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세례명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몬띠, 알로이시오, 알로이시우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루이지 마리아 몬티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루이지 마리아 몬티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루이지 마리아 몬티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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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마리아 몬티
천주교 남자세례명
루이지 마리아 몬티 남자세례명 목록
- 루이지 마리아 몬티 (10월 1일)
1. 루이지 마리아 몬티
- 세례명 축일
10월 1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Luigi Maria Monti - 신분과 직업
수사,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25-1900년
루이지 마리아 몬티 세례명과 같은 이름
몬띠, 알로이시오, 알로이시우스.
루이지 마리아 몬티 이야기
'사랑의 사도'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1825년 7월 24일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교구의 한 작은 마을 보비지오 마스치아고(Bovisio Masciago)에서 열 한 형제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늘 ‘가정은 교회’라고 강조하며 기도와 일상의 노동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성가정을 꾸려나갔던 그의 아버지는 루이지 마리아 몬티가 12살이 되던 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위해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는 목공소에 취직해서 일을 하며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도생활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던 그는 직장 동료 및 마을 동료들과 함께 수도자와 다름없는 ‘재속 봉헌’(consecratio mundi)의 선구적인 삶을 살았다.
젊은이들은 몬티와 함께 틈만 나면 복음말씀을 나누고, 성지순례를 함께 하며,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이들의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이 몬티 주이에 모여들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직장을 수도원처럼 생각하며 자신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봉헌했다.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1852년 동료 5명과 함께, 당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던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일원이 되었고, 훗날 이 수도회의 ‘진정한 아버지’이자 ‘설립자’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도 수많은 좌절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라. 네가 나를 위해 젊은 청년들을 모아 그들이 순수함을 지키고 정결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그토록 많은 일을 했는데, 그런 너를 내가 저버릴 수 있겠느냐? 용기를 내어라”라는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믿고 따랐다.
그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외과 응급처리와 약조제와 간호사 업무를 공부했으며, 특히 간호사 일에 주력했다. 그는 평생을 어려운 이웃과 환자를 위해 봉헌하며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겸손하게 헌신하였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전한 평등을 원했고, 그래서 심하게 아플 때조차 특별한 치료와 대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신체의 고통까지도 하느님을 위해 바쳐야 하는 하나의 의무로 생각했다.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성경을 읽고 기도와 성사 속에서 겸허하게 그러나 힘차게 신적인 것을 갈망했다. 그는 현세의 삶은 주님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는 이 세상을 주님의 집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1900년 9월 26일 병자성사를 받은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오직 주님과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화살기도를 바치며 죽음을 준비하였다.
그는 9월 30일 저녁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동료들에게 마지막 강복을 주고 이튿날 오후 6시경 사론노(Saronno)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2003년 11월 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을 올랐다. 그는 알로이시우스 마리아 몬티(Aloysius Maria Monti)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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