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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남자세례명 11가지

피어나네 2023. 6.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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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우덴시오, 데오다토, 로무알도, 보니파시오, 오도, 우르시치노, 제르바시오, 조시모, 쿨마시오, 토마스 우드하우스, 프로타시오, 총 11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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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여자세례명 율리아나 팔코네리아,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1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6월 19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우덴시오

  2. 데오다토

  3. 로무알도

  4. 보니파시오

  5. 오도

  6. 우르시치노

  7. 제르바시오

  8. 조시모

  9. 쿨마시오

  10. 토마스 우드하우스

  11. 프로타시오

 

6월 1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1가지

 

 

1. 가우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aud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4년

 

 

가우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우덴시우스, 가우덴씨오, 가우덴씨우스, 가우덴티오, 가우덴티우스.

 

 

가우덴시오 자료

성 가우덴티우스(또는 가우덴시오) 주교와 그의 부제인 성 쿨마티우스(Culmatius)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Arezzo)에서 순교하였다. 이 때 안드레아(Andreas)라 불리는 평신도와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다른 동료 신자 등 모두 5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데오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Deod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79년? 느베르

 

 

데오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다또, 데오다뚜스, 데오다투스, 디디에르, 디디엘, 디에.

 

 

데오다토 자료

프랑스에서 디에(Die) 또는 디디에르(Didier)로 알려진 성 데오다투스(또는 데오다토)는 프랑스 전역에서 널리 공경을 받는 성인이지만 기록상으로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는 655년경에 느베르의 주교가 되었고, 657년에는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아만두스(Amandus, 2월 6일) · 누아용(Noyon)의 성 엘리기우스(Eligius, 12월 1일) · 오세르(Auxerre)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4월 10일) · 모(Meaux)의 성 파로(Faro, 10월 28일)와 함께 상스(Sens) 공의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9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그는 스스로 사임하고 보주산맥(Vosges Mts.) 안의 ‘갈릴래아’라고 불리는 계곡으로 들어가서 고적한 삶을 시작했다. 이 기간에 관한 이야기들은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그는 여러 성인과 유대를 맺었고, 그의 성덕은 매우 빛났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지나친 관심에 그곳을 떠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이미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은수자들과 합류하였다. 성 데오다투스는 곧 그들의 지도자로 뽑혔고, 국왕 킬데리크 2세(Childeric II)의 도움으로 셀레스타(Selestat) 인근에 성당을 짓기도 했다. 이 공동체가 점점 커져 장차 에버스하임(Ebersheim) 수도원이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다.

성 데오다투스는 자신의 관상 생활과 현실적인 직무의 조화를 이루는 데 어려움을 느껴, 다시 그곳을 떠나 한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보주산맥 중앙부에 있는 오늘날의 생디에(Saint-Die)에 정착했다. 그러자 곧 제자들이 다시 몰려들어 또다시 수도원을 세워야만 했다. 이때 그는 수도 규칙으로 보비오(Bobbio)의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11월 23일)가 만든 것을 채택했다.

그는 670년경 트리어(Trier)의 주교직을 사임하고 수도 생활을 위해 보주산맥으로 들어온 성 히둘푸스(Hidulphus, 7월 11)와 절친한 사이로 서로 방문하여 성사를 집전하는 등 친교를 이어갔다. 그리고 679년경 성 데오다투스는 성 히둘푸스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로무알도

 

  • 가톨릭 성인 이름
    Romual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951년경-1027년

 

 

로무알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무알두스, 로무알드.

 

 

로무알도 자료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의 세르지오(Sergio) 귀족 가문 출신인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또는 로무알도)는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세에 아버지의 살인죄를 속죄하고자 클라세(Classe)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성 아폴리나리스 수도원에 갔다가 40일을 머문 후 수도자가 될 결심을 했다. 하지만 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하고자 장상의 허가를 받고 수도원을 떠나 베네치아(Venezia) 교외에 살던 마리누스(Marinus)라는 은수자의 제자가 되어 대단히 엄격한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978년경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이었던 성 베드로 우르세올루스(Petrus Urseolus, 1월 10일)가 마리누스와 성 로무알두스를 피레네 산맥의 쿡사(Cuxa)로 데려와 베네딕토회의 성 미카엘 수도원에 들어갔다.

원장의 권고로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10년가량 공주(共住) 생활과 은수생활을 병행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성 로무알두스는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익히며 자신만의 수도생활 신학을 만들어갔다.

그 후 아버지가 회개하고 수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998년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 3세(Otto III)에 의해 성 아폴리나리스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를 원치 않았던 그는 수도자들이 자신의 개혁에 반감을 품은 것을 알고는 이듬해 원장직을 사임하고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를 오가며 은수생활에 전념했다.

1012년에 아레초(Arezzo)에 도착한 성 로무알두스는 말돌루스(Maldolus)라는 사람에게 약간의 땅을 기증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말돌루스는 하얀 수도복을 입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수도자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성 로무알두스는 아레초 교구장의 승인을 받고 ‘말돌루스의 땅(Campus Maldoli)’에 다섯 개의 은둔소를 마련했는데, 이 은둔소들이 나중에 카말돌리(Camaldoli)회라고 불리게 되었다.

성 로무알두스가 생각한 수도생활은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근간으로 하며 수도원에서 지내는 공주 수도생활과 은둔소에서 지내는 독거 은수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형태였다.

그는 1027년 6월 19일 자신이 세운 발 디 카스트로(Val di Castro) 은수처에서 평화롭게 선종했다. 그 후 그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1481년 2월 7일 유해를 파브리아노(Fabriano)의 성 비아지오(Viagio)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1595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는 그를 성인품에 올리며 유해 이장일인 2월 7일에 축일을 기념하도록 정했다. 현재는 1969년의 전례력 개정과 함께 본래 선종일인 6월 19일로 다시 돌아가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보니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onifac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74-1009년 쿠에르푸르트

 

 

보니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니파시오,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브루노.

 

 

보니파시오 자료

독일 작센(Sachsen) 지방 쿠에르푸르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브루노(Brun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6살이 되자 교육을 위해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주교좌 학교로 보내졌고, 훌륭한 교육을 받아 젊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고 오토 3세(Otto III) 황제의 궁중으로 들어가 궁중 사제가 되었다.

그는 황제의 대관식 수행원으로 로마에 갔다가 슬라브(Slave)의 사도요 프로이센(Preussen)의 사도로 활동하던 프라하(Prague)의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4월 23일)를 만났다. 그의 선교 활동에 크게 감동한 브루노는 성 아달베르투스가 수도승이 된 수도원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998년, 성 아달베르투스가 순교한 다음 해에 그는 라벤나(Ravenna) 인근에 오토 3세가 세운 성 베네딕투스 수도원에 입회했다. 보니파티우스를 수도명으로 정한 그는 그곳에서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6월 19일)의 제자가 되어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수련을 받았다.

1003년 성 보니파티우스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Sylvester II)의 임명을 받고 동유럽 선교의 책임자가 되어 이듬해에 로마를 떠났다. 그는 동료 수도승들이 순교한 소식을 듣고 독일 지역으로 향했다. 나중에 그는 선교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마가르족들에게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키예프(Kiev)까지 가서 그곳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프로이센 사람들에 대한 복음화 사업을 꾸준히 수행하다가 18명의 동료와 함께 키에프 공국과 리투아니아 국경 근처에서 러시아인들에게 학살당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 후 그들은 모두 순교자로 공경받았다.

폴란드의 브라운스베르크(Braunsberg)는 브루노의 순교 이후 생긴 이름이라 한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보통 ‘쿠에르푸르트의 브루노’ 또는 ‘제2의 프로이센의 사도’로 불린다. “로마 순교록”은 6월 19일에 그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0월 15일에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오도

 

  • 가톨릭 성인 이름
    Od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13년 캉브레

 

 

오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오도 자료

오도는 프랑스 오를레앙(Orleans) 출신이다. 그는 젊어서 트로이 전쟁에 대한 시를 썼는데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툴(Toul)의 대성당 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육 업무에 종사함으로써 그의 탁월한 능력을 평가받아 인근 마을뿐만 아니라 노르망디(Normandie)에서 이탈리아까지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보에티우스(Boethius)의 추종자이며 실존철학을 신봉하던 그는 릴(Lille)의 렝베르가 가르친 유명론(唯名論)을 반박하는데 성공하여 더욱 인기가 높았다.

세속 학문에 심취해 있던 그는 신학이나 교부들의 저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으나, 그가 투르네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보에티우스 강의를 하던 중에 최초로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저서 중에서 자유 의지에 관한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그는 지난날의 모든 학문적 업적을 팽개치고 갑자기 그리고 완전히 개종하였다.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뒤에 장시간 동안 성당에서 지내면서 스스로 고행을 실시하였다. 그 후 그는 친구의 권고를 받고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다가 1105년에 캉브레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헨리 4세와의 문제 때문에 추방령을 받았을 때에는 친구이던 에메리쿠스(Emericus)와 더불어 안친에 은둔소를 만들고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주로 원죄와 재림에 관한 글을 남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우르시치노

 

  • 가톨릭 성인 이름
    Ursic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의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7년경 라벤나

 

 

우르시치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우르시치누스, 우르시키노, 우르시키누스.

 

 

우르시치노 자료

밀라노의 성 비탈리스(Vitalis, 4월 28일) 가족 순교자들의 순교 행전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성 우르시키누스(또는 우르시치노)는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Liguria) 출신의 의사였다.

그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신앙 때문에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 집정관과 함께 라벤나를 방문한 성 비탈리스의 권고에 용기를 내어 기꺼이 순교를 받아들였다.

그가 참수된 뒤에 성 비탈리스가 그의 시신을 수습해 라벤나에 묻었고, 성 비탈리스 또한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 생매장을 당해 순교하였다.

이런 이유로 성 우르시키누스는 일반적으로 성 비탈리스와 그의 아내인 성녀 발레리아(Valeria, 4월 28일), 그리고 그들의 쌍둥이 아들인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이야기와 함께 언급된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성 비탈리스 가족과 함께 그려지거나 참수된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제르바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ervas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세기경 밀라노

 

 

제르바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르바시오, 게르바시우스, 제르바시우스, 제르바씨오, 제르바씨우스.

 

 

제르바시오 자료

386년 밀라노에 아름다운 대성당을 건축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는 시민들로부터 로마와 같이 장엄하게 성당을 봉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성인들의 유해나 유물을 구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꿈속에서 유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을 보게 되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도시 외곽에 있는 성 나보르(Nabor)와 성 펠릭스(Felix, 이상 7월 12일) 성당에 있는 무덤을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 또는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의 무덤을 발견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두 성인의 유해를 새로 건축한 대성당에 안치했고, 그 성당은 나중에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실제로 성 암브로시우스는 세상을 떠난 후 평소 원하던 대로 두 순교자 곁에 묻혔다. 835년에 세 성인의 유해가 석관에 안장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1864년 이 석관의 유해가 다시 발견되었다. 이들의 유해는 현재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 중앙 제대 아래에 모셔져 있다.

성인전(Acta Sanctorum)의 기록에 따르면, 성 게르바시우스와 성 프로타시우스는 밀라노의 순교자 부부인 성 비탈리스(Vitalis)와 성녀 발레리아(Valeria, 이상 4월 28일)의 쌍둥이 아들로 밝혀졌다. 이 두 형제는 신앙 때문에 어린 나이에 납이 매달린 채찍으로 맞는 태형을 받은 후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순교 시기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 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재위 161~180년) 치하 때로 추정된다. 성 암브로시우스가 그들의 유해를 발견한 후 이탈리아에서 두 성인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의 많은 성당이 두 성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고, 그들의 이름은 일찍부터 성인 호칭 기도에 삽입되었다.

이들은 밀라노의 첫 순교자들로 여겨지며, 밀라노의 수호성인이자 건초 만드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또한 도둑을 찾으려고 할 때 이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풍습도 있다. 이들의 축일은 가톨릭교회에서는 유해가 이장된 6월 19일에 기념하고 있고,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순교한 날로 추정되는 10월 14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조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조시모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0년 스폴레토

 

 

조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소시모, 조시무스, 조씨모, 조씨무스.

 

 

조시모 자료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 때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지방 스폴레토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쿨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ulma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4년

 

 

쿨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마시오, 굴마시우스, 굴마씨오, 굴마씨우스, 쿨마시우스, 쿨마티오, 쿨마티우스.

 

 

쿨마시오 자료

성 가우덴티우스(Gaudentius) 주교와 그의 부제인 성 쿨마티우스(또는 쿨마시오)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Arezzo)에서 순교하였다. 이 때 안드레아(Andreas)라 불리는 평신도와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다른 동료 신자 등 모두 5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토마스 우드하우스

 

  • 가톨릭 성인 이름
    Thomas Woodhouse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35-1573년 영국

 

 

토마스 우드하우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마, 토머스.

 

 

토마스 우드하우스 자료

토마스 우드하우스는 1535년 영국 잉글랜드 중동부 링컨셔(Lincolnshire)에서 태어났다. 그는 국왕 헨리 8세(Henry VIII)와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튜더(Mary Tudor, 1553~1558년 재위) 여왕이 가톨릭을 영국의 국교를 다시 되돌리는 시기에 신학을 공부하고 1558년경 사제품을 받았다. 그

는 링컨셔의 한 작은 본당의 주임 신부로 1년 정도 사목하다가 1558년 11월 17일 메리 여왕이 사망하면서 종교적 급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헨리 8세와 앤 불린(Anne Boleyn)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이 즉위하자 토마스 우드하우스는 1560년 웨일스로 피신해 가정 교사로 지내며 비밀리에 사목 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1561년 5월 14일 미사를 봉헌하던 중 체포되어 런던(London)의 플리트(Fleet) 감옥에 갇혔다. 그는 1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매일 성무일도를 바치고 비밀리에 미사를 봉헌하며 옥중에 있는 다른 죄수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그는 1571년 5월 초에 2년 전에 있었던 잉글랜드 북부 지방의 봉기(The Rising of the North)와 관련해서 복자 요한 스토리(Joannes Storey, 6월 1일)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대신해 교수형을 받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1572년에 파리(Paris)의 예수회 관구장에게 편지를 보내 예수회에 가입하는 열성도 보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19일 당시 여왕의 재무장관이던 윌리엄 세실(William Cecil)에게 편지를 보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종교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로 인해 그는 1573년 6월 16일 런던의 길드홀(Guildhall)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573년 6월 19일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는 종교적 이유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통치 중에 두 번째로 순교한 인물이자 예수회 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순교자이다.

토마스 우드하우스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6월 19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토마스 우드하우스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프로타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rotas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세기경 밀라노

 

 

프로타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따시오, 쁘로따시우스, 프로타시우스.

 

 

프로타시오 자료

386년 밀라노에 아름다운 대성당을 건축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는 시민들로부터 로마와 같이 장엄하게 성당을 봉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성인들의 유해나 유물을 구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꿈속에서 유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을 보게 되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도시 외곽에 있는 성 나보르(Nabor)와 성 펠릭스(Felix, 이상 7월 12일) 성당에 있는 무덤을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또는 프로타시오)의 무덤을 발견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두 성인의 유해를 새로 건축한 대성당에 안치했고, 그 성당은 나중에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실제로 성 암브로시우스는 세상을 떠난 후 평소 원하던 대로 두 순교자 곁에 묻혔다. 835년에 세 성인의 유해가 석관에 안장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1864년 이 석관의 유해가 다시 발견되었다. 이들의 유해는 현재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 중앙 제대 아래에 모셔져 있다.

성인전(Acta Sanctorum)의 기록에 따르면, 성 게르바시우스와 성 프로타시우스는 밀라노의 순교자 부부인 성 비탈리스(Vitalis)와 성녀 발레리아(Valeria, 이상 4월 28일)의 쌍둥이 아들로 밝혀졌다. 이 두 형제는 신앙 때문에 어린 나이에 납이 매달린 채찍으로 맞는 태형을 받은 후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순교 시기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 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재위 161~180년) 치하 때로 추정된다. 성 암브로시우스가 그들의 유해를 발견한 후 이탈리아에서 두 성인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의 많은 성당이 두 성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고, 그들의 이름은 일찍부터 성인 호칭 기도에 삽입되었다.

이들은 밀라노의 첫 순교자들로 여겨지며, 밀라노의 수호성인이자 건초 만드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또한 도둑을 찾으려고 할 때 이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풍습도 있다. 이들의 축일은 가톨릭교회에서는 유해가 이장된 6월 19일에 기념하고 있고,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순교한 날로 추정되는 10월 14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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