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그라시아, 마리아, 바사, 치리아카, 총 4분 목록이에요.
8월 21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8월 21일 남자세례명 구니포르토, 룩소리오, 막시미아노, 베르나르도, 보노소, 비오 10세, 시도니오 아폴리나리스, 아가피오, 아나스타시오, 아브라함, 아비토, 에우프레피오, 치셀로, 카메리노, 콰드라토, 테오고니오, 파테르노, 프리바토, 피델리스, 총 19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8월 21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4가지
8월 21일 여자세례명 목록
1. 그라시아
- 가톨릭 성인 이름
Grac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81년 알시라
그라시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라씨아, 그라치아, 그라티아, 그레이스, 조라이다.
그라시아 자료
알시라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와 그의 여동생인 성녀 그라시아(Gratia, Gracia)와 성녀 마리아(Maria)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을 거친 옛 “로마 순교록”에서도 그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들다. 축일 또한 관련 교구와 수도원에 따라 서로 다른 날에 기념해왔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이 순교한 날로 여겨지는 8월 21일 목록에서 시토회 수도승으로 아흐메드(Ahmed)라고 불리던 성 베르나르두스가 무슬림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이끈 그의 누이 성녀 마리아와 성녀 그라시아를 에스파냐 발렌시아 지방에 있는 알시라에서 기념한다는 설명을 추가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르나르두스의 본래 이름은 아흐메드로 발렌시아 지방에 있었던 사라센 왕국의 카렛(Carlet) 지방 족장인 알만소르(Almanzor)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형과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형과 함께 궁정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156년 아라곤(Aragon) 왕국과의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의 석방을 위한 외교적 임무를 띠고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바르셀로나(Barcelona)에 갔다. 외교적 협상에 실패한 그는 돌아오던 중에 길을 잃고 밤새 숲속을 헤매다가 어디선가 천사가 부르는 듯한 노랫소리를 듣고 타라고나(Tarragona)의 포블레트에 있는 시토회의 왕립 성모 마리아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ta Maria de Poblet)을 찾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수도원장의 친절한 환대를 받고 흰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승들의 겸손과 기도 생활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앙에 대해 배우고 나서 이슬람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면서 베르나르두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수도명으로 정했다.
1181년경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발렌시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렛으로 가서 여동생인 자이다(Zaida)와 조라이다(Zoraida)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에 오른 형을 만났다. 여동생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자이다는 마리아로, 조라이다는 그라시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형이 격분하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녀 마리아와 성녀 그라시아와 함께 피신했다가 그해 8월 21일 알시라에서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이슬람교의 지배하에서도 개종하지 않은 에스파냐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수습되어 알시라에 묻혔다.
1242년 그 지역을 정복해 무슬림의 손에서 해방한 아라곤의 왕 하우메 1세(Jaume I, 1208-1276)는 그들의 유해를 찾은 후 삼남매의 순교 장소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고 삼위일체 수도회에 그곳의 관리를 위임했다. 1603년 그들의 유해는 타라고나의 포블레트 왕립 성모 마리아 수도원으로 이장되었고, 1643년 이들 세 순교자는 알시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리아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81년 알시라
마리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자이다.
마리아 자료
알시라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와 그의 여동생인 성녀 그라시아(Gratia, Gracia)와 성녀 마리아(Maria)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을 거친 옛 “로마 순교록”에서도 그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들다. 축일 또한 관련 교구와 수도원에 따라 서로 다른 날에 기념해왔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이 순교한 날로 여겨지는 8월 21일 목록에서 시토회 수도승으로 아흐메드(Ahmed)라고 불리던 성 베르나르두스가 무슬림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이끈 그의 누이 성녀 마리아와 성녀 그라시아를 에스파냐 발렌시아 지방에 있는 알시라에서 기념한다는 설명을 추가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르나르두스의 본래 이름은 아흐메드로 발렌시아 지방에 있었던 사라센 왕국의 카렛(Carlet) 지방 족장인 알만소르(Almanzor)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형과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형과 함께 궁정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156년 아라곤(Aragon) 왕국과의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의 석방을 위한 외교적 임무를 띠고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바르셀로나(Barcelona)에 갔다.
외교적 협상에 실패한 그는 돌아오던 중에 길을 잃고 밤새 숲속을 헤매다가 어디선가 천사가 부르는 듯한 노랫소리를 듣고 타라고나(Tarragona)의 포블레트에 있는 시토회의 왕립 성모 마리아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ta Maria de Poblet)을 찾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수도원장의 친절한 환대를 받고 흰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승들의 겸손과 기도 생활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앙에 대해 배우고 나서 이슬람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면서 베르나르두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수도명으로 정했다.
1181년경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발렌시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렛으로 가서 여동생인 자이다(Zaida)와 조라이다(Zoraida)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에 오른 형을 만났다. 여동생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자이다는 마리아로, 조라이다는 그라시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형이 격분하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녀 마리아와 성녀 그라시아와 함께 피신했다가 그해 8월 21일 알시라에서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이슬람교의 지배하에서도 개종하지 않은 에스파냐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수습되어 알시라에 묻혔다.
1242년 그 지역을 정복해 무슬림의 손에서 해방한 아라곤의 왕 하우메 1세(Jaume I, 1208-1276)는 그들의 유해를 찾은 후 삼남매의 순교 장소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고 삼위일체 수도회에 그곳의 관리를 위임했다. 1603년 그들의 유해는 타라고나의 포블레트 왕립 성모 마리아 수도원으로 이장되었고, 1643년 이들 세 순교자는 알시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바사
- 가톨릭 성인 이름
Bass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바사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싸.
바사 자료
성녀 바사는 이교도 사제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아들들인 성 테오고니우스(Theogonius)와 성 아가피우스(Agapius) 그리고 성 피델리스(Fideli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유죄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성녀 바사는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서 그들이 순교할 때까지 용기와 충실성을 지키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들은 모두 에데사(Edess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치리아카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ac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49년 로마
치리아카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미니까, 도미니카, 치리아까, 키리아카.
치리아카 자료
도미니카(Dominica)로도 알려진 성녀 키리아카(또는 치리아카)는 로마의 부유한 집안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자기 집을 피신처로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8월 10일) 부제 순교자와 다른 신자들이 자선활동을 전개하던 단체의 본부로 사용하도록 적극 협력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과 이런 행위 때문에 매를 맞아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 외 세례명 날짜로 찾기
그 외 세례명 이름으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