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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여자세례명 5가지

pieonane 2023. 9.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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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가타리나, 로사, 로살리아, 이다, 칸디다, 총 5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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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남자세례명 루피노, 마뇨, 마르첼로 (신부), 마르첼로 (주교), 막시모, 모세, 보니파시오 1세, 비탈리코, 실바노, 암미아노, 오체아노, 울탄, 율리아노, 젠틸리스, 카스토, 타멜, 테오도로, 총 17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4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5가지

 

 

 

 

9월 4일 여자세례명 목록

 

  1. 가타리나

  2. 로사

  3. 로살리아

  4. 이다

  5. 칸디다

 

9월 4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5가지

 

 

1. 가타리나

 

  • 가톨릭 성인 이름
    Catherine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486-1547년 라코니지

 

 

가타리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가타리나 자료

카타리나 마테이(Catharina Mattei, 또는 가타리나 마테이)는 1486년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가 낡아빠진 광에서 태어난 것은 묘하게도 그녀의 일생이 물질적으로 궁핍하며 건강치 못하고 또 이해받지 못한 사람으로 살 것임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녀는 영적으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미 5살 때부터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대한 남다른 신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집안에서 힘든 일을 하거나 굶주림으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큰 위로를 받곤 하였다.

1500년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축일에 그녀는 이 성인에게 기도하였는데, 참으로 기적적으로 성 스테파누스가 발현하여 성령께서 특별히 보살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이때 세 줄기의 빛이 그녀를 비추며, “나는 네 안에 내 거처를 정하고, 너의 영혼을 깨끗하고 밝게 할 것이며, 생기를 주리라”고 했다.

그 후 카타리나는 신비적인 신랑과의 동정 서원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가락에는 신비스런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가시관과 주님의 오상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 후 카타리나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영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악마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등 오랜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62세 때 카르마뇰라에서 운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10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녀는 라코니지의 카타리나로도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사

 

  • 가톨릭 성인 이름
    Ros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3회원

  • 활동 연도와 지역
    1234?-1251/1252년 비테르보

 

 

로사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싸, 로즈.

 

 

로사 자료

이탈리아의 비테르보에서 태어난 성녀 로사(Rosa)는 병을 앓던 8세 때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복을 입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에도 집에서 그냥 지내면서 평범한 여성으로 자랐다.

병에서 회복된 그녀는 평신도의 회개 복장을 하였고, 우리 주님의 고난을 더욱 절실히 체험하게 되었으며, 죄인들의 무례함과 배은망덕을 대신 속죄하였다. 그 후 12세경부터 그녀는 타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길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가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무수한 경고를 하였다. 그로 인해 그녀는 집에 감금되었고, 만일 다시 정치 지도자들을 비방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결국 성녀 로사와 그녀의 부모는 추방되어 소리아노(Soriano)로 갔는데, 여기서 그녀는 그 당시의 독재자인 프레데릭 황제의 죽음을 예고하였고, 그것은 꼭 13개월 후에 일어났다.

이때부터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비테르보에 있던 로사의 성 마리아 수녀원 입회를 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본당사제가 성당 곁에 수녀원을 만들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살도록 주선하였으나 집으로 돌아와서 곧 선종하였다. 그녀는 1457년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로살리아

 

  • 가톨릭 성인 이름
    Rosal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60년? 팔레르모

 

 

로살리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살리, 로쌀리아, 로잘리, 로잘리아.

 

 

로살리아 자료

오래전부터 시칠리아(Sicilia)에서는 성녀 로살리아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으나 옛 순교록에는 그녀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성녀 자신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비문도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서 40일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는데, 그 비문에는 “퀴스퀴나(Quisquina)의 영주인 시니발디(Sinibaldi) 백작과 로사(Rosa)의 딸인 나 로살리아는 주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이 동굴에서 살기로 결심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비문과 전설에 따르면, 성녀 로살리아는 퀴스퀴나의 영주인 시니발디 백작과 로사의 딸로 시칠리아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그녀는 바실리오회의 수녀가 되었다가 그 뒤에 두 천사의 인도로 몬테 코스키나(Monte Coschina)와 팔레르모 근처에 있는 펠레그리노(Pelegrino) 산의 한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하였다.

1624년 시칠리아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의 시신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장엄한 행렬을 따라서 팔레르모로 옮겨졌고, 그 후로 전염병이 사라지면서 성녀 로살리아는 팔레르모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1630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가 그녀의 이름을 “로마 순교록”에 포함하였다.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날인 7월 15일을 축일로 기념하기도 하지만, 현재 축일인 9월 4일은 그녀가 죽은 날로 추정한 날이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 널리 퍼졌으며, 이탈리아인들의 이민으로 해외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동굴에 소성당이 세워졌고, 그녀의 유해는 팔레르모 주교좌 성당 내의 아름다운 소성당에 모셔져 있다.

성녀 로살리아에 관한 전설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이다. 팔레르모의 한 노인에게 성녀가 나타나 펠레그리노 산의 어느 동굴에 가면 자신의 시신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그 동굴에서 성녀 자신이 쓴 비문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624년 무서운 페스트가 퍼졌을 때 사람들이 성인 호칭 기도 뒤에 성녀의 이름을 추가해 기도하자 페스트가 사라졌고, 1693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성녀 로살리아에게 기도해서 팔레르모가 큰 피해를 모면하게 되었다.

그 후 팔레르모 주민들은 성녀 로살리아를 페스트와 지진에서 구해 주는 성녀로 공경하게 되었고, 점차 인근 지역과 여러 나라로 그녀에 대한 공경이 퍼져나갔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5일 목록에서 성녀의 시신이 발견되어 전염병에서 시칠리아를 구했다는 사실과 9월 4일 목록에서 팔레르모에서 왕실 혈통의 그 도시 출신 성녀 로살리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궁정을 떠나 산속 동굴에서 홀로 천상의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4일 목록에서 팔레르모의 동정녀 성녀 로살리아가 펠레그리노 산에서 고독한 삶을 살았다고 간단히 언급하였다. 그녀는 로잘리(Rosali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이다

 

  • 가톨릭 성인 이름
    Id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 활동 연도와 지역
    +825년 헤르츠펠트

 

 

이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다.

 

 

이다 자료

성녀 이다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신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확실한 것은 그녀가 카롤링거 왕조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고,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손녀딸 또는 증손녀로서 궁중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한 후에는 작센(Sachsen) 지방 귀족 가문의 아들인 에크베르트(Ekbert) 공작과 결혼하여 고향을 떠나 독일 북서부 베스트팔렌(Westfalen) 지방의 오스나브뤼크(Osnabruck) 근처에 있는 남편의 영지로 이사하였다.

811년 남편이 사망하여 과부가 된 성녀 이다는 처음 그곳으로 올 때 꿈에 천사가 나타나 성당을 지으라고 해서 그 지역 최초의 성당으로 건립한 헤르츠펠트 성당에 남편을 묻었다.

그리고 성당 곁에 살며 기도와 극도의 고행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돌관을 미리 만들어 두고 그 속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음식을 보관했다고 한다.

성녀 이다는 825년 9월 4일 선종하여 베스트팔렌 지방 최초의 순례지가 된 헤르츠펠트 성당에 묻혔다. 그녀는 임신부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이다와 함께 종종 등장하는 사슴은 당시 오랜 전쟁으로 프랑크족의 억압을 받고 있던 작센 사람들을 상징하는데, 성녀 이다는 작센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4일 목록에 성녀 이다를 추가하면서, 에크베르트 공작의 미망인인 성녀 이다가 독일 작센주 헤르츠펠트에서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과 기도에 헌신한 인물로 유명하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칸디다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베드로의 제자,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8년 로마

 

 

칸디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자료

로마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온 성녀 칸디다는 사도 베드로(Petrus)가 로마로 가는 여정 중에 나폴리(Napoli)를 통과할 때 처음으로 그를 환영한 여인으로 사도에 의해 기적적으로 병의 치유를 받았다.

그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사도 베드로의 제자가 되었고, 후에 나폴리의 초대주교가 된 성 아스프레누스(Asprenus, 8월 3일)를 개종시켰다.

성녀 칸디다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로마 성문 밖 오스티아노(Ostiano) 가도에서 순교하였다. 9세기에 그녀의 유해는 교황 성 파스칼 1세(Paschalis I)에 의해 성 프락세데스(Praxedes) 성당에 안치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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