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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남자세례명 14가지

피어나네 2023. 9.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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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라우로, 레오, 막시모, 세라피온, 아가피토,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 요한, 크리스포, 폴리에노, 프로쿨로, 플로로, 피르미노, 하이모 타파렐리, 헤르마스, 총 1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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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여자세례명 율리아나, 헬레나,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8월 1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8월 18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라우로

  2. 레오

  3. 막시모

  4. 세라피온

  5. 아가피토

  6.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

  7. 요한

  8. 크리스포

  9. 폴리에노

  10. 프로쿨로

  11. 플로로

  12. 피르미노

  13. 하이모 타파렐리

  14. 헤르마스

 

8월 1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 라우로

 

  • 가톨릭 성인 이름
    Lau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석공,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세기

 

 

라우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우루스.

 

 

라우로 자료

그리스 전승에 따르면 성 플로루스(Florus)와 성 라우루스(또는 라우로)는 본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출신의 쌍둥이 형제로 일리리아(Illyria, 발칸 반도 서부 지역)의 이교도 신전 공사장에서 일하던 석공이었다. 

그들은 석공 기술자이자 고용주인 성 막시무스(Maximus)와 성 프로쿨루스(Proculus)에게 석공 기술을 배웠는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들 형제는 품삯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이교도 사제의 아들이 바위 조각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치료해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교도 사제도 개종하였다. 

그들은 신전이 완성되자 모든 이교 신상을 끌어내려 부수고 십자가를 세운 뒤에 그 지방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 체포되었다.

결국 성 막시무스와 성 프로쿨루스와 함께 우상 파괴에 참여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형을 당해 순교했고, 성 플로루스와 성 라우루스 형제는 총독에게 끌려가 많은 고문을 당한 후 마른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나중에 이들 형제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 당시 말들에게 유행하던 역병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말(馬)의 수호자로서 교회 미술 안에서 주로 말과 함께 그려지며, 특별히 동방 정교회와 러시아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8일 목록에서 이들 네 순교자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e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레오 자료

성 레오와 성녀 율리아나(Juliana)는 나란히 이름을 병기하는 것이 무의미한 또 다른 한 쌍의 성인성녀이다. 성 레오는 리키아(Lycia, 고대 소아시아 남서쪽 끝에 있던 지방)의 미라(Myra)에서 순교했고, 성녀 율리아나는 소아시아의 스트로비룸(Strobylum)에서 순교하였다. 그녀는 아마 프톨레마이스(Ptolemais)의 성녀 율리아나(8월 17일)와 동일 인물일 수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석공,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세기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그리스 전승에 따르면 성 플로루스(Florus)와 성 라우루스(Laurus)는 본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출신의 쌍둥이 형제로 일리리아(Illyria, 발칸 반도 서부 지역)의 이교도 신전 공사장에서 일하던 석공이었다. 

그들은 석공 기술자이자 고용주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프로쿨루스(Proculus)에게 석공 기술을 배웠는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들 형제는 품삯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이교도 사제의 아들이 바위 조각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치료해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교도 사제도 개종하였다. 

그들은 신전이 완성되자 모든 이교 신상을 끌어내려 부수고 십자가를 세운 뒤에 그 지방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 체포되었다.

결국 성 막시무스와 성 프로쿨루스와 함께 우상 파괴에 참여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형을 당해 순교했고, 성 플로루스와 성 라우루스 형제는 총독에게 끌려가 많은 고문을 당한 후 마른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나중에 이들 형제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 당시 말들에게 유행하던 역병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말(馬)의 수호자로서 교회 미술 안에서 주로 말과 함께 그려지며, 특별히 동방 정교회와 러시아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8일 목록에서 이들 네 순교자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세라피온

 

  • 가톨릭 성인 이름
    Serapi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

 

 

세라피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라피언, 쎄라피온.

 

 

세라피온 자료

성 헤르마스(Hermas)와 성 세라피온 그리고 성 폴리아이누스(Polyaenus)는 로마 사람으로 성난 군중들에 의해 발이 묶인 채 거친 땅을 질질 끌려다니는 고통을 겪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아가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gapi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4년 팔레스트리나

 

 

아가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가비도, 아가비또, 아가비뚜스, 아가비토, 아가비투스, 아가피투스.

 

 

아가피토 자료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였던 성 아가피투스(또는 아가피토)는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의 집정관 안티오쿠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다가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여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음식과 마실 물도 없이 4일 동안이나 독방에 갇혔고, 타오르는 석탄을 머리에 쏟아 붓고 하여 그의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

 

  • 가톨릭 성인 이름
    Alberto Hurtado Cruchag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901-1952년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후르타도.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 자료

성 알베르투스 우르타도 크루차가(Albertus Hurtado Cruchaga, 또는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는 1901년 1월 22일 칠레(Chile) 중부에 위치한 비냐델마르(Vina del Mar)에서 태어났다. 

우르타도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다 팔아야 했다. 

그래서 우르타도와 그의 형제들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 우르타도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된다는 것과 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받는 자애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산티아고(Santiago)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성모회(the Sodality of Our Lady)의 회원이 되어 가난한 이들의 유익을 증진시키며, 매 주일 오후마다 가장 불쌍한 이웃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1917년 중등교육을 마친 후 우르타도는 예수회에 들어가기를 소망했지만 어머니와 어린 형제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오후와 저녁에 일을 해서 가족들을 돌보면서도 가톨릭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병행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매 주일마다 그들을 방문하였다. 병역 의무로 인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의무를 완수한 후 1923년 초에 학위를 취득하였다.

우르타도는 1923년 8월 14일 치얀(Chillan)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하였다. 1925년에 그는 아르헨티나(Argentina)의 코르도바(Cordoba)로 가서 인문학을 공부했으며, 1927년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에스파냐(Espana)로 갔다.

그러나 1931년 에스파냐에서 예수회의 활동이 금지되자 벨기에(Belgium)의 루뱅(Louvain)으로 가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는 1933년 8월 24일 루뱅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1935년에는 교육학과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벨기에의 드롱겐(Drongen)에서 종신서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거치는 제3수련기를 마친 후 1936년 1월 칠레로 돌아왔다. 그는 산티아고에서 성 이냐시오 대학의 종교학 교수로 그리고 가톨릭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성모회의 지도를 맡았고, 회원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였다. 우르타도 신부는 자주 피정 지도와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적 지도를 담당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젊은이들이 사제성소에 응답하였다.

또한 그는 평신도들을 양성하기 위한 탁월한 방법에 대해 기고하기도 했다. 1941년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칠레는 가톨릭 국가인가?”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산티아고 대교구의 가톨릭 청년운동 지도신부가 되었고, 이어 전국적인 가톨릭 청년운동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직무를 창의성과 헌신과 희생으로써 수행하였다.

1944년 10월, 피정 지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난한 사람들, 특히 산티아고의 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집 없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도록 호소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그의 요청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이것이 우르타도 신부에 의해 제안되어 집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가정과도 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자선 활동의 한 형태로 잘 알려진 ‘그리스도의 가정’(El Hogar de Cristo)의 시작이었다.

그는 은인들의 도움과 헌신적인 평신도들의 열성적인 협력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첫 번째 ‘가정’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여성들과 남성들을 위한 가정도 문을 열었다. 가난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가정’에서 따뜻한 가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가정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새로운 특징들을 갖게 되었다. 즉 어떤 가정은 사회 복귀를 돕는 센터를, 다른 가정은 직업학교를 겸하는 식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에서 영감을 받아 그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다.

1945년 그는 ‘소년의 집’(Boys Town) 운동을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숙고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6년은 그리스도의 가정 안에서 다양한 형태를 개발하고 이를 존속시키며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데 헌신한 시기였다.

1947년 그는 교회의 사회교리를 반영한 조합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칠레 노동조합연합(the Chilean Trade Union Association)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47년과 1950년 사이에 노동조합과 사회적 인문주의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세 권의 중요한 책들을 저술하였다. 1951년에는 예수회가 정기적으로 교회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전언’(Mensaje, Message)을 창간하였다.

그는 췌장암에 걸려 몇 달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주 “주님, 저는 만족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삶 전체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백히 증거하기 위해 사용한 성 알베르투스 우르타도 크루차가 신부는 1952년 8월 18일 산티아고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예수회의 제3수련기 이후 칠레로 돌아와서 선종할 때까지 15년여의 기간 동안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이룩하였다.

그의 사도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개인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사랑은 가난하고 버려진 어린이들을 위한 위대한 사랑과 평신도들의 양성을 위한 계몽적 열정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사회 정의의 역동적 이해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1994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5년 10월 2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로마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성 요한(Joannes)과 성 크리스푸스(Crispus)는 로마의 사제로 그다지 신뢰성이 없는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 그리고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 이상 7월 29일) 남매 순교자들의 행전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이 두 사제가 다른 순교자들의 시신을 찾아내서 매장한 죄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크리스포

 

  • 가톨릭 성인 이름
    Crisp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로마

 

 

크리스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리스보, 끄리스뽀, 끄리스뿌스, 크리스푸스.

 

 

크리스포 자료

성 요한(Joannes)과 성 크리스푸스(또는 크리스포)는 로마의 사제로 그다지 신뢰성이 없는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 그리고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 이상 7월 29일) 남매 순교자들의 행전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이 두 사제가 다른 순교자들의 시신을 찾아내서 매장한 죄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폴리에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olyae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

 

 

폴리에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뽈리아이노, 뽈리아이누스, 뽈리에노, 뽈리에누스, 폴리아이노, 폴리아이누스, 폴리에누스.

 

 

폴리에노 자료

성 헤르마스(Hermas)와 성 세라피온(Serapion) 그리고 성 폴리아이누스(또는 폴리에노)는 로마 사람으로 성난 군중들에 의해 발이 묶인 채 거친 땅을 질질 끌려다니는 고통을 겪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프로쿨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roc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석공,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세기

 

 

프로쿨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꿀로, 쁘로꿀루스, 프로쿨루스.

 

 

프로쿨로 자료

그리스 전승에 따르면 성 플로루스(Florus)와 성 라우루스(Laurus)는 본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출신의 쌍둥이 형제로 일리리아(Illyria, 발칸 반도 서부 지역)의 이교도 신전 공사장에서 일하던 석공이었다. 

그들은 석공 기술자이자 고용주인 성 막시무스(Maximus)와 성 프로쿨루스(또는 프로쿨로)에게 석공 기술을 배웠는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들 형제는 품삯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이교도 사제의 아들이 바위 조각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치료해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교도 사제도 개종하였다. 

그들은 신전이 완성되자 모든 이교 신상을 끌어내려 부수고 십자가를 세운 뒤에 그 지방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 체포되었다.

결국 성 막시무스와 성 프로쿨루스와 함께 우상 파괴에 참여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형을 당해 순교했고, 성 플로루스와 성 라우루스 형제는 총독에게 끌려가 많은 고문을 당한 후 마른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나중에 이들 형제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 당시 말들에게 유행하던 역병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말(馬)의 수호자로서 교회 미술 안에서 주로 말과 함께 그려지며, 특별히 동방 정교회와 러시아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8일 목록에서 이들 네 순교자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플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Fl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석공,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세기

 

 

플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플로루스.

 

 

플로로 자료

그리스 전승에 따르면 성 플로루스(또는 플로로)와 성 라우루스(Laurus)는 본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출신의 쌍둥이 형제로 일리리아(Illyria, 발칸 반도 서부 지역)의 이교도 신전 공사장에서 일하던 석공이었다. 

그들은 석공 기술자이자 고용주인 성 막시무스(Maximus)와 성 프로쿨루스(Proculus)에게 석공 기술을 배웠는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들 형제는 품삯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이교도 사제의 아들이 바위 조각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치료해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교도 사제도 개종하였다. 

그들은 신전이 완성되자 모든 이교 신상을 끌어내려 부수고 십자가를 세운 뒤에 그 지방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 체포되었다.

결국 성 막시무스와 성 프로쿨루스와 함께 우상 파괴에 참여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형을 당해 순교했고, 성 플로루스와 성 라우루스 형제는 총독에게 끌려가 많은 고문을 당한 후 마른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나중에 이들 형제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 당시 말들에게 유행하던 역병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말(馬)의 수호자로서 교회 미술 안에서 주로 말과 함께 그려지며, 특별히 동방 정교회와 러시아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8일 목록에서 이들 네 순교자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피르미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irm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96년 메스

 

 

피르미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피르미누스, 피르민.

 

 

피르미노 자료

성 피르미누스(또는 피르미노)의 출신이 그리스인지 아니면 이탈리아인지는 불확실하나 그는 프랑스 메스의 주교로서 8년간 사목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하이모 타파렐리

 

  • 가톨릭 성인 이름
    Haymo Taparell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395-1495년 사비글리아노

 

 

하이모 타파렐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따빠렐리, 헤이모.

 

 

하이모 타파렐리 자료

하이모 타파렐리는 라냐스코(Lagnasco) 백작 집안 출신으로 1395년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e) 지방의 사비글리아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재치가 넘치는 청년으로 한동안 결혼생활을 하다가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Torino)에서 공부한 후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는데, 특히 이단자와의 화해와 훌륭한 그리스도교 교육에 있어서 남다른 성과를 얻었다.

또한 그는 사보이아(Savoia)의 공작인 복자 아마데우스 9세(Amadeus IX, 3월 30일)의 주의를 끌게 되어 궁중에서 설교하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최선의 통치’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여 궁중 관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별로 말이 없는 과묵한 사람이었으나,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놀라운 화술을 발휘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 헌신적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던 그는 백세가 다 되어 선종하였고, 그에 대한 공경은 1856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헤르마스

 

  • 가톨릭 성인 이름
    Herm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

 

 

헤르마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르메스.

 

 

헤르마스 자료

성 헤르마스와 성 세라피온(Serapion) 그리고 성 폴리아이누스(Polyaenus)는 로마 사람으로 성난 군중들에 의해 발이 묶인 채 거친 땅을 질질 끌려다니는 고통을 겪고 순교하였다. 성 헤르마스는 헤르메스(Herme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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