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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남자세례명 14가지

피어나네 2023. 9.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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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드리텔모, 로가토, 루스티코, 리베라토, 마마, 막시모, 미론, 바오로, 보니파시오, 세르보, 셉티모, 아나스타시오, 에우세비오, 히야친토, 총 1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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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여자세례명 베아트릭스, 요안나 들라누, 율리아나, 클라라,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8월 1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8월 17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드리텔모

  2. 로가토

  3. 루스티코

  4. 리베라토

  5. 마마

  6. 막시모

  7. 미론

  8. 바오로

  9. 보니파시오

  10. 세르보

  11. 셉티모

  12. 아나스타시오

  13. 에우세비오

  14. 히야친토

 

8월 1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 드리텔모

 

  • 가톨릭 성인 이름
    Drithel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700년경

 

 

드리텔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드리뗄모, 드리텔름.

 

 

드리텔모 자료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 살던 성 드리텔모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수덕생활을 하고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는 가정을 꾸미고 살았다. 

693년 어느 날 그가 평소에 앓던 병이 위중하더니, 저녁에는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일어나서, 죽은 자신의 육신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아내만은 정신없이 서 있었다. 이때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겁내지 마시오. 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소. 

이제부터는 그전대로 살지 않고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살 것이오.” 그런 후 그는 재산을 아내와 자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3등분하여 나누어 준 뒤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고, 지옥을 두려워하며 천상 영복을 바라는 사람에게만 들려주었다 한다.

그가 지옥이나 천국을 보았을 것이라 하여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후 그는 일생동안 독수자처럼 엄격한 고행을 하며 지냄으로써 수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였다고 한다.

성 베다(Beda)는 “그가 지금도 아일랜드에서 독수생활을 하며 놀라운 삶을 산다.”고 증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가토

 

  • 가톨릭 성인 이름
    Rog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로가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가또, 로가뚜스, 로가투스.

 

 

로가토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루스티코

 

  • 가톨릭 성인 이름
    Rust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차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루스티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스띠꼬, 루스띠꾸스, 루스티쿠스.

 

 

루스티코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리베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Liber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리베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리베라또, 리베라뚜스, 리베라투스.

 

 

리베라토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또는 리베라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마

 

  • 가톨릭 성인 이름
    Mam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5년경 카이사레아

 

 

마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마스, 마만스, 맘마, 맘마스.

 

 

마마 자료

로마 순교록과 전승에 의하면, 성 마마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서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 부모인 성 테오도투스(Theodotus, 8월 31일)와 성녀 루피나(Rufina, 8월 31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시민은 로마의 신상 앞에서 희생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포고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카이사레아의 총독 파우스투스(Faustus)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에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의 아내인 성녀 루피나는 임신 중이었다. 남편과 함께 감옥에서 고통받던 성녀 루피나는 성 마마를 낳고 숨을 거두었다. 갓난아기를 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성 마마는 신심 깊고 부유한 미망인인 성녀 암미아(Ammia, 8월 31일)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성녀 암미아는 성 마마를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다. 새어머니의 도움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모범적으로 성장한 성 마마는 주변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데도 열성적이었다. 성녀 암미아는 성 마마가 15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지만 성 마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퍼뜨린 죄로 카이사레아의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총독은 성 마마를 차마 고문하지 못하고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에게 보냈다. 

황제는 일단 어린 성 마마를 회유해 배교시키려고 했지만, 두려움 없이 신앙을 고백하고 우상숭배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소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분노한 황제는 그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하고 익사시키려 했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그는 카이사레아에서 멀지 않은 사막의 높은 산으로 가서 살았다. 

그는 그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기도와 금식을 실천하며 엄격한 생활을 했다. 그는 산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평화롭게 사는 놀라운 능력도 발휘했다. 꿀과 염소의 젖으로 생활하며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그의 존재 때문에 불편했던 지방 행정관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군인들을 보냈다. 군인들은 산 위에서 성 마마를 만났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양치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성 마마는 군인들을 오두막에 초대해 마실 우유를 제공하고, 그들이 체포하러 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당당히 이름을 밝혔다. 그는 오랫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맹수에게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지만, 짐승들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그러자 한 이교도의 사제가 삼지창으로 그를 때려 심각한 상처를 입혔고, 피를 흘리며 마을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작은 동굴에 들어가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신자들에 의해 마지막 숨을 거둔 곳에 묻혔다. 그는 맘마(Mammas) 또는 마만스(Maman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미론

 

  • 가톨릭 성인 이름
    Myr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키지쿠스

 

 

미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미런.

 

 

미론 자료

터키 마르마라(Marmara) 해의 섬인 키지쿠스의 신부였던 성 미론은 그의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온 박해자들 앞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순교하였다. 박해자들은 그를 살해하고 성당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0년경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남매 사이인 성 바오로(Paulus)와 성녀 율리아나(Juliana)는 270년경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한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될 무렵 페니키아(Phoenicia) 연안의 항구도시인 팔레스티나(Palestina)의 프톨레마이스(Ptolemais)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비록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한 번은 프톨레마이스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스스로 십자가의 상징을 지니고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성 바오로를 만났다. 

황제는 즉시 그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다음날 재판관이 심문할 때, 성 바오로는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 그로 인해 그는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성 바오로가 고통당하는 것을 지켜본 성녀 율리아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황제의 불의와 잔혹함에 대해 고발했다. 그래서 그녀 또한 체포되어 같은 방법으로 고문을 받았다. 

거룩한 남매는 무수히 매를 맞고 날카로운 쇠 갈고리로 온몸이 찢기고 뜨겁게 달군 쇠로 지지는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문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대한 거룩한 남매의 고백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을 고문하던 세 명은 군인들은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남매에게 충격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세 명의 군인들, 즉 콰드라투스(Quadratus)와 아카키우스(Acacius)와 스트라토니쿠스(Stratonicus)는 그 즉시 처형되었다.

성녀 율리아나를 고문하던 사람이 한 번은 만약 그리스도를 배반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으로 유혹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녀 율리아나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고 변함없는 마음을 유지했다.

황제의 명령으로 성녀 율리아나를 더럽히기 위해 평판이 안 좋은 집으로 보냈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황제는 거룩한 남매를 화형에 처하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몰려들어 고통받는 순교자들을 보며 점점 크게 웅성거리자 즉시 참수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거룩한 남매는 웃는 얼굴로 처형장에 들어서며 하느님을 찬양했다. 성 바오로와 성녀 율리아나의 순교 이야기는 다소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지만,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둘러싼 열주(列柱) 위를 장식한 140명의 성인 중 일원으로 포함되어 공경을 받아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보니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onifac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보니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보니파시오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세르보

 

  • 가톨릭 성인 이름
    Serv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차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세르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르부스, 쎄르보, 쎄르부스.

 

 

세르보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또는 세르보)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셉티모

 

  • 가톨릭 성인 이름
    Sept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3년 카프사

 

 

셉티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셉티무스, 쎕띠모, 쎕띠무스, 쎕티모, 쎕티무스.

 

 

셉티모 자료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또는 셉티모)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아나스타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ast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53년

 

 

아나스타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나스따시오, 아나스따시우스, 아나스타시우스.

 

 

아나스타시오 자료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시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 부근에서 은수자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신원에 대한 다소의 혼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교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1518년에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에우세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seb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309/310년

 

 

에우세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세비오스, 에우세비우스.

 

 

에우세비오 자료

그리스 출신의 의사였던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308/9년경에 교황 성 마르첼루스 1세(Marcellus I, 1월 16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전임자로부터 배교자 처리 문제에 관한 논쟁을 물려받았다.

전임 교황은 배교자들이 합당한 참회를 하고 공적으로 용서를 받아야 교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정책을 고수했고, 성 에우세비우스 교황도 이를 따랐다.

이 때문에 배교자 무리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었는데, 그들은 헤라클리우스(Heraclius)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한 뒤 보속 없이 곧바로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이 끝없이 계속되자 황제 막센티우스가 개입하여 헤라클리우스와 성 에우세비우스 교황을 시칠리아(Sicilia)로 추방하였다. 성 에우세비우스는 불과 4개월 간 재임한 후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히야친토

 

  • 가톨릭 성인 이름
    Hyacint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185-1257년 크라쿠프

 

 

히야친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히야친또, 히야친뚜스, 히야친투스, 히야친트, 히야킨또, 히야킨뚜스, 히야킨토, 히야킨투스.

 

 

히야친토 자료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또는 히야친토)는 서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185년 폴란드 남서부 슐레지엔(Schlesien) 근처의 란카(Lanka)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크라쿠프와 프라하(Prague)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볼로냐(Bologna)에서 법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폴란드로 돌아와서 크라쿠프 교구장의 비서가 되었다. 그 후 삼촌인 이보 콘스키(Ivo Konski) 신부가 크라쿠프의 주교가 되자 참사위원이 되어 1220년 주교와 함께 로마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마침 로마에 와 있던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를 만나 그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즉시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수련을 받고 성녀 사비나(Savina) 성당에서 착복식을 가졌다.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1222년 크라쿠프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이를 삼위일체 하느님께 봉헌했다. 그는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했다. 

그의 뛰어난 설교 덕분에 지원자들이 모이면서 1227년 그다인스크(Gdansk)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어서 폴란드의 여러 곳에 수도회 공동체를 설립했다. 그는 선교 지역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비롯하여 프로이센(Preussen)과 리투아니아(Lithuania) 전역으로 확대해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238년 이후 타타르족(Tatar)의 침입으로 많은 수도원이 파괴되어 선교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때도 그는 수도원의 복구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특히 깊은 성모 신심으로 유명한데,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많은 치유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성모님과 관련한 그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데, 성 히야킨투스가 키예프(Kiev)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가 타타르족의 습격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성당이 불길에 휩싸이자 그는 성체를 모신 성합만을 챙겨 겨우 피신했는데, 성당 내부의 성모상에서 “나의 아들아,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느냐? 나도 함께 데려가 다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성모상은 장정 여러 명이 들기도 어려울 만큼 무겁고 컸다. 

그는 이 음성을 듣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모상을 들어 올렸는데, 그에게 성모상은 깃털만큼 가볍게 느껴졌다. 그가 성합과 성모상을 들고 도망치던 길에 강물이 가로막았지만, 그가 강을 건널 때까지 강물이 말라 있었다고 한다.

타타르족의 침입 이후 선교 활동의 중심지인 크라쿠프로 돌아온 성 히야킨투스는 1257년 8월 15일 70세가 넘은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한 그의 유해는 크라쿠프의 도미니코회 성당에 안장되었고, 1594년 4월 17일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폴란드의 사도이자 북유럽의 사도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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