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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남자세례명 19가지

피어나네 2022. 12.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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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스파르 델 부팔로 / 그레고리오 / 나르치소 / 마르첼리노 / 마르티니아노 / 마카리오 / 문킨 / 바실리오(대) / 벤티보글리오 / 빈첸시아노 / 세라핌 / 시리디온 / 아달하르도 / 아르제오 / 아벨 / 아이랄도 / 이시도로 / 제라르도 코뇰리, 총 19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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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9가지

 

 

 

 

1월 2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스파르 델 부팔로

  2. 그레고리오

  3. 나르치소

  4. 마르첼리노

  5. 마르티니아노

  6. 마카리오

  7. 문킨

  8. 바실리오 (대)

  9. 벤티보글리오

  10. 빈첸시아노

  11. 세라핌

  12. 시리디온

  13. 아달하르도

  14. 아르제오

  15. 아벨

  16. 아이랄도

  17. 이시도로 (주교)

  18. 이시도로 (순교자)

  19. 제라르도 코뇰리

 

1월 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9가지

 

 

1. 가스파르 델 부팔로

 

  • 가톨릭 성인 이름
    Gaspar del Bufal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86-1837년

 

 

가스파르 델 부팔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스발, 가스팔.

 

 

가스파르 델 부팔로 자료

이탈리아 로마(Roma) 태생인 성 가스파르는 요리사의 아들이었으나, 콜레지오 로마노에서 교육받고 1808년에 서품되었다. 그는 교황 비오 8세(Pius VIII)의 추방 이후 나폴레옹 보나팔트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기 때문에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5년 동안 코르시카(Corsica)로 유배당하였다.

그가 귀향할 때에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회를 설립하여 1815년에 교황 비오 7세로부터 보혈선교회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성 가스파르는 스폴레토(Spoleto) 부근 지아노(Giano)와 알바노(Albano)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나폴레옹의 통치 기간이었기에 이런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의 선교회는 날로 발전하였다. 그는 또 자선사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임하였으며, 세상의 복음화가 자기 선교사들의 목표임을 늘 주지시켰다. 

그는 1837년 12월 28일 알바노에서 콜레라에 희생되어 운명하였다. 그는 1904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54년 6월 12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축일은 10월 21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그레고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rego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교회학자, 교부

  • 활동 연도와 지역
    329/330-389/390년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오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오 자료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사목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나지안주스 또는 인근의 아리안주스(Arianzus)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모범이 된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큰 영향을 받았다. 유년 시절 그는 가정에서 성경 읽기를 배웠고, 그 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와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에 다녔고,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거쳐 아테네(Athenae)에서도 수학했다. 356년까지 아테네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와 교제했고, 장차 황제가 될 율리아누스 배교자와도 함께 공부했다. 

30세 무렵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세례를 받고 소박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위해 성 대 바실리우스와 함께 폰투스(Pontus) 지방의 이리스 강변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친의 권유로 362년 부활절에 사제품을 받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Sasima)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사시마 교구는 아리우스파(Arianism)의 영향력이 큰 지역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성 그레고리우스는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했다. 374년 봄, 아버지가 선종한 후 그 뒤를 잇도록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임명되었지만 1년 후에 그는 이사우리아(Isauria) 지방의 셀레우키아(Seleukia)에 있는 수도원으로 떠났다. 

378년 아리우스파인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자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초청해 아리우스파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공동체인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0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해서 정통파 신앙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381년 3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 도시의 주교로 인정받고, 안티오키아의 멜레티우스(Meletius)가 사망한 후 총대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총대주교 임명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의 교회가 주교좌 이전에 반대하며 격렬히 반대하자 성 그레고리우스는 모든 논쟁을 끝내고 교회의 평화를 위해 주교직에서 물러났다. 

공의회가 끝나기 전에 나지안주스로 돌아온 그는 383년 에울랄리우스(Eulalius)가 후계자로 임명될 때까지 나지안주스의 주교직을 맡았다. 그 후 그는 저술 활동과 수도 생활에 전념하고자 아리안주스로 내려와 생애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해 정통교회를 수호하는데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Nicaea) 신앙 고백을 해설하고 삼위일체 교리를 확고히 하는 등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동방교회의 4대 교회학자 중 한 명으로 선포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월 25일 또는 30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나르치소

 

  • 가톨릭 성인 이름
    Narciss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0년

 

 

나르치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르치수스, 나르키소, 나르키수스.

 

 

나르치소 자료

성 나르키수스(또는 나르치소)와 성 아르게우스(Argeus)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군인으로 형제간이다. 그들은 흑해 연안 폰투스(Pontus)의 토미(Tomi)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는 군복무 이행을 거부한 소년으로서, 잔인하게 매를 맞고 오랫동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첼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0년

 

 

마르첼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리노, 마르셀리누스, 마르첼리누스, 말셀로.

 

 

마르첼리노 자료

성 나르키수스(Narcissus)와 성 아르게우스(Argeus)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군인으로 형제간이다. 그들은 흑해 연안 폰투스(Pontus)의 토미(Tomi)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리노)는 군복무 이행을 거부한 소년으로서, 잔인하게 매를 맞고 오랫동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르티니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35년 밀라노

 

 

마르티니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안.

 

 

마르티니아노 자료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23년부터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서, 에페소 공의회에 참여하여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저술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마카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aca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394년 알렉산드리아

 

 

마카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까리오, 마까리우스, 마카리우스.

 

 

마카리오 자료

알렉산드리아의 시민인 성 마카리우스(또는 마카리오)는 과자장수를 하다가 하느님께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세상을 멀리하고, 6년 동안 사막에서 고행과 관상으로 지냈다. 그의 첫 은수처는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였다. 

그리고 373년에는 이집트 남부로 가서 스케티스(Scetis)와 니트리아(Nitria) 사막에 움막을 지었다. 그 당시의 은수자들은 각각 자기 움막에서 독수생활을 하였다.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극도로 엄격한 규율을 지켰으며 기적도 수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 그는 자신의 스승인 성 마카리우스(1월 15일)와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아리우스파(Arianism) 총대주교인 루키우스에 의하여 나일 강의 한 섬으로 추방된 적도 있으나 결국은 귀향이 허가되어 돌아왔다. 

그는 니트리아에 있는 수도원을 위하여 회헌을 집필하였는데, 이 중의 여러 규칙이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인용하고 자신의 회칙에 삽입하여 그 맥이 지금도 이어온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문킨

 

  • 가톨릭 성인 이름
    Munch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경 아일랜드

 

 

문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문친.

 

 

문킨 자료

아일랜드의 리머릭(Limerick)의 수호성인인 성 문킨은 ‘현인’으로도 불린다. 그는 클레어(Clare) 주(州)에서 리머릭으로 왔으며 그곳의 초대 주교였다. 그 외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진 것이 없다. 아일랜드에서는 그의 축일을 1월 3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바실리오 (대)

 

  • 가톨릭 성인 이름
    Basil the Grea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교회학자, 교부

  • 활동 연도와 지역
    329-379년

 

 

바실리오(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실리우스.

 

 

바실리오(대) 자료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부유하고 이름 있는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Macrina, 1월 14일), 그의 부친은 바실리우스(5월 30일), 그의 모친은 엠멜리아(Emmelia, 5월 30일), 그의 큰 누이는 마크리나(7월 19일),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와 세바스테(Sebaste)의 베드로(Petrus, 1월 9일)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다.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그리고 아테네(Athenae)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357년경에 그는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으며,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리스(Iris) 강변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바실리우스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생활했을 뿐인데도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는 달리 법 제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주요한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바실리우스는 365년부터 카이사레아 교구를 위하여 일했고, 370년에는 그곳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또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발렌스(Valens)가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가서 자신을 변명하여야 했다. 

바실리우스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 같은 주교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의 강직성 때문에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와 서방 교회간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요양원을 짓거나 혹은 대대적으로 진료사업을 펼쳤으며 설교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발렌스 황제가 전투에서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월 1일 카이사레아에서 사망하였다.

바실리우스는 초대 교회의 큰 거인이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낸 것이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배경에는 바실리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가 네오카이사레아에서 제정한 규칙과 조직이 동방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온다. 

또한 바실리우스는 성직매매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의 희생자를 대대적으로 원조하였으며, 보다 훌륭한 성직자 양성을 도모하였고, 엄격한 성직자 법규를 주장하고, 과감하게 악습을 끊어버리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만연된 매춘행위 관계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는 유식하고 정치력도 있는 사람이면서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해박한 저서들과 4백여 통의 편지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령에 관한 저서와 에우노미우스를 반박하는 세 권의 저서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와 함께 편집한 “필로칼리아”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교회학자이며 동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큰 공경을 받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벤티보글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entivogli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232년 보니스

 

 

벤티보글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벤띠보글리오.

 

 

벤티보글리오 자료

이탈리아 마르카의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태생인 벤티보글리오는 설립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의 생애를 알려주는 자료는 희박하지만, 그의 표양에 감탄한 온 가족과 친척들이 그를 훌륭한 수도자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그는 초기 작은 형제회 회원들 중에서도 청빈과 단순의 덕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그 당시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본당신부도 숲 속에서 기도하는 벤티보글리오가 탈혼에 빠졌다가 오랜 시간동안 공중에 떠있음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이외에도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에는 그에 대한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고향 마을에서 성탄절을 기하여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52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빈첸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72년?

 

 

빈첸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빈첸시아누스, 빈첸티아노, 빈첸티아누스.

 

 

빈첸시아노 자료

성 빈첸시아누스(또는 빈첸시아노)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서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Cahors)의 주교인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 11월 15일)의 요청을 받아들인 아키텐(Aquitaine)의 공작 베락드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러나 베락드 공작은 곧 선종했고, 그의 아들은 그를 쫒아내 버렸다. 

그 후 그는 자기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렸으며, 약혼자도 포기함으로써 심한 고통을 당했다. 이윽고 그는 은수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오베르뉴(Auvergne) 교구의 어느 숲 속으로 들어가 숨었는데 그의 성덕은 더욱 높아만 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세라핌

 

  • 가톨릭 성인 이름
    Seraphi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은수자, 신비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759-1833년 사로프

 

 

세라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쎄라핌.

 

 

세라핌 자료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성 세라핌은 1759년 7월 19일 러시아 쿠르스크(Kursk)의 동방교회 가문에서 프로코르 이시도레빅 모쉬닌(Prokhor Isidorevic Moshn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건축업자인 아버지 이시도레빅 모쉬닌이 일찍 사망하자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완성하지 못한 교회 건축을 도맡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기적적인 사건을 체험한 그는 상인이 된 형을 돕던 중 마음속으로 수도생활로의 부르심을 깨달아 1776년 동료들과 함께 키예프(Kiev) 순례를 떠났다. 

수도생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그는 1778년 19세의 나이로 사로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 후 1786년에 서원을 하고 히브리어로 ‘열정’이라는 뜻의 세라핌이라는 수도명을 받았으며, 179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그는 사로프에서 몇 마일 떨어진 숲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떠났는데, 자신의 수도원을 비롯하여 많은 수도원으로부터 원장직을 의뢰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804년에는 세 명의 강도들에게 심한 매를 맞아 곧 수도원에 옮겨졌으나 성모 마리아에 의해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숲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그 뒤 그는 절대적인 침묵과 고요 속에서 전세계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하며 생활하였다. 당시는 나폴레옹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1810년 질병과 수도원장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 때문에 사로프의 수도원으로 되돌아왔지만 그는 수 년 동안 격리된 작은 방에서 완전한 은둔생활을 하였다. 

1815년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한 후부터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자들에게 영적 상담을 해주었다. 그리고 66세 되던 1825년 숲속의 은둔소로 되돌아가 영적 사부 혹은 영성 지도자로서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다.

1832년부터 죽음이 가까워짐을 깨달은 성 세라핌은 영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묘 자리를 미리 정해 놓고 자신의 방 입구에 놓인 관 앞에서 묵상에 잠겨 있다가 종종 졸도하기도 하였으며, 이때 많은 기적적인 행적을 남겼다고 한다. 

이듬해 1월 2일 그는 수도원에 있는 그의 방에서 성화 ‘우리의 부드러운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의 옷은 그의 손에서 떨어진 촛불에 불타 버린 상태였다.

성 세라핌이 사망한 후 그의 무덤을 참배하던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1903년 1월 29일 러시아 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교령을 반포한데 이어 그 해 7월 19일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시리디온

 

  • 가톨릭 성인 이름
    Siridi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시리디온 자료

연대미상의 성 시리디온은 아마도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가 언급한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나 성 이시리디온(Isiridion)의 필기 오류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아달하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Adalh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53-827년 코르비

 

 

아달하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달라르, 아달하르두스, 아달하르드, 아델라르, 아델라르드.

 

 

아달하르도 자료

성 아달하르두스(Adalhardus, 또는 아달하르도)는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손자이자 피핀 왕의 동생인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아들로 아델라르(Adelard)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알퀴누스(Alcuinus)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773년에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의 코르비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비록 그가 수도원 생활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그의 사촌인 샤를 대제(Charlemagne)에 의하여 자주 궁중으로 불려갔으며, 끝내는 왕의 고문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샤를 대제의 큰 아들 피핀의 전속사제였고, 피핀이 810년에 사망하자 다시 피핀의 아들 베르나르두스의 개인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루이 황제에 대한 반역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아키텐(Aquitaine) 연안의 한 섬으로 유배당하여 그곳에서 5년을 살았으나, 루이 황제는 그의 무죄를 믿었으며 821년에 궁중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다시 추방되었는데, 이번에는 성덕과 엄격함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 대한 관심이 나쁜 평판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는 코르비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독일과 프랑스 언어뿐만 아니라 라틴어까지 가르치는 배움의 전당이 되었다. 그는 코르비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사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아르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rg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0년

 

 

아르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르게오, 아르게우스, 아르제우스.

 

 

아르제오 자료

성 나르키수스(Narcissus)와 성 아르게우스(또는 아르제오)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군인으로 형제간이다. 그들은 흑해 연안 폰투스(Pontus)의 토미(Tomi)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는 군복무 이행을 거부한 소년으로서, 잔인하게 매를 맞고 오랫동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아벨

 

  • 가톨릭 성인 이름
    Ab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아벨 자료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창세 4,2)로 밭을 가는 농부인 형 카인(Cain)과는 달리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아담의 가족은 하느님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때 우발적인 사건으로 아벨은 형 카인에게 죽임을 당하여 인류 최초로 살해당한 인물이 되었다. 

기르던 양떼 가운데에서 맏배를 잡아 기름기를 봉헌한 아벨의 예물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졌으나 카인이 드린 곡식 예물은 반기시지 않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카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꼬여 죽였던 것이다(창세 4,3-8).

창세기에서는 아벨에 대하여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지만, 복음서에서는 아벨은 무죄하다고 평가되었다(마태 23,35; 루가 11,51). 복음서는 아벨의 죽음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원인이 되어 빚어진 예언자 내지 순교자의 죽음과 유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산 첫 번째 인물로 ‘아벨’을 꼽았다(히브 11,4). 아벨의 예물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은 믿음으로 형 카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풀이함으로써 아벨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살해된 인물로 평가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아이랄도

 

  • 가톨릭 성인 이름
    Ayral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46년? 모리엔느

 

 

아이랄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랄두스, 아이랄드, 에이랄도, 에이랄두스, 에이랄드.

 

 

아이랄도 자료

성 아이랄두스(또는 아이랄도)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백작 빌리암 2세(William II)의 아들이다.

그의 다른 세 형제 중의 하나는 칼리스투스 2세(Callistus II)로 교황좌에 올랐고, 다른 형은 카스티야(Castilla)의 왕인 라이문두스(Raymundus)이며, 세 번째는 포르투갈의 백작 헨리쿠스(Henricus)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랄두스는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었다. 

모리엔느 대성당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 귀족 출신이며 포르테스의 수도자인 아이랄두스가 교회의 빛이며 성좌의 영광을 높이다가 누워있다. 그의 성덕은 빛나고 그의 기적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이시도로 (주교)

 

  • 가톨릭 성인 이름
    Isi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경 니트리아

 

 

주교 이시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시도루스, 이시돌.

 

 

주교 이시도로 자료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의해 신앙심이 두텁고 존경할 만한 주교로서 언급되었다. 그는 또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이집트에 왔을 때 그를 환대해 주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펠루시움(Pelusium)의 성 이시도루스(2월 4일)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이시도로 (순교자)

 

  • 가톨릭 성인 이름
    Isi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안티오키아

 

 

순교자 이시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시도루스, 이시돌.

 

 

순교자 이시도로 자료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아리우스파에 의해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한 동방교회의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 소개되어 있는 그에 대한 증언은 모호한 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제라르도 코뇰리

 

  • 가톨릭 성인 이름
    Gerard Cognol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345년

 

 

제라르도 코뇰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제라르도 코뇰리 자료

게라르두스 코뇰리(Gerardus Cognoli, 또는 제라르도)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어느 귀족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10살 때에 부친을 여의였고 그 얼마 후에는 모친마저 잃었다. 

친척들은 결혼하기를 강요하였으나 그는 모든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40세 때까지 순례와 은수자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황량한 시칠리아(Sicilia) 섬을 떠나지 않았다.

이때 그는 프랑스 앙주(Anjou)의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8월 19일)의 성덕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평수사로서 놀라운 단순 덕과 겸손을 보였다. 가끔씩 부엌일을 하던 중에 기도에 몰두하여 물의를 일으킨 때도 있었다.

한 마디로 그의 성덕은 아주 높은 단계였다. 그의 식사는 빵과 물이 전부였고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잤다. 그는 너무나 자주 탈혼에 빠졌는데 그 때에는 그의 주변에 광채가 빛났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8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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