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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남자세례명 14가지

피어나네 2023. 8.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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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그레고리오 로페즈, 마크로비오, 막시모, 바오로, 불마로, 사비노, 아우렐리오, 아폴리나리스, 안세지소, 엘리야 (구약인물), 엘리야 (주교), 요셉 바르사바, 율리아노, 플라비아노, 총 14분 목록이에요.

 

7월 20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7월 20일 여자세례명 마르가리타, 바울라, 빌제포르타, 세베라, 카시아, 총 5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2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7월 20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그레고리오 로페즈

  2. 마크로비오

  3. 막시모

  4. 바오로

  5. 불마로

  6. 사비노

  7. 아우렐리오

  8. 아폴리나리스

  9. 안세지소

  10. 엘리야 (구약인물)

  11. 엘리야 (주교)

  12. 요셉 바르사바

  13. 율리아노

  14. 플라비아노

 

7월 2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 그레고리오 로페즈

 

  • 가톨릭 성인 이름
    Gregory Lopez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96

 

 

그레고리오 로페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오 로페즈 자료

에스파냐의 마드리드 출신인 그레고리우스 로페즈(Gregorius Lopez, 또는 그레고리오)는 궁중의 사환으로 일하던 중에 에스트레마두라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순례하였다. 

이때 그는 멕시코에 과달루페의 다른 경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곳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는 베라크루스에서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은수자로 살만한 곳을 찾다가, 어느 한적한 계곡에서 기도와 고행으로 평화스럽게 얼마를 살았다.

그 후 그는 도미니코회의 유명한 선교사의 권유를 받고 멕시코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으나, 몇몇 공동체에서 생활한 결과 자신은 공동생활보다 은수자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부터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멕시코의 대주교조차 그를 일컬어 특별한 신심과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그의 철저한 가난 생활은 지나칠 정도였고, 늘 성서 공부를 하여 성서에 뛰어난 지식을 가졌다. 그는 54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는데 멕시코 전역에서 그를 공경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크로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acrob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크로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끄로비오, 마끄로비우스, 마크로비우스.

 

 

마크로비오 자료

성 사비누스(Sabin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마크로비우스(또는 마크로비오), 성녀 카시아(Cassia), 성녀 바울라(Paula)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성 사비누스(Sabin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마크로비우스(Macrobius), 성녀 카시아(Cassia), 성녀 바울라(Paula)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1년 코르도바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성 바오로(Paulus) 부제는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에 있는 성 조일루스(Zoilus)의 수도원에 속해 있었다. 그는 무어인들에 의해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봉사하였다. 그가 참수되었을 때 그의 동료들은 그의 유해를 정성껏 수습해 성 조일루스 성당에 안치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불마로

 

  • 가톨릭 성인 이름
    Vulma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00년경

 

 

불마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불마루스, 불마르.

 

 

불마로 자료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의 불로뉴 출신인 성 불마루스(Vulmarus, 또는 불마로)는 기혼자였으나 아내의 요구에 따라 갈라선 뒤에 오트몬트 대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로 소를 기르거나 숲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곧 그의 기도 정신이 뛰어나고 또 지혜가 번쩍였으므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몇 년 동안을 몬테 카셀 근교의 은둔소에서 독수생활을 하다가, 칼레스 지방에 사메르 수도원과 비에르-오-보와 수도원 등을 세웠다.

웨식스(Wessex)의 왕 성 카이드발라(Caedwalla, 4월 20일)는 688년경 로마(Roma)로 가던 중 그의 성덕에 감명을 받아 로마에 도착한 후 교황 성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 9월 8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사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ab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사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비누스, 싸비노, 싸비누스.

 

 

사비노 자료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마크로비우스(Macrobius), 성녀 카시아(Cassia), 성녀 바울라(Paula)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아우렐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ure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29년 카르타고

 

 

아우렐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우렐리우스.

 

 

아우렐리오 자료

392년경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다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성 아우렐리우스(또는 아우렐리오)는 히포(Hippo) 교회에 임명되었다가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그 당시 아프리카 최대의 성당이던 이 히포 교회는 막대한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신임 주교는 두 가지 이단과 싸워야 했는데, 곧 도나투스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였다. 38년간 재임한 그는 이러한 이단 퇴치에 정력을 쏟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또한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도 절친한 친구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폴리나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Apollinar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베드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세기경? 라벤나

 

 

아폴리나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뽈리나리스.

 

 

아폴리나리스 자료

성 아폴리나리스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라벤나 근교에 있는 산 아폴리나리스 인 클라세(San Apollinaris in Classe) 대성전의 묘비명 때문에 잘 알려져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그는 초대교회의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같다. 

그러나 그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단지 1세기경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라벤나의 주교였던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Petrus Chrysologus, 7월 30일)의 “설교집” 128장이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나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주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7세기에 기록된 행전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라벤나의 초대주교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라벤나의 초대주교로서 약 26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여러 기적을 행하였으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우상숭배자들에게 엄격했다고 한다.

박해자들로부터 혹독한 폭행을 당해 거의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뒤에도 계속해서 라벤나 근교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는 다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7월 23일 순교하였다. 그의 축일은 현 로마 가톨릭 전례력에서 7월 20일(이전 7월 23일)로 변경하여 경축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안세지소

 

  • 가톨릭 성인 이름
    Ansegis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70-833년 퐁트넬

 

 

안세지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세기소, 안세기수스, 안세지수스.

 

 

안세지소 자료

프랑스 리옹(Lyon) 출신인 듯 보이는 성 안세기수스(또는 안세지소)는 18세 때에 그의 친척이 원장으로 있는 퐁트넬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의 선성과 학식이 크게 돋보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랭스(Reims)의 성 식스투스(Sixtus) 수도원의 관리를 맡았으며, 보베(Beauvais)의 성 제르메르-드-폴리 수도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원은 건물뿐만 아니라 공동체까지 곧 파괴될 운명에 있었기에 그는 즉시 개혁 사업에 착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퐁트넬 수도원의 장상직을 맡았을 때에는 도서실을 비롯하여 장서 수집에 박차를 가하여 이 분야에서 유명한 수도원으로 만들었다. 만년에는 중병으로 고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엘리야 (구약인물)

 

  • 가톨릭 성인 이름
    Elija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예언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세기경 BC

 

 

엘리야 (구약인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앨리아, 엘리아스.

 

 

엘리야 (구약인물) 자료

성 엘리야(Elias)는 기원전 9세기경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예언자이다. 히브리어 이름의 어원적 의미는 ‘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이다. 구약성서(1열왕 17-19장, 21장; 2열왕 1-2장)에서는 엘리야를 제자인 엘리사(Eliseus, 6월 14일)에 비해 비교적 덜 관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그의 활동 시작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엘리사와는 달리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은 이야기도 전하지 않고 생애 마지막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대기(21,12)에서는 그의 활약을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서 엘리야가 왕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예언적 전승(말라 3,23)이나 지혜 전승(집회 48,1-11)은 이스라엘 후기에 엘리야가 이스라엘 영성에 있어서 핵심 인물로 누린 명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는 시종일관 ‘티스베 사람’이라고 불렸는데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칠십인역에서는 요르단 강 건너편 북쪽에 있는 한 지역, ‘길르앗의 티스베’(1열왕 17,1)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히브리어 구약성서인 마소라 본문은 엘리야를 ‘길르앗의 거류민’이라고 하며 ‘티스베’라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엘리야 자신에 관한 역사적인 모습은 기적적인 전설들 속에 감추어져 있다. 심지어는 그의 이름조차도 그의 열성을 반영하는 가명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엘리야 이야기들의 구조와 세부 묘사들은 예언 말씀, 엘리야의 소명, 그리고 모세의 전승과 연결되고 예언 계승에 대하여 잘 발전된 신학적 사고를 밝히고 있다. 

엘리야의 역할은 이스라엘의 예언 전승 안에서 흥미를 끄는 특성으로 묘사되었다. 즉 엘리야는 야훼 신앙 수호의 영웅으로, 진실한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는 예언자이며 왕가의 압박에 저항하며 살아있는 신앙을 수호한 예언자라는 것이다.

구약 후기 중간 시기 문헌과 랍비 전승에서는 엘리야가 이 세상에서 신비하게 사라진 것에 대해 미래의 하느님 승리의 날에 유일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말라기 3장 23-24절에서는 그가 주님의 날의 선구자라고 예언하였다. 그는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랍비들의 율법 논쟁을 해결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엘리야가 메시아 전승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 여긴다. 이러한 점이 후기 유대 전승에서 약화되었다 할지라도 널리 퍼진 이 특징의 대부분은 열왕기(1열왕 17장) 이야기들의 영향이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하여 사회악과 싸우며 불의한 이를 징벌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전설의 인물로 남아있다. 

그는 중세 민속학에서는 방랑하는 유다인으로 여겨졌고, 유월절 식탁에는 그를 위한 자리가 ‘엘리야의 잔’과 함께 항상 마련되었다. 그는 새로운 탄생의 보호자로 여겨졌으며 ‘엘리야 의자’는 할례식에 고정되어 있다. 

엘리야는 이슬람교 전승에도 강하게 남아있다. 코란에 엘리야는 ‘정의로운 사람들’ 명단에 들어가 있으며, 바알 숭배를 철저하게 적대시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으로 되어 있다.

신약성서는 여러 문맥에서 엘리야를 언급하고 있다. 복음서들은 전승에서 착상하여 “먼저 엘리야가 와야만 한다”고 말한다(마르 9,11; 말라 3,23-24 참조). 또한 엘리야가 불행한 이들을 위하여 호의적으로 개입할 것(말라 15,35-36 참조)을 기다리는 민간 신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루가 전승에 의하면, 예수를 새로운 엘리야라고 하였다. 예수는 엘리야를 언급하며 자신의 고유 임무를 규정하였다(루가 4,25-26). 요한 복음서에서는 세례자 요한을 새로운 엘리야로 보았다(요한 1,21. 25). 이 전승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나타난다. 

엘리야처럼 세례자 요한은 모든 것을 새로이 세우고 또 엘리야처럼 권력가와 충돌하였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가 열렬하여 응답을 받은 그리스도인 기도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야고 5,17-18).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무엇보다도 엘리야의 특징적인 모습은 메시아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대중의 의견은 예수를 이 모습과 동일시하고, 반면에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동일시한다. 

엘리야는 예수의 거룩한 변모 때 모세와 함께 예수의 곁에 있었다. 만일에 모세가 율법을 떠오르게 한다면 엘리야는 예언자를 떠오르게 한다(마태 5,17). 그리고 예수는 그것을 완성하러 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엘리야 (주교)

 

  • 가톨릭 성인 이름
    Eli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18년 예루살렘

 

 

엘리야 (주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앨리아, 엘리아스.

 

 

엘리야 (주교) 자료

성 엘리야는 아랍인으로서 이집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이단 주교인 티모테우스(Timotheus)로부터 정통 가톨릭이란 이유로 그 지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갔다가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의 은둔소에서 잠시 머물렀으며 예리코(Jericho)에 공동체를 세웠다. 여기서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494년에는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 이 당시에 그는 시리아 수도자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를 만났다.

482년에 황제 제노는 가톨릭과 그리스도 단성설자 간의 논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헤노티콘’(Henotikon)이란 칙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가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단성설자를 단죄하는 결과가 나왔고, 동방 교회에서는 이단이 더욱 기세를 부리는 근원이 되어버렸다.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누스와 엘리야도 이 문서를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행동은 다소 애매하였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의 마음속에는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성설자들과 함께 황제를 지원하라는 명을 거절하고 유배를 당하였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로 유배를 갔고, 성 엘리야는 아일라(Aila)로 갔는데, 이 당시에 그의 친구인 성 사바(Sabas)가 그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요셉 바르사바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Barsab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요셉 바르사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사바스, 바르사빠, 요세푸스, 요제프, 유스도, 유스토, 유스투스,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바르사바 자료

성 요셉 바르사바(Josephus Barsabas)는 예수님를 잡아 넘긴 유다(Judas)의 자리를 대신하여 성 마티아(Matthias, 5월 14일)와 경합을 벌였던 사람이다(사도 1,23).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녔고, 예수의 부활의 증인 중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72제자 중의 한 명인 듯하며, 제자들이 흩어진 다음부터 그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였으나 큰 탈 없이 지내다가 끝내는 독살되었다고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말한다.

그는 유스투스(Justus, 또는 유스도)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성 사비누스(Sabin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마크로비우스(Macrobius), 성녀 카시아(Cassia), 성녀 바울라(Paula)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플라비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lav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총대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18년 안티오키아

 

 

플라비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플라비아누스, 플라비안.

 

 

플라비아노 자료

성 엘리아(Elias)는 아랍인으로서 이집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이단 주교인 티모테우스(Timotheus)로부터 정통 가톨릭이란 이유로 그 지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갔다가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의 은둔소에서 잠시 머물렀으며 예리코(Jericho)에 공동체를 세웠다. 여기서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494년에는 예루살렘(Jerusalem)의 주교가 되었다. 이 당시에 그는 시리아 수도자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를 만났다.

482년에 황제 제노는 가톨릭과 그리스도 단성설자 간의 논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헤노티콘’(Henotikon)이란 칙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가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단성설자를 단죄하는 결과가 나왔고, 동방 교회에서는 이단이 더욱 기세를 부리는 근원이 되어버렸다.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누스와 엘리아도 이 문서를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행동은 다소 애매하였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의 마음속에는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성설자들과 함께 황제를 지원하라는 명을 거절하고 유배를 당하였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로 유배를 갔고, 성 엘리아는 아일라(Aila)로 갔는데, 이 당시에 그의 친구인 성 사바(Sabas)가 그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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