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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아
천주교 여자세례명
3인 목록
발레리아 여자세례명 목록
1. 발레리아
- 세례명 축일
4월 28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ri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세기경? 밀라노
발레리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발레리아 이야기
밀라노의 부유한 시민이자 군인이었던 성 비탈리스(Vitalis)는 어느 날 집정관과 함께 라벤나(Ravenna)에 갔다가 의사이던 성 우르시키누스(Ursicinus, 6월 19일)가 모진 고문을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다소 마음이 흔들렸을 때 그가 꿋꿋하도록 격려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정중히 매장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행동 때문에 집정관은 성 비탈리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해서 혹독한 고문을 가한 뒤 구덩이 산 채로 묻는 생매장형에 처했다.
순교 시기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 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재위 161~180년) 때로 추정된다. 그가 순교한 곳으로 알려진 곳에 건립되어 547년 그에게 봉헌된 라벤나의 성 비탈리스 대성당은 비잔틴 미술의 걸작품, 특히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그는 라벤나 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비탈리스의 아내이자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이상 6월 19일)의 어머니인 성녀 발레리아는 밀라노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 세례를 받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창기 인물이다.
그녀는 교황의 명을 받은 그 지역 사제와 함께 남녀 10명으로 구성되어 원형극장이나 다른 곳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하는 사명을 수행하다가 체포되어 우상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강요당했으나 끝까지 거부하고 순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라벤나에서 순교한 남편의 행적에 대해 전해 듣고 자신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교도 신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모진 매를 맞고 밀라노에서 장렬히 순교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발레리아
- 세례명 축일
6월 5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ri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발레리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발레리아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5일 목록에서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성녀 제나이스(Zenais), 성녀 키리아(Cyria), 성녀 마르키아(Marcia), 성녀 발레리아가 많은 고통을 견뎌내고 순교의 기쁨을 얻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 기록은 서로 다른 두 그룹의 순교자들이 합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나이다(Zenaida) 또는 제나이데(Zenaides)로도 불리는 성녀 제나이스는 분명히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순교하였다.
다른 세 명의 초기 순교자들은 전통적으로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한 예수님의 제자들로 보고 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들의 축일을 6월 7일에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이유로 그들의 이름을 더는 수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발레리아
- 세례명 축일
12월 9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ri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리모주
발레리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발레리아 이야기
성녀 발레리아는 프랑스 리모주에 파견된 로마 총독의 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3세기 중엽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이후 갈리아 지방의 재복음화를 위해 성 파비아누스(Fabianus, 1월 20일) 교황에 의해 파견된 7명의 선교사 주교인 ‘갈리아의 사도들’ 중 한 명인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6월 30일)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그의 영적 제자가 되었다.
성 마르티알리스는 주로 리무쟁(Limousin)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리모주에 교구를 설정해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성녀 발레리아는 고위 관리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가 이교도라는 이유로 혼인을 거절하였다. 이에 분노한 약혼자에 의해 성녀 발레리아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참수형을 당한 성녀 발레리아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기 머리를 들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던 성 마르티알리스에게 걸어갔다고 한다. 성 마르티알리스는 성녀 발레리아의 영혼이 평화로이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기도해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한 그녀의 약혼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성녀 발레리아는 성 마르티알리스 주교와 함께 리모주에서 존경을 받았고, 그들의 유해는 리모주의 성 마르티알리스 수도원에 함께 묻혔다. 10세기에 수도원이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고, 이때 성녀 발레리아의 유해 일부가 리모주 북동쪽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옮겨져 공경을 받고 있다.
나머지 유해는 수도원이 소실된 후 리모주의 중심지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으로 옮겨 성 마르티알리스 주교와 그의 무덤을 지켰다고 알려진 성 루(Loup) 주교의 유해와 함께 안치되었다. 그런데 전설적인 순교자로 리무쟁 지역에서 큰 공경을 받으며 여러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었던 성녀 발레리아의 실존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9일 목록에서 프랑스의 리모주에서 동정 순교자인 성녀 발레리아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역사적 신뢰성 부족 등의 이유로 그녀의 이름을 더는 수록하지 않았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발레리아는 파리(Paris)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 주교처럼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표현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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