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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남자세례명 12가지

피어나네 2023. 8. 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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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드로스탄, 마르치아노, 베네딕토, 비오 1세, 사비노, 아분디오, 야누아리오, 올리베리오 플런케트, 요한, 치프리아노, 친데오, 히둘포, 총 12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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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여자세례명 올가, 펠라지아,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2가지

 

 

 

 

7월 1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드로스탄

  2. 마르치아노

  3. 베네딕토

  4. 비오 1세

  5. 사비노

  6. 아분디오

  7. 야누아리오

  8. 올리베리오 플런케트

  9. 요한

  10. 치프리아노

  11. 친데오

  12. 히둘포

 

7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2가지 드로스탄, 마르치아노, 베네딕토, 비오 1세, 사비노, 아분디오, 야누아리오, 올리베리오 플런케트, 요한, 치프리아노, 친데오, 히둘포

 

 

1. 드로스탄

 

  • 가톨릭 성인 이름
    Drost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10년경디어

 

 

드로스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드로스딴, 드루스딴, 드루스탄.

 

 

드로스탄 자료

성 드로스탄은 아일랜드의 궁중 혈통을 지녔던 사람인데, 성 콜룸바(Columba)의 지도하에 수도생활을 하였다. 스코틀랜드 애버딘셔(Aberdeenshire)의 디어에 수도원을 세웠을 때 그가 첫 번째 원장이 되었다.

그후 그는 앵거스(Angus)의 글리네스크(Glenesk)로 가서 은수자로 생활하였다. 그의 성덕과 인품은 주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서거 후 유해는 아버도(Arberdour)의 경당에 모셔졌고, 오늘날도 이 지역 사람들은 그의 축일을 성대하게 경축한다. 그는 드루스탄(Drustan)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치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치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치아누스, 마르치안, 마르키아노, 마르키아누스, 미르시안.

 

 

마르치아노 자료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는 고대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인 리카오니아(Lycaonia)의 이코니움(Iconium)에서 순교한 청년이다. 그가 순교 중에 보여준 용기에 대한 증언이 전해온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베네딕토

 

  • 가톨릭 성인 이름
    Benedic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0?-547년? 누르시아

 

 

베네딕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베네딕토 자료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는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로마(Roma)에서 수학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도시 생활의 윤리적 타락과 유혹에 환멸을 느껴 고향 근처의 고요한 광야를 찾아갔다.

그는 500년경 로마 동쪽 내륙의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준비 없는 독거 생활이 영성 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동방교회의 사막 은수자처럼 살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3년 동안 그 동굴에 살았는데, 자신을 그곳으로 인도한 로마누스(Romanus)라는 은수자가 가끔 밧줄에 매달아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고독 속에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육신의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온전히 독수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성덕과 엄격한 생활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공동체에 알려져 그들로부터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 베네딕투스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까지 하자 다시 수비아코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가 그를 찾아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하나로 육체노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수비아코는 곧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인근 본당의 사제인 플로렌티우스가 그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고 하자, 그는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비아코를 떠나 529년경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 신에게 헌정된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에 물든 인근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근 피우마롤라(Piumarola)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초대 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또다시 많은 제자가 몰려왔다.

그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흐트러진 수도 생활을 바로잡고 서방교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금욕생활 속에서 기도와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도록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 생활 정신을 온전히 담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했는데, 이후 서방교회에 새로 설립되는 수많은 수도원의 규칙에 적용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토를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정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도 힘썼다.

또한 동고트족 토틸라(Totila) 왕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한번은 그의 명성을 듣고 토틸라 왕이 그를 찾아와 먼저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들여보냈지만 단번에 그가 가짜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성 베네딕투스는 토틸라 왕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선종하고 얼마 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6일 전에 미리 무덤의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선종 당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두 수도승의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 채로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21일이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이미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1969년 전례력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보편 전례력에서 7월 11일로 확정되었다. 동방정교회는 3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수도 규칙서나 그를 독살하려 했던 일을 상징하는 뱀이 들어 있는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그리고 독이 든 빵을 물고 있거나 날아가는 까마귀와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비오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Pius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4년경

 

 

비오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우스, 피오, 피우스.

 

 

비오 1세 자료

루피누스(Rufinus)의 아들로서 아퀼레이아(Aquileia) 태생인 성 비오는 가장 오래된 신약성경의 정경 목록으로 2세기 말 로마에서 저술된 "무라토리 정경"(Canon Muratorianus)에 의하면 "목자"(Pastor)의 저자인 헤르마스의 형제로 본디 노예였다가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는 140년경에 교황 성 히기누스(Hyginus, 1월 11일)를 계승하였고, 그의 재임 기간에는 발렌티누스주의(Valentinianism) 이단과 마르키온(Marcion)의 영지주의 이단 때문에 큰 곤욕을 당했는데, 이들은 모두 성 비오 1세 교황으로부터 단죄를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사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ab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사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비누스, 싸비노, 싸비누스.

 

 

사비노 자료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와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는 로마제국에 의한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순교하여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왔다.

아마도 그들은 박해를 피해 프랑스 중부 가르탕프(Gartempe) 강변으로 와서 살다가 순교한 듯하다. 9세기 초 그들의 묘가 발견되어 그 위에 수도원과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들은 프랑스 프와투(Poitou) 지방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아분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bun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4년 코르도바

 

 

아분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분디우스.

 

 

아분디오 자료

에스파냐의 남부 코르도바 인근 마을의 본당 사제였던 성 아분디우스(또는 아분디오)는 이슬람교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그는 무함마드(Muhammad)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죄로 체포되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라는 명령을 끝까지 거부했다.

그래서 그 도시의 통치자 앞에 불려갔을 때, 그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해 설교를 했다. 통치자는 그를 참수형에 처하고 그의 시신을 개들에게 던져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야누아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Janua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0년

 

 

야누아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야누아리우스, 자누아리오, 자누아리우스.

 

 

야누아리오 자료

성 야누아리우스(또는 야누아리오)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때 니코폴리스(Nicopolis)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올리베리오 플런케트

 

  • 가톨릭 성인 이름
    Oliver Plunket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신학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29-1681년 아일랜드

 

 

올리베리오 플런케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올리버, 올리베르, 올리베리우스.

 

 

올리베리오 플런케트 자료

성 올리베리우스 플런케트(Oliverius Plunkett, 또는 올리베리오)는 아일랜드 미스(Meath) 지방의 록크루(Loughcrew)에서 태어났다. 그는 1647년에 사제직을 위해 로마(Roma)에 있는 아일랜드 신학원에 들어갔고, 1654년 1월 1일 로마에 있는 포교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 땅에 닥친 종교적 박해 때문에 바로 귀향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669년 아마(Armagh)의 대주교이자 아일랜드의 수석 대주교로 임명될 때까지 로마에서 강의를 했다. 대주교로서 돌아온 그는 바로 평화의 사도로서 종교적 열정을 갖고 그의 백성들을 방문하고, 학교를 설립하고, 사제를 서품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견진성사를 주었다.

1673년 종교박해가 재개되었을 때 주교들은 모두 칙령에 의해 추방되었다. 그러나 성 올리베리우스 대주교는 피신하였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의 많은 편지들은 그가 자신의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충실한 목자로서 남으려는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도좌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박해가 조금 느슨해지자 그는 좀 더 공개적으로 신자들 사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1679년 체포되어 부당하게도 반역죄로 고발되었다. 그러나 정부 권력은 아일랜드 북동부의 던독(Dundalk)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없었다.

그는 런던(London)으로 이송되었고, 아일랜드에서 그의 증인들이 도착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위증을 한 증인들의 도움으로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1681년 그는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평온하게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 올리베리우스는 런던의 사형장인 타이번에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죽은 마지막 순교자이고, 아일랜드의 순교자 중에서 처음으로 시복된 인물이었다. 그는 1920년 5월 2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75년 10월 12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90년경 베르가모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성덕과 학덕이 뛰어나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주교로 축성된 성 요한(Joannes)은 재임기간 동안 아리우스(Arius) 이단 퇴치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679년에 교황 성 아가토(Agatho)가 소집한 로마의 시노드(Synod)에 참석하였고, 이단자들의 모략에 의하여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아리우스파에 의하여 살해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치프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ypr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치프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치쁘리아노, 치쁘리아누스, 치프리아누스, 치프리안, 키프리아노, 키프리아누스, 키프리안.

 

 

치프리아노 자료

성 사비누스(Sabinus)와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또는 치프리아노)는 로마제국에 의한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순교하여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왔다.

아마도 그들은 박해를 피해 프랑스 중부 가르탕프(Gartempe) 강변으로 와서 살다가 순교한 듯하다. 9세기 초 그들의 묘가 발견되어 그 위에 수도원과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들은 프랑스 프와투(Poitou) 지방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친데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ind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0년

 

 

친데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친데우스, 킨데오, 킨데우스.

 

 

친데오 자료

성 킨데우스(또는 친데오)는 소아시아 팜필리아(Pamphylia)의 사제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히둘포

 

  • 가톨릭 성인 이름
    Hidulp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07년경 트리어

 

 

히둘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히둘뽀, 히둘뿌스, 히둘푸스.

 

 

히둘포 자료

성 히둘푸스(Hidulphus, 또는 히둘포)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태생으로 후에 트리어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설교보다는 표양으로 수많은 개종자를 교회로 이끌었고, 그리스도의 정신을 온전히 삶으로 살았던 분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수도 생활을 갈망한 나머지 670년경 스스로 직책을 사임하고 보주산맥(Vosges Mts)으로 은신하여 은둔소를 지었다.

676년에는 오늘날의 생디에(Saint-Die)에 수도원을 짓고 참으로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먼저 정착한 느베르(Nevers)의 성 데오다투스(Deodatus, 6월 19일)와 친밀한 우정을 맺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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