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세례명 에텔드레다는 애설트리스, 애썰트리스, 에델트루드, 에딜트루데, 에딜트루디스, 에뗄드레다, 오드리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에텔드레다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에텔드레다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에텔드레다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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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텔드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에텔드레다 여자세례명 목록
- 에텔드레다 (6월 23일)
1. 에텔드레다
- 세례명 축일
6월 23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Etheldreda - 신분과 직업
왕비,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79년 엘리
에텔드레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애설트리스, 애썰트리스, 에델트루드, 에딜트루데, 에딜트루디스, 에뗄드레다, 오드리.
에텔드레다 이야기
성녀 에텔드레다는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의 국왕인 안나(Anna 또는 Onna)의 딸로 파르무티에(Faremoutier) 수녀원의 원장인 성녀 에텔부르가(Ethelburga, 7월 7일)와 셰피(Sheppey Is.) 수녀원을 세운 성녀 섹스부르가(Sexburga, 7월 6일) 그리고 디러햄(Dereham)에 수녀원을 세운 성녀 비트부르가(Withburga, 3월 17일)와 자매 사이이다.
그녀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남동부 서퍽(Suffolk) 연안의 엑스닝(Exning)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초기 앵글로 색슨족의 하나인 남부 기와스(South Gyrwas)의 왕자인 톤드베르트(Tondberch)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결혼 후 불과 3년 만에 남편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동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성녀 에텔드레다는 남편의 사망과 함께 상속받은 엘리 섬에서 5년을 살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오스위(Oswi) 왕의 아들인 엑그프리스(Ecgfrith)와 재혼하였다.
그 당시에도 어린 소녀로서 평생 동정을 지키고 싶다는 그녀의 뜻을 남편도 수용했지만, 왕위에 오르고 어느덧 결혼생활 12년을 맞은 엑그프리스가 남편의 권리를 요구했을 때 그녀는 이미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지도자인 요크(York)의 성 빌프리도(Wilfridus, 4월 24일) 주교에게 도움을 청해 남편의 동의를 얻고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성녀 에텔드레다는 엑그프리스 왕의 고모인 성녀 에베(Ebbe, 8월 25일)가 세운 콜딩햄(Coldingham) 수녀원으로 가서 지내다가 왕에게 강제로 끌려갈 위험이 있어 두 명의 동료 수녀와 함께 엘리 섬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673년경 그곳에 이중 수도원을 세우고 첫 번째 수녀원장으로서 봉헌된 삶을 살다가 679년에 선종하였다.
696년에 그녀의 자매이자 후임 수녀원장인 성녀 섹스부르가가 그녀의 유해를 석관에 옮겨 모시려고 무덤을 열었을 때 그녀의 시신은 여전히 부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그녀의 무덤이 있는 엘리 수도원은 종교개혁 이전까지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그녀는 에딜트루데(Ediltrudis), 에델트루드(Edeltrude), 애설트리스(AEthelthryth), 오드리(Audrey) 등으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23일 목록에서 이스트앵글리아 왕의 딸이자 노섬브리아의 여왕인 성녀 에텔드레다가 두 번의 결혼을 거부하며 자신이 설립한 수도원에서 성 빌프리도에게 수도복을 받고 모범과 조언으로 많은 동정녀를 이끌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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