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다비오, 메넬레오, 반드레지실로, 아우구스티노, 요셉, 요한 로이드, 치릴로, 테오필로, 플라토, 필립보 에반스, 총 10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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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여자세례명 마리아 막달레나, 신티케,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2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7월 22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다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ab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스코틀랜드
다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비우스, 모베안, 비테오, 비테우스.
다비오 자료
아일랜드 태생의 열정적인 사제인 성 다비우스(또는 다비오)는 자신의 고향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큰 결실을 거두었다. 그런 후에 스코틀랜드의 알바니(Albany)로 이주하여 복음 선포에 전념하였다.
그런 이유로 스코틀랜드 다운(Down) 주(州)의 돔나크 클루아나(Domnach Cluana) 본당과 하이랜즈(Highlands) 주(州의) 키파우(Kippau) 본당을 포함한 몇 개의 본당이 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일부 성인 목록에서 다비우스(Davius)로도 불리는 그는 아마도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3월 17일)의 제자 중 한 명이거나 비테우스(Biteus)로도 불리는 성 모베안(Movean)과 동일 인물일 수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메넬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enel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20년 메나
메넬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넬레우스.
메넬레오 자료
성 메넬레우스(또는 메넬레오)는 프랑스의 앙주(Anjou)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샤를대제(Charlemagne)와 가까운 동맹이었고 항상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했다.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청혼이 들어온 영주의 딸과 약혼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기를 원했던 그는 고향을 떠나 오베르뉴(Auvergne)로 가서 코메리(Cormery)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7년 동안 성 에우도(Eudo) 원장의 지도를 받으며 살았다. 그런 다음 그는 클레르몽(Clermont) 부근 메나 수도원을 복구할 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오베르뉴와 앙주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반드레지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Wandregis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68년
반드레지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반드레기실로, 반드레기실루스, 반드레지실루스, 반드릴.
반드레지실로 자료
성 반드레지실루스(또는 반드레지실로)는 베르됭(Verdun) 인근에서 태어났고, 카롤링 왕가의 창시자인 피핀의 집안이다.
그는 철이 들자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다고베르트(Dagobert) 왕궁으로 보내져서 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였고,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부모에 의해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항상 수도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아내도 그를 인정하여 남매처럼 살다가 각자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그는 몽포콩(Montfaucon) 수도원에서 성 발데리쿠스(Baldericus, 10월 16일)의 지도를 받다가 완전한 독수생활을 위해 두브 강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움막을 짓고 5-6년간 철저한 생활을 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그 후 퐁트넬(Fontenelle) 대수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는 특히 주민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는 대수도원의 수도자들보다 인근의 농부들과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의 높은 인품에 감명한 개종자들이 나날이 늘어났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위로이자 보호자이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제자들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반드릴(Wandrill)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아우구스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ugustine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430-1493년 비엘라
아우구스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노 자료
아우구스티누스 판지(Augustinus Fangi,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비엘라(Biella) 태생으로 고향에 있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오랜 동안 앓았던 병으로 얻은 그의 놀라운 인내심은 동료 형제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후일 그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에는 원장으로 피선되었고, 다소 이완된 규칙을 더욱 엄격히 세우는 등 성공적으로 동료 수도자들을 성덕으로 인도하였다.
또한 그의 설교 역시 뛰어나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 자신은 지극히 겸손하게 처신하였다. 그는 베네치아(Venezia)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10여 년을 지내다가, “하느님을 찬미할지어다!” 하는 소리를 되뇌면서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요셉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56년 팔레스티나
요셉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자료
유명한 유대교 랍비인 힐렐(Hillel)의 보조자들 중의 한 명이며 티베리아(Tiberias) 성서 학교의 원장이던 성 요셉 코메스(Josephus Comes)는 랍비 힐렐이 남긴 책들 중에서 몇 권의 그리스도교 서적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에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을 뵈옵고 "나는 너희 조상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이다. 나를 믿어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도 그는 용기가 없었는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힘이 자신에게 생기고 나서부터 차츰차츰 개종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의 지위가 달소 회당의 율법학자였기 때문에 미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복음서를 자주 읽는 그를 의심하던 유대인들이 그를 시드누스 강으로 집어던지는 일이 생겼는데, 이 박해로 인하여 그는 마음이 열려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스키토폴리스(Scytopolis)로 가서 활동하다가 7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요한 로이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Lloy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79년 영국
요한 로이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로이드 자료
영국 웨일스 중동부 포이스(Powys)에서 태어난 성 요한 로이드(Joannes Lloyd)는 교구사제였다. 그는 겐트(Ghent)에서 교육을 받고 1649년부터는 에스파냐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성 알바누스(Albanus) 왕립대학의 영국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1649년 선교사 서원을 하고 영국 선교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웨일스 지방에서 비밀리에 가톨릭 신자들을 돌보며 선교사제로 활동하던 그는 1678년 11월 티투스 오츠(Titus Oates)의 ‘가톨릭 음모 사건’으로 혼란한 와중에 글러모건셔(Glamorganshire)의 펠린(Penllyn)에서 체포되었다.
1678년 영국 국교회 사제이자 배교자인 오츠는 가톨릭 교회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왕을 암살하고 가톨릭 신자인 왕을 세울 음모를 꾸민다고 주장하여 런던을 공포정치에 빠뜨렸었다.
카디프(Cardiff) 성 감옥에 갇혀있던 성 요한 로이드는 12월 말에 감옥에서 같은 혐의로 12월 초에 체포되어 들어온 예수회 사제 성 필리푸스 에반스(Philippus Evans)를 만났다. 그들은 티투스 오츠의 음모 사건과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고 기소되었다.
1679년 5월까지 재판이 연기되었지만 사건 자체가 조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몇 달에 걸친 혹독한 조사와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어떠한 혐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성 요한 로이드와 성 필리푸스 에반스 신부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톨릭 사제로서 법이 금지하는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다는 이유로 반역죄를 선고받았다. 7월 22일 오전, 두 사제는 카디프(Cardiff) 근처 처형장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요한 로이드와 성 필리푸스 에반스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에 포함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들의 축일은 순교일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의 축일과 겹치는 관계로 7월 23일로 옮겨 기념했다가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교황에 의해 그날 기념하는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Birgitta)가 ‘유럽의 6위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선포되면서 두 신부에게 봉헌된 성당 등에서만 7월 23일에 축일을 기념하였다.
1970년 시성식 이후부터 두 사제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한편 웨일스 지방에서는 5월 4일 외에도 기존의 10월 25일을 ‘웨일스의 6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별도의 축일로 유지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치릴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00년 안티오키아
치릴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치릴로 자료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티메우스(Timaeus)를 계승하여 280년에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비록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평화로이 선종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테오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ph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령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89년 키프로스
테오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필로, 떼오필루스, 테오필루스.
테오필로 자료
성 테오필루스(또는 테오필로)는 황제군의 장교로 키프로스에 주둔하고 있다가 사라센의 침략으로 인해 체포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함대의 총사령관으로서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저항하였다. 결국 체포되어 1년여의 감옥생활 끝에 그는 신앙을 부정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플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Plat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6년 안키라
플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쁠라또, 플라또, 플라똔, 플라톤.
플라토 자료
성 안티오쿠스(Antiochus, 7월 15일)의 형제인 성 플라토는 부유한 젊은이였다. 그는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플라톤(Platon)으로도 불리는 그는 동방교회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필립보 에반스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Evan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45-1679년 영국
필립보 에반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에반스 자료
성 필리푸스 에반스(Philippus Evans, 또는 필립보)는 영국 웨일스 남동부 만머스셔(Monmouthshire)의 만머스에서 1645년에 태어났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 지방 생토메르(Saint-Omer)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다가 20살 때인 1665년 9월 7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75년에 벨기에 남동부 리에주(Liege)에서 사제품을 받은 성 필리푸스 에반스는 남부 웨일스 지방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1678년 티투스 오츠(Titus Oates)의 ‘가톨릭 음모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국교회 사제이자 배교자인 오츠는 가톨릭 교회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왕을 암살하고 가톨릭 신자인 왕을 세울 음모를 꾸민다고 주장하여 런던을 공포정치에 빠뜨렸다.
성 필리푸스 에반스는 잠시 피신하라는 연락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몇 달이 지난 12월 초, 그는 글러모건(Glamorgan)의 스컬(Sker)에 있는 한 신자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영국 왕을 국교의 최고 수장으로 인정하고 교황권을 배격한다는 서약을 거부하고 카디프(Cardiff) 성의 지하 감옥에 갇혔다. 12월 말 일반 감옥으로 이송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11월부터 갇혀있던 교구사제 성 요한 로이드(John Lloyd)를 만났다.
그들은 티투스 오츠의 음모 사건으로 체포되고 기소되어 1679년 5월까지 재판이 연기되었지만 사건 자체가 조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어떠한 혐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성 필리푸스 에반스와 성 요한 로이드 신부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톨릭 사제로서 법이 금지하는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다는 이유로 반역죄를 선고받았다. 7월 22일 오전, 두 사제는 카디프(Cardiff) 근처 처형장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필리푸스 에반스와 성 요한 로이드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에 포함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들의 축일은 순교일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의 축일과 겹치는 관계로 7월 23일로 옮겨 기념했다가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교황에 의해 그날 기념하는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Birgitta)가 ‘유럽의 6위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선포되면서 두 신부에게 봉헌된 성당 등에서만 7월 23일에 축일을 기념하였다.
1970년 시성식 이후부터 두 사제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2000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한편 웨일스 지방에서는 5월 4일 외에도 기존의 10월 25일을 ‘웨일스의 6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별도의 축일로 유지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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