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프랑스에서 먹던 소박한 식사빵이 그리워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려는 빵순이의 홈베이킹 독학 도전기예요.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긴 호흡으로 부풀어 오르는 반죽이 느림의 평온함을 조용히 가르쳐줍니다.
일상에 스미는 것들
빵 만들면서
발효의 미학에 빠졌어요
천연발효종 르방으로 배우는 자연의 시간
밀가루와 물 그리고 기다림의 이야기

밀가루와 물 그리고 기다림
단순한 조합이
제 일상을 바꾸었어요!
제빵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 둘 자료를 찾아 따라 해보고 시행착오(아니, 솔직히 삽질에 가까운)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밀가루와 물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단순한 조합이 일상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빵 굽는 과정에서 발효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밀가루와 물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
천연발효종
르방으로 배우는
자연의 시간
빵을 굽다 보면 참 신기한 순간이 찾아와요. 하드계열 깜빠뉴 시골빵을 만들기 위해 본반죽에 들어가기 전, 밀가루와 물을 섞어 30분 정도 두는 오토리즈(Autolyse)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계량이 잘못된 걸 알고 뒤늦게 물을 더 넣었더니 이상하게도 반죽이 잘 섞이지 않더라고요. 안 섞일 이유가 없는데도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어요. 반죽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밀가루와 물이 만난 그 순간부터 이미 깨어나 스스로 살아 숨 쉬고 있었어요. 그 미묘한 생명의 움직임이 바로 제가 천연 발효종 르방(Levain)을 만들게 된 시작입니다.

씨앗을 이어가는 발효의 지혜
백슬로핑이란?
살아있는 발효의 씨앗을 다음 세대로 전하다
백슬로핑(Backslopping)은 이미 잘 발효된 반죽의 일부를 새로운 반죽에 섞어 발효를 이어가는 방법이에요. 요거트, 식초 그리고 사워도우 천연발효빵까지, 오래 전부터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사용해온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마치 잘 익은 열매의 씨앗을 심어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듯, 백슬로핑은 발효의 씨앗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과정이에요. 그 속에는 인간이 만든 기술보다 오래된 자연의 지혜와 시간의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작은 유리병 속 생명
르방 키우기 도전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생태계
백슬로핑을 이해하려면 먼저 르방(Levain)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직접 천연발효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르방을 키우기 위해 작은 유리병에 밀가루와 물을 섞었을 뿐인데 겉보기엔 단순한 혼합물 속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책마다 르방 만드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요한 건 정성과 관찰이에요. 그 작은 병 안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모여 경쟁하고 협력하며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갑니다. 하루하루 기포가 생기고 색과 향이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신비롭고도 따뜻한 경험이에요. 르방은 그렇게 살아있는 듯 숨 쉬는 작은 우주가 됩니다.

무엇이 다를까?
르방과 이스트 차이
함께 사는 르방
밀가루와 물을 섞으면 공기와 손끝, 밀가루 표면에 붙어 있던 다양한 미생물들이 모여듭니다. 그들 중 일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서로 협력하며 공생을 시작하죠. 부패균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선한 생명체들은 서로를 돕습니다. 한 놈이 약해지면 다른 놈이 그 자리를 메워주고, 환경 바뀌면 함께 적응하며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르방은 오랜 시간 방치되더라도 밀가루와 물만 다시 보충해주면 되살아나요. 이것이 바로 공생의 힘, 자연이 만든 회복력입니다.
혼자 사는 이스트
반면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이스트는 하나의 단일 종이에요. 르방처럼 다양한 미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정해진 역할만 똑똑하게 수행하는 혼자 사는 생명체입니다. 이스트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지만, 환경 변화에 약하고 다양성이 없습니다. 천재이기 때문에 한 번 조건이 흔들리면 다양한 스트레스에 쉽게 발효력을 잃어 바보가 되기도 합니다. 르방이 서로의 소리를 맞추는 '오케스트라'라면 이스트는 혼자 완벽한 연주를 하는 '솔리스트' 같아요.

오래 남는 자연의 법칙
천연발효종
르방이 알려준 것
완벽함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다름이 만들어내는 균형 속에서 태어난다
르방만 넣어 만든 빵이든 상업적 이스트로 만든 빵이든 각각의 고유한 개성과 매력이 있어요. 르방은 깊고 풍부한 향으로, 이스트는 빠른 발효와 안정적인 결과로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존재가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르방은 이스트의 단조로움을 채워주고 이스트는 르방의 느림을 보완하며 서로의 약점을 감싸 안고 발효를 돕습니다. 그렇게 함께할 때 놀라운 시너지가 피어나요.

서로 다름의 완벽한 조화
자연이 가르쳐준
발효의 미학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게 바로 자연의 법칙 그리고 발효의 미학 아닐까요? 밀가루와 물 그리고 기다림, 이 단순한 조합이 오늘 제 일상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바꿉니다.
다음 포스팅은 천연발효종 르방을 만들며 겪은 실패와 뜻밖의 성공에 대한 기록, 르방 키우는 도전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