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는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고, 요한이 의롭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정작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다"는 말씀이 너무 무섭게 다가와요. 헤로데도 저도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알고 있어요.
듣고 있습니다.
마음도 움직여요.
그러나
결국 따르지는 않습니다. ㅠ.ㅠ
진실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옳다고 믿는 것을 외면하지 않도록, 혼자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예레 1,17-19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르 6,17-29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8월 2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03
✚ 제1독서 04:02
✚ 복음 07:44
✚ 강론 11:0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알고도 모른 척했던 순간들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주요 인물은 헤로데, 헤로디아, 헤로디아의 딸입니다. 권력 있는 사람 몇 명의 결정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집니다. 이 결정이 바로 실행된 데에는 헤로데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고관들, 무관들, 갈릴래아의 유지들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손님들”(마르 6,26)의 시선에 신경이 쓰여 곧바로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그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침묵하고 방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헤로데와 헤로디아처럼 세례자 요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한 사람을 희생시켜 그들 사이의 친밀도와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힘 있는 이들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려고 서슴지 않고 힘 없는 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며 그들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고는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세례자 요한처럼 그들에게 잘못한다고 말하면 그를 없애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침묵하고 방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권력자의 행동도 행동이지만 침묵하고 방관하는 이들의 태도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고민에 빠집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아님을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거나 불의인 줄 알면서 눈을 감아 버리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당신 생애를 통해 강조하신 정의와 공정,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향한 사랑이 아무 소용없다고, 그저 모른 척하며 살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은 눈앞의 이익만 보고 하느님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의 몸부림입니다. 침묵과 방관의 유혹을 벗어 버리고 세례자 요한처럼 의로움을 드러내는 예언자적 소명을 실현하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죽임 당하지 않고 순교하는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다른 성인들의 축일과 다른 점이 있고 축일 이름도 다릅니다. 다른 성인들은 태어난 축일이 아니라 다 죽은 날 곧 천상 탄일이 축일입니다. 예를 들어 성 베드로와 바오로도 이 세상 태어난 날을 축일로 지내지 않고, 순교한 날을 천상에서 태어난 날로 기리며 축일로 지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만 예외적으로 탄생 축일과 죽음 축일을 지내는데 이는 두 분이 인간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고 주님의 탄생과 죽음을 온전히 같이하신 분들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기도와 감사송 모두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선구자로서 탄생과 죽음을 같이하셨음을 이렇게 칭송합니다.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복된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성자의 탄생과 죽음을 미리 알려 주셨으니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를 본받아 저희도 끝까지 하느님의 진리를 믿고 증언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오늘 축일의 의미도 여기에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헤로디아가 앙심을 품지 않았다면 세례자 요한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하면 안 되고 주님 때문에 죽었다고 얘기해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누구에 의해 좌우되지도 않지만 누구 땜에 내 삶이 이렇게 되었다거나 죽게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인들도 이런 면에서 위대한 사람과 마찬가지이지만 누구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이 차이점이고 성인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성인인 세례자 요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헤로디아의 앙심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죽은 것이고,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죽임당한 것이 아니라 순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가 로마서 14장 8절에서 가르친 바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든, 또 겉모양이 어떠하든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죽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기도는 이제 진리와 정의를 살다가 죽은 세례자 요한을 우리가 본받아야 함도 얘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거대 권력의 거대한 악에 맞서 진리와 정의를 증거 하는 위대한 증거자는 되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기도처럼 하느님의 진리를 끝까지 믿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하느님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을 우리가 하지 못한다고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성가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하늘의 태양은 못 돼도, 밤하늘 달은 못 돼도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작은 등불 되리라.”
그러므로 하느님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정의의 실천이고 우리가 우리 나름으로 해야 할 증언임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머리는 베어도 진리는 벨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오히려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의로운 이의 무고한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보여줍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필리 1,29 참조).
어찌 보면, 한 푼 춤 값으로 팔려버린 그의 목숨은 마치 은전 30냥에 팔리게 될 예수님의 목숨처럼, 억울하고 무참한 죽음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는 베었어도, 그의 소리는 벨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혀는 잠잠하게 만들었지만, 그가 외치는 진리의 소리는 가라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예언자의 소리는 가로막는다고 가로막히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극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한편에는 눈치와 체면에 눈이 가려진 부패하고 부도덕한 권세가인 헤로데와, 음모를 꾸미며 악의에 찬 헤로디아와, 허영심에 찬 그의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진실하고 의로운 세례자 요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불경스러운 네 가지 죄악을 봅니다. ‘권세가의 파렴치한 생일잔치’, ‘소녀의 음탕한 춤과 그 어머니의 악의에 찬 음모’, ‘임금의 무모한 맹세’입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결국, 무고한 의인의 죽음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올가미에 걸려 넘어진 이는 의인이 아니라, 폭군이었습니다. 악인의 혀는 결국 자신이 쳐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고, 의인의 혀는 영광의 관이 씌워졌습니다.
의로운 사람의 고난을 떠올리면, 금세기의 의인으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그는 히틀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당시의 국가교회를 탈퇴하여,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고, 나치에 의해 사형 당했습니다.
그는 “고난에 관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 의식을 세상 속으로 가져온 까닭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느님 의식”을 세상 속으로 가져 온 바람에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그가 <옥중서간>에서 썼던 이런 말이 적여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바쳤으며,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참으로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되, 예수님처럼 죽음을 통해 가르쳤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흐를지라도 폭군의 죄악을 고발하는 의인의 외치는 소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비록 혀가 잘려도, 온몸이 혀가 되어 외칠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이 외침은 소리는 교종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 ‘남을 위해 우는 법’을 빼앗아 가버린 이 시대에, ‘남을 위해 우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우는 법’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혀가 진정으로 사랑하여 울게 하소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울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코복음 6장 18절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 뼈 속에 새겨져 숨 막히게 외치고 있는 진실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힘으로 짓눌러 가라앉힐 수 없는, 그 무엇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목이 베여도 결코 베어지지 않는 살아있는 말이 되게 하소서
울 줄을 알게 하소서.
진정으로 사랑하여 울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옳지 않습니다.
무선 호출기 ‘삐삐’를 기억하십니까? 이 삐삐는 1990년대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카페나 식당에서 자주 이런 안내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출하신 분~~~”
이렇게 인기를 끌었던 삐삐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삐삐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다 망했습니다. 그러나 한 회사는 오히려 성장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호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착안해서 새로운 기계를 만든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카페나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동벨입니다. 이 회사는 현재 동종 업계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할 정도로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기술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용도로 발전시킨 좋은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삐삐 시장이 없어진 것은 분명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삶 전체에서 절망적인 상황이 전혀 없을까요? 아닙니다. 계속해서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순교를 다룬 회상 기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삶을 보면, 예수님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평탄했을까요?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심지어 참수형이라는 끔찍한 죽음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헤로데는 이복동생의 아내이자, 자기의 조카뻘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근친상간이자 간음입니다. 이를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헤로데의 권력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요한 세례자는 절대 권력자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옳지 않습니다.”라고 직언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요한 세례자의 수난과 죽음은 예수님과 그 길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헤로데가 군중과 귀족들의 시선 때문에 요한을 넘겨준 것처럼, 본시오 빌라도 역시 민중의 압박과 정치적 입지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넘겨줍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신 장면은 훗날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선을 거두어 무덤에 모시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이렇게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과 함께했습니다. 절망할 수 있는 순간에도 주님과 뜻을 같이했던 요한 세례자처럼 우리도 주님의 뜻을 새기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햇살 한 줄기만으로도 검은 그림자를 몰아내기에 충분하다(성 프란치스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실 앞에 서는 봉헌의 순간입니다. 진리 안에서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랑의 시간입니다. 수난 자체가 하나의 말씀이며 하나의 참된 삶임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는 사랑의 순교입니다. 수난은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가리킵니다. 헤로데는 요한의 삶을 두려워했습니다.
칼은 진리를 끝내 이길 수 없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은 실패가 아닙니다. 정신을 부활하게 만드는 더 깊은 자유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그리스도를 향한 자유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놓지 못하면 파멸이 되고 놓을 수 있으면 신앙이 됩니다. 신앙의 참된 가치가 현실의 참된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도드립니다. 실천할 때 가치가 되고 실천할 때 삶이 됩니다. 진리를 선택하고 진리를 실천할 때 그리스도를 닮은 참된 자유인이 됩니다.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은 끝까지 삶으로 지켜내는 사랑의 증언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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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