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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여자세례명 8가지

피어나네 2023. 9. 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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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니체타 레비나 루도비카 아퀼리나 쿠네군다 크리스티나 (동정 순교자) 크리스티나 (동정녀) 크리스티아나, 총 8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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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남자세례명 글렙, 니콜라오, 데클란, 메네오, 보리스, 빅토르, 빈첸시오, 사르벨리오 마클루푸, 스테르카시오, 안티노제네, 요한, 요한 보스트, 우르시치노, 카피토, 총 1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24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8가지

 

 

 

 

7월 24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니체타

  2. 레비나

  3. 루도비카

  4. 아퀼리나

  5. 쿠네군다

  6. 크리스티나 (동정 순교자)

  7. 크리스티나 (동정녀)

  8. 크리스티아나

 

7월 24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8가지

 

 

1. 니체타

 

  • 가톨릭 성인 이름
    Nicet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니체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체따, 니케타.

 

 

니체타 자료

성녀 니케타(또는 니체타)와 성녀 아퀼리나(Aquilina)는 원래 전승에 의하면 성 니케타(Nicetas)와 성 아퀼라(Aquila)라는 이름의 군인 순교자로 나온다. 그런데 저자가 불확실한 성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7월 25일) 전기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이 여성형으로 바뀌어 매춘부였다가 회개하여 신앙에로 나아간 두 순교자에게 적용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레비나

 

  • 가톨릭 성인 이름
    Lew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경

 

 

레비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위나.

 

 

레비나 자료

성녀 레비나는 색슨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이전에 영국에서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그 외에 알려진 것은 없다. 그녀의 유해는 성녀 이다베르가(Idaberga)와 함께 플랑드르(Flandre)의 성 윈녹크(Winnoc) 성당에 안치되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루도비카

 

  • 가톨릭 성인 이름
    Louise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과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462-1503년 사보이아

 

 

루도비카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도비까, 루이즈.

 

 

루도비카 자료

상류사회의 우아한 귀부인이던 루도비카(Ludovica)는 클라라 회원이 될 은혜를 미리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것 같다. 그녀는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인 복자 아마데우스의 9세(Amadeus IX, 3월 30일)의 딸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에 부친을 여의었지만 어머니에 의하여 훌륭히 자랐으니, 특히 뛰어난 영적 지위에 있었다. 18세 때에 그녀는 위고 드 샬롱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그들의 집은 마치 수도원처럼 거룩하였고 부부생활은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그녀는 최초로 자선함을 설치한 인물로 기록된다. 자선함에 모인 기금으로 그녀는 고아와 과부 특히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이제 완전히 세속과 결별하였다.

그녀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을 입고 성무일도를 바쳤으며, 밤중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오르베(Orbe)의 클라라 수녀회에서 살게 되었다. 비록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녀는 수녀원 내의 부엌일을 비롯하여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였다.

이처럼 그녀는 철저히 겸손하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1503년 7월 24일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소서” 하며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3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아퀼리나

 

  • 가톨릭 성인 이름
    Aquil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아퀼리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귈리나, 아뀔리나.

 

 

아퀼리나 자료

성녀 니케타(Niceta)와 성녀 아퀼리나는 원래 전승에 의하면 성 니케타(Nicetas)와 성 아퀼라(Aquila)라는 이름의 군인 순교자로 나온다. 그런데 저자가 불확실한 성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7월 25일) 전기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이 여성형으로 바뀌어 매춘부였다가 회개하여 신앙에로 나아간 두 순교자에게 적용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쿠네군다

 

  • 가톨릭 성인 이름
    Cunegunde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왕비,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224/34-1292년 폴란드

 

 

쿠네군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구네군다, 구네군데스, 구네군디스, 쿠네군데스, 쿠네군디스, 킨가, 킹가.

 

 

쿠네군다 자료

폴란드와 헝가리어로 킹가 또는 킨가(King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또는 구네군다)는 헝가리의 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나(Maria Laskarina)의 딸이자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의 조카딸로 헝가리 북부 에스테르곰(Esztergo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1월 18일)과 폴란드의 복녀 욜렌타(Jolenta, 6월 11일)의 언니이기도 하다. 성녀 쿠네군다는 궁중에서 ‘라틴어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고, 16세 때 폴란드의 왕 볼레스와프 5세(Boleslaw V)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비록 결혼에는 동의하였으나 결혼한 밤에 왕에게 동정을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아내의 소원을 물리치지 못한 왕은 1년 동안만 지키자고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 왕과 왕비는 평생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크라쿠프(Krakow)의 주교 앞에서 서약하였다.

성녀 쿠네군다 왕비는 궁중의상 안에 허름한 옷을 입고 검소하고 엄격한 극기 생활을 실천했다. 수시로 병자와 가난한 이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자선사업에 왕실 재산을 기꺼이 사용했다. 1279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나라를 다스리라는 귀족들의 청을 물리치고, 자신이 스타리 사치(Stary Sacz)에 세운 클라라회 봉쇄 수녀원에 들어갔다. 

수녀원에 들어간 뒤로도 여러 곳에 성당과 병원 등을 지었고, 터키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힌 그리스도인의 몸값을 대신 지불해 그들을 구해주기도 했다. 1287년 몽골 타타르족이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 그녀는 수녀들을 이끌고 한 성으로 피신했다. 

당시 몽골 타타르군은 자신들이 지나가는 곳에 있는 모든 요새를 처참하게 파괴하고 학살했으나 성녀 쿠네군다와 수녀들이 피신한 성은 그녀의 기도 덕분에 백성들과 함께 모두 무사했다고 한다. 

그녀의 놀라운 기도의 힘과 성덕으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죽기 전부터 이미 성녀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수녀원에서 여생을 지낸 성녀 쿠네군다는 1292년 7월 24일 병환으로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690년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허락되었고,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그녀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성녀 쿠네군다는 또한 광부들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는 그녀가 약혼반지를 던져 다시 찾은 곳에서 암염 광산을 발견한 전설에서 기인한다. 

그 후에 헝가리에서 광산 기술자들을 데려와 본격적으로 개발했는데, 이곳이 폴란드의 비엘리치카(Wieliczka) 소금 광산이다. 이렇게 13세기부터 암염 채굴이 시작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소금 광산이 되었다. 

현재 비엘리치카와 인근의 보흐니아(Bochnia) 소금 광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하 깊숙이 여러 층으로 개발된 광산 내에는 19세기 말부터 광부 조각가들이 암염을 깎아 만든 성녀 킨가(쿠네군다) 경당을 비롯해 암염을 조각해 만든 성인상과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있다. 

1998년 7월 3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성녀 쿠네군다를 복자품에 올렸고, 이듬해인 1999년 6월 16일 폴란드를 방문하여 그녀가 수녀로서 여생을 보낸 스타리 사치에서 시성식을 집전하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녀의 축일을 7월 25일에 지내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크리스티나 (동정 순교자)

 

  • 가톨릭 성인 이름
    Christ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볼세나

 

 

크리스티나 (동정 순교자)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크리스티나 (동정 순교자) 자료

성녀 크리스티나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초기 순교자의 한 명으로 이미 4세기 이전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1880년 볼세나 인근 성당의 기초를 발굴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한 대리석 항아리에 “Hic requiescit corpus Beatae Xristinae Martyris”(여기에 복된 크리스티나 순교자의 시신이 잠들어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로마 순교록”의 기록과 전설적인 이야기들에 따르면, 그녀는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Latium)의 볼세나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교도였다. 그래서 황금과 은으로 된 많은 우상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딸에게도 우상 앞에서 향을 피우도록 강요했다.

어느 날 한 천사가 찾아와 그녀를 ‘그리스도의 신부’라 부르며 앞으로 겪게 될 고통에 대해 말해주었다. 천사의 방문으로 힘을 얻은 성녀 크리스티나는 비록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혀 금과 은으로 된 우상 조각들을 부숴버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성녀 크리스티나의 행동에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하인들을 시켜 채찍질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심한 고통을 주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딸을 죽이려고 그녀의 목에 무거운 돌덩어리를 매달아 볼세나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성녀 크리스티나는 천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호수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 다른 재판관에 인계되어 끌려간 성녀 크리스티나는 계속해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용감하게 참아냈다. 율리아누스 총독은 그녀를 불타는 가마 속에서 5일 동안 있도록 했으나 그녀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고 큰 뱀들에게 물린 상처도 바로 치유되었다. 마침내 성녀 크리스티나는 잔인하게 혀가 잘리고 목에 화살을 맞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녀의 유해 일부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Palermo) 대성당에도 모셔졌고, 팔레르모의 4대 수호성인(성녀 아가타, 성녀 크리스티나, 성녀 님파, 성녀 올리바) 중 한 명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크리스티나 (동정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hrist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150-1224년

 

 

크리스티나 (동정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크리스티나 (동정녀) 자료

성녀 크리스티나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 림뷔르흐(Limburg) 지방의 신트트뤼던(Sint-Truiden) 인근 브뤼스템(Bruste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심 깊은 가정의 세 딸 중 막내였다. 15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녀는 21살 때에는 간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동반한 발작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녀의 상태가 너무 심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를 준비했다. 그녀를 위한 장례미사가 봉헌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몸이 성당 지붕으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 

주임 사제가 아래로 내려오라고 명하자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에도 다녀왔는데,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러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녀의 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로 보는 이들도 많이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후 성녀 크리스티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극도의 가난과 생활을 실천하며 엄격한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그저 이상하고 놀라운 사람(the Astonishing 또는 Mirabilis)으로 여겼지만 그녀를 공경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 해를 생트롱(Saint Trond)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7월 24일에 선종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적은 없지만, 그녀의 고향인 림뷔르흐 지방을 중심으로 그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졌다. 전통적으로 성녀 크리스티나에게 정신적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위한 전구 기도를 청해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크리스티아나

 

  • 가톨릭 성인 이름
    Christia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경 테르몽드

 

 

크리스티아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리스띠아나, 크리스띠아나.

 

 

크리스티아나 자료

성녀 크리스티아나는 앵글로색슨(Anglo-Saxon) 왕의 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건너가서 수도자로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녀는 벨기에 테르몽드의 수호성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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