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세례명 도로테아는 도로떼아, 도로시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도로테아 3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도로테아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도로테아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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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테아
천주교 여자세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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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테아 여자세례명 목록
1. 도로테아
- 세례명 축일
2월 6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Dorothe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카이사레아
도로테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라, 도로떼아, 도로시.
도로테아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녀 도로테아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 사람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고문 기구에 매달려 혹독한 고통을 받고 심한 채찍질을 당하다가 마침내 그 지방 총독인 키프리아누스의 명령으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성녀 도로테아는 카이사레아 지방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 중 한 명으로 덕행이 뛰어난 처녀였다. 그녀에게 반한 카이사레아 총독이 구혼했을 때, 그녀는 부도덕하고 방탕한 이교인 총독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총독은 품행이 좋지 않은 두 명의 그리스도인 여자를 보내 배교하도록 유혹했으나 오히려 성녀 도로테아의 신앙에 감화되어 그들 모두 회개하고 말았다.
이에 분개한 총독은 성녀 도로테아와 두 여자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성녀 도로테아는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하느님께 의지하며 끝까지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이런 태도는 그녀의 변호자이자 이교도였던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까지도 감화시켰다.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중에 성 테오필루스는 “천국에 가면 그곳의 장미꽃을 보내주지 않겠소.” 하고 청했고, 성녀 도로테아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형리 앞에서 무릎을 꿇은 그녀는 오로지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만 하였다. 성녀가 순교한 다음 날 아침, 한 천사가 성 테오필루스의 집 앞에 나타나 “이것은 도로테아가 보내서 가져온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장미꽃과 과일 바구니를 전하고 사라졌다.
이를 경험한 성 테오필루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얼마 뒤 성녀의 뒤를 따라 순교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 미술에서 성녀 도로테아는 보통 장미 세 송이와 사과 세 개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고 곁에서 천사가 시중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녀 도로테아는 도라(Dora) 또는 도로시(Dorothy)로도 불린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정 순교자인 성녀 도로테아와 학교 교사인 성 테오필루스의 이름과 그들이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했다고만 간단히 언급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도로테아
- 세례명 축일
9월 3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Dorothe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도로테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로떼아, 도로시.
도로테아 이야기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 성녀 도로테아, 성녀 테클라(Thecla)와 성녀 에라스마(Erasma)는 이탈리아의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베네치아(Venezia)와 라벤나(Ravenna)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도로테아는 도로시(Dorothy)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도로테아
- 세례명 축일
10월 30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Dorothea - 신분과 직업
과부,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347-1394년 몽토
도로테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로떼아, 도로시.
도로테아 이야기
프로이센(Preussen)의 몽토에서 출생한 성녀 도로테아는 17세 때에 단치히(Danzig)의 알베르트(Albert, 또는 Adalbrecht)란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여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녀의 겸손하고 우아한 생활 자세는 다소 거칠던 남편을 완전히 변모시켰고, 그래서 남편은 성녀 도로테아와 함께 수차례나 순례를 떠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하였다.
남편이 그녀의 로마(Roma) 순례에 동행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병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왔을 때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녀 도로테아는 1391년에 마리엔워더(Marienwerder)로 이사하여 그곳에다 은둔소를 짓고 살다가 1394년 6월 25일 선종하였다.
그녀는 특히 성체에 대한 신심이 뛰어났고 환시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중부 유럽, 특히 프로이센의 수호성인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공경을 받아 왔다.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1976년 최종적으로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그녀는 도로시(Dorothy)로도 불리며 6월 25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교회미술에서 성녀의 상징은 호롱등이나 묵주이며 때로는 화살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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