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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남자세례명 9가지

pieonane 2023. 10.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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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리고리오, 마우릴리오, 베네리오, 아마토 (주교), 아마토 (신부), 에울로지오, 요한 크리소스토모, 율리아노, 필립보, 총 9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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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9월 1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리고리오

  2. 마우릴리오

  3. 베네리오

  4. 아마토 (주교)

  5. 아마토 (신부)

  6. 에울로지오

  7. 요한 크리소스토모

  8. 율리아노

  9. 필립보

 

9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리고리오, 마우릴리오, 베네리오, 아마토 (주교), 아마토 (신부), 에울로지오, 요한 크리소스토모, 율리아노, 필립보)

 

 

1. 리고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igo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리고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리고리우스.

 

 

리고리오 자료

동방 교회의 순교자인 성 리고리우스(또는 리고리오)는 이교도 군중들에 의해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우릴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auri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3년 앙제

 

 

마우릴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우릴리우스.

 

 

마우릴리오 자료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 태생인 성 마우릴리우스(또는 마우릴리오)는 투르(Tours)로 건너가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의 제자가 되어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비교적 엄격한 선교사였다. 이교 신전을 보면 그는 분을 참지 못하여 파괴한 뒤 그 곳에다 성당을 지었는데, 만년에 그는 앙제의 주교로서 30여년을 사목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베네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Ven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

 

 

베네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네리우스.

 

 

베네리오 자료

성 베네리우스(또는 베네리오)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만(灣)에 위치한 티노(Tino) 섬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 후 그는 그 섬에 있는 수도 공동체의 원장이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아마토 (주교)

 

  • 가톨릭 성인 이름
    Am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90년경 시옹

 

 

아마토 (주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마또, 아마뚜스, 아마투스, 암, 에미.

 

 

아마토 (주교) 자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성 아마투스(또는 아마토)는 아가우눔(Agaunum)의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스위스 아곤(Agaune)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떠날 때까지 바위를 깎아 만든 작은 방에서 살았다.

669년경 그는 스위스 남서부 발레(Valais) 주에 있는 시옹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뛰어난 사목자로서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애정을 갖고 5년 정도 자신의 교구를 돌보았다.

그러던 중 반대자들에 의해 거짓 고발을 당해 프랑스 페론(Peronne)으로 그리고 다시 브뢰유(Breuil)로 추방되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성당 밖의 작은 방에서 수도자로서 살다가 690년경 선종했다. 그는 암(Ame) 또는 에미(Aim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아마토 (신부)

 

  • 가톨릭 성인 이름
    Am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30년경

 

 

아마토 (신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마또, 아마뚜스, 아마투스, 암, 에미, 에이미.

 

 

아마토 (신부) 자료

성 아마투스(또는 아마토)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의 어느 프랑스계 로마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아가우눔(Agaunum)의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 수도원에서 학생으로 공부하였고, 커서는 공동체의 수도자로 그리고 서른 살부터는 은수생활로 들어갔다.

그는 땅을 일구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 독수생활을 즐겼지만, 그의 고행과 기도생활에 대한 평판은 뤽세이유(Luxeuil)의 성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 3월 29일)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인도로 뤽세이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 아마투스의 빛나는 공적은 하벤둠 성주인 메로빙거 귀족인 성 로마리쿠스(Romaricus, 12월 8일)를 개종시킨 사실이다. 그의 개종은 성 아마투스가 식사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성 아마투스는 은접시와 귀중한 집기들을 가리키면서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준 뒤에 나를 따라 오시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였다. 성 로마리쿠스는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시행한 뒤 뤽세이유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다.

620년경 성 로마리쿠스는 성 아마투스와 함께 남녀 이중 수도원을 세운 다음 성 아마투스를 원장으로 모셨다. 성 아마투스는 그 후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원장직을 사임하고 은둔소에서 독수생활을 하다가 선종하였다.

그는 1049년 교황 레오 9세(Leo IX)에 의해 시성되었고, 특별히 그르노블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암(Ame) 또는 에미(Aime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에울로지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log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08년 알렉산드리아

 

 

에울로지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울로기오, 에울로기우스, 에울로지우스.

 

 

에울로지오 자료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시리아인 사제인 성 에울로기우스(또는 에울로지오)는 58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그의 생애를 알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으나 다만 그가 웅변과 저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정통 그리스도 교회의 수호를 위한 정열이 불같았다고 전해온다.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한 번 만난 일이 있는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교황으로부터 서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자들이 잉글랜드(England) 선교에서 성공을 거두게 한 공로 때문이었다.

이 서한에 따르면 에울로기우스 자신도 잉글랜드에 선교단을 직접 파견하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요한 크리소스토모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Chrysosto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총대주교, 교회학자, 교부

  • 활동 연도와 지역
    344/354?-407년 콘스탄티노플

 

 

요한 크리소스토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금구, 얀, 요안네스, 요한 금구, 요한금구,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크리소스또모, 크리소스또무스, 크리소스똠, 크리소스토무스, 크리소스톰, 한스, 후안.

 

 

요한 크리소스토모 자료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아버지 세쿤두스(Secundus)와 어머니 안투사(Antusa) 사이에 태어났는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344-354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버지 세쿤두스는 어머니 안투사가 20세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으나,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친구로 후에 타르수스(Tarsus)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Diodurus)와 함께 성서 연구와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71년 안티오키아의 멜리티우스(Melitius) 주교는 그에게 독서직을 주고 자기 곁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그는 인근 광야에 가서 노(老)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생활하였으며, 더 적극적인 수덕 생활을 열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2년간 고행과 성서 독서의 생활을 하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자, 어머니 안투사의 눈물어린 간청 때문에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으며, 386년에는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2년간 안티오키아의 설교 사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강론을 하였다. 그의 강론이 너무 유명해서 크리소스토무스(Chrisostomus), 즉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390년부터는 신약성서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사망하자 황제는 성 요한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거절하였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래서 398년 2월 26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그는 궁중생활과 너무나 밀착되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이 생활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페수스(Ephesus)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다.

그러자 총대주교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적대자들이 연대하여 요한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총대주교였다.

한편 처음에는 황실과의 관계가 좋았으나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비난하여 악화되었다. 그는 403년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Quercia)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고발되어 면직되었으며, 소심증이 있던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그를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결정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하였다. 이 첫 번째 유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성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귀환하였다.

그 후 404년에 황제는 그를 다시 쿠쿠수스(Cucusus, 지금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려는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자 황제는 다시 흑해 동편의 피티우스(Pityus)라는 험한 숲속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9월 14일 코마나(Comana)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금구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Roma)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13일 목록에서 리키니우스 황제(308~324년 재위) 치하에서 순교한 성 마크로비우스(Macrobius)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오늘날의 흑해 연안 루마니아의 콘스탄차(Constanta, 옛 지명은 토미스 Tomis)에서 순교한 성 마크로비우스와 동료 순교자들을 9월 15일 목록에서, 그리고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갈라티아(Galatia) 지방 앙카라(Ankara)에서 순교한 성 율리아누스 사제 순교자에 대해서는 9월 13일 목록에서 따로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필립보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총독, 개종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필립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자료

로마의 성녀 에우게니아(Eugenia, 12월 25일)의 순교록이나 전기 등을 통해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로마 제국의 콤모두스(Commodus, 180~192년 재위) 황제 시대에 이집트의 총독으로 활약했으며 성녀 에우게니아의 아버지이다.

그는 성 프로투스(Protus, 9월 11일)와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9월 11일) 형제를 집안의 시종으로 고용했다고 한다. 시종의 영향으로 복음을 전해 들은 성녀 에우게니아는 동정 생활을 위해 아버지의 집을 나와 세례를 받았다.

그 후 남장을 하고 남자 수도원에 들어가 나중에 수도원장까지 되었다. 어느 날 한 여인의 모함으로 자신의 법정에 선 성녀 에우게니아의 설득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순교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필리푸스가 성녀 에우게니아의 아버지로서 세례성사의 은총을 얻고 총독 직책에서 사임한 뒤에 후임자인 테렌티우스(Terentius) 총독에 의해 기도하던 중에 목에 칼이 찔려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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