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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남자세례명 9가지

pieonane 2023. 10.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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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고스마, 닐로, 다미아노, 비질리오, 세나토르, 아만시오, 요한, 치프리아노, 칼리스트라토, 총 9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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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여자세례명 데레사 쿠데륵, 루치아, 유스티나,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2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9월 26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고스마

  2. 닐로

  3. 다미아노

  4. 비질리오

  5. 세나토르

  6. 아만시오

  7. 요한

  8. 치프리아노

  9. 칼리스트라토

 

9월 2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9가지

 

 

1. 고스마

 

  • 가톨릭 성인 이름
    Cosm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의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고스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고스마스, 코스마, 코스마스.

 

 

고스마 자료

전승에 따르면 성 코스마(또는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는 아라비아(Arabia)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된 후 소아시아 남동부에 있는 실리시아(Cilicia) 지방 에게해(Aegean Sea) 근처에 살면서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환자와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의료기술이 뛰어나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약으로 낫기 어려운 병자들도 간절한 기도로 돌봐줘 육신과 영혼의 건강까지 치유해주는 의사로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칭송을 받았다. 실제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들의 의술과 자선에 대한 명성은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를 시작했을 때,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형제는 실리시아의 집정관인 리시아스(Lysias)에 의해 체포되었다. 곧바로 그들은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던 이 형제는 끝까지 집정관의 요구를 거부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리시아스가 처음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를 돌로 쳐 죽이려 했으나 그 돌이 되돌아와 던진 이들이 다치고, 다시 십자가에 묶어 놓고 화살을 쏘았으나 그 화살 또한 쏜 사람에게 되돌아와 꽂혀버렸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도 바다에도 던졌지만 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참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인 성 안티무스(Anthimus) · 성 레온티우스(Leontius) · 성 에우프레피우스(Euprepius)도 함께 처형당했다.

그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이미 4세기 초부터 예루살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이 건립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들이 순교한 지 백 년이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그들의 유해를 모신 대성당을 건축했는데, 이곳은 점차 주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6세기에 교황 펠릭스 4세(Felix IV, 526-530년 재위)도 로마에 두 성인에게 봉헌한 대성당을 건립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 두 성인의 축일은 다른 세 형제와 함께 9월 27일이었는데, 그날은 로마의 대성당이 봉헌된 날이라고도 하고 순교한 날이라고도 한다.

현재 그 성당은 재건축되었으나 내부에는 두 성인을 묘사한 6세기의 모자이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두 성인은 이미 6세기경부터 로마 전문(Canon, 오늘날 미사 경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서 기억하는 성인들 명단에 추가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9년 전례 개혁 이후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의 축일은 9월 26일로 변경되었다. 이는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하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순교자의 행적을 추가하면서 옛 “로마 순교록” 9월 27일 목록에서 언급한 세 명의 형제 순교자의 이름을 26일과 27일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는 약제사의 수호자이고, 성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많은 의사들이 성 다미아누스보다 성 코스마를 세례명으로 선호하는데, 이는 그들이 팔라디아라는 여인의 병을 치료할 때 성 다미아누스가 환자의 간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치료비를 받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 미술에서 두 성인은 주로 함께 등장하며, 약이 담긴 작은 상자나 의료기기를 들고 있거나 병자를 치료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의사와 약사, 이발사와 미용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N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910-1004년 로사노

 

 

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닐루스.

 

 

닐로 자료

성 닐루스(또는 닐로)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 로사노 출신의 그리스인으로서, 젊었을 때에는 고향에서 세리 일을 맡아 보았고, 젊은 여인과 함께 살았으나 아내는 아니었다고 한다.

940년에 그 여인과 아이가 죽자 그는 캄파니아(Campania)의 팔마(Palma)에 있는 비잔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40년을 살았다. 그가 유명 인사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선성과 지혜 때문인데, 성 데메트리우스 코로네 수도원의 원장이 되면서부터 더욱 두드러졌다.

그는 사라센인들의 침략으로 수하 수도자들을 데리고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인접한 곳으로 피신하여 벨레루치오(Vellelucio)에 정착하였다. 성 닐루스는 임종하면서 벨레루치오를 자신의 수도원을 위한 새로운 장소로 선포하였고 그곳에서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 수도원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리스 수도자의 아버지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세 번째 계승자인 그로타페라타의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11월 11일)는 성 닐루스가 세운 수도원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졌던 그의 수제자였고, 스승과 같이 찬미가를 짓기도 하였다. 또 그는 노련한 서예가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다미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Dam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의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다미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미아누스, 다미안, 다미앵, 데미안, 데미언.

 

 

다미아노 자료

전승에 따르면 성 코스마(Cosmas)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또는 다미아노)는 아라비아(Arabia)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된 후 소아시아 남동부에 있는 실리시아(Cilicia) 지방 에게해(Aegean Sea) 근처에 살면서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환자와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의료기술이 뛰어나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약으로 낫기 어려운 병자들도 간절한 기도로 돌봐줘 육신과 영혼의 건강까지 치유해주는 의사로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칭송을 받았다. 실제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들의 의술과 자선에 대한 명성은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를 시작했을 때,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형제는 실리시아의 집정관인 리시아스(Lysias)에 의해 체포되었다.

곧바로 그들은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던 이 형제는 끝까지 집정관의 요구를 거부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리시아스가 처음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를 돌로 쳐 죽이려 했으나 그 돌이 되돌아와 던진 이들이 다치고, 다시 십자가에 묶어 놓고 화살을 쏘았으나 그 화살 또한 쏜 사람에게 되돌아와 꽂혀버렸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도 바다에도 던졌지만 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참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인 성 안티무스(Anthimus) · 성 레온티우스(Leontius) · 성 에우프레피우스(Euprepius)도 함께 처형당했다.

그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이미 4세기 초부터 예루살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이 건립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들이 순교한 지 백 년이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그들의 유해를 모신 대성당을 건축했는데, 이곳은 점차 주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6세기에 교황 펠릭스 4세(Felix IV, 526-530년 재위)도 로마에 두 성인에게 봉헌한 대성당을 건립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 두 성인의 축일은 다른 세 형제와 함께 9월 27일이었는데, 그날은 로마의 대성당이 봉헌된 날이라고도 하고 순교한 날이라고도 한다. 현재 그 성당은 재건축되었으나 내부에는 두 성인을 묘사한 6세기의 모자이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두 성인은 이미 6세기경부터 로마 전문(Canon, 오늘날 미사 경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서 기억하는 성인들 명단에 추가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9년 전례 개혁 이후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의 축일은 9월 26일로 변경되었다. 이는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하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순교자의 행적을 추가하면서 옛 “로마 순교록” 9월 27일 목록에서 언급한 세 명의 형제 순교자의 이름을 26일과 27일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는 약제사의 수호자이고, 성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많은 의사들이 성 다미아누스보다 성 코스마를 세례명으로 선호하는데, 이는 그들이 팔라디아라는 여인의 병을 치료할 때 성 다미아누스가 환자의 간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치료비를 받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 미술에서 두 성인은 주로 함께 등장하며, 약이 담긴 작은 상자나 의료기기를 들고 있거나 병자를 치료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의사와 약사, 이발사와 미용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비질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Vigi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06년 브레시아

 

 

비질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길리오, 비길리우스, 비질리우스.

 

 

비질리오 자료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의 주교인 성 비길리우스(또는 비질리오)는 지역 수도원을 후원하고 자신의 교구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는데 노력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세나토르

 

  • 가톨릭 성인 이름
    Senato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4세기 알바노

 

 

세나토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나또르, 쎄나또르, 쎄나토르.

 

 

세나토르 자료

성 세나토르는 이탈리아 중서부 로마(Roma)를 중심으로 하는 라치오(Lazio) 주의 알바노에서 순교자로서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모두 9월 26일 목록에서 그의 이름만 전해주고 있을 뿐 다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순교 시기는 3/4세기로 보고 있다.

로마의 아피아 가도(Via Appia)에는 로마 시대에 포촐라나(Pozzolana, 화산재를 이용한 시멘트의 원료)를 채굴하던 곳에 조성된 성 세나토르 카타콤바가 있다.

묘지에 대한 고대 기록을 보면 이곳에는 성 세나토르 외에도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이 묻혀 있고,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곳에는 여러 무명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있는데, 4세기부터 9세기까지 그리스도교의 장례 예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아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ma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600년 치타디카스텔로

 

 

아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만시우스, 아만씨오, 아만씨우스, 아만티오, 아만티우스.

 

 

아만시오 자료

성 아만티우스(또는 아만시오)는 이탈리아 중부 치타디카스텔로의 본당 사제로 그의 성덕으로 인해 교황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에 의해 공경을 받게 되었다. 그는 치타디카스텔로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59년? 메다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12세기의 북 이탈리아 지방에서는 좋은 가문의 사람들이 스스로 회개와 애덕 사업에 힘을 모은 일이 있었는데, 이들은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권고로 세속의 지위와 재산을 포기하고 밀라노(Milano)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로데나리오에서 은수자로 살던 성 요한(Joannes)이 이 단체에 가입하였다. 이들이 소위 ‘후밀리아티’(Humiliati, 가난한 이들)이다.

그는 이들이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회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성모 소성무일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모습은 후일에 크게 변하여, 1571년에는 성좌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그는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 1159-1181년 재임)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치프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ypr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안티오키아

 

 

치프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치쁘리아노, 치쁘리아누스, 치프리아누스, 치프리안, 키프리아노, 키프리아누스, 키프리안.

 

 

치프리아노 자료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나 엣 “로마 순교록”이나 전승에 따르면,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또는 치프리아노)는 안티오키아에 살던 이교도로서 잡귀신들을 불러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능력 때문에 그리스,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고 심지어는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한 이교도 청년이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교 신자로 미모의 처녀인 성녀 유스티나(Justina)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 키프리아누스에게 그녀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성 키프리아누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마술을 동원해 예식을 거행했으나 성녀 유스티나의 굳은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

결국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모든 도구를 동원해 성녀 유스티나를 괴롭힐 악마들을 불러냈다. 그러나 성녀 유스티나는 십자가 표지로 마귀들의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이에 그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면서 억누를 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에 압도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때부터 악마의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악마가 그를 덮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친 성 키프리아누스는 십자가를 만들어 악마의 세력에서 빠져나오는 행운을 맛보게 되자, 즉시 에우세비우스(Eusebius)라는 사제에게 달려가서 교리를 배우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는 주교 앞에서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마술 서적을 불태우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했으며, 마침내 이교도 청년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고 또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고 하고, 성녀 유스티나는 수녀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다는 성 키프리아누스가 역사적 인물로 존재한 적이 없으며 같은 이름을 갖고 널리 알려진 카르타고(Carthago)의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 주교와 혼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고 있다. 성녀 유스티나 역시 파도바(Padova)의 성녀 유스티나(10월 7일)와 혼동해서 생긴 이야기로 보인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 뒤에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다마스쿠스(Damascus)로 압송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성 키프리아누스와 성녀 유스티나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황제 앞으로 끌려나가 재판을 받았고,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의 이즈미트)의 갈루스(Gallus) 강 언덕에서 황제의 명으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이때 성 키프리아누스를 찾아와 위로했던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라는 신자도 함께 처형을 당했다. 그들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고 6일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나, 밤중에 그리스도인 선원들에 의해 로마(Roma)로 옮겨졌다. 그들의 유해는 루피나(Rufina)라는 귀족 부인의 영지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콘스탄티누스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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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축일은 13세기부터 보편 전례력에서 기념했으나 실존 여부에 대한 역사적 증거 부족으로 인해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보편 전례력에서 삭제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이유로 그들의 이름을 삭제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칼리스트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Callistr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0년

 

 

칼리스트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갈리스트라토, 갈리스트라투스, 깔리스뜨라또, 깔리스뜨라뚜스, 칼리스트라투스.

 

 

칼리스트라토 자료

성 칼리스트라투스(또는 칼리스트라토)는 49명의 동료 군인들과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 박해 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자루에 넣어져 꿰매진 후 바다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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