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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남자세례명 13가지

피어나네 2023. 8.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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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다니엘, 라우렌시오, 론지노, 빅토르, 아르보가스토, 알렉산데르, 오디노 바로티, 요한, 유스토, 유쿤디노, 조티코, 클라우디오, 펠리치아노, 총 1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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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여자세례명 율리아, 프락세데스,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2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3가지

 

 

 

 

7월 2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다니엘

  2. 라우렌시오

  3. 론지노

  4. 빅토르

  5. 아르보가스토

  6. 알렉산데르

  7. 오디노 바로티

  8. 요한

  9. 유스토

  10. 유쿤디노

  11. 조티코

  12. 클라우디오

  13. 펠리치아노

 

7월 2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3가지

 

 

1. 다니엘

 

  • 가톨릭 성인 이름
    Dani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예언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다니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대니얼.

 

 

다니엘 자료

다니엘서는 구약성경에 속한 예언서이다. 히브리어 경전은 다니엘서를 성문서(聖文書)에 포함해 에스테르기와 에즈라기 사이에 배치하고 있으나, 70인역(Septuaginta)이나 그 밖의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를 예언서로 취급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열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은 이 순서에 따라 다니엘서를 예언서에 배치하고 있다.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판결하신다’는 뜻으로 아이들이 출생할 때 많이 붙여진 이름이다. 다니엘서의 기록에 의하면, 다니엘은 유다 임금 여호야킴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 함께 갔다. 그는 네부카드네자르, 벨사차르, 다리우스, 키루스 임금 치하에서 궁중의 조언자로서, 포로로 끌려 온 자기 민족을 위한 예언자로서 활동했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구약성경이 담고 있는 다니엘에 관한 보도들은 일관되지 못하고 역사성도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다니엘은 바빌론 유배 시대의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서 형성된 상징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상징적 인물의 기원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듯 다니엘서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하시드인(Hasidim, ‘경건한 자들’이란 뜻)에 속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본다. 하시드인으로 구성된 유대교 일파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대략 마카베오 형제들의 항쟁 이전이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으며, 이방 민족들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하시드인은 처음에는 마카베오 형제들의 항쟁을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항쟁이 종교성을 상실한 순수 정치적 실력행사로 판단되는 순간 거기에서 이탈하여 그들 고유의 행동노선을 밟아 갔다. 이들의 직접적인 후예가 바로 바리사이들이다.

다니엘서 저자는 그리스화 움직임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하게 사는 유다인으로 하여금 율법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도증오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동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박해에 직면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고취하고 있다. 

다니엘서 9,4-19절과 3,26-45절은 하시드인들의 정신을 잘 반영해 주는 기도문들이며, 그 기도문들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선성(善性)에 호소하고 있다. 사후(死後)의 상선벌악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교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명해 낸 것은 다니엘서 저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니엘서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바빌론 정부가 자신들의 하수인을 만들기 위해 유다 왕족이나 귀족의 자녀들을 모아 교육할 때 그 대상자로 뽑힌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이름까지 바꾸며 강제로 바빌론 문화를 익혀야 했다. 

다니엘과 그의 동료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는 벨트사차르,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라는 이름으로 임금의 시종(侍從)으로 발탁되었고, 다니엘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꿈을 정확해 해석해줌으로써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그들에게 닥친 첫 시련은 궁중에서 지내면서 율법에 어긋나는 부정한 음식과 술을 강요당한 것이었으나 다니엘은 내시장에게 간청해 슬기롭게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1장).

그러나 최대의 시련은 네부카드네자르가 두라 평야에 금으로 만들어 세운 우상에 절을 해야 한다는 임금의 명령이었다. 모두가 이 명령을 따를 때 다니엘의 세 동료는 결코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수 없었다. 

그들은 고발당해 임금이 선포한 대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졌다. 그러나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 불가마 속에 있는 그들을 구해주었다. 세 젊은이는 가마 속에서 유유히 걸으며 하느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드렸다(3장).

얼마 후 다니엘도 모함을 받아 죽음의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리우스 임금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금령을 어기고, 늘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사람들이 다니엘을 모함해 고발하자 법이 정한 대로 사자 굴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다. 

임금은 다니엘을 아꼈기에 그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이 정한 법을 스스로 어길 수는 없었다. 다니엘은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오히려 악의로 그를 고발했던 사람들이 임금의 명으로 사자 굴에 던져지자마자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말았다. 

다리우스 임금은 조서를 내려 누구든 하느님 앞에서 두려워해야 하며 그분을 찬미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다니엘은 다리우스의 통치 때와 페르시아의 키루스 통치 때에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6장).

다니엘은 수많은 환시를 통해 미래의 일들을 보았고, 예루살렘의 복구와 하느님의 정의가 이루게 될 의인들의 결정적 승리와 부활에 대해 선포했다(7-12장) 또 다른 대표적 일화로는 수산나를 구한 일이 있다.

욕정에 눈먼 두 원로가 아름답고 신앙심 깊은 수산나를 모함해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수산나의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다니엘을 보내주셨다.

다니엘은 슬기로운 판결로 수산나의 무죄를 밝혀내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해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했고, 죄인들에게는 응당한 벌을 주었다(13장). 이렇게 다니엘은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희망을 전한 예언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라우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awrenc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교회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59-1619년 브린디시

 

 

라우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라우렌시오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1559년 7월 22일 나폴리(Napoli) 왕국의 브린디시에서 상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율리오 체사레 루소(Giulio Cesare Russo)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앙심 깊은 부모가 일찍 돌아가자 그는 교육을 위해 베네치아(Venezia)의 삼촌 집으로 갔다. 그리고 1575년에 그곳에 있는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라우렌티우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교회 학문을 공부한 그는 언어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보여, 히브리어 · 그리스어 · 독일어 · 스페인어 · 프랑스어에 대한 상당한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1582년 사제품을 받는 그는 북이탈리아 지방과 알프스 너머까지 순회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로 활동했다. 그는 강론 중에 성경 말씀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는데, 그의 강연과 강론을 주로 담은 “전집”(Opera Omnia)을 보면 성경에 대한 그의 해박한 식견과 다양한 언어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카푸친회의 여러 고위직을 맡아 봉사했는데, 히브리어에 능통했기에 유대인의 개종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많은 랍비들의 개종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1599~1613년 사이에는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독일로 파견되어 그곳의 호전적인 프로테스탄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 나라의 주요 도시에 카푸친회 수도원을 설립한 그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돌아오도록 했고, 그가 설립한 수도원들은 후일 각기 관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1601년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의 요청으로 수석 군종신부로 임명되어 고전 중이던 터키인과의 전투에 직접 말을 타고 십자가를 높이 들고 나가 독일 군사들을 격려해 승리로 이끌었다. 

1602년 카푸친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 그는 1605년 이후 교황과 황제의 특사 등을 활동하며 노련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1610년에 가톨릭 연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1614년에는 에스파냐와 사보이아(Savoia) 왕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고, 총독의 학정에 시달리던 나폴리 사람들을 대표해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Felipe III)를 만나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1619년 7월 22일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설교를 마치고 배를 타기 위해 이동하다가 선종했다. 

그 후 그의 시신은 에스파냐 북부 아스토르가(Astorga) 교구의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 있는 클라라회의 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교회에 헌신했다. 또한 그는 저술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는데, 특별히 성경 주석가로서 그의 능력은 강론과 강연, 성경 주해서(창세기와 에제키엘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와의 논쟁 등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반종교 개혁 과정에서 교회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는 1783년 5월 23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12월 8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는 1959년 3월 19일에 그의 열렬한 활동과 폭넓고 조화로운 학식을 인정해 그를 특별히 ‘사도적 교회학자’(Doctor Apostolicus)로 선포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천상 탄일인 7월 22일 목록에서 그의 업적을 설명하며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며 7월 7일로 축일이 정해졌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1일 목록에서 그를 기념하며 7월 22일 리스본에서 선종했다는 사실을 함께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론지노

 

  • 가톨릭 성인 이름
    Long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 마르세유

 

 

론지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론기노, 론기누스, 론지누스.

 

 

론지노 자료

성 빅토르(Victor)는 마르세유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이었다.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그는 집정관 아스테리우스와 에우티키우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처신함으로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도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성 론지누스(또는 론지노) 등 3명의 간수들을 개종시켰다.

이들 세 사람의 간수들은 유피테르(Jupiter) 신상 앞에 봉헌하라는 명을 뿌리치고 순교하였고, 성 빅토르는 참수치명 하였다. 그의 무덤은 프랑스 지방에서도 가장 붐비는 순례의 중심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빅토르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 마르세유

 

 

빅토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르, 빅또리오, 빅또리우스, 빅똘, 빅토리오, 빅토리우스, 빅톨.

 

 

빅토르 자료

성 빅토르는 마르세유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이었다.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그는 집정관 아스테리우스와 에우티키우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처신함으로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도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성 론지누스(Longinus) 등 3명의 간수들을 개종시켰다.

이들 세 사람의 간수들은 유피테르(Jupiter) 신상 앞에 봉헌하라는 명을 뿌리치고 순교하였고, 성 빅토르는 참수치명 하였다. 그의 무덤은 프랑스 지방에서도 가장 붐비는 순례의 중심지이다. 그는 빅토리우스(Victori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아르보가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rbogas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스트라스부르

 

 

아르보가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르보가스또, 아르보가스뚜스, 아르보가스뜨, 아르보가스투스, 아르보가스트.

 

 

아르보가스토 자료

프랑크계의 주교인 성 아르보가스투스(Arbogastus, 또는 아르보가스토)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의 아키텐(Aquitaine) 지방에서 활동했고, 알자스(Alsace)에서는 나무속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국왕 다고베르트(Dagobert)가 사냥하던 중, 아들이 멧돼지에게 물려가 찾을 길이 없었을 때 이 거룩한 은수자가 기도하여 그를 되찾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왕은 그의 성덕을 높이 평가하여 스트라스부르 주교로 임명하였는데, 그는 겸손과 온유로써 교구민들을 지혜롭게 다스렸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에 유해를 자신의 움막에 묻어달라는 유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으며, 그 위에 기념 성당이 세워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 마르세유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성 빅토르(Victor)는 마르세유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이었다.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그는 집정관 아스테리우스와 에우티키우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처신함으로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도 성 알렉산데르,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성 론지누스(Longinus) 등 3명의 간수들을 개종시켰다.

이들 세 사람의 간수들은 유피테르(Jupiter) 신상 앞에 봉헌하라는 명을 뿌리치고 순교하였고, 성 빅토르는 참수치명 하였다. 그의 무덤은 프랑스 지방에서도 가장 붐비는 순례의 중심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오디노 바로티

 

  • 가톨릭 성인 이름
    Oddino Barrott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400년 포사노

 

 

오디노 바로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로띠, 오디누스, 오띠노, 오띠누스.

 

 

오디노 바로티 자료

오디노 바로티는 평범한 시골 본당 사제였다. 1360년 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포사노의 고향 마을 본당인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본당의 신부로 부임하였다. 

토리노(Torino)의 주교가 그의 식탁에 고기를 올려놓아야 한다고 명을 내릴 정도로 가난하게 살면서 오로지 양떼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꼭 필요한 음식들도 손수 조달하고, 남는 것은 모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거나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공했다.

그 후 그는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면서부터 사제관을 빈곤한 사람들의 휴식처로 제공하였다. 1381년에는 성지 순례를 하였으며,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하여 무료 병원이 건립되었다.

그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또 포사노 지방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오디노 신부는 밤낮으로 병자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침상을 떠나지 않고 돌보던 중 자신도 병에 걸려 운명하였다. 진정한 본당신부상을 보여준 오디노 바로티에 대한 공경은 1808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에데사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성 요한(Joannes)은 서남 아시아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인 에데사의 수도승이었다. 그는 성 시메온 살루스(Simeon Salus, 7월 1일)의 친구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유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Ju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트루아

 

 

유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스또, 유스뚜스, 유스투스.

 

 

유스토 자료

성녀 율리아(Julia)는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태어났다. 처녀였던 그녀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군인들이 테트리쿠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포되어 전쟁의 전리품으로서 황제군의 장교였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소유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개종시켰고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이때 트루아에서 그들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한 이로는 성 유스투스(또는 유스토)와 성 유쿤디누스(Jucundinus)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네 명의 순교자 있었다. 그들의 유해는 모(Meaux) 지방 근처 주아르(Jouarre)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유쿤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cund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트루아

 

 

유쿤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꾼디노, 유꾼디누스, 유쿤디누스.

 

 

유쿤디노 자료

성녀 율리아(Julia)는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태어났다. 처녀였던 그녀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군인들이 테트리쿠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포되어 전쟁의 전리품으로서 황제군의 장교였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소유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개종시켰고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이때 트루아에서 그들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한 이로는 성 유스투스(Justus)와 성 유쿤디누스(또는 유쿤디노)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네 명의 순교자 있었다. 그들의 유해는 모(Meaux) 지방 근처 주아르(Jouarre)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조티코

 

  • 가톨릭 성인 이름
    Zot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04년 카파도키아

 

 

조티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조띠꼬, 조띠꾸스, 조티쿠스.

 

 

조티코 자료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는 카파도키아 지방 코마나(Comana)의 주교인 성 조티쿠스(또는 조티코)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몬타누스파(Montanism) 이단에 열성적으로 반대한 유명한 주교로 그들의 오류와 거짓 예언을 단죄하였다. 그는 신앙 때문에 세베루스 황제 때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클라우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lau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트루아

 

 

클라우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글라우디오, 글라우디우스, 끌라우디오, 끌라우디우스, 클라우디우스.

 

 

클라우디오 자료

성녀 율리아(Julia)는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태어났다. 처녀였던 그녀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군인들이 테트리쿠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포되어 전쟁의 전리품으로서 황제군의 장교였던 성 클라우디우스(또는 클라우디오) 소유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개종시켰고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이때 트루아에서 그들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한 이로는 성 유스투스(Justus)와 성 유쿤디누스(Jucundinus)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네 명의 순교자 있었다. 그들의 유해는 모(Meaux) 지방 근처 주아르(Jouarre)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펠리치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c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 마르세유

 

 

펠리치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뻴리치아노, 뻴리치아누스, 펠리치아누스, 펠리키아노, 펠리키아누스.

 

 

펠리치아노 자료

성 빅토르(Victor)는 마르세유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이었다.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그는 집정관 아스테리우스와 에우티키우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처신함으로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도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또는 펠리치아노), 성 론지누스(Longinus) 등 3명의 간수들을 개종시켰다.

이들 세 사람의 간수들은 유피테르(Jupiter) 신상 앞에 봉헌하라는 명을 뿌리치고 순교하였고, 성 빅토르는 참수치명 하였다. 그의 무덤은 프랑스 지방에서도 가장 붐비는 순례의 중심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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