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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남자세례명 7가지

pieonane 2023. 6.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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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라이문도 룰로, 루치나, 마르티알리스, 바실리데, 오스티아노, 테오발도, 필립보 파월, 총 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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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3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7가지

 

 

 

 

6월 30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라이문도 룰로

  2. 루치나

  3. 마르티알리스

  4. 바실리데

  5. 오스티아노

  6. 테오발도

  7. 필립보 파월

 

6월 3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7가지

 

 

1. 라이문도 룰로

 

  • 가톨릭 성인 이름
    Raymund Lull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232-1316년

 

 

라이문도 룰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이문두스, 레이먼드, 룰로, 룰루스.

 

 

라이문도 룰로 자료

라이문두스 룰루스(Raymundus Lullus, 또는 라이문도 룰로)는 모슬렘으로부터 마요르카(Mallorca) 섬을 구출한 어느 장군의 아들로서 마요르카 섬의 팔마(Palma) 태생이며, 아라곤(Aragun)의 야고보 1세 왕의 신하가 되었고, 1257년에 블랑카 피카니와 결혼하였다.

2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라이문두스는 은거생활을 추구하였는데, 1263년에 그리스도의 환시를 본 뒤로 생활을 완전히 바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와 로카마두르를 순례한 후,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었고, 가족들의 생계 외에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하였다.

그는 마호메트 교도들의 개종에 관심에 많았으며, 9년 동안 모슬렘에 대해 공부한 뒤, 자신의 이상을 꽃피우기 위하여 마요르카 섬에 트리니타스 대학을 세워 설교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마호메트 교도들의 선교를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그 당시의 정세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하다가, 1306년에 부지에 가는데 성공하였으나 곧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추방되었다.

그는 철학, 음악, 항해, 법률, 천문학, 수학, 신학 등의 저서를 아라비아어로 남겼고,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a)와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에 버금가는 신비적인 시를 남겼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0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루치나

 

  • 가톨릭 성인 이름
    Lucin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로마

 

 

루치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시나, 루씨나, 루키나.

 

 

루치나 자료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녀 루치나는 사도들의 제자로서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해 돌보고,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등 자비로운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유해를 자신이 직접 마련한 지하 묘지에 안장했고, 그녀 또한 선종한 후에 순교자들 옆에 누웠다고 한다.

전설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성녀 루치나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부유한 로마 여성이었다.

네로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자 성녀 루치나는 감옥에 갇힌 성 베드로를 지키는 경비병이었다가 세례를 받고 투옥된 성 프로케수스(Processus)와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7월 2일)를 비롯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정성을 다해 돌보았고, 그들의 순교한 뒤에는 용감하게 시신을 수습해 정중하게 매장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30일 목록에서 성녀 루치나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날 네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있는데, 일부 전승은 4세기부터 성녀 루치나를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공경해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티알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a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경 리모주

 

 

마르티알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시알, 마르시알리스, 마르씨알, 마르씨알리스.

 

 

마르티알리스 자료

역사가인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 주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3세기 중엽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이후 오늘날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방의 재복음화를 위해 성 파비아누스(Fabianus, 1월 20일) 교황에 의해 파견된 7명의 선교사 주교인 ‘갈리아의 사도들’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로마에서 파견된 7명의 사도는 주로 리무쟁(Limousin)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리모주에 교구를 설정해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된 성 마르티알리스 외에 나르본(Narbonne)의 성 바오로(Paulus, 3월 22일), 투르(Tours)의 성 가티아누스(Gatianus, 12월 18일), 툴루즈(Toulouse)의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11월 29일), 아를(Arles)의 성 트로피무스(Trophimus, 12월 29일), 파리(Paris)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 클레르몽(Clermont)의 성 아우스트레모니우스(Austremonius, 11월 1일)가 있다. 그중에서 툴루즈의 성 사투르니누스와 파리의 성 디오니시우스는 순교하였다.

한편 중세 때 갈리아의 일곱 사도를 사도 시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도적 전통과 연결하여 지역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성 마르티알리스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의 사촌이자 주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파견된 72명의 제자 가운데 하나라는 전설도 있는데 그 근거는 희박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프랑스의 리모주의 주교인 성 마르티알리스가 알피니아누스(Alpinianus)와 아우스트리클리니아누스(Austriclinianus)라는 두 명의 사제와 함께 기적을 행하며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프랑스의 리모주에서 성 마르티알리스 주교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언급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바실리데

 

  • 가톨릭 성인 이름
    Basilid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05년 알렉산드리아

 

 

바실리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실리데스.

 

 

바실리데 자료

성 바실리데는 이집트의 로마제국 지방장관의 호위병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포타미오이나(Potamioena, 6월 28일)의 사형에 관여하였다가 그녀의 경건함에 개종하였고, 군중들로부터 성녀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그 또한 체포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오스티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Ost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오스티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스띠아노, 오스띠아누스, 오스씨아노, 오스씨아누스, 오스티아누스.

 

 

오스티아노 자료

성 오스티아누스(또는 오스티아노)는 프랑스의 사제로 지금도 비비에르(Viviers)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테오발도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bal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33-1066년 프로뱅

 

 

테오발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발도, 떼오발두스, 테오발두스, 테오발드.

 

 

테오발도 자료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Champagne)의 백작 아르눌(Arnoul)의 아들로 프로뱅에서 태어난 성 테오발두스(Theobaldus, 또는 테오발도)는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은수 생활을 동경했다. 그는 장성하여 군인이 되었으나 은수자의 꿈을 버리지 않아 결혼을 거부했다. 

사촌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아버지를 설득해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떠나 랭스(Reims)에 있는 생르미(Saint-Remy)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발터(Walter)라는 친구를 만나 아르덴(Ardennes)의 쉬시(Sussy)에서 함께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낮에는 석수일과 들일을 하여 생계를 꾸렸고, 밤에는 기도로 날을 밝혔다. 그 후 그들은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와 로마(Roma) 등을 순례하였다. 이어서 예루살렘까지 순례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탈리아의 비첸차(Vicenza) 근교 살라니고(Salanigo)에서 발터가 병에 걸려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뒤 발터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카말돌리회의 설립자인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6월 19일)의 엄격한 지도를 받는 은수 공동체에 들어갔다. 성 테오발두스는 뛰어난 성덕으로 인해 많은 제자를 얻었고, 그들의 권유에 따라 비첸차의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의 출신 배경이 밝혀지면서 부모가 찾아왔다. 성 테오발두스의 어머니인 기셀라(Gisela)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 아들 곁에 머물며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비첸차 인근 소사노(Sossano)에서 병을 얻어 선종했는데, 그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1073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2세(Alexander II)가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필립보 파월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Powell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94-1646년 영국

 

 

필립보 파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파웰, 포웰,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파월 자료

필리푸스 파월(Philippus Powell, 또는 필립보 파월)은 1594년 영국 웨일스 남동부 브레크녹셔(Brecknockshire)의 트렐롱(Trallong)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16세 때에 런던(London)에 있는 법학원(Inns of Court) 중 한 곳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이어서 민법 실무도 익혔다. 3~4년 뒤에 그는 업무차 프랑스의 두에(Douai)에 갔다가 베네딕토회에 큰 매력을 느껴 입회하였다.

그는 1618년에 사제품을 받고 수도 생활을 계속하다가 1622년 영국 선교를 위해 두에를 떠났다. 처음에 그는 잉글랜드 남서부 데번셔(Devonshire)로 가서 어느 가톨릭 신자 가정을 소개받아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20여 년간 데번(Devon)과 서머싯(Somerset) 그리고 콘월(Cornwall) 지방에서 숨어다니며 가톨릭 신자들을 돌보고 배교자들을 권면하는 등 사목활동을 열렬히 전개하였다.

영국 내전(The English Civil War, 1642~1651년)이 일어났을 때, 그는 콘월에서 고링(Goring) 장군 편에 속한 가톨릭 신자 군인들을 위한 군종신부로 6개월간 활동했다. 그 후 군대가 해산하자 배를 타고 사우스 웨일스(South Wales)로 향했다. 하지만 1646년 2월 22일 배 안에서 가톨릭 사제임이 발각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런던으로 호송되어 서더크(Southwark)의 감옥에 갇혔다. 감옥 안에서 심각한 늑막염으로 고생하면서도 그의 놀라운 신심과 그리스도교적 덕행이 빛을 발해 관리들조차 그를 점잖게 대하였다. 그는 가톨릭 사제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6월 30일 타이번(Tyburn)으로 끌려 나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필리푸스 파월은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6월 30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필리푸스 파월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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