일이 아니라 죽음 당하는 일이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일입니다. 승리하는 일이 아니라 패배당하는 일이요,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입니다. 동시에, 나아가는 틀려서가 아니라 옳으면서도 지는 일이요, 힘 있으면서도 눌리는 일입니다.
<셋째>는 ‘타인을 위하여 건네주는 곳’입니다. 건네주기를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며 하는 것이요, 그가 구원되기를 희망하여 사랑으로 자신을 건네주는 일입니다. 그를 '위하여' 말입니다.
<넷째>는 ‘십자가’는 ‘벌어지는 일을 수락하는 일’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내가 만들지 않아도, 만들지 않은 일들이 마구 벌어져 다그쳐옵니다. 오히려 만들고 계획하고 꾸몄던 일들은 무색하리만큼 우리를 비켜갑니다. 반면에,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휩싸고 돕니다. 바로 그것들을 ‘사랑으로’ 마주하고 끌어안고 응답하는 일이 ‘십자가’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죽이고 진정으로 참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곧 무력함이지만, 구원을 이루는 전능함이 됩니다. 낮아짐으로써 진정 높아지며, 패배이지만 사랑의 승리가 됩니다. 지면서도 쳐부수며 승리의 깃발이 되고, 영광의 월계관이 됩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역전하는 혁명이요, 완전한 승리와 영광의 표상이 되었고, 우리 삶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자랑이요,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 사랑이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 6,14)
하오니, 주님! 오늘, 십자가를 드높여 이 고귀한 구원과 사랑을 찬미합니다. 저희 안에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찬미합니다. 지금도 늘 우리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3장 13절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 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추락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십자가의 사랑
매사에 부정적 생각으로 고민하던 남자가 숲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어느 나무에 기대섰는데, 사실 이 나무는 자기와 닿은 사람의 소원을 즉시 이루어지게 하는 신비로운 나무였습니다. 마침, 남자가 갈증이 나서 “아~ 마실 것이 있으면”이라고 말했더니, 손에 곧바로 차가운 물 한 잔이 쥐어진 것입니다. ‘이상하다. 원래 물이 있었나?’라고 의심 들었지만, 워낙 갈증이 심했기에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물을 마시고 나니 배가 고팠습니다. “아~ 뭔가 먹을 것이 있다면”이라고 말하자마자 음식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에 깜짝 놀란 그는, 이번에는 아름다운 집을 말했고 그 들판에 집이 곧바로 나타났습니다. 이 집을 관리할 관리인을 청하자, 이 역시 곧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성을 소원으로 빌었습니다. 이 소원도 곧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여인을 본 남자는 “잠시만요. 너무 웃기네요. 난 이 정도로 행운아가 아니에요. 이건 제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한 뒤에 길을 떠났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좋은 일도 걷어차고 만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도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주님임을 굳게 믿는 사람은 어떤 자기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입니다. 이 십자가는 당시에 수치와 단죄의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하느님의 사랑이 극치에 달해 우리를 영광과 구원으로 이끌게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지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 3,13)
구약성경을 보면, 에녹과 엘리아가 승천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던 분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민수 2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으로 뱀에게 물린 사건입니다. 이때 들어 올려진 구리 뱀을 본 사람만이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구원을 위한 십자가에 드러난 사랑을 받아들이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의 선택 자체로 심판과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죽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하느님 사랑입니다. 십자가 현양은 곧 하느님 사랑이 들어 올려지는 현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고통보다 더 큰 사랑, 죽음보다 더 강한 생명, 미움보다 더 깊은 용서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오히려 십자가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십자가가 없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와 함께 걸어가는 삶입니다. 십자가가 만들어내는 사람의 길입니다.
나와 다른 이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사랑으로 새로워지는 생명의 길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살아내는 사람이길 기도드립니다.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그곳에는 고통보다 더 큰 사랑이 있습니다.
말씀 카드 다운로드
시편 78편 7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