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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남자세례명 18가지

피어나네 2023. 9.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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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괄라, 그레고리오 1세(대), 레마클로, 마리노, 마카니시오, 만수에토, 바르톨로메오 구티에레즈, 바실리사, 빈첸시오 카발로, 아리스테오, 아욱사노, 아이굴포, 안드레아 도티, 안토니노, 제노, 카리톤, 크로데강, 총 18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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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여자세례명 도로테아, 세라피아, 에라스마, 에우페미아, 쿠트부르가, 테클라, 포이베, 총 7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8가지

 

 

 

 

9월 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괄라

  2. 그레고리오 1세(대)

  3. 레마클로

  4. 마리노

  5. 마카니시오

  6. 만수에토

  7. 바르톨로메오 구티에레즈

  8. 바실리사

  9. 빈첸시오 카발로

  10. 산달리오

  11. 아리스테오

  12. 아욱사노

  13. 아이굴포

  14. 안드레아 도티

  15. 안토니노

  16. 제노

  17. 카리톤

  18. 크로데강

 

9월 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 괄라

 

  • 가톨릭 성인 이름
    Guala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244년 브레시아

 

 

괄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꽐라.

 

 

괄라 자료

성 도미니코(Dominicus)가 베르가모(Bergamo)에서 첫 입회자로 맞아들인 사람들 가운데 괄라 로마노니(Guala Romanoni)가 있었다. 그는 이때 이미 40세였고, 인품이 비범하므로 성 도미니코는 그를 볼로냐(Bologna)로 데려가 교육을 시키고, 나중에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한 번은 성 도미니코가 중병으로 앓고 있을 때, 그는 스승이 꼭 살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에 잠이 들었다. 이때 꿈속에서 그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사다리 두 개를 보았는데, 그 하나의 꼭대기에는 주님과 성모님이 계시고 천사들은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가끔 환시를 보았다.

그는 세속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고 또 뛰어나게 지혜로웠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수도자이자 달변의 설교가였다. 이 때문에 그는 교황과 황제 간의 알력이 있었을 때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되어 2년 동안 활동한 결과, 성공적으로 두 세력을 화해시켰던 것이다. 교황 비오 9세(Pius IX)는 1868년 그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그레고리오 1세(대)

 

  • 가톨릭 성인 이름
    Gregory I the Grea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교회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40?-604년

 

 

그레고리오 1세(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오 1세(대) 자료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또는 그레고리오)는 이탈리아 로마의 부유한 원로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이미 두 명의 교황, 즉 성 펠릭스 3세(Felix III, 526-530년, 9월 22일)와 성 아가피투스 1세(Agapitus I, 535-536년, 9월 20일)를 배출한 로마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그는 로마에서 법학 등 고등 교육을 받고 573년 로마 시장이 되었다. 574년경 아버지 고르디아누스(Gordianus)가 세상을 떠나자 성 그레고리우스는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는 부모의 저택을 성 베네딕투스의 규율을 따르는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만들고, 그 수도원에 입회하여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시칠리아(Sicilia)에 있는 가족 소유 토지에도 5개의 수도원을 더 세웠다. 578년 교황 베네딕투스 1세(Benedictus I)에게 부제품을 받고, 579년 교황 펠라기우스 2세(Pelagius II)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파견되었다.

586년경 로마로 돌아온 그는 다시 성 안드레아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계속하며 교황 펠라기우스 2세를 도와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590년 교황 펠라기우스 2세가 선종하자 그는 수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제64대 교황에 선출되었다.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고 있던 시기에 그는 출중한 행정 능력과 깊은 신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그는 교회 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하며 사제와 주교들의 영적 쇄신을 강조하고, 막대한 경비를 들여 기아와 전염병으로 시달리는 시민들을 구호하기 위한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s)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키고,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다인들을 보호하였다.

그는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로 평가될 만큼 활동적인 교황이었다. 593년 랑고바르드족이 로마를 침공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직접 랑고바르드족과 담판을 지어 로마의 평화를 지켜냈다. 이로써 그는 랑고바르드족의 왕과 함께 평화의 수호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이렇듯 그는 위대한 주교이자 유능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의 학덕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실제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중세 주교와 사제가 꼭 읽어야 하는 교과서와도 같은 “사목 지침서”(Liber Regulae Pastoralis), “욥의 윤리”(Moralia in Job) 등 각종 성경 해설집과 설교집, 당시의 신학 · 전례 · 역사 · 사회학의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800여 통의 서한을 모은 “서간집”(Registrum Epistolarum), “그레고리우스 전례서”(Sacramentarium Gregorianum) 등을 집필하였다.

특히 그는 교회의 성가를 재조정하고 그레고리우스 성가도 제정하여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고 있다. 또한 성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했던 그는 총 4권의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Dialogi de Vita et Miraculis Patrum Italicorum)을 저술했는데, 제2권에서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생애를 다루었다. 이러한 방대한 저서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신학과 전례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게르만족의 개종뿐만 아니라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개종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수도원장으로 재임할 때 로마 시내에서 영국에서 온 포로들이 노예로 팔리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품게 되었다.

교황이 된 후 그는 597년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인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와 40여 명의 수도자를 영국의 켄트 왕국에 파견했고, 601년에는 영국에 요크(York) 대교구와 캔터베리(Canterbury) 대교구와 12개의 소속 교구를 설정하였다.

그는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는 동시에,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함으로써 교황권이 지배의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권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한 베네딕토 수도회를 면속시켜 교황의 권위 아래 두었다.

그는 라틴 교부의 일원이자 서방교회의 전통적인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로 평가되고 있다.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기에 그의 다양한 활동과 영성적 위대함으로 인해 ‘대교황’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그는 604년 3월 12일 로마에서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고, 사후 즉시 성인품에 올랐다.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12일에 지내오다가 1969년 전례 개혁과 함께 라틴 교회에서는 그가 교황으로 착좌한 9월 3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동방교회와 영국 성공회, 루터교 등에서는 여전히 3월 12일에 지내고 있다. 그는 음악가, 가수, 학생, 교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는 교황의 전통적 상징인 예복과 삼중관을 쓰고 있고, 방대한 저서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상징하는 책이나 악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비둘기가 주로 그려지는데, 이는 그가 방대한 저작 활동을 할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의 귓전에 머물며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성 그레고리우스의 미사를 주제로 한 작품도 많이 있는데, 이는 그가 미사를 집전하던 중 십자가 위의 고통의 그리스도께서 제대 위에 나타났다는 환시에서 시작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마클로

 

  • 가톨릭 성인 이름
    Remac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선교사,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75년경 마스트리흐트

 

 

레마클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마끌로, 레마끌루스, 레마클루스.

 

 

레마클로 자료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 출신 사제인 성 레마클루스(또는 레마클로)는 성 엘리기우스(Eligius, 12월 1일)에 의해 솔리냑(Solignac) 수도원의 초대원장으로 임명되었고, 그다음에는 룩셈부르크의 쿠뇽(Cugnon) 수도원을 지도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에 국왕 지그베르트(Sigebert)의 요청에 따라 스타블로(Stavelot)와 말메디(Malmedy)에서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초대 수도원장으로 그리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선교사 주교로서 활동하였다.

성 레마클루스는 완덕의 좁은 길을 고행으로 걸어갔다고 한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적지로 정한 선교지를 젊은이처럼 뛰어다녔고 말보다는 표양으로 개종자를 얻었다. 그는 스타블로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은수자, 석공

  • 활동 연도와 지역
    +366년경 산마리노

 

 

마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리누스.

 

 

마리노 자료

성 마리누스(또는 마리노)는 달마티아(Dalmatia) 지방 아드리아 해안에 있는 라브(Rab) 섬(오늘날 크로아티아 북부에 있는 섬) 출신의 석공이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해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리미니(Rimini)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도시의 성채를 재건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석공 레오(Leo)와 함께 티타노(Titano) 산에 있는 채석장에 가서 석공으로 일했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예가 되어 중노동을 하는 이들이 섞여 있었다. 성 마리누스와 레오는 일하는 중에 틈틈이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한편 비신자 석공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그 후 레오는 리미니의 가우덴티우스(Gaudentius)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인근의 몬테펠트로(Montefeltro)로 갔고, 성 마리누스는 부제품을 받고 나서도 이전에 하던 석공 일을 계속했다.

그는 12년 동안 리미니에 머물며 수로 공사 일을 했는데, 뛰어난 기술자이자 모범적인 신자 노동자로 널리 존경을 받았다. 그는 일하면서도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해 많은 이들을 그리스도교로 이끌었다.

그러던 중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데, 실성한 한 여성이 나타나 그를 별거 중인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결국 성 마리누스는 그 여인을 피해 티타노 산으로 들어가 외진 곳의 동굴을 처소 삼아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져 찾아오는 이들이 늘자 산 위에 성당을 짓고 수도원을 세웠다. 301년경 이렇게 모인 이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했고, 366년경 성 마리누스가 선종한 후 함께 지내던 이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산마리노(San Marino) 공동체라고 불렀다.

나중에 성 마리누스가 성인으로 공경받으면서 그가 설립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모여 생활하던 작은 공동체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발전했다. 그 나라가 성인의 이름을 딴 산마리노 공화국이다.

이탈리아 중부 아드리아의 해안 도시 리미니 왼편에 자리한 작은 나라인 산마리노 공화국은 매년 성인 축일인 9월 3일을 국경일로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4일 목록에서 성 마리누스 부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3일 목록으로 옮겨서 리미니 인근 티타노 산의 부제이자 은수자인 성 마리누스가 이교도에게 복음의 빛을 전해 그들을 그리스도의 자유로 인도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카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acani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14년 아일랜드

 

 

마카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까니씨오, 마까니씨우스, 마카니시우스.

 

 

마카니시오 자료

성 마카니시우스(또는 마카니시오)는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3월 17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성지 순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로마(Roma)를 방문한 후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귀향하자마자 그는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코너(Connor) 교구로 발전하여 자신이 초대 주교가 되었다.

한 번은 성 파트리키우스와 성녀 브리지다(Brigida, 2월 1일)와 더불어 먼스터(Munster)를 여행하던 중에 그가 오팔리의 리날리에서 천사들의 환시를 보자, 성 파트리키우스는 이곳에 수도원 짓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말리면서 그 일은 60년 후에 어느 주교가 할 일이라고 예언했는데, 이것은 성 콜만 엘로에 의하여 실제로 이루어졌다. 특히 그는 성경책에 대한 존경심이 지극하여 소중히 모셨고, 여행 중에는 꼭 가방 속에 가장 소중한 귀중품으로 모셨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만수에토

 

  • 가톨릭 성인 이름
    Mansue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툴

 

 

만수에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만수에또, 만수에뚜스, 만수에투스.

 

 

만수에토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만수에투스(또는 만수에토)를 프랑스 툴의 주교이자 고해 사제로 소개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9월 3일 목록에서 프랑스 툴에서 그 도시의 첫 번째 주교인 성 만수에투스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Scotland) 출신으로 로마(Roma)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오늘날의 프랑스와 그 인근 지역을 포함하는 갈리아(Gallia)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의 파견을 받아 365년에 툴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숲속에 집을 짓고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보내며 복음을 전하고 툴에 두 개의 성당을 건립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어린아이와 함께 나오는데, 이는 그 지역 고관의 아들이 놀다가 모젤강(Moselle R.)에 빠져 죽었는데, 성 만수에투스가 아이 어머니의 청을 듣고 소생시킴으로써 그 가족을 개종시키고, 그 지역의 복음화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에 따른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바르톨로메오 구티에레즈

 

  • 가톨릭 성인 이름
    Bartholomew Gutierrez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80-1632년

 

 

바르톨로메오 구티에레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똘로메오, 바르똘로메우스, 바르톨로매오, 바르톨로매우스, 바르톨로메우스.

 

 

바르톨로메오 구티에레즈 자료

멕시코에서 태어난 에스파냐계 사람인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1596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에 입회하여, 푸에블라에서 사제로 서품된 뒤 1606년에 필리핀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 후 그는 일본으로 파견되어 우쿠시에서 원장으로 활동하던 중에 체포되어 오무라 감옥에서 3년을 지내다가 나가사키에서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바실리사

 

  • 가톨릭 성인 이름
    Basiliss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니코메디아

 

 

바실리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실리싸.

 

 

바실리사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3일 목록에서 성녀 바실리사가 겨우 9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성녀 바실리사는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역의 니코메디아(오늘날의 이즈미트 Izmit)에서 그 지방 총독인 알렉산더에게 온갖 매질과 불과 야수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이를 모두 이겨냈고, 그 도시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창조주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겼다.

전승에 따르면, 총독 알렉산더도 성녀 바실리사의 모습에 감동해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니코메디아에서 동정 순교자인 성녀 바실리사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빈첸시오 카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 Carvalh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2년 나가사키

 

 

빈첸시오 카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빈첸시오 카발로 자료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알파마에서 태어난 빈첸시오 카발로(Vincentius Carvalho)는 리스본에서 아우구스티누스 회에 입회하여 1621년에 멕시코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 후 1623년에는 일본 선교사로 왔다가 나가사키에서 체포되어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그는 1867년 일본 순교자들의 한 사람으로 시복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산달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anda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경

 

 

산달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산달로, 산달루스, 산달리우스.

 

 

산달리오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3일 목록에서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성 산달루스(Sandalus)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에스파냐 코르도바에서 성 산달리우스(또는 산달리오 Sandalio)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언급하였다.

그 외에 그의 생애와 순교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일부 전승에서 9세기 중엽 무슬림에 의해 코르도바에서 순교한 순교자로 보기도 하지만 신빙성은 없다. 그보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아리스테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rista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카푸아

 

 

아리스테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리스떼오, 아리스떼우스, 아리스테우스.

 

 

아리스테오 자료

성 아리스테우스(또는 아리스테오)는 이탈리아 카푸아의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개연성 있는 설명에 따르면 그는 오늘날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공경을 받는 아리스테우스라는 이집트인 순교자이다.

성 안토니누스(Antoninus)는 어린이 순교자로 알려졌는데, 그는 아마도 파미아(Pamia)의 성 안토니누스(9월 2일)와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혼동과 중복은 그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아욱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ux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68년 밀라노

 

 

아욱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욱사누스, 아욱싸노, 아욱싸누스, 안사노, 안사누스.

 

 

아욱사노 자료

성 아욱사누스(또는 아욱사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서 늘 높은 공경을 받아 왔다. 그는 안사누스(Ansan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아이굴포

 

  • 가톨릭 성인 이름
    Aigulf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76년경 레렝스

 

 

아이굴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굴뽀, 아이굴뿌스, 아이굴푸스, 아이굴프, 에굴프.

 

 

아이굴포 자료

프랑스 블루아(Blois) 태생인 성 아이굴푸스(Aigulphus, 또는 아이굴포)는 플뢰리(Fleury)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670년경 레랭 수도원에 새로운 원장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은 성 아이굴푸스는 그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레랭 수도원이 있는 섬으로 갔다.

그러나 그 당시 레랭 섬에는 무어인들의 오랜 학정에 시달려 신앙생활을 거의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또 콜럼버스(Columbus)란 사람은 새로운 아이굴푸스 원장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바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헤엄쳐 나온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성 아이굴푸스의 유해는 나중에 레랭으로 이장되었는데, 레랭과 플뢰리가 서로 성인의 유해를 모신다고 해서 큰 싸움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안드레아 도티

 

  • 가톨릭 성인 이름
    Andrew Dott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56-1315년 산 세폴크로

 

 

안드레아 도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안드레아 도티 자료

안드레아 도티(Andreas Dotti)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산 세폴크로 태생으로 좋은 집안의 영향 때문에 처음에는 수도 생활을 꿈꾸지 않았다. 

17세 때 그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 재속 3회원이 되었다가 1278년 성 필리푸스 베니티우스(Philippus Benitius, 8월 22일) 총장의 설교를 들게 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은 그는 그 자리에서 정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 후 1280년 사제가 된 안드레아는 성 필리푸스 베니티우스 신부를 수행하여 수차례나 선교여행을 다녔다.

1310년 그는 성모의 종 수도회 설립자인 성 알렉시우스 팔코니에리(Alexius Falconieri, 2월 17일)의 선종을 지켜본 뒤 크게 감동해 은둔소로 물러날 결심을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바루콜라(Barucola) 은둔소에서 기도와 고행으로 심신을 단련했고, 수많은 환시를 보기도 했다. 그의 제자들은 바위 위에서 탈혼 상태에 빠진 그를 보았는데, 나중에 그를 깨우려고 가보니 이미 선종한 뒤였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고향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회 성당 제대에 안치되었고, 그에 대한 공경은 1806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안토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nton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안토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안토니누스.

 

 

안토니노 자료

성 아리스테우스(Aristaeus)는 이탈리아 카푸아(Capua)의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개연성 있는 설명에 따르면 그는 오늘날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공경을 받는 아리스테우스라는 이집트인 순교자이다.

성 안토니누스(또는 안토니노)는 어린이 순교자로 알려졌는데, 그는 아마도 파미아(Pamia)의 성 안토니누스(9월 2일)와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혼동과 중복은 그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제노

 

  • 가톨릭 성인 이름
    Zen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제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제노 자료

성 제노와 성 카리톤(Chariton)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 외에 자세한 순교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카리톤

 

  • 가톨릭 성인 이름
    Charit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카리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까리똔, 카리똔.

 

 

카리톤 자료

성 제노(Zeno)와 성 카리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 외에 자세한 순교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크로데강

 

  • 가톨릭 성인 이름
    Chrodegang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69년 세즈

 

 

크로데강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고데그란노, 고데그란누스, 고데그란드, 고데그랑, 고데그랜드, 끄로데강, 끄로도간고, 크로도간고, 크로도강고.

 

 

크로데강 자료

성 크로데강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의 아르장탕(Argentan) 근처 엑스메(Exmes)에서 태어났다. 그는 몽트뢰유(Montreuil)의 성녀 오포르투나(Opportuna, 4월 22일)의 오빠이자 세즈 교구의 주교로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든 이들의 수호자라는 평을 들었다.

769년에 그는 로마에 가서 사도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의 무덤을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의 수도원이 있는 알므네슈(Almeneches)로 가던 중 암살당했다.

그를 암살한 크로도베르트(Chrodobert)는 성 크로데강이 오랫동안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구를 관리할 책임자로 믿고 맡긴 사람이었는데, 확고한 신뢰를 이용해 계획적으로 성 크로데강을 살해하였다.

성녀 오포르투나는 환시 중에 오빠의 죽음을 미리 보았지만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고, 성 크로데강이 죽은 후 그의 시신을 자신의 수도원에 안장하였다. 성 크로데강은 고데그랑(Godegrand), 고데그란누스(Godegrannus), 크로도간고(Crodogango)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올라가지 않았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가 살해된 날인 9월 3일 목록에 그를 추가하며,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세즈에서 주교이자 순교자로 기념한다고 기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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