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나자리오 남자세례명 2인 목록

피어나네 2023. 4. 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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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나자리오는 나자리우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나자리오 2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나자리오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나자리오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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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리오
천주교 남자세례명
2인 목록

 

 

 

 

나자리오 남자세례명 목록

 

  1. 나자리오 (6월 12일)

  2. 나자리오 (7월 28일)

 

나자리오 천주교 남자세례명 2인 목록

 

 

1. 나자리오

 

  • 세례명 축일
    6월 1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Nazarius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나자리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리우스.

 

 

나자리오 이야기

성 바실리데(Basilides), 성 키리누스(Cyrinus), 성 나보르(Nabor), 성 나자리우스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12일 목록에서 그들을 로마에서 순교한 거룩한 군인 순교자들로 아우렐리아누스 가도(Via Aurelianus)에 묻혀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데키우스 황제 때로 나오기도 함)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아우렐리우스가 로마의 총독으로 있을 때 체포되어 이교도 신전의 우상에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고백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들은 감옥에서 모진 매를 맞고 끝내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군인들이 그들의 시신을 들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으나 짐승이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고, 나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정성껏 수습해서 묻어주었다고 한다.

사실 이들은 세 명의 로마 순교자 명단에 나중에 성 바실리데가 추가된 것이다. 세 명의 로마 군인 순교자들은 로마 전례서로는 가장 오래된 책인 8세기의 “젤라시우스 전례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 이미 언급되었지만, 순교 일자와 경위에 대한 설명은 전해지지 않았다.

로마에서 순교한 네 명의 군인 순교자들은 오랫동안 6월 12일 전례력 안에서 함께 기념했으나, 그들 순교록의 불확실성 등의 이유로 1969년 전례 개혁과 함께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삭제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2일 목록에서 아우렐리아누스 가도에서 12마일 떨어진 로리(Lori)에 묻힌 성 바실리데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나머지 세 명의 순교자들의 이름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나자리오

 

  • 세례명 축일
    7월 2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Nazari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8년경

 

 

나자리오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리우스.

 

 

나자리오 이야기

성 나자리우스(또는 나자리오)는 로마 시민으로 아버지 아프리카누스(Africanus)는 유대인 또는 이교도이고, 어머니는 로마의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 8월 4일)이다.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는 사도 성 베드로나 성 바오로(Paulus)의 제자에게 교육을 받고, 후에 성 베드로를 계승해 제2대 교황이 된 성 리누스(Linus, 9월 23일)에게 세례를 받았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는 열망으로 불타던 성 나자리우스는 자기 고향인 로마를 떠나 여러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

밀라노(Milano)에 갔을 때는 감옥에 갇혀 있던 성 게르바시우스(Gervatius)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이상 6월 19일) 형제를 만나 큰 감동을 받았다. 심

한 매를 맞고 추방당한 성 나자리우스는 갈리아 지방으로 갔고, 그곳에서 한 이교도 어머니로부터 자기 아들을 가르치고 세례 줄 것을 부탁받아 9살밖에 되지 않은 성 켈수스(Celsus)를 맡게 되었다. 성 나자리우스는 성 켈수스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다니며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했다.

제노바(Genova)를 거쳐 트리어(Trier)에 갔을 때, 그들의 설교로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래서 그들은 감옥에 갇혔고, 아직 어린 성 켈수스는 신앙을 포기시키려고 한 이교도 여인에게 맡겨졌다. 하지만 배교하기를 거부한 성 켈수스는 다시 성 나자리우스에게 돌아왔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트리어에서 네로 황제에 의해 익사형을 선고받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선원들이 그들을 배 밖으로 던지자 갑자기 폭풍이 불어와 공포심을 느낀 선원들이 다시 그들을 끌어올렸다.

그들은 트리어를 떠나 제노바를 거쳐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선교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우상에게 희생제사 바치기를 거부하고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 두 순교자는 네로 황제 이후 첫 순교자들로 꼽힌다. 그들의 유해는 밀라노 근교에 각각 매장되었는데, 395년경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가 찾아내어 잘 모셨다.

성 나자리우스의 무덤에서는 순교 당시 흘리던 것과 똑같은 성인의 피가 붉고 신선하게 묻어날 때가 있었다고 한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이 성인들의 유해를 자신이 건립한 사도들의 성당에 안장했고, 거기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져 온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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